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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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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간 대방초등학교, 완벽하게 변하다

썬도그 2011. 6. 5. 12:12
지금 사는 곳과 제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곳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가끔 내가 다녔던 모교를 자전거로 가보곤 하죠. 그렇다고 자주 가지는 못하고 한 3년에 한번씩은 찾아가 보는 듯 합니다. 

대방동에 몰려 있는 그 모교를 찾아가 봤습니다.


자전거길을 따라가다보니 장미꽃들이 예쁘게 폈네요.  이제 장미 시즌인가 봅니다. 



 
술이 덜껜 구로디지털벨리의 유흥가를 낮에 지나가니 낯서네요. 항상 밤에 그것도 취기가 가득한 모습만 떠오릅니다.



여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콩국수만은 무척 좋아합니다. 시원한 콩국수가 생각나네요



자전거에 음료수 하나 장착하고 다시 출발~~


이 살레시오회는  예전엔 돈보스코라고 불리던 곳이였습니다.  어렸을 때 돈보스코가 뭔지 모르고 그냥 불렀는데 이탈리아 신부님 이름이더군요.  한국에 천주교를 선교하기 위해 세운 곳인데요. 어렸을때  이 돈보스코에서 농구, 축구, 야구와 도서실에서 공부한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큰 운동장은 사라지고 높은 건물로 변신했습니다.

이 돈보스코는  직업학교도 운영했는데 돈이 없어서 공고도 못가던 학생들을 모아서 직업훈련을 해주었습니다. 지역사회의 큰 역활을 했죠.  지금은 한국이 잘 살지만 가난하고 못살던 시절 좋은 선행을 많이 했던 곳입니다. 

추억의 흔적이 거의 없어 참 아쉽네요. 예전엔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나 못들어가나 봅니다.  들어가봐야 딱히 뭐 볼것도 없겠지만요. 참!  몇주전 이곳에서 행사하던데 못가본게 좀 아쉽네요


그렇다고 추억의 흔적이 다 사라진것은 아닙니다. 이 집은 30년전과 달라진게 없네요. 저 집 대문 앞에서 건담 프로모델 조립하던 기억이 나네요.  


제 모교는 대길초등학교, 대방초등학교입니다. 대방초등학교를 5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5학년 2학기때 대길초등학교로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강제이주라기 보다는 대길초등학교가 새로 생기면서  분교되었다고 봐야죠.  대방초등학교까지 약 40분 걸어서 갔었는데  대길초등학교로 옮긴후에는 약 20분 걸이로 단축되어 무척 좋았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앞에 문방구 많이 사라졌습니다.  대길초등학교 앞에는 아예 하나도 없네요
왜 이리 없어졌을까요?  예전엔  등교길에 문방구에서 색종이 풀, 가위 살려고  아주 난리였죠.  미리 밤에 사놓으면 좋으련만
내일까지 준비물 준비하라고  선생님이 지시하면  초등학생들은 밤에 돈을 타서 아침에 사야 하는데 그 생지옥같은  구매의 줄은 아침부터 참 지치게 했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어느정도 사라졌다고 하죠. 학교에서 미리미리 필요한 준비물들을 공동구매 대량구매해서 가지고 있다가 수업시간에 쓰기도 하고 경기도 같은 경우는 준비물 예산도 있다고 들은것 같습니다. 서울시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모든 준비물을 학교에서 제공하지 않겠죠. 여전히 준비물 때문에 초등학생들 참 스트레스 많이 받습니다.
그래도  30년전에 비하면 무척 달라졌고 좋아졌네요.  



아이쿠~~~ 이게 뭐람.  토요일인데 학교를 개방하지 않습니다.  용무가 있으면 방문증 받으라네요.
아니 학교가 학생들만의 소유인가요? 근처 주민들의  휴식공간 운동공간이죠. 어떤 학교는 밤까지 개방해 놓고 밤에 주민들이 워킹을 하던데요.  대길초등학교는 아닌가보네요

혹시 최근에 일어난 초등학생들 성추행사건등 외부인들이 초등학교 막 드나들어서 생긴 범죄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정부나 교육당국이 참 갈팡질팡하네요.  언제는 담장까지 허물면서 열린학교 어쩌고 하더니 범죄가 발생하니까  이제는 다시 CCTV를 단다느니 하는 모습을 하고 있네요.   물론 이런 완젼봉쇄가 아이들의 안전에는 큰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휴식공간이 사라지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모습은  외부인이 학교에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다가가서 어떻게 오셨나요? 라고 한마디라도 물어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작은 관심하나하나가 사건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엔  학교 아무나 막들어가도 아무런 제지도 안했습니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철저하게 정문에서 방명록을 받으면 되고 하교 다 끝난후에는 개방해 놓는게 좋지 않을까 하네요. 




