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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대한 단소리

15세기 한글과 21세기 인터넷의 공통점

by 썬도그 201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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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매력적인 이야기


 
뿌잉뿌잉보다 더 중독이 된 뿌나뿌나입니다.  월요뿌뿌금토일이라는 단어가 유통되고 있고 저도 즐겨찾기 하고 있습니다
뿌리깊은나무를 보는게 요즘 낙이네요.  오늘도 밤 운동겸 스마트폰 풀충전 하고 안양천을 걸어 가산디지털단지까지 걸으면서 뿌리깊은 나무를 봤습니다.  

명품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명품드라마입니다. 한석규가 TV로 복귀한다고 해서 관심가지고 지켜봤지만 고백하자면 송중기가 나오는 초반은 듬성듬성 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주 본방사수하고 있습니다. 빠진 부분도 나중에 채워서 봐야겠습니다.

이 뿌리깊은 나무는 명품드라마입니다. 올해 풍년이 든 SBS드라마중에서도 과연 최고입니다. 마력 같은 촘촘하고 디테일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시나리오와 그걸 다 소화하고 아우라까지 떠먹여주는 명품 배우 한석규의 연기가 절 수요일 목요일 술약속까지 피하게 합니다. 

뿌리깊은 나무라는 소설이 원작인 이 드라마는 원작이 너무나 좋네요. 원작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의 한국 버젼이라고 할 만큼 사실과 허구가 너무나 잘 버무려진 팩션입니다. 


이 드라마는 한글창제와 반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기준이라는 밀본의 우두머리와 세종대왕인 이도의 머리싸움이 주된 갈등구조죠.  

세종 이도는 표의문자인 한문대신에 표음문자이자 익히기 쉬운 한글을 만들어서 온 백성이 말을 글로 적고 배울 수 있는 시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역사적 사실로 돌아보면 세종은 15세기 당시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라고 할 만큼 언어에 대단한 통찰력이 있던 왕이였죠.  그런 언어학자를 조선의 왕으로 모셔준 하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렇게 영어처럼 키보드로 바로 바로 글을 입력하게 해주었잖아요

컴퓨터 자판은 한문같은 표의문자 보다는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만드는  표음문자에 궁합이 잘 맞죠. 
생각나네요. 007씨리즈중에 양자경이 본드걸로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  제임스 본드가 키보드를 보고 황당해 했는데 황당해했던 이유는 중국어인 한문으로 된 키보드였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중국은 표의문자를 사용하는데 표의문자처럼 발음을 입력한 뒤 같은 발음의 한자중에 골라서 입력을 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얼마나 불편해 보이는지 속터져 보였습니다. 뭐 그들에게는 그게 편하겠지만 표의문자는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 다르기에 간결성은 뛰어날지 몰라도 문자 입력할때는 정말 짜증나죠

한글은 표음문자입니다. ㄱㄴㄷㄹ ㅏㅑㅗㅛ 만 익히면 소리나는 것을 바로 글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게 뛰어난 강점이자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어서 좋죠.  하지만 장점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우리말은 모든 단어가 한글로 된게 아닙니다. 한문을 한글로 발음만 표기한 단어들이 많죠. 문제는 같은 발음의 단어라도 다른 뜻을 담은 동음이의어들은 천상 한문을 익혀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雪)과  사람의 눈(目)이 발음은 같지만 뜻은 다르죠. 뭐 길게 발음하고 짧게 발음해서 구분한다고 하지만 그런거 까지 구분해서 발음하는 사람 몇이나 있겠어요. 

그럼에도 한글은 대단합니다. 저 아프리카 추장의 노동요를 바로 글로 적을 수 있는 한글. 너무 너무 사랑스러운 언어죠
서두가 너무 길었나요?

본론으로 들어가죠


양반의 운영체제인 한문을 리눅스처럼 공짜로 사용하라고 뿌려버린 세종대왕


이 뿌리깊은 나무의 후반부의 갈등구조의 핵심은 한글 반포를 할려고 하는 세종 이도와  그 놀라운 언어를 막을려는 정기준의 갈등 구조가 극에 달합니다.
정기준은 이 한글의 놀라움을 알고 있습니다. 개파이라는 돌궐족이 단 1주일도 안된 시간에 한글을 익히는 모습에  이 한글이 백성들에게 반포되고 유통되면  말을 할줄만 알지 그 말을 글로 쓸 줄 모르는 천한 것들이  사대부가 위대한 이유중 하나인 말을 하고 그 말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한문을 아는 하나의 권력구조가 파괴되고 그러므로써 천한것들도 글을 쓰는 혼미한 세상을 두려워 했습니다. 

