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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학원폭력 피해자들이 읽어봐야 할 책 '데미안'

by 썬도그 201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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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믿지마세요. 그들은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줄줄 모릅니다. 어린아이가 울고 있으면 울지마! 라고 할 뿐 왜 우는지 눈 높이를 낮춰서 다정하게 말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정부를 믿지마세요. 학원폭력 희생자가 속출하자 정부가 하는 행동은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설문지 돌려서 학원폭력을 당했냐 안당했냐 카운팅이나 하는 졸렬한 행정가들이니까요

제가 현재의 초중고등학생들중 학원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세상의 싱클레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책 '데미안'


고전이 왜 고전인지 왜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는 책이 바로 '데미안'입니다
하지만 데미안을 전 학창시절에 읽지 않았습니다.  그냥 대게 미안하네! 라는 개그 소재로 쓰일때 같이 웃기만 했죠

그러나 1,2차 대전 때 죽인 독일병사들의 품속에서 '데미안'이 많이 나왔다는 모습에서 이 책이 방황하는 청소년과 청춘들에게 어떤 큰 울림을 가져다 주는 책인지 대충 짐작은 했습니다. 그리고 기성세대가 되어서 뒤 늦게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입니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어둠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는 이야기가 책 전반부에 나옵니다. 


세상은 두 개의 세계로 나눕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와 사랑이 가득한 밝은 세계와 술주정뱅이가 욕질을 하고 경찰출동 소리가 들리고 접시깨지는 부부싸움과 폭력이 만연한  어두운 세계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두 세계는 그리 멀지 않느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싱클레어는 10살 나이로 라틴어 학교를 다닙니다.
수업이 없는 오후 하릴없이 친구들과 배회를 하다가 13살 쯤으로 보이는 주정꾼인 양복점 아버지를 둔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게 됩니다. 

"야! 이리와 봐"

크로머는 어둠의 세계였고 싱클레어는 두려움과 무서움을 두룬 채 어둠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강가에서 크로머와 그 일당들이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침묵을 하면 크로머에게 노여움을 살까봐  '싱클레어'는 거짓말을 합니다

"모퉁이 물방아간 근처에 과수원이 있는데 배낭가득 사과를 훔쳤어"

그말을 지긋하게 듣던 크로머는 그 말이 사실이냐고 묻고 그 과수원집 주인이 사과를 훔친 놈을 고발하면 은화 2마르크를 준다고 했다면서 '싱클레어'를 협박합니다.

어둠의 세계에 완벽하게 갇힌 싱클레어는 어머니 몰래 돼지 저금통을 깨서 2마르크에 미치지 못하는 돈을 줍니다.
이렇게 '크로머'에게 약점이 잡힌 싱클레어는 어둠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2마르크를 다 갚기전에는 나갈 수 없는 어둠의 세계, 그러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도 쉽게 말하진 못하는 '싱클레어'를 크로머는 독사같이 이용해 먹습니다. 

그렇게 몇 주동안 '싱클레어'는 크로머에게 심부름, 한쪽 다리로 토끼 뜀, 길가는 사람 등에 종이 붙이기등을 하면서 절망과 굴종을 느끼게 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립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싱클레어 부모님은 걱정어린 시선만 보냅니다. 

이때 희망과 같은 데미안이 학교로 전학을 옵니다. 부유한 미망인의 아들인 '데미안'은 '싱클레어' 보다 나이도 많고 한 학년 위였습니다. 어른스럽고 신사다운 데미안은 선생님과 맞서는 늠름함과 단호한 음성을 가졌고 그런 그를 '싱클레어'는 호감을 가집니다. 

어느 날 둘은 학교 길에서 학교에서 들은 '카인과 아벨'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카인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카인의 얼굴에 있는 표적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왜 너희들도 그 사람을 그냥 쳐죽이지 않는 거지"라고 누가 물으면 그들은 "우리가 겁쟁이이기 때문이죠" 라고 말하지 않고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표적을 가지고 있거든요. 하느님이 그에게 그려주신 겁니다" 라고 말했지

대략 그런식으로 그 사기는 이루어졌을 게 틀림없어.