새삼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은 변하고 많은 것들이 사라지지만 교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업그레이드 된다는 것입니다.
이 남서울교회도 예전엔 뽀족탑이 있는 건물이었는데 엄청나게 업그레이드가 되었네요.  

교회는 망하지 않나 봅니다



또 다른 모교를 향해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영진시장은  등하교길에 꼭 지나가는 시장인데  이곳도 리모델링으로 재탄생을 할듯 한데  유치권 어쩌고 하는걸 보니 공사가 엎어졌나 봅니다. 여기도 부동산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것 같기도 하네요




모든게 변했습니다. 모든게요. 예전의 기억을 찾을수가 없습니다만 신기하게도 길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길의 각도며 폭, 비록 흙길에서 아스팔트길로 변했지만 길은 전혀 변하지 않았네요



이런 이유로 다 사라져버린 기억이  다시 먼지를 털고 머리속에서 한장한장 넘겨지네요. 이 곳에서 항상 갈등했죠.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길은 문방구가 몇개 있고 참새방아간이라고 뽁기와 만화책방들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길은 아무것도 없는 주택가 골목이었고요



대방초등학교 앞길입니다.
허례허식 하지 말자는 그림을 그린 포스터를 가방과 등 사이에 꽂아서 가던 유년시절의 내 모습이 살짝 보이는듯 하네요
어른이 되어서 모교인 초등학교를 가면 놀라는게 학교가 너무 작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커진것을 생각못하고 기억속 유년시절의 크기와 높이로 보니  학교가 작아졌다는 착시현상이 보이죠.  이 길이 그렇네요. 저 길이 정말 길어보였습니다. 

오전반 오후반이 있던 시절 오전반이 끝나면 수천명의 학생들이 저 골목에 꽉 찼습니다.  한번의 밀물과 한번의 썰물
저 길을 걸으면서 지겹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다시 찾아와서 보니  너무 짧아 보입니다. 자전거 페달 몇번만 굴리면 다 지나갈 듯 합니다.


 담도 변했네요.



그래도 옛정취를 담고 있는 담벼락도 있네요. 저 마름모골 돌벽이 절 추억의 길로 안내합니다.


대방초등학교는 등교길이 가팔랐습니다.  이제는 자동차길로 포장이 되었네요
여의도가 가깝다는 이유로 툭하면  등하교길에서 기자들이 학생들 잡아서 리포터를 하고 멘트를 따던 시절이 기억나네요.




흑백 모니터에 색색의 셀로판지를 붙여서 컬러모니터 흉내를 냈던 앉은뱅이 오락기기가 있던 문방구네요.
제비우스,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하던 생각이 납니다.  인베이더 하는것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새 오후반 수업 예비종소리에 후다닥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래도 대방초 앞에는 문방구가 있네요. 하지만 한곳은 치킨집으로 변했네요




헉~~~  대방초등학교가 변했습니다. 공사하는 것은 알고 있었고  몇년 전에 잠시 들렸을때 터파기 공사를 봤는데  교문을 들어서자 마자 있어야 할 운동장에 로케트처럼 솓아오른 거대한 건물이 절 내려봅니다.

사라졌습니다. 모든게 사라졌습니다. 



왼쪽에 있어야할 수영장도 없습니다.
대방초등학교는  참 오래된 학교인데  다른학교와 다르게  초등학교에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뭐 일제의 흔적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었죠. 일본은 초등학교 대부분에 수영장이 있다고 하잖아요.  어린시절 초등학교에 수영장이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좀 이해가 안가기도 했습니다. 학교는  퍼세식 화장실인데  수영장만 있는 모습이 기괴하기까지 했죠.  그래도 수영장이 있어서 1년에 한두번 정도 수영을 했었습니다. 

