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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신은 정말 있을까? 이 거대한 물음을 담은 흑백 명작 '제7의 봉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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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정말 있을까? 이 거대한 물음을 담은 흑백 명작 '제7의 봉인'

썬도그 2012. 5. 18. 01:14

좀 취했습니다. 취한 기분으로 글 쓰는것은 기만적인 행동입니다. 또한 밤에 쓰는 글은 감정 조절이 되지 않기에 쓰면 안된다고 합니다. 이 첫 문장을 쓰면서도 고민고민 했습니다. 그냥 ALT+F4를 눌러서 로그오프 할까 했지만 취한 기분을 추스려서  써 볼까 합니다.

영화를 보고 신촌에서 술을 한잔 했습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물음 때문에 많은 말과 생각을 주거니 받거니 했고 예상대로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이 명작의 감동 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우리 모습에 큰 꾸지람을 하는 것 같아서 좀 취했습니다.


아래 리뷰는 영화 줄거리가 다 담겨 있기에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보실 분들은 여기까지 읽고 뒤로 버튼을 눌러주세요.

영화 매니아라면 아니 일반인도 이 영화 제목은 어디선가 들어 봤을 것입니다. 80년대 영화 잡지였던 '로드쇼'나 '스크린'에서 극찬에 극찬을 했던 영화인지라 80년대에 전 이 영화 제목과 포스터를 봤습니다. 그러나 국내 개봉은 된적이 없었고  시네마테크에서나 영화감독들의 극찬으로만 들었던 작품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영화 명작이 있지만 그 명작중에서도 명작으로 평론가들이 두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영화였죠
하지만 까칠한 시선으로 봤습니다. 명작이라도 21세기에 통할까? 하는 시선으로 봤습니다. 

솔직히 극장을 나설때 까지만 해도 그냥 그냥 그랬습니다. 그런데 청량음료 같은 영화와 달리 서서히 달아 오르게 하네요. 
이게 명작의 향기인가요? 이렇게 뒤 늦게 달아 오르게 하는 영화도 많지 않습니다. 마치 50년된 와인을 먹고 뒤늦게 취하는 느낌이네요


이 영화는 스웨덴의 명감독 '잉마르 베르만'의 57년도 작품입니다. 그리고 흑백영화입니다. 두 세대가 지난 영화지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인간의 삶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명배우 '막스 폰 시도우'의 젋디 젋은 모습이 나옵니다. 마른 시도우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칩니다. 영화의 배경은 14세기 유럽입니다. 막 십자군 원정대에 참여했다가 10년만에 집으로 향하는 십자군 기사가 주인공입니다. 

해변가에서 시니컬하고 오히려 기사 블로크 보다 현자 같은 시종 옌스와 블로크가 나옵니다. 블로그가 해변가에서 널부러져 있을 때 죽음의 사신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검은 망토와 밀가루를 뒤집어 쓴 흰얼굴이 공포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기사 블로크'는 그 모습에 놀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하게 받아들입니다. 사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죽음을 반겨하는 모습이지만  블로크는 기지를 발휘해서 체스를 두자고 합니다.

목숨을 건 체스 한판. 사신은 블로크와 체스를 둡니다. 체스에서 지면 블로크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체스 게임은 길어지고 길어진 만큼 죽음은 연장되었습니다.


시종 옌스와 블로크는 흑사병이 퍼진 북유럽을 그대로 목도합니다. 종말이 가까운 듯 거리에는 시체가 널부러져 있고 죽음의 공포에 사람들은 이성이 마비되어가는 모습입니다.  한 성당 앞에서  흑사병을 성당 안 벽화로 그리는 사람을 만난 시종 옌스는 흑사병의 참혹함을 그림으로 배웁니다. 

성당 앞에는 흑사병을 퍼트린다는 이유로 한 여자를 마녀사냥합니다. 이성은 마비되고 애먼 여자들만 마녀라고 윽박지르며 불태울려고만 합니다.

