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동에 몰려 있는 그 모교를 찾아가 봤습니다.
자전거길을 따라가다보니 장미꽃들이 예쁘게 폈네요. 이제 장미 시즌인가 봅니다.
술이 덜껜 구로디지털벨리의 유흥가를 낮에 지나가니 낯서네요. 항상 밤에 그것도 취기가 가득한 모습만 떠오릅니다.
여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콩국수만은 무척 좋아합니다. 시원한 콩국수가 생각나네요
자전거에 음료수 하나 장착하고 다시 출발~~
이 살레시오회는 예전엔 돈보스코라고 불리던 곳이였습니다. 어렸을 때 돈보스코가 뭔지 모르고 그냥 불렀는데 이탈리아 신부님 이름이더군요. 한국에 천주교를 선교하기 위해 세운 곳인데요. 어렸을때 이 돈보스코에서 농구, 축구, 야구와 도서실에서 공부한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큰 운동장은 사라지고 높은 건물로 변신했습니다.
이 돈보스코는 직업학교도 운영했는데 돈이 없어서 공고도 못가던 학생들을 모아서 직업훈련을 해주었습니다. 지역사회의 큰 역활을 했죠. 지금은 한국이 잘 살지만 가난하고 못살던 시절 좋은 선행을 많이 했던 곳입니다.
추억의 흔적이 거의 없어 참 아쉽네요. 예전엔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나 못들어가나 봅니다. 들어가봐야 딱히 뭐 볼것도 없겠지만요. 참! 몇주전 이곳에서 행사하던데 못가본게 좀 아쉽네요
그렇다고 추억의 흔적이 다 사라진것은 아닙니다. 이 집은 30년전과 달라진게 없네요. 저 집 대문 앞에서 건담 프로모델 조립하던 기억이 나네요.
제 모교는 대길초등학교, 대방초등학교입니다. 대방초등학교를 5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5학년 2학기때 대길초등학교로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강제이주라기 보다는 대길초등학교가 새로 생기면서 분교되었다고 봐야죠. 대방초등학교까지 약 40분 걸어서 갔었는데 대길초등학교로 옮긴후에는 약 20분 걸이로 단축되어 무척 좋았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앞에 문방구 많이 사라졌습니다. 대길초등학교 앞에는 아예 하나도 없네요
왜 이리 없어졌을까요? 예전엔 등교길에 문방구에서 색종이 풀, 가위 살려고 아주 난리였죠. 미리 밤에 사놓으면 좋으련만
내일까지 준비물 준비하라고 선생님이 지시하면 초등학생들은 밤에 돈을 타서 아침에 사야 하는데 그 생지옥같은 구매의 줄은 아침부터 참 지치게 했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어느정도 사라졌다고 하죠. 학교에서 미리미리 필요한 준비물들을 공동구매 대량구매해서 가지고 있다가 수업시간에 쓰기도 하고 경기도 같은 경우는 준비물 예산도 있다고 들은것 같습니다. 서울시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모든 준비물을 학교에서 제공하지 않겠죠. 여전히 준비물 때문에 초등학생들 참 스트레스 많이 받습니다.
그래도 30년전에 비하면 무척 달라졌고 좋아졌네요.
아이쿠~~~ 이게 뭐람. 토요일인데 학교를 개방하지 않습니다. 용무가 있으면 방문증 받으라네요.
아니 학교가 학생들만의 소유인가요? 근처 주민들의 휴식공간 운동공간이죠. 어떤 학교는 밤까지 개방해 놓고 밤에 주민들이 워킹을 하던데요. 대길초등학교는 아닌가보네요
혹시 최근에 일어난 초등학생들 성추행사건등 외부인들이 초등학교 막 드나들어서 생긴 범죄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정부나 교육당국이 참 갈팡질팡하네요. 언제는 담장까지 허물면서 열린학교 어쩌고 하더니 범죄가 발생하니까 이제는 다시 CCTV를 단다느니 하는 모습을 하고 있네요. 물론 이런 완젼봉쇄가 아이들의 안전에는 큰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휴식공간이 사라지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모습은 외부인이 학교에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다가가서 어떻게 오셨나요? 라고 한마디라도 물어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작은 관심하나하나가 사건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엔 학교 아무나 막들어가도 아무런 제지도 안했습니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철저하게 정문에서 방명록을 받으면 되고 하교 다 끝난후에는 개방해 놓는게 좋지 않을까 하네요.
새삼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은 변하고 많은 것들이 사라지지만 교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업그레이드 된다는 것입니다.