탈의실도 없고 아무것도 갖쳐진게 없었지만  물놀이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로도 좋았습니다.
그런 수영장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운동장이 심어졌습니다.


뛰어노는 저 학생들은 그곳이 수영장이었다는 것을 알까요?  변해버린 대방초등학교 앞에서 대방국민학교를 떠올릴만한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방초등학교에 있는 농구장만 그나마 옛 추억의 퍼즐과 맞아들어가네요. 대방초등학교는  소년체전에 나갔다 하면 전국우승을 하곤 했었고  전국우승하고 오면  전교생이  나와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전희철, 김병철등이 대방초등학교 출신입니다. 지금은 누가 대방초등학교 농구부 출신인지는 모르겠네요


타임캡슐도 묻었군요.  뭘 묻었을까 궁금하네요.  2005년 교과서와 학용품들이나  그런것이 아닐까 하는데  2025년이면 약 20년후네요


외톨이 부진아 쓰레기 없는 학교를 만들려면 학생들보다는 선생님들이 더 노력해야 할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저 학교 다닐때는 한반에 63번까지 있었어요.  상상이 안가죠. 지금은  한반에 30명정도로 단촐한데 그때는 63번가지 있었는데요.  그래도 외톨이 같은 것 없었습니다.  있어도 그런것을 아이들 사이에서 허용을 안했죠

분명 부진하고 모자른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는 깍두기라고 해서  친구들이 용인하는  어드벤테이지를 줘서 능력의 모자름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부진하고 모자르면  제외시켜버리죠.  이런 문화가 왜 생겼을까요?
전 아이들도 문제지만 그런 아이들을 키워내는 선생님과 학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DNA에 왕따문화 DNA가 있었겠어요. 다 어른들 세상을 보고 배운 결과죠.  솔직히 학부모들중에 문제 많은 학부모도 참 많아요. 또한 선생님들도  학생 가르치기 힘들다 힘들다만 하지마시고 좀 더 열정적으로 교육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또한  자신의 인성문제도 주기적으로 되돌아보셨으면 하고요.  

선생님들중에는  인성에 대한 문제가 있는 분들도 많아요.  문제는 그런 인성부재를 누군가가 지적해주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물론 극히 일부의 선생님들이지요.  제가 경험해 보니까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그래도 순수한 아이들과 지내서 그런지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보다는  순수하신 모습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공립이다보니 4년만다 혹은 5년마다 다른학교로 전근을 하니 깊이 애정을 심지 못하는 모습은 아쉽습니다.
이런 이유로 내 담임선생님을 찾을려면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유급식소가 있던 곳도 포장된 도로로 바뀌었네요. 완벽하게 다 파괴되었습니다. 옛건물이 딱 하나 그대로 있는데  워낙 주변이 다 변해서 정도 안갑니다.

 


뒷마당에는 토끼들이 있었어요.  오후반일때면 미리 학교에 와서  토끼들 풀 뜯어서 주곤 했었습니다.
참 예전엔 공작과 공작비둘기등이 있는 사육장도 교문옆에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 사라졌네요. 대신에 선생님들 주차공간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에 가보면 교직원들이 차량이 운동장 한쪽을 채우고는 하는데  이 풍경을 예상못하고 초등학교를 짓다보니 운동장이 주차장이 된 곳이 많죠

운동장이라도 크면 별 상관안하겠지만 조막만한 운동장에 차들이 빽빽하면 학생들이 맘놓고 공차고 던지고 놀겠어요.  



GPS 좌표는 대방초등학교라고 알리고 있지만  추억이 다 사라져서 앞으로는 다시 찾아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런 학교가 한둘이 아니죠. 지금 30,40대 분들의 초등학교들 대부분이 오래되고 낡아서 리모델링이 아닌 새건물로 바뀌고 있고 바뀐 학교 대부분은 옛 추억이 대부분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한번 찾아가 보세요. 