블로크는 사색이 많은 사람입니다. 죽음을 거부하지 않지만 죽기전에 알고 싶은게 있습니다. 그 궁금증이란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합니다.

항상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하나님. 그 자비와 사랑을 보여달라고 애걸복걸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믿음만을 강요하는 모습에 블로크는 넌더리를 냅니다. 

여기 한 유랑단이 있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해서 세상이 흉흉한 시대이지만 항상 밝게 살려는 광대부부와 유랑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세상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광대짓을 해서 근근히 먹고 살고 있습니다. 

광대부부의 남편은 가끔 환영을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모마리아를 보고 난 후 부인과 유랑단 단장에게 말하지만 역시나 무시 당합니다.  시종 옌스는 이 유랑단을 한 마을에서 만납니다.  옌스와 블라크는 어찌보면 산초와 돈키호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과묵하고 묵직한 성자 같은 기사 블로크와  10년간의 십자군 원정을 통해서 현자같은 말을 하는 옌스, 그 둘이 한 마을에 도착 했을때 이 유랑단 단원들을 만납니다.

광대짓을 하는 부부는 동네 병사들과 주민들에게 큰 웃음을 주지 못합니다. 그때 한 거대한 장례식 같은 행렬이 지나갑니다.


사실 영화 초반 여기까지는 상당히 졸렸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장례식 같은 행렬이 지나갈때 동공이 커졌습니다. 나무로 만든 예수님이 있는 십자가를 메고 사람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스스로 채찍질을 하고 혹은 남을 채찍질 하면서 지나가는 그 행렬은 공포스럽기만 합니다

한 성직자가 말합니다
"흑사병은 하나님이 준 형벌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줍니다. 우리가 죄를 너무나 많이 지어서 하늘에서 노한 것이라면서 공포감을 심어줍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무릅을 꿇고 지켜봅니다.


전 이 모습에 졸리운 눈이 크게 떠졌습니다.
그 이유는 이건 종교 행렬이라기 보다는 죽음을 엔진으로 삼은 사이비 종교 집단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가장 쉽게 설득할 수 있는 감정이 뭘까요? 사랑, 기쁨, 웃음 아닙니다. 공포입니다.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감정은 바로 공포입니다. 보수정당이 빨갱이들이 쳐들어온다라고 말하면 공포에 질린 사람은 빨갱이에 대한 공포심에 보수정당에 표를 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가 전도하는 전형적인 모습중 하나가 공포입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초등학교 때 한 아주머니가 저에게 교회 나오라면서 준 종이에는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신음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있었고 교회를 나오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무조건 이 꼴난다고 공포심을 심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의 기독교는 교회 안나오면 지옥간다는 공식으로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라고 합니다. 왜 사람들에게 겁을 줘서 하나님을 믿게 할려고 할까요? 이게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전도 방식입니까?

성직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붇습니다. 니들이 죄가 많아서 언제 죽을지 모르니 사죄하라고 윽박지릅니다. 
영화는 이런 종교가 공포심으로 지탱되고 있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나타냅니다


여기에 선량한 광대 부부의 남편이 선술집에서 닭을 먹고 있는데  다른 광대와 대장장이 마누라가 눈이 맞아서 달아난 것을 같은 광대라는 이유로 집단 해꼬지를 하는 모습속에서 이성이 마비된 사람들의 광끼도 담고 있습니다.

기사 블로크는 이 광대부부와 대장장이와 함께 자신의 성으로 가자고 합니다. 자신의 성은 흑사병도 없고 안전할것 이라면서 밤길을 달려서 성으로 갑니다. 그때 사신이 다시 나타납니다. 다 두지 못한 체스를 두자면서 숲속에 다시 나타나죠.

이 모습을 환영을 잘 보는 광대 남편이 보게 됩니다. 
사신을 보게 되고 사신과 눈이 마주치면 그 사람을 죽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블로크 기사는 일부러 체스판을 엎어서 시선을 유도한 후 그 광대 부부가 마차를 타고 숲에서 빠져나가기는 것을 돕습니다


그리고 블로크 일행은 죽음의 춤을 추게 됩니다. 많은 영화에서 패러디 된 명장면이죠. 


