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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어른들이 없는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을 담은 '학교 가는 길'

by 썬도그 2012.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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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을 발견 했습니다. 출신지도 나이도 지금은 뭐하는지도 모르는 이 소녀를 보고 눈이 멈췄습니다.
방금 EBS에서 2007년도에 제작된 이란 영화 '학교 가는 길'를 봤습니다.  이상하게 전 이란영화가 좋네요.

우리에게 이란영화를 처음 알려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부터 '올리브 나무 사이로' '취한 말들의 시간', '천국의 아이들'등 이란 영화하면 순수함이라는 단어가 바로 링크가 됩니다. 정말 가진게 없어서 우리의 50,60년대의 풍경을 담은 듯한 이란의 풍경을 순수한 가치를 담은 영화들이 참 많았습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히트한 이란 영화들 대부분은 아이들이 주인공이네요
영화 '학교 가는 길'도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6살짜리 박타이의 얼굴을 보면서 그냥 빠져 들었습니다. 어디서 저런 아이를 캐스팅 했을까? 얼굴만 귀여운게 아닙니다. 오물거리는 듯한 대사와 연기 특히 표정연기가 일품입니다. 


박타이는 탈레반이 2001년 폭탄으로 파괴한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 옆 토굴에 사는 박타이와 이웃 토굴집에서 사는 소년 압바스가 주인공입니다.  박타이는 이웃집에 사는 압바스가 들려준 한 우화에 넋이 나갑니다. 

한 남자가 호두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는데 머리에 호두가 떨어집니다.
깜짝 놀란 남자는 "호박이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했고 이 우화를 들은 박타이는 학교에 가고 싶어 합니다. 우화를 배우러 학교에 가고 싶은 박타이, 그러나 박타이는 학교에 가기 위한 필수품인 연필과 공책이 없습니다. 압바스는 달걀을 팔아서 공책과 연필을 사라고 넌지시 알려 줍니다.


 달걀을 팔러 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공책만 사서 돌아 옵니다. 그리고 압바스를 따라서 학교에 갑니다.
그런데 거긴 남자 학교였습니다. 여자 학교는 강건너편입니다.


여학교로 가는 길에 전쟁놀이를 하는 한무리의 아이들에게 박타이는 동굴로 끌려 갑니다. 박타이를 이단자라고 하는 모습이나 압바스가 지나가자 미국놈이라고 하는 모습이 현재의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영화는 이렇게 박타이가 학교에서 우화를 배우러 가는 하룻동안의 일을 영화로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은 것이 느껴지네요. 먼저 이 영화에서 어른들은 여느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처럼 무능하고 무관심한 좀비같은 사람들로 그려집니다.  박타이는 동굴에서 끌려가고 거기서 홀로 탈출해서 경찰에게  동굴에 여자 아이들이 포로로 잡혀 있다고 말하지만 그냥 넘깁니다.  또한 박타이가 여학교에 어렵게 도착해서 한참동안 교실에서 실강이와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나지만 교사인 선생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못된 장난인 전쟁놀이를 하지만 그걸 누구 고칠려고 하지 않습니다.
작년에 읽은 80년대 아프카니스탄을 사진으로 담은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봤는데  아프카니스탄의 미래가 없음을 한탄하더군요.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롤모델로 삼습니다. 커서 저 형처럼 되야지 혹은 아빠처럼 되야지 하는 꿈이 었어야 하는데  온통 탈레반이나 무자헤딘 같은  전사들만 가득하니 미래가 있겠습니까?

영화는 아프카니스탄의 암울한 미래를 그립니다.
저 전쟁놀이이 푹 빠진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보통의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압바스를 물구덩이에 빠트리더니 아랍 알파벳을 말해 보라고 합니다.

B는 아빠라고 학교에서 가르치지만 전쟁놀이 리더격인 아이는 부처라고 합니다
N은 난이라고 하는 아랍인들의 주식을 말하지만 전쟁놀이 하는 아이들의 리더는 NO의 첫 글짜라고 말하죠
K로 시작하는 단어를 학교에서는 꿈이라고 하지만  전쟁놀이 하는 아이들은 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배우지 못하고 오로지 전쟁놀이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과거 그리고 현재 그리고 미래의 아프카니스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감독은 압바스와 박타이라는 두 아이에게서 아프카니스탄의 미래를 찾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고 배워야 할 가치와 하지 말아야 할 가치를 가려주는 교육이 아프카니스탄을 살릴 수 있는데 
그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가는 길이 멀고도 험난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박타이는 학교에서 이리저리 헤메기만 하다가 
혼자 우화를 배우고 돌아 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또 그 전쟁놀이 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 박타이와 압바스, 전쟁놀이 하는 아이가 나무가지를 꺽은 총을 드리밀자 압바스는 벌러덩 쓰러지고 박타이는 달립니다.

압바스가 외칩니다
"죽은 척 하면 살 수 있어"  박타이는 이전과 달리 전쟁놀이 하는 아이들의 입으로 쏘는 총질에 쓰러집니다.

참 씁쓸합니다. 죽은 척 하면 살 수 있는 나라, 미군이 오건 소련이 오건 탈레반이 오건 죽은 척 하면 살수 있는 이 아이러니함에 마음이 아프네요. 박타이가 너무 귀여워서 이 영화는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부처는 수치심으로 붕괴되었다'입니다.
탈레반이 이교도가 만들었다고 폭파시킨 바미안 석불 근처 토굴에서 사는 박카이는 탈레반 같은 원칙만 고수하는 융통성 없는 극단주의자들에게 죽은 척을 합니다. 이런 현실을 어린아이가 배우는 그 자체가 참 마음 아프네요

어른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한 아프카니스탄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가 없습니다
공책 살려고 달걀 4개 조막만한 손에 들고 다니면서 사달라고 하는데 어느 어른 하나 따스하게 사주지 않고 등쳐먹을려고만 하는 어른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우리 한국의 어른들도 생각이 납니다. 술 담배를 청소년에게 팔면 안되지만 당장 돈 앞에 눈을 질끈 감는 못난 어른들,  아이들이 흔들리고 헤메이고 있지만 바른 길로 인도하는 관용은 없고 작은 어른으로 취급하면서 수갑부터 채우는 모습들 속에서 과연 우리의 미래가 아프카니스탄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보면 교육이란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적응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인데 박타이는 단 하루만에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운듯 합니다. 박타이가 쓰러지면서 영화는 끝이나고 박타이는 이미 학교를 가자마자 졸업을 한 것 같네요

18세라는 어린 나이의 하나 마흐팔바프 감독은 여자와 어린 나이라는 편견을 뛰어넘는 대단한 수작을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왜 우린 이런 영화를 못 만들까? 이렇게 단순하고 단순한 비유가 너무 직설적이라서 유치하기 까지 한 영화가 왜 마음을 울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국영화들은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넣을려고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란에는 뛰어난 외모와 연기력을 갖춘 아역배우들이 많아서 그런건지 좀 집어봐야겠네요

박타이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도 꽤 오랫동안 생각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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