다행스럽게도 5년전에 대방초등학교 가서 찍어놓은 사진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게 예전 대방초등학교 모습인데요. 어디서 부터 퍼즐을 맞춰야 할지 난감스럽네요



대방초등학교 옆에는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유년시절에는 저 비석을 보고 귀신이 들린 학교나느니 이상한 말들이 있었는데
그 비석의 정체가 설명되어 있네요

 
저 학교 담벼락에 부조처럼 붙어버린 비석의 정체는 숙종왕자 연령군 신도비입니다.
이 대방초등학교 자리에 숙종왕자 연령군 묘지와 비석이 있는데  그 비석이 80년에  육군사관학교 안으로 옮겨지면서 주민들이 그 아쉬움에 새운 비석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유를 모르고 학생들은 저 비석을 보고 수근거리기만 했네요. 누구하나 알려줘야 말이죠.  지금이야 먹고 살만하니까 이런 우리의 지난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표식화 했지만 70.80년대 어디 그랬나요?  역사, 과거 이런것 보다는 먹고사니즘이 절대 철학이라면서  돈버는데만 열중했고 그 결과로 현재 한국은 만족하지는 못하겠지만  큰 경제발전을 했습니다.


추억이 파괴된 초등학교를 나오면서  이제 추억은 사진속에만 존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살던 곳도 다 아파트촌으로 바뀌고  학교도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도로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추억은 도로위에만 흐르나요?  좀 아쉬웠습니다. 그렇다고 내 추억을 위해서 녹슨 학교를 그대로 보존하라고 하는 것은 제 이기심일 뿐이죠.  

 