한글을 알게 되어서 천한 백성들이 너도나도 글을 쓰고 익히게 되면  말로서만 전해지는 정보들이 글로 전달되어 천한 백성들이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면 양반을 뛰어 넘을까봐 정기준은 두려워 했습니다. 

인류역사를 크게 나누자면  문자가 없었던 시대와 문자가 있었던 시대로 나누어집니다.
인류는 문자가 없던 시절에는 아버지의 경험을 아들이 귀로 듣고 그걸 기억하면서 경험을 말로써만 전해주었습니다.
아시겠지만 말로만 자신의 경험을 전해주면 그 경험이 제대로 경험이 전달되겠어요?  말전달 게임도 5명만 넘어가면 이상한 말로 전달이 되는데요. 

하지만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후  자신의 경험을 문자로 동굴 벽에 기록하고 다양한 매체로 기록한 후 그 경험이 수 세대의 후손들에게 전달되면서 인류는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지식이 구전이라는 휘발성 강한 매체가 아닌 차곡차곡 기록되는 지식의 DB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대변화 중에 가장 큰 변화는 문자의 발명입니다.  그 다음이 전기고 그 다음이 인터넷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문자는 발명되었지만 한자 같은 경우는 그 문자를 익히기에 너무나 시간도 많이 들고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천자문이라고 해서 1천자만 외우라고 하늘천 땅지를 외울 백성들이 없었죠.  하늘천 땅지는 배울 수 있으 수는 있어도 그 천자문을 다 배우기에는 백성들은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다 배울수도 없었고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정기준도 말했듯 한문은 양반들의 무기이자 사대분의 무기였습니다.
개나 소나 다 알면 그게 사대부의 무기겠어요? 개나 소나가 아닌 양반들만 아는 언어이니 그게 하나의 권력의 도구가 된거죠
뭐 지금으로 따지면 영어가 조선시대의 한자 같은 역활을 했던 거네요.   영어에 능한 자는 양반. 영어를 못하면 평민.  항상 권력자들은 일반 평민들이 쉽게 따라하지 못하는 스킬을 기본으로 익히고 그걸 권력화 시켜 따르게 하잖아요

대기업들이 그래서 평민과 양반을 구분하기 위해서  입사해서 특별하게 쓰지도 않는 토익 성적 요구하잖아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은  그런 체제 즉 양반들의 전가의 보도인 한문체제를 무너트리는 악한 언어였습니다.
윈도우 O/S를 돈주고 사야 하고 돈 있는 즉 권력이 있는 양반들만 사서 쓸 수 있는 윈도우에 대항해서 왕이라는 작자(?)가 독학해서 리눅스라는 공짜 운영체제를 뿌려버리니  양반들이 빡이 돌지 않겠습니까?

너도나도  컴퓨터를 다 만지니 양반이라는 권력자들은 열이 머리꼭대기 까지 받는것이죠


21세기 한글인 인터넷이  한글의 공통점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뭘까요? 
전 그 최고를 문자라고 생각하고 2위가 전기로 봅니다. 전기는 에너지를 다양한 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킬수 있고 다양한 에너지를 전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 풍력, 원자력이나 열을 이용하는(원자력도 열 에너지의 변환임) 화력에너지로 전기를 만든 후 그 전기를 다시 열과 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놀라운 에너짐 매체죠

그 다음이 인터넷입니다.
지금의 10대들은 태어나서 부터 인터넷이 있었기에 인터넷이 만든 놀라운 변화를 알지 못할 것 입니다. 하지만 전 생생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만든 세상의 변화.  그 놀라운 변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인터넷이 대중화 된것은 90년대 후반으로 봐야겠죠.
96년 전역하자마자 유니텔과 천리안 하이텔을 이용해서 잠시잠시 이용했던 인터넷은 뿌리깊은 나무의 한문과 같이 소수들만 이용했습니다. 그때는 인터넷 할 줄 안다는게 작은 권력이었죠

그러나 90년대 후반 ADSL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시쳇말로 개나 소나 다 인터넷을 하고 2천년대 초반에는 전국 초중고에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인터넷이 대중화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이 가져운 변화가 뭘까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권위의 파괴였습니다.