이 남서울교회도 예전엔 뽀족탑이 있는 건물이었는데 엄청나게 업그레이드가 되었네요.
교회는 망하지 않나 봅니다
또 다른 모교를 향해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영진시장은 등하교길에 꼭 지나가는 시장인데 이곳도 리모델링으로 재탄생을 할듯 한데 유치권 어쩌고 하는걸 보니 공사가 엎어졌나 봅니다. 여기도 부동산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것 같기도 하네요
모든게 변했습니다. 모든게요. 예전의 기억을 찾을수가 없습니다만 신기하게도 길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길의 각도며 폭, 비록 흙길에서 아스팔트길로 변했지만 길은 전혀 변하지 않았네요
이런 이유로 다 사라져버린 기억이 다시 먼지를 털고 머리속에서 한장한장 넘겨지네요. 이 곳에서 항상 갈등했죠.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길은 문방구가 몇개 있고 참새방아간이라고 뽁기와 만화책방들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길은 아무것도 없는 주택가 골목이었고요
대방초등학교 앞길입니다.
허례허식 하지 말자는 그림을 그린 포스터를 가방과 등 사이에 꽂아서 가던 유년시절의 내 모습이 살짝 보이는듯 하네요
어른이 되어서 모교인 초등학교를 가면 놀라는게 학교가 너무 작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커진것을 생각못하고 기억속 유년시절의 크기와 높이로 보니 학교가 작아졌다는 착시현상이 보이죠. 이 길이 그렇네요. 저 길이 정말 길어보였습니다.
오전반 오후반이 있던 시절 오전반이 끝나면 수천명의 학생들이 저 골목에 꽉 찼습니다. 한번의 밀물과 한번의 썰물
저 길을 걸으면서 지겹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다시 찾아와서 보니 너무 짧아 보입니다. 자전거 페달 몇번만 굴리면 다 지나갈 듯 합니다.
담도 변했네요.
그래도 옛정취를 담고 있는 담벼락도 있네요. 저 마름모골 돌벽이 절 추억의 길로 안내합니다.
대방초등학교는 등교길이 가팔랐습니다. 이제는 자동차길로 포장이 되었네요
여의도가 가깝다는 이유로 툭하면 등하교길에서 기자들이 학생들 잡아서 리포터를 하고 멘트를 따던 시절이 기억나네요.
흑백 모니터에 색색의 셀로판지를 붙여서 컬러모니터 흉내를 냈던 앉은뱅이 오락기기가 있던 문방구네요.
제비우스,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하던 생각이 납니다. 인베이더 하는것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새 오후반 수업 예비종소리에 후다닥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래도 대방초 앞에는 문방구가 있네요. 하지만 한곳은 치킨집으로 변했네요
헉~~~ 대방초등학교가 변했습니다. 공사하는 것은 알고 있었고 몇년 전에 잠시 들렸을때 터파기 공사를 봤는데 교문을 들어서자 마자 있어야 할 운동장에 로케트처럼 솓아오른 거대한 건물이 절 내려봅니다.
사라졌습니다. 모든게 사라졌습니다.
왼쪽에 있어야할 수영장도 없습니다.
대방초등학교는 참 오래된 학교인데 다른학교와 다르게 초등학교에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뭐 일제의 흔적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었죠. 일본은 초등학교 대부분에 수영장이 있다고 하잖아요. 어린시절 초등학교에 수영장이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좀 이해가 안가기도 했습니다. 학교는 퍼세식 화장실인데 수영장만 있는 모습이 기괴하기까지 했죠. 그래도 수영장이 있어서 1년에 한두번 정도 수영을 했었습니다.
탈의실도 없고 아무것도 갖쳐진게 없었지만 물놀이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로도 좋았습니다.
그런 수영장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운동장이 심어졌습니다.
뛰어노는 저 학생들은 그곳이 수영장이었다는 것을 알까요? 변해버린 대방초등학교 앞에서 대방국민학교를 떠올릴만한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방초등학교에 있는 농구장만 그나마 옛 추억의 퍼즐과 맞아들어가네요. 대방초등학교는 소년체전에 나갔다 하면 전국우승을 하곤 했었고 전국우승하고 오면 전교생이 나와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전희철, 김병철등이 대방초등학교 출신입니다. 지금은 누가 대방초등학교 농구부 출신인지는 모르겠네요
타임캡슐도 묻었군요. 뭘 묻었을까 궁금하네요. 2005년 교과서와 학용품들이나 그런것이 아닐까 하는데 2025년이면 약 20년후네요
외톨이 부진아 쓰레기 없는 학교를 만들려면 학생들보다는 선생님들이 더 노력해야 할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저 학교 다닐때는 한반에 63번까지 있었어요. 상상이 안가죠. 지금은 한반에 30명정도로 단촐한데 그때는 63번가지 있었는데요. 그래도 외톨이 같은 것 없었습니다. 있어도 그런것을 아이들 사이에서 허용을 안했죠
분명 부진하고 모자른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는 깍두기라고 해서 친구들이 용인하는 어드벤테이지를 줘서 능력의 모자름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부진하고 모자르면 제외시켜버리죠. 이런 문화가 왜 생겼을까요?