21 Comments
  • 프로필사진 2011.10.10 00:09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채희철 2011.10.11 11:59 반갑네요 저도 대방초등학교 졸업생인데 졸업한지 하도 오래되서 몇회 졸업생인지는 모르겠네요
    71년생인데 혹시 저보다 선배님 이신지^^;
    저 어렸을때 여름이면 부유물 둥둥 떠다니는 수영장에서 줄서가며 수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집도 후문뒤쪽 담벼락에 있어서 학교 떠드는 소리도 다 들리곤 했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예전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가없어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교 사진을 보니 참 반갑고
    예전 생각이 소록소록 나네요^^
    덕분에 좋은추억 많이 생각하는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프로필사진 이은솔 2011.11.07 17:18 내가 대방초 다니는게 좋아?돈만 아갑게......;
  • 프로필사진 2012.06.08 20:25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12.06.08 23:19 신고 아이고 선배님이시네요. 저보다 3살 누나시네요. 누님 저도 그 시절 추억이 너무 그리워요. 재래식 화장실도 기억나지만 추억이라는 달달함에 다 녹아드네요. 그 시절 한없이 맑고 투명했던 마음들, 비오던 교정, 한반도 연못, 농구선수들 소년체전 우승하고 전세버스 타고 올라올때 애국조회, 운동회, 그리고 수영장 모두가 소중한 추억입니다.
  • 프로필사진 대방의 아들 2012.10.28 10:18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줘서 감사합니다. 옛날 생각이 나네요. 5-6학년때 먹었던 급식도 생각나고요. 동방문방구가 원래 있던곳은 공작문방구였고, 닭집이 원래 동방문방구집이였죠. 동방, 에덴문방구, 공작문방구 이 세게의 문방구중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고민했던 옛날 생각이 납니다. 돈보스코에서 농구하러 간 기억도 나고, 보라매공원에 공작새를 보러 가던 생각도 나고요. 영진시장에서 먹었던 떡볶이도 생각나고, 좋아했던 여자애를 찾아 남서울아파트 근처까지 갔던 기억도 나고요. 같이 추억을 나눌수 있다는 선배님들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 프로필사진 임영수 2012.11.16 17:53 아마도 제가 재학시절 수영장을 만들었으니 , 일제의 잔재는 아니고요, 참고로 저는 62년생입니다.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가던 그시절이 생각이 나는 군요 반갑습니다.
  • 프로필사진 신길유치원 2013.02.11 15:33 ㅠㅠ...
    선배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프로필사진 신길유치원 2013.02.11 15:36 ㅠㅠ...
    선배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프로필사진 추진연 2013.03.19 14:49 인터넷 검색하다가 '대방초등학교'란 글에 눈이 번쩍 뜨여서 우연히 들어왔습니다.
    저는 72년생이고 대방 30회 졸업생입니다.
    저는 신길7동에서 태어나 아직도 거기서 살고 있어서,
    1년에 한 번씩은 민방위 교육을 받을 때 가보곤 합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제 큰 아이가 올 해 대방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격세지감이란 말로는 표현이 안 될 특별한 감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현재 학교 인근이 뉴타운 지역이라 이주한 집들이 많아
    올 해 1학년 신입생이 57명 뿐이 안 됩니다.
    서울이라 학교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왠지 불길한 생각도 들고...
    아무튼 분주한 가운데 좋은 시간 갖고 갑니다. 감사...
  • 프로필사진 한윤진 2013.11.29 06:37 정말기억력이좋으시네요저는84년?졸업인데..건너편대방동에살고있으면서도한번도안가봤네요이번주말엔아이랑한번가봐야겠어요전희철이2년?후밴것같은데 ㅋㅋ수영장앞에서남자애들이까불던게생갈나네요-_-a
  • 프로필사진 한윤진 2013.11.29 06:39 밑에채희철이란분이같은학년이었네요
  • 프로필사진 강형모 2013.12.25 13:53 전 73년생 31회 졸업생입니다. 전 신길6동에 아직도 거주하고 있는데다 대방초등학교와 인접해서 자주 지나치곤 합니다. 제가 4학년때 처음 나온 급식하며 모든 것들이 기억에 새록새록한데 마지막으로 갔던게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2001년에 갔으니... 그땐 교실복도도 제가 학교 다닐적 그대로여서 삐그덕삐그덕 금방이라도 바닥이 무너져 내릴정도로 안좋았는데... 그나마 체육관은 그대로여서 다행이네요. 수영장 없어진건 좀 그렇지만.. 참.. 전 어머님고향이 이쪽이시라 외가 식구들께서 모두 대방초등학교 선배님이십니다. 이종사촌 형제들도 선배,후배고요.. 아무튼 대방초등학교 영원했음 좋겠고 선배님들 이렇게나마 만나서 반가웠습니다.참고로 저랑 동창인 농구부원이 박재헌(6학년때 같은반), 석주일,전희철,김병철(5학년때 같은반)입니다.
  • 프로필사진 한윤진 2013.12.30 02:12 제동생이랑같은반이었나봐요*^^*
  • 프로필사진 satgat 2013.12.30 08:31 년말이다 보니 오래전 어릴 적 생각이 나 인터넷으로 나마 볼까 하고 검색을 하다 들어와 구경 잘하고 갑니다. 사진중에 내기억과 일치하는 것은 일부 축대를 빼면 하나도 없어 아쉬운 감도 있지만 지금은 이렇게 변했구나, 여긴 어느쪽에서 오는 길일까?.....뭐 이런 생각들을 하며 잘 봤습니다. 바로 잡아야 할 것이 있어 몇자 남기고자 합니다.