데미안 42페이중 발췌

이 소설에서 이 대목은 아주 중요한데요. 실제로 폭력가해자가 두려운것은 폭력가해자가 강해서인것도 있지만 폭력피해자 학생들이 겁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려움에 대한 제 이야기를 해보죠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제 중학교 2학년은 그 놈 때문에 망쳤습니다. 이 녀석은 학기초에 복도에서 키 순서대로 서는데 저를 발견 했습니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바라본거죠. 그리고 제 뒤에 섰습니다. 그리고 제 뒤에 선 이유를 학기초 시험때 알았습니다

"너 시험지 다 풀고 시험지 책상 끝으로 옮겨 놓아 그래야 내가 볼 수 있으니까"
두려웠습니다. 그 녀석은 강한 인상과 폭력써클의 일원은 아니였지만 준회원 정도 되는 녀석이었죠

그렇게 1년을 고통속에 보냈습니다. 
누구에도 이 고통을 호소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요? 선생님이 믿음직 스럽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들은 일을 더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님들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이 왜 한 세대가 지나도 똑 같을까요? 왜 지금의 학생들도 자신의 고통을 선생님에게 말하지 않을까요?

복수 담임제? 그게 먹힐거라고 생각합니까? 오히려 학생들의 분란에 대한 책임을 N분의 1로 나누는 행동 아닐까요?
선생님들이 이 고통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죽고 싶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고통의 1년을 보냈고 다행히 그 녀석은 중3때 다른반이 되었습니다. 그 녀석에게서 해방되자 제 성적은 팍팍 올랐습니다. 그 이유는 그 놈에게 벗어남도 있지만  데미안 같은 저의 영혼의 주기율과 비슷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렇게 그 어둠의 세계에 있는 녀석을 잊고 살다가 대학교 때 친구들과 동네 호프집에서 술 한잔 걸치고 새벽길을 걷는데 뒤에서 한대의 빠른 차가 우리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 멈추더니 다른 차의 사이드미러를 쳤는지 내려서는 확인하더군요

그 차에서 내린 놈은 바로 절 괴롭혔던 그 녀석이었습니다
순간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때 제 친구가 "저 양아치 새끼 아직도 저러고 다니나 보네" 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예전에 자기한테 맞고 울고 다니던 놈이라고 말합니다.  같이 술을 먹었던 친구는 다른 동네 사는데 그 동네에 제가 두려워 했던 그 녀석도 같이 살았고 어려서 부터 잘 알던 사이라고 합니다.  싸움을 잘 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고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삐뚤어졌다고 하네요. 그런 자초지종을 들으니 제 중2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왜! 난 저 녀석 앞에서 싫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나. 
왜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서 벌벌거리고 내 인생 1년을 허비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허비가 아닌 공포의 나날이었죠

지금 돌아봐도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기가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실제로는 양아치 수준인 놈에게 벌벌 거리던 내 모습이 창피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저의 이야기 하나 더 해드릴께요

국민학교 4학년때로 기억합니다. 사촌동생이 방학때면 놀러와서 지내는데 약 2주간 우리집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놀았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아이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서열이 정해져 있었고 탑 클래스에 드는 친구인 '민호'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깡도 좋고 싸움도 잘하기로 소문이 나서 제가 감히 덤빌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절 괴롭히는 녀석은 아니였지만 저는 동네 친구라서 안 괴롭히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길에서 삥 뜯었다는 이야기나 으슥한 곳에서 담배피고 그만 그만한 녀석들끼리 어른 흉내 낸 것을 자랑하던 친구였죠. 뭐 이건 민호라는 친구가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 이야기고  초등학교 때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무튼 이 민호라는 녀석이  3학년인 제 사촌동생에게 뭐라고 하고 손지검을 할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저는 그 민호라는 녀석에게 대들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절 지배할려고 했지만 그 보다 가족을 보호해야겠다는 용기가 공포를  덮어 씌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제가 그 싸움에 이겼습니다. 제 스트레이트 펀치에 얼굴을 연타로 맞은 녀석은 근처에 있는 돌을 집어서 찍을려고 하더군요. 

아이들 싸움에서 울거나 돌 집으면 그 싸움 진것을 인정하는 모습이죠. 돌을 집어서 찍을려고 했어도 당당하게 서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말리고 스스로 돌을 땅에 던지면서 싸움은 끝이 났고  나중에 민호라는 녀석이 당시 내 주먹에 대한 평을 해주더군요 
보통 주먹을 휘두르면 훅으로 때리는데 넌 스트레이트로 치더라 그거 피하기도 힘들더라고.

