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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문화정보

부모님과 함께 보면 좋은 전시회 '명동 이야기'

by 썬도그 2012.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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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이라는 단어를 던져놓으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느낌이 뭘까요?
패션의 거리? 일본인? 비싼 물가? 한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 추억? 낭만?

제가 명동을 처음 간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였습니다.
서울시내라고는 교보문고 정도만 다녔던터라 서울이 얼마나 큰지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잘 몰랐습니다.
친구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싸게 판다면서 명동 여기저기의 리어커 판매대에서 카드를 골랐고 그때 그곳이 명동인지 처음 알았네요.  유동인구가 항상 많은 곳, 이제는 내국인보다 일본인들이 더 많이 다니는 것 같은 명동,

한국의 타임스퀘어광장이자 한국의 근 현대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바로 명동입니다.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3월 31일까지 '명동이야기'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명동에 대한 여러가지 역사적인 이야기와 명동이 품어낸 수 많은 문인들, 옛 정취와 카페등을 소개하는 전시회입니다.


 
지금은 향락과 소비의 거리로 변질되었지만 70년대 까지만 해도 통키타소리가 들리면서 문인들과 화가들등 예술가들이 돌체같은 카페에 모여서 문학을 논하고 예술을 논하던 아지트들이 많았죠.  

사진작가 김응식도 명동골목에서 라이카 카메라를 목에 매고 행인들을 카메라에 담았던 곳, 서울속의 서울이 명동이었습니다. 지금은 강남과 대학로 인사동 부암동등 여러곳으로 예술가들이 흩어져 버렸기에 구심점이 사라진듯 하지만 70년대 까지만 해도 명동은 거대한 예술인들이 거주했던 곳 입니다.

 
군부독재시절 갖은 고문으로 93년에 세상을 떠난 '천상병'시인도 보입니다. 이 사진은 인물사진의 대가인 육명심 사진작가의 사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신경숙은 가끔 김수영의 시를 자신의 소설에 적곤 합니다. 김수영? 누구지?  도종환이나 서정윤이나 알지 첨 들어보는 시인이었고 지금도 이 시인이 많은 문인들에게 읇어지고 있지만 잘 모릅니다.  명동백작 이봉구도 보이네요
하루를 거르지 않고 멋진 코트를 입고 명동거리를 왔다갔다 한다고 해서 다른 예술가들이  명동백작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하는데 이 분도  임응식 사진전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낯섭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이야기들이 가득한데 제가 잘 모르니 낯설기만 합니다.
옛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옛 문인들을 교과서에서도 만난적이 없어 낯설음이 훅 풍기네요

 
옛 문인들의 스크랩북들이 보이네요.  

 
이봉구는 자신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필로 잘 남겼는데 그가 쓴 명동에 관한 책인 명동 20년, 명동 그리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등을 썼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는 정말 유명한 문구입니다. 

참 멋지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긴 헤어짐 끝의 해후가 느껴지는 절절한 사연이 숨어 있을 것 만 같은 문구에요. 화가 김환기의 작품중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가 있고  유심초의 노래도 있죠.  어떤 내용일까요?


 
시인 김수영은 4.19혁명을 통해서 변했습니다. 이전의 시와 다르게 참여시를 쓰게 됩니다. 암울한 시대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펜을 권력자들에게 향했죠. 요즘 한국의 문인들을 보면 좀 아쉽기만 합니다.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반정부 목소리를 혼자 내고 있는데 대다수의 문인들은 현재의 암울한 상황을 그냥 지켜만 보네요.  

저항정신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뭐 예전 같이 유명 문인들이 썼다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도 아니고 밥굶는 소설가 시인들이 대부분이라서 먹고사니즘 혹은 취향에 맞지 않아서 쓰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참 아쉽습니다.

만해 한용운이 일제에 저항했고 그 저항정신을 우리 후손들이 배우듯 현재의 문인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이 전시회는 대부분 70년대 이전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낯설고 지루하기도 합니다.
당췌 내 기억과 맞춰볼 퍼즐조각 하나가 없습니다. 완벽하게 다른 세상입니다

내 개인적인 기억을 꺼내보면 90년대 명동 밖에 없습니다. 80년대에는 스쳐지나듯한 명동
90년대 들어서 사진출사를 갔다가 커피숍에서 커피먹고 명동성당에 가고 한 기억의 퍼즐 몇 조각이 있습니다. 