    .내가 다니던 60년대엔 수영장이 없었습니다. 일정시대부터 있었다더라......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그렇게 얘길하셨다고 했는데 그시절엔 대방학교 자체가 생기기 전이니 말도 안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내가 다니던 시절엔 학교 자리가 공동묘지였었다는 얘길 가끔 들었는데 확인된 건 아닙니다. 그거랑 비슷한 전설같은 얘길 어린 시절엔 하나 봅니다.
    .숙종의 왕자 거북비 얘기입니다. 내가 재학중에 이전해 가는 걸 직접 학교 운동장에서 내려 봤습니다. 몇학년 때인지는 기억이 정확하질 않지만 기중기같은 군장비와 큰트럭으로 옮겨 가는 장면이 생생합니다. 오석으로 만든 검은 비 위에 있는 덮개(?)를 들어 내 트럭에 싣으니 그무게로 트럭이 내려 앉는 장면, 검은 비를 들어 내면서 비가 꽂혀 있던 거북이 몸 사각 구멍에서 나온 녹슨 칼형태의 물건....그런데 몸체는 어찌 옮겨 갔는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네요. 수업종이 울려 마저 구경을 하지 못했나 합니다. 게재되어 있는 사진을 보니 정확하진 않으나 67년도 보이는데 그렇다면 4학년이었나 봅니다. 이왕 남기는 김에 그 거북비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얘길할까 합니다.
    그것의 크기는 어린 아이 서너명이 올라가 이리 저리 다니면 놀 수 있었으면 쉬 올라 갈 수 없었습니다. 위치는 현재 축대에 박혀 있는 비석이 있는 곳으로 축대 밑 길가에 길과 같은 높이의 사각 마당에 있었습니다. 부언하자면 학교 운동장 한쪽이 사각형 모양으로 푹 꺼져 있었던 형태입니다. 이전 후 그곳을 흙으로 메꾸고 원래 있던 축대 모양과 동일하게 돌축대를 쌓아 여기 그런 것이 있었다고 비석을 박고 안내판을 설치한 것입니다.
  • 프로필사진 satgat 2013.12.30 09:08 공군사관학교 길 건너편에 있던 돈보스코 청소년센터에 대해 잘찍은 사진을 올려 놓으시곤 설명이 좀 부족한 듯해 첨언 합니다. 이젠 돈보스코 청소년 센터 맞은 편에 공군사관학교가 있었지 해야 정확한 말이 되겠네요. 천주교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환경이 어려운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만든 기관이 돈보스코 청소년센터입니다.
    바로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이 살레지오 소속의 수사신부이고 거기서 운영했던 교육시설이 돈보스코 청소년센터와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 프로필사진 한윤진 2014.01.04 07:41 농구부기금마련?쌀걷기도생각나네요 ㅋㅋ
  • 프로필사진 2016.05.24 23:39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아부지 2016.12.18 17:14 제가 11회던가요. 지금 62세니까요. 그때도 수영장 없었고요. 돌비석은 사진 원형그대로 거북이까지 있었어요. 하교길에 올라가 놀았지요 바로 곁에선 불량식품 아저씨가 자리잡고 지금은 상상못할 먹거리를 팔았지요. 학교 터 잡을 때 소사아저씨가 구렁이를 죽여서 소풍날마다 비가 온다나? 그때는 교사들이 영~애정이 없었던 기억. 하늘이 노랗던 회충약과 빈곤학생에게 나눠주던 옥수수빵이 아련하네요. 대방교회 목사님 막내딸이 동창이었던 기억^^ 별명이 할머니었는데. 성이 신 씨던가? 지금은 진짜 할머니가 됐겠네요. 일학년 때 공부하다가 똥을 싼 아이도 있었어요. 이름도 기억나네요. 어렴풋이 기억나긴 오세* ^^
    개인신상이라 다 밝힐순없죠. 지금은 치매로 똥받아낼 나이가 돼가네요 ^^ 인생이란 참.
  • 프로필사진 미륵 2017.12.31 23:55 저는 1968년에 입학했어요.
    당시 일본식 목조건물에 교실 2개인가 있었는데, 1학년때는 그 교실에서 배웠어요.
    나중에 몇 학년때인가 그 건물을 헐지 않은 채 자리만 이동시켰던 기억이 나요.
    3학년때까지는 1, 2부로 나눠서 수업을 하다가 4학년때부터 부제가 없어졌던 것 같은데...
    대신 한 반의 학생수가 86명인가 그랬어요.
    지금 기준으로는 3개반이 한 반에 있었던 셈이네요.
    한 반에 10여명은 가정형편으로 도시락을 못싸왔던 것 같아요.
    그때는 서울인데도 소달구지가 흔했어요.
    심지어 소가 고장난 시내버스를 견인해 가는 걸 보기도 했어요.
    현 대방역 쪽에서 남쪽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에서 소 2마리가 시내버스 한 대씩을 끌고가는 광경이었는데,
    지금 기억에도 거북이 기어가듯이 가는 모습이 몹시 힘들어 보였어요.
    80년대만 하더라도 엊그제 같은데, 60년대 말 70년대 초는 지금이랑 너무도 달라서 그런지 참 오래된 옛날 같아요.
    집에 전자제품이라고는 나무케이스로 된 커다란 라디오와 다이얼식 전화기 뿐이었는데,
    아, 나무틀에 날개가 쇠로 된 선풍기도 있었네요.
    짜장면 한 그릇에 30원이었던가?
    짜장면은 몇 년에 한 번 맛볼까말까한 귀한 음식이었는데,
    당시 중국집에 가면 주문을 하고나서 1시간은 지나야 음식이 나왔어요.
    하지만 기다리던 시간이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맛있는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해요.
    모두 다 아련한 추억이네요...
  • 프로필사진 1 2020.07.14 14:16 우와... 저는 95년도 입학했어요.후문쪽 양갈래길 분식집 구경하다 집에가고 그랬는데 ㅎ 재개발로 이제 없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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