제가 그때 권투를 좋아해서 그랬나 봅니다. 이 사건 아닌 사건 때문인지 이후에 절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똑 같습니다. 학원폭력 가해자 놈들 보면 꼭 몰려다닙니다. 자신들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무리짓기죠. 꼭 쪽수로 상대를 제압할려고 하죠. 호랑이가 사냥할 때 여럿이서 사냥합니까? 진짜 힘이 쎈 동물은 혼자 또는 가족 단위로 사냥을 하지 초식동물 같이 수십명씩 몰려 다니지 않습니다.

다시 데미안 이야기를 해보죠

그렇게 크로머라는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싱클레어'는 좀도둑을 해서 2마르크를 다 갚습니다.
그러나 크로머는 그 2마르크가 좀도둑으로 번 돈임을 알고 또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이번엔 싱클레어 누나랑 데이트 하고 싶다면서 같이 산책가자며 꼬셔서 데리고 오라는 것 입니다. 
이때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다가 옵니다.  싱클레어는 대충 크로머와 싱클레어 관계를 눈치 챈듯 합니다.

하지만 싱크레어의 마음속 어두움은 밝은 세계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 하고 거부합니다. 

"날 내버려 둬! 데미안" 

이에 데미안은 "그놈을 두려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건 너도 잘 알겠지. 사내대장부가 될려면 그 따위 것에서 벗어나야 해"

요즘 학생들의 학원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만 답답해서 미치겠습니다.
그렇다고 복수담임이니 전수조사니 경찰차를 운동장에 상주시키고 사람 불러도 이 학원폭력은 해결하기 힘듭니다. 다만 그 학원폭력을 줄일 수는 있겠죠

저 북유럽 처럼 인성교육을 우선시 하면 확 달라지겠지만 한국같은 나라가 북유럽을 따라가기에는 우리 어른들의 의식구조부터 확 바꿔야 하는게 이건 피를 바꾸는 것보다 더 힘이 듭니다. 따라서 이런 현실을 바꿀려면 우리 어른들과 교사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학생들 자신들도 공포에 오들오들 떨지 말고 두려움을 직시하고 그 공포를 이겨내십시요

여기서의 공포란 폭력에 대한 공포도 있지만 그 폭력을 고발해서 오는 후폭풍에 대한 공포도 포함됩니다.
데미안은 크로머를 죽여버리라고 말했지만 그 방법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대신 법의 테두리에서 처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바로 부모님입니다

우리 부모님들 자식 앞에서는 강합니다. 손님들에게는 머리를 숙이고 을의 입장에서 평생을 살지만 자식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한게 우리 부모님입니다. 제가 그 민호를 때린 것은 제 가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싱클레어는 크로머라는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자 마자 어머니에게 그동안의 자신의 악행을 고해성사합니다
어머니가 회초리를 들었을까요? 모든 악행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돌아온 탕아를 어머니는 품어줍니다

네 힘듭니다. 폭력의 공포와 두려움과 고통은 성인 폭력영화 보다 더 극심합니다. 또한 우리 어른들은 그 고통을 찾아볼려고도 알아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두려우만 하지 말고 당당히 맛서 싸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학교선생님들에게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지난 대구 중학생도 그렇고 영주 중학생도 그렇고 이 학생들이 그 두려움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한국 경찰처럼 그 위중함을 애써 무시한게 선생님들입니다. 일부의 잘못으로 모든 선생님을 욕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선생님들의 폭력에 대한 대처나 인식의 수위의 질이 너무 떨어집니다.  

학생들에게 다시 당부하죠
스스로 강해지세요. 그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공포의 근원과 맞서 싸우세요. 언제까지 끌려 다닐 수 없습니다. 
크로머에게 끌려다니는 '싱클레어'에게 항상 데미안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전국의 학원폭력 피해 학생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강한 폭력에 맞서기 힘들면 부모님이라는 강한 분들에게 기대어 보시길 바랍니다. 

어머니가 가끔 학원폭력 기사를 보시면 저에게 그럽니다. 
너 때는 학원폭력 없었지? 그 말을 가끔 들을 때 마다 이런 말을 속으로 합니다
없었긴요. 저도 잠시 고통의 시간을 보냈어요. 하지만 말해 뭐합니까? 다 지나간 이야기인데요.  

제 중2때의 시간이 아쉬워서 쓰는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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