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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문화정보

해외 여행 기념품들의 변천사, 여의도 비행장에서 인천공항까지

by 썬도그 201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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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을 한번도 못 갔습니다. 한 때는 유럽여행을 꿈꾸기도 했지만 요즘은 유럽도 별로 가고 싶지 않네요.
그냥 HD 화질로 된 영상물 보는게 직접 가서 고생고생하는 것 보다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 
파리이펙트라고 해서 샤넬 넘버5 향이 거리 가득할 것 같은 파리지만 막상 가보면 더럽고 여기저기 개똥 천지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이국의 느낌을 위하고 새로운 문화와 이미지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에 해외여행은 국내여행보다 볼꺼리가 많습니다.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는 '여의도 비행장에서 인천공항까지'라는 이색 전시회가 무료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2011년 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 당선작인 이 전시회는  해외여행과 그 여행을 통해서 가져온 기념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1층 해외자유여행이 선언된 1989년 이후의 해외여행 기념품들


이 전시회는 작가 23명의 여행과 이주에 관한 작품을 선보이는데요. 작품이라기 보다는 협조공문이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 해외 기념품중에 기증할 수 있는 것이 있나 묻고 기증하겠다고 하면 작가가 전시회가 끝난 후에 작가의 캐스팅 작품과 교환을 합니다.  교환을 허락한 분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소중한 추억과 특별함이 있기에 안된다고 한 분들도 있더군요

아무튼 참 재미있는 전시회입니다
입구에는 해외여행에서 사온 온갖 해외 명품 가방들이 보입니다. 저는 저게 명품가방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지만
해외여행가서 싸구려 가방을 사올 분들은 거의 없죠. 여자분들 해외여행가서 특히 유럽여행가서 명품가방 산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명품에 목숨거는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인이 대부분이라고 하죠. 요즘은 중국인들이 명품 싹쓸 쇼핑을 한다고 하는데요.  사람이 명품이어야지 명품가방이 사람을 명품으로 만들지는 않죠.  


매번 이렇게 말하지만 여성들의 허영심은 어쩔 수가 없네요. 한국 남자들의 허영심도 대단하죠. 허영심은 공허할 뿐입니다.
 


이런 기념품들은 꽤 괜찮죠. 그 나라의 느낌을 단박에 느끼게 해주는 기념품들. 한국을 기념할 수 있는 기념품들은 뭘까요?
인사동에 가면 작은 하회탈과 여러가지 제품들이 있는데요. 그거 대부분이 중국산입니다. 한국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념품들을 개발 했으면 합니다. 워낙 서구화된 한국이라서 뭐가 한국적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위 기념품들은 미국것이라는 느낌이 팍 오네요. 야구의 나라, 미국


여행자용 신용카드인것 같네요. 다양한 카드가 있고 그 카드가 그 이국의 느낌을 팍 느끼게 해주네요



명품가방과 함께 인기 있는 해외 향수, 향수는 작으면서 값어치도 나가고 선물용으로도 좋죠. 



10살짜리 꼬마 아이가 엄마의 부탁으로 자신의 물건을 선보였습니다. 엄마가 이 전시회의 참여작가인데 자신의 물건을 전시한다고 하니 자신도 작가라고 주장합니다. 깜찍합니다. 


1층은 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에 해외에서 가져온 기념품들을 전시 했습니다.
이국의 문화와 한국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89년 이전에는 해외여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유학이나 경제적인 이유 예를들어 해외에 돈벌러 가는 사람들과 같은 경제적이고 생산적인 이유로 해외를 나가는 것은 허용했지만 단지 돈 쓰러 나가는 것을 국가에서 반대했습니다. 뭐 외화 유출을 한다나요?

그런 시대가 한국에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해외여행 가고 싶으면 어디든 갈 수 있죠. 