전 아이들도 문제지만 그런 아이들을 키워내는 선생님과 학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DNA에 왕따문화 DNA가 있었겠어요. 다 어른들 세상을 보고 배운 결과죠. 솔직히 학부모들중에 문제 많은 학부모도 참 많아요. 또한 선생님들도 학생 가르치기 힘들다 힘들다만 하지마시고 좀 더 열정적으로 교육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또한 자신의 인성문제도 주기적으로 되돌아보셨으면 하고요.
선생님들중에는 인성에 대한 문제가 있는 분들도 많아요. 문제는 그런 인성부재를 누군가가 지적해주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물론 극히 일부의 선생님들이지요. 제가 경험해 보니까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그래도 순수한 아이들과 지내서 그런지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보다는 순수하신 모습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공립이다보니 4년만다 혹은 5년마다 다른학교로 전근을 하니 깊이 애정을 심지 못하는 모습은 아쉽습니다.
이런 이유로 내 담임선생님을 찾을려면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유급식소가 있던 곳도 포장된 도로로 바뀌었네요. 완벽하게 다 파괴되었습니다. 옛건물이 딱 하나 그대로 있는데 워낙 주변이 다 변해서 정도 안갑니다.
뒷마당에는 토끼들이 있었어요. 오후반일때면 미리 학교에 와서 토끼들 풀 뜯어서 주곤 했었습니다.
참 예전엔 공작과 공작비둘기등이 있는 사육장도 교문옆에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 사라졌네요. 대신에 선생님들 주차공간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에 가보면 교직원들이 차량이 운동장 한쪽을 채우고는 하는데 이 풍경을 예상못하고 초등학교를 짓다보니 운동장이 주차장이 된 곳이 많죠
운동장이라도 크면 별 상관안하겠지만 조막만한 운동장에 차들이 빽빽하면 학생들이 맘놓고 공차고 던지고 놀겠어요.
GPS 좌표는 대방초등학교라고 알리고 있지만 추억이 다 사라져서 앞으로는 다시 찾아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런 학교가 한둘이 아니죠. 지금 30,40대 분들의 초등학교들 대부분이 오래되고 낡아서 리모델링이 아닌 새건물로 바뀌고 있고 바뀐 학교 대부분은 옛 추억이 대부분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한번 찾아가 보세요.
다행스럽게도 5년전에 대방초등학교 가서 찍어놓은 사진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게 예전 대방초등학교 모습인데요. 어디서 부터 퍼즐을 맞춰야 할지 난감스럽네요
대방초등학교 옆에는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유년시절에는 저 비석을 보고 귀신이 들린 학교나느니 이상한 말들이 있었는데
그 비석의 정체가 설명되어 있네요
저 학교 담벼락에 부조처럼 붙어버린 비석의 정체는 숙종왕자 연령군 신도비입니다.
이 대방초등학교 자리에 숙종왕자 연령군 묘지와 비석이 있는데 그 비석이 80년에 육군사관학교 안으로 옮겨지면서 주민들이 그 아쉬움에 새운 비석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유를 모르고 학생들은 저 비석을 보고 수근거리기만 했네요. 누구하나 알려줘야 말이죠. 지금이야 먹고 살만하니까 이런 우리의 지난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표식화 했지만 70.80년대 어디 그랬나요? 역사, 과거 이런것 보다는 먹고사니즘이 절대 철학이라면서 돈버는데만 열중했고 그 결과로 현재 한국은 만족하지는 못하겠지만 큰 경제발전을 했습니다.
추억이 파괴된 초등학교를 나오면서 이제 추억은 사진속에만 존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살던 곳도 다 아파트촌으로 바뀌고 학교도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도로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추억은 도로위에만 흐르나요? 좀 아쉬웠습니다. 그렇다고 내 추억을 위해서 녹슨 학교를 그대로 보존하라고 하는 것은 제 이기심일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