인터넷이 있기 전에는 의사가, 소설가가, 전문가가 TV에서 라디오에서 잡지에서 신문에서 말을 하면 그대로 믿고 따라야 했습니다. 그들의 명함을 보고 그냥 굽신거리고 대우를 해주어야 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당신 의사맞아? 당신 교수 맞아? 라는 검증도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대중화 된 후는 달라졌습니다.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들이 인터넷에 빠르고 쉽게 퍼졌고 약간의 노력을 하면 의학정보, IT정보,  생활정보를 쉽게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보들이 무가지 처럼 무료로 뿌려지다 보니 평민인 일반인들이 준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지금 병원가면 환자들이 의사 앞에 가서 내 병이 인터넷에 보니 XX같은데 XX약 좀 주세요라고 한다잖아요. 
이렇게 쉽게 일반인들이 전문가를 무시해버리는 세상이 인터넷이 가져온 세상입니다.   너도나도 전문가를 무시하는 탈 권위시대.  조금만 이상하면 인터넷을 뒤져서 짧은 시간에 전문가인척 정보로 무장하고 진짜 전문가와 멱살잡이를 합니다. 

한글을 익힌 조선 백성처럼 인터넷으로 무장한 21세기 백성들은 권력자였던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기 일수고 때로는 검증하자며 멱살을 잡습니다.. 이런 탈 권위시대를 이끈게 인터넷이고 좋은 점도 있고 부작용도 양립합니다.

이제 더 이상 명함으로 세치의 혀로 대중을 현혹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고 항상 검증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문가라는 자격증이 중요한게 아니고 이제는 진짜 진검승부를 해보고 당신이 고수 맞군요! 라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이런 이유로 쭉정이 같은 전문가들은 나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보의 비대칭으로 먹고 살았던 용산과 같은 전문상가들도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죠. 
다나와나 포털의 쇼핑검색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그 상품의 최저가격을 알 수 있다보니  가격정보를 꽉 쥐고 있던 상인들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실제로 용산상가들은 가격정보를 다 알고 있고 몰라도 스마트폰으로 면전에서 최저가격을 검색하는 구매자들과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예전 같은 부귀영화는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건 마치 한문을 하나의 권력으로 알고 있던 양반체제의 도전과 같은 대변혁이었죠

인터넷과 한글이 가져온 또 하나의 변화는 발언권이었습니다.
백성이 한글을 알고 자신의 말을 글로 적어서 여러사람에게 돌려 보게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백성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발언권이 생겼습니다. 인터넷도 전문가들이나 떠들고 활자화 되었던 지난 90년대 중반까지의 모습을 지나 일반인도 초딩도 인터넷에 자기 주장을 할 수 있고 좋은 의견이면 널리 널리 퍼지는 전문가 못지 않은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블로그가 그 좋은 예이죠. 블로그나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일반인들에게 세상에 외칠 발언권을 쥐어주게 됩니다. 예전엔 일반인 다른 일반인에게 자신의 주장을 알릴려면 직접 면전이나 유선상으로 1대1로 알리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자기집에서 혹은 이동하면서 쓴 글이 바로바로 불특정 다수들이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글이나 인터넷이나 하나의 범용성 높은 도구일 뿐 세상을 뒤집지는 못하다

정기준의 측근이 말하죠. 한글이 위대한 언어이나 그걸 익힌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냐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시간입니다.  천한 것들이 한글을 익혀 문자를 읽고 쓴다고 해도 그걸 활용할 시간이 얼마나 있겠냐는 것이죠. 해 뜨기 전에 일어나서 해지기전에 일을 마무리 하고 바로 잠드는 백성들이 글을 익혀봐야 그게 양반을 위협하겠냐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한글을 익힌다고 해도 양반과 같이 그걸 하루종일 파는 사람과 잠시 잠깐 사용하는 사람과는 다르죠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를 만들었다고 해도 전문가들은 하루종일 한 부류의 정보를 파는데 그걸 단지 잠시 익혔다고 전문가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요?  또한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라고 하는것도 대부분은 수박 겉핡기 식의 단편적이고 지협적인 정보입니다.  아니 통찰력 높은 지식이 올라온다고 합시다. 그걸 올곧하게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론으로는 익힐 수 있었도    기본 인터넷으로 배울 수없는  경험으로 무장한 전문가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참 단순한게 자신의 지식보다 약간이라도 더 높으면 무조건 우러러 보고 자신보다 약간 모자르면 내려다 보는 우매함을 참 잘 보입니다.  저 또한 그럽니다. 제가 뭐 다양한 정보를 좋아하고 다양한 내용을 제 블로그에 담지만 어떤 사람은 저를  오아!! 박학다식한 블로거다라고 우러로 보지만  저 보다 한치 더 높은 지식과 지혜를 가진 분은 저를 보고 어설픈 블로거네 라고 낮춰보죠.  