2층 1989년 이전의 노동자들이 가져온 해외 물품들
 


2층에는 파병을 위해서 월남에 간 군인들과  독일에 광부와 간호원으로 간 분들, 사막이 가득한 중동지방에 건설노동자로 간 분들이 한국에 가져온 기념품이나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제 외삼촌도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그 시절에 사우디에 건설노동자로 가서 근무를 했습니다.
전 건설노동자가 뭔지도 모르고  이억만리에 돈 벌러 갔다는 그 자체가 자랑스러웠죠. 물론 지금도 그 외삼촌이 자랑스럽습니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설계를 하고 그런 것은 아니였지만요.  당시 외삼촌이 우리집에 니콘 카메라를 선물 했는데 그 카메라가 내 인생 최초의 카메라였습니다.  

산요 카세트와 렌티큘러 3D카드는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한국의 비행장은 여의도부터 시작합니다. 여의도가 그냥 허허벌판이었던 시절, 여의도에 비행장을 만들어서 비행기들이 이착륙했죠. 이후 김포공항이 만들어진 후 김포공항이 한국의 관문 역활을 하다가 지금은 인천국제공항이 그 역활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여의도 공항은 민항기와 군용기 모두 뜨고 내렸는데 군사용 목적의 기지는 현 서울공항(성남기지)로 옮겨 갔고 제가 그 성남기지에서 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유명한  코끼리 전기밥솥이네요. 이거 일본 제품으로 알고 있는데 이 코끼리 밥솥이 주부들이 갖고 싶은 1호 제품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한국 제품이 최고지만 70,80년대만 해도 일본 공산품이 갑이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김포공항에 아빠를 마중 나갔는데 아빠가 전기밥솥을 들고 나왔고  그 뒤의 다른 아저씨도 모두 밥솥을 들고 나왔다면서 어린시절 회상을 적었네요

한손에 밥솥을 들고 플랫폼을 내리는 모습.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풍경입니다.


74년 엄마가 독일에서 귀국하면서 샤넬 넘버5를 가지고 왔는데 이 향수를 화장실 갈 때마다 가지고 가서 화장실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썼다고 하네요. 비싼 향수인데 단지 탈취용으로 쓰다니 어린아이 다운 발상입니다

재래식 화장실 정말 냄새 심하죠. 재래식 화장실과 고급 향수가 어울리지 않는 그 괴리감이 한국의 현실이었습니다.
뭐 향수라는 것이 사람 몸에서 나는 악취를 가리기 위한 제품이긴 하지만요



여행에 관련된 물건과 사연을 적으면 액자에 넣어 준다고 하네요. 







쭉 둘러 보다가 이 작품에서 멈췄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가족을 잃은 고종래씨가 로빈슨씨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주한 후 40년동안 본 영한사전입니다. 돌돌 말린게 정말 오래된 영한사전이네요 한국에서 입양한 딸이 2011년 이 영한사전을 가지고 왔습니다.  대신 새로운 영한사전을 엄마에게 선물한다고 하는데요.

이억만리 말도 안통하는 미국에서 고생했을 고종래씨의 고생이 주름처럼 펼쳐진 영한사전에 녹여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탈북자인지 간첩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한국문화와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서 수첩에 쓴 글입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우리가 쓸데 없이 무심결에 쓰는 외국어를 한글로 번역한 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노트북 한 15년 이상 된것 같네요. 


미국에 친구나 친척 한명 쯤은 있을 것 같은 요즘이지만 80년대 보다 미국에 아는 사람 있다는게 자랑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전엔 미제라고 하면 친구들이 돌려 볼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온 편지나 엽서도 기분 좋았고요.
이렇게 외국에서 가져온 혹은 보내온 제품들을 보면서 그 나라를 상상했고 그 신대륙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글로벌한 시대가 되어서 마음과 돈만 있다면 쉽게 해외에 갈 수 있고 가지 않더라도 인터넷에서 다 느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행하면 바로 한국에서 유행하는 시대,  미국보다 미국 영화가 더 빨리 개봉되는 나라가 된 한국, 이제 해외와 한국의 시차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예전엔 분명 미국과 한국과 독일과의 시차와 존재했죠


 광화문 나갈 일 있으시면 이순신 동상 앞에 있는 일민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회 여의도 비행장에서 인천공항까지 한번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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