어떻게 보면 영화 내용은 별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종교와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영화일 뿐입니다. 단순하고 약간은 투박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명작으로 손 꼽히는 이유는 우리 인간이 살면서 하는 물음인 신의 존재 여부와 함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잘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 블로크가 영화 초반에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은 공포로 가득한데 그 공포심을 이기기 위해서 존재 하지 않는 신을 인간이 만들어서 피난처로 삼는것 아니냐는 물음을 하죠. 실제로 신은 없지만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서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든것이 아니냐는 것 입니다.

이 물음은 저도 공감합니다. 저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종교를 믿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신의 존재는 어느정도 믿긴 합니다만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는 종교 특히 한국 종교들은  '우리 종교 안 믿으면 너 지옥가!'나는 협박어린 어조로 말하는 것 같아서 믿지 않습니다

안양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기독교 전도하는 분이 저에게  교회 나오라고 하더군요. 제가 싫다고 거부하고 피하니까 
쯧쯧 거리면서 걱정어린 시선으로 절 쳐다 봅니다. 저 그 표정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마치 못난 놈! 그러다 너 지옥가. 불쌍한 놈 하나님이라는 동앗줄을 왜 마다하는건지 멍청한 놈! 이라는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식의 인도는 거부합니다. 그런 인도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인 공포심을 이용한 인도이자 천박한 행동입니다.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얇으니 다른 사람들을 끌어 들일때 "불신지옥 예수천국"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 아닙니까?


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기사 블로크와 시종과 일행이 10년만에 십자군 원정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때 부인이 요한계시록의 무시무시한 부분을 읽습니다.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어서 세상의 종말을 말하는 그 요한계시록. 어렸을 때 요한계시록 그 부분 읽고 그 어떤 공포소설보다 무서웠습니다. 

진짜 종말 때 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바다의 반 이상이 핏빛으로 물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체를 상상하는 자체만으로 무섭고 무서웠습니다. 이런 공포스러운 구절을 읽는데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그 방문객을 블로크 일행들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본 느낌으로 쳐다 보고 환영합니다. 한 여자는 눈물까지 흘립니다. 그 눈물이 공포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로 보였습니다. 여기에 현자 같은 시종은  하나님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애걸 복걸하는 주인님인 블로크를 타박까지 합니다. 

그 방문객은 바로 '사신'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신과 함께 죽음의 춤을 추게 됩니다.  죽음의 신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 마치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듯한 모습들의 얼굴속에서 성직자의 표정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신에 대한 존재 유무를 끊없이 묻는 발로크가 찌질해 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죽음이라고 하죠.

부자던 가난한 사람이던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이 거대한 진리와 종교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 2세대가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줍니다. 솔직히 이 영화 이런 깊은 성찰을 느끼지 못하면 졸리운 영화입니다. 따라서 이런 예술 영화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교와 죽음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항상 침묵하기만 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불만이 있는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발로크는 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할려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신이 되어 생명을 잉태합니다. 사신의 시선을 돌려서 광대부부를 살리는 모습은 블로크가 신이 된 모습을 보여주죠

신은 존재 할 것으로 믿습니다. 다만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뿐이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을 닮고 싶은 사람들이 오늘도 남의 행복을 위한 행동을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내 친구를 위해서 희생하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 자신의 기쁨을 희생하는 그 모든 사람들이 신이 아닐까요?  죽음이라는 어두움을 물리쳐 달라고 징징거리면서 신에게 기도드리기 보다는 현실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안에 있는 신이 아닐까요?

블로크는 죽었지만 그는 잠시나마 신이 되었습니다. 신은 존재하는게 아닌 실현되는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요즘 종교들은 신을 믿는게 아닌 신을 세일즈 하는 외판원과 같은 느낌이 많습니다. 수 많은 종교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신은 과연 존재합니까? 존재 한다면 왜 존재하는 것 입니까? 종교를 위해 존재 합니까?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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