살다보니 느껴지더군요.
평균보다 약간 더 많이 알면 쉽게 전문가 취급 받는다는 것을요.  상대보다 하나만 더 알고 있으면 바로 전문가가 되는 세상입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정기준이 한글이 반포되면 사대부 몰락이라고 외치지만 실제 한글 반포후에 대변혁은 없었습니다. 그냥 반대의 목소리는 있었지만 한글은 천천히 느릿느릿 퍼졌고 그 증거로 지금의 어르신들은 한문으로 글을 쓰는 분도 많습니다.  한글은 어디까지나 보조도구였고 주는 한문이었던 시대가 일제시대 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한글이 점령했지만 저 어렸을때만 해도 신문 기사에는 한문도 병행표기 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문도 같이 배워야 한글을 올곧하게 이해한다고 생각해서 수시로 조카들에게 남들 배우기 싫어하는 한문을 배우라고 합니다.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만  '마법 천자문'이 왜 해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겠어요. 

마찬가지로 인터넷도 권위주의 세상을 붕괴시켰지만 혁명까지 이끌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시간 때문이죠. 전문가와 일반인간의 간극을 좁히기는 했지만 그걸 뛰어 넘지 못했고 뛰어 넘지 못한 이유는 시간입니다.  전문가는 하루종일 그 분야에 투자하지만 일반인은 순간적인 시간만 투자할 뿐이죠. 이런 이유로 전문가와 일반인의 간극은 절대로 좁혀 질 수 없습니다.


악플 달 수 있는 세상을 가져온 한글과 인터넷


악플이 싫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악플은 근거 없는 악플이 아닌 논리를 갖춘 악플이 가장 두렵습니다.
너 낳고 어머니가 미역국 먹은 니네  어머니가 불쌍하다는 악플 보다는 제 글에 논리적으로 빈틈없이 반박하면서 비꼬는 악플이 더 무섭습니다. 그런 악플을 받아보면 졌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얼굴이 화끈 거리고 밤에 잠도 설치게 됩니다. 올해  두번 밤잠을 설쳤는데 그런 논리적인 악플 때문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쌍욕을 적었기에  악플로 규정하지만 논리적이고 반박할 수 었는 악플이었기 때문입니다. 

전 근거없는 닥치고 선풀이 역겹습니다.
한글과 인터넷이 가져온 세상은 그겁니다.  권력자가 악행을 저지르고 부정을 저지르고 부패한 행동을 하면 이전에는 그냥 방구석에서 쓴소리 할 뿐이었죠. 그러나 인터넷이 생긴 후에는 그 권력자에게 직접 악플을 달 수 있습니다.

미니홈피나 뉴스기사에 악플을 달면서 그 권력자를 조롱합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죠.. 욕 하고 싶으면 그 권력자에게 직접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면전에 욕을 해야 했고 그러면 바로 수갑을 차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욕해주고 싸닥을 날리고 싶어도 참았죠

지금은 다릅니다. 익명이라는 방패막 뒤에서 쓴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익명이 꼭 나쁜것은 아닙니다. 할소리를 다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양성을 추구하는 21세기에서는 올바르게 발전하는 초석이 되어주는데요. 물론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크기에 익명을 전 옹호합니다.

이렇게 인터넷은 권력자들 귀구녕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직언의 시대를 만든것이죠

한글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민들이 글을 배워서 그걸 벽서에 써서  '이런 우라질 세상'이라고 저작거리에 붙이면 권력자인 양반들은 두려워하죠.

한글도 어떻게 보면 권위주의를 파괴시키는 하나의 도구였습니다. (인터넷 보다는 못하지만)
한글과 인터넷,  둘은 참 닮아 보이네요.  소수자들만 가지고 있는 정보, 그 정보를 권력으로 무기화 시켰던 권력자들
그러나 그 권력을 거의 무료로 양산화 시킨 한글과 인터넷.  그 둘이 가져온 세상은 좀 더 올바르게 가는 세상인것은 틀림없습니다.  올해 아랍국가들의 민주화 운동도 트위터라는 인터넷 도구 덕분이었죠.


15세기 한글과 21세기 인터넷은 참 닮은 모습이 많습니다.
그 둘의 매력과 고마움을 느끼면서 이 글을  한글로 쓰고 인터넷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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