명동에서 사랑을 하고 명동에서 사랑과 헤어지고.. 그 번잡함 속에서 진한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나네요
명동은 푸른 사과 한조각을 베어문 아픔이 있습니다.



명동의 복잡다단한 모습은 여전합니다. 예전 70년대 이전에는 문화의 거리였다면  현재는 상업의 거리, 패션 소비의 해방구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두 가지 이미지만 있는게 아닙니다. 80년대 초반과 후반 명동은 거대한 저항의 거리였습니다. 명동성당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써  전두환이라는 거대한 군홧발 집단에 저항하던 곳이였고 명동은 수시로 최루탄이 터졌습니다. 그래도 어느 상인 하나 그 시위에 장사 안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8년 촛불시위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고 집단 소송을 낸 상인들, 그 심정은 이해가 가긴 하지만 야속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미국의 컨트리송이 한국에 와서 포크송 전성시대를 엽니다.  70년대는 확실히 포크기타의 전성시대였고 저 또한 중학교 시절 포크기타 둥둥거렸다가 바로 포기한 기억이 납니다. 손가락도 짧고 별 재능도 없고 해서 그만두웠습니다.  80년대 락의 시대로 넘어가지 전까지 청춘들은 포크기타를 매고 다니는게 하나의 유행이었습니다.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이 남상으로 이전되는등 많은 카페와 극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 되면서 명동은 상업의 도시로 변모해 갑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대학로가 연극의 메카가 되고 난 후 명동은 빠르게 소비 향락 패션의 거리로 변모합니다.

멋쟁이들은 명동에 다 몰려 있었고 지금도 명동에 가면 멋쟁이들이 참 많습니다.



이 명동이야기 전시회는 30,40대 분들 보다는 40대 이상 70년대 명동 거리의 추억을 간직한 분들이 보면 좋은 전시회입니다. 
그 이유는 80년대 명동과 70년대 명동은 완벽하게 다른 곳이고 지리적 위치만 같지 그 속에 담긴 내용물이 싹 바뀌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참 낯선 풍경들이었습니다.


 

요절한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의 초판본도 보이네요.  이 책 집에 있는데 읽다가 말았는데 딱히 뭐 좋은지는 모르겠더라고요. 


 
80년대 카페 이름중에 '목마와 숙녀'가 참 많았습니다.


  

  <목마와 숙녀>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져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참 많이 읇어졌던 시 '목마와 숙녀'입니다.  어린 저는 이 시가 왜 좋은지 몰랐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술병은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술먹고 쓴 시인가 했으니까요? 지금은 이런 시 읽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시를 읇는 시대가 아니고 직설적인 화법이 정답인 시대입니다. 약간의 은유조차도 발로 차버리는 직설적이고 단순하며 바로 반응하게 하는 말초적인 글들만 난무 합니다. 

 


문인 화가등이 들락거렸던 다방이름들입니다. 봉선화다방, 초원다방, 목동다방, 오아시스다방, 플라워다방,휘가로등등이 보입니다. 


예술가들은 이런 클래식 음악을 하루종일 틀어주는 곳에서 담배 뻑뻑 펴가면서 음악 감상을 하곤 했다는데 이제는 그런 다방의 흔적조차 볼 수 없으니 이렇게 다른 곳에서 복원해서 보여주고만 있네요. 


돌체 다방,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 돌체 다방, 40대 후반 이상인 분들은 잘 아시겠죠.
 

 
항상 우리는 어떤 문화를 철저하게 파괴한 후 그 문화를 그리워 합니다. 이건 마치 내 고향을 찾아서 옛 동네에 갔더니 거대한 아파트가 노려보고 있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고 황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서울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옛 명동은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고 그 기억을 간진한 사람들이 사라지면 교과서에 몇줄 실리고 끝이 날것 입니다.


 
옛것을 그리워하면서 앞으로만 나아가는게 정답인줄 하는 한국호,  그 한국호가 잠시 정박한 후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폭주기관차에서는 결코 풍경의 아름다움을 알 수 없습니다.


전시회는 3월 3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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