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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서울여행

경복궁 추억의 거리에서 추억에 잠기다

by 썬도그 2010.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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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는 민속박물관이 있습니다. 여느 박물관 보다 풍부한 자료가 많은 곳 이죠.  그 옆에 추억의 거리가 있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려 봤습니다. 


이 추억의 거리는  최근에 만들어진 곳인데요. 60.70년대 거리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곳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있을것은 다 있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더군요


화개이발관 풍경인데요.  귀동냥으로 들었는데  이 추억의 거리에 있는 간판이름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가게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약속다방이라든지, 은하사진관등 가장 많이 사용한 가게이름을 사용했는데 유일하게 이 화개이발관만 다르다고 하네요


화개이발관은  실제로 있던 이발관을 그대로 옮겨 왔다고 하는데 주말에는 이발관 아저씨가 직접 머리도 깍아주기도 합니다.
이건 재현품들이 아닌 실제 사용하는 물건들이예요. 1979년 수건이 이채롭습니다.

식당이름중에 고향식당이 가장 많았나 보네요.  쌀집 자전거가 보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쌀집자전거라고 하면 잘 모르죠.  짐 자전거인데요. 앞에 바람막이 같은게 있었어요.


ㅋ 예전엔 저 소주병따는 담당이 따로 있을 정도로 라이터로 많이들 땄죠. 지금은 여자도 딸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소주는 소주도 아니죠.   예전 소주는 정말 강했거든요. 그 소주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띵~~ 할 정도 였어요.

강원도 소주가 아주 강하기로 유명했었어요.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 지역소주가 많이 죽은것 같더라구요
예전엔 지역마다 소주가 있었는데요. 서울경기는 진로, 전라도는 보해 이런식으로요


막걸리 한사발 쭉 들이키고 싶네요.


저 어렸을 때 상수도가 없어서 마당에 펌프가 있었어요.  펌프가 없는 집은 마을에 있는 우물가에서  우물을 길러 빨래를 했었구요
학교 갔다 오면 어머니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면 쪼르르 달려가서 그 빨래하는 모습을 보곤 했어요.

친구들하고 놀다가 쌈나면 어머니가  빨래하시다가 달려오시기도 했구요
집에 펌프가 생긴후에는 우물가에 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펌프에 물이 떨어지면 저보고  물을 넣고  펌프 가동시켜놓으라고 시키면
전 마중물을 부어서 펌프의 물을 끌어 올렸습니다.  마중물이 들어가야  펌프관에 있던 지하수들이 올라왔어요


반공방첩,  공산당을 무서워 하던 시절이기도 했네요.  공산당도 우리를 무서워 했을까요?
공포정치가 가장 국민을 다루기 편한 정치라고 하죠.    그러고 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치 참 편하게 했어요. 지금도 편한 여생을 즐기고 계시고 있죠.  반면 그때의 공포감에 아직도 후유증을 앓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약속다방에 들어가 봤습니다.


다른 곳은 다 막혀 있는데 이곳만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커피는 다방아가씨가 타주는게 아닌 300원내고 자판커피 마시면 됩니다. 동전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는데 
여기 관리하는 분이 계시더군요. 테이블에서 커피마시고 있어서 관광객인줄 알았습니다.  동전 없으면 바꿔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예전엔 집집마다 이런 소라로 만든 장식품이 인기가 많았어요. 친구네 집에 이와 비슷한것이 있었는데 그거 한참 드여다 본 기억이 나네요
요즘에도 이런거 만들어서 팔면 잘 팔릴듯 한데요.



창가를 바라보며 커피한잔 했습니다.



다리달리고  주름커텐이 있는 TV도 보입니다.
저 TV  로터리방식의 채널이 있었는데 백이면 백 그 로터리 채널이 망가지기 쉽상이었고 나중에는 공구로 돌리고는 했습니다.




현대, 새한칼라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오네요.


저는 만화가게 처음간게  중학교때였어요. 지금도 만화가게들이 있긴 하던데 예전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죠
만화가게에는 TV가 있었고 TV가 없는 아이들이 만화가게에 많이 갔었어요

예전엔  마징가Z같은 만화를 돈내고 보여주기도 했었어요. 아직도 기억나는게 달고나 파는 가게 아저씨가 돈을 내면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당시 생소한 VHS테이프로 만화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는 시대이지만요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남학생은 파란가방 여학생은 빨간가방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런 파시즘적인 모습은  2차대전 이후에 고착화 되었다고 하는데요.  1930년대는  남자가 핑크, 여자가 파란색을 가지고 입고 다녔다고 하네요.  따라서  여자아이들의 취향은 교육에 의해 길들여진다고 봐야겠죠

여자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바비인형 가지고 놀면서 쭉쭉빵빵 언냐가 되는것이 꿈이 되길 바라는 것 처럼요

풍금이 많지 않았던 시대에 음악수업이 있던 날은  풍금을 나르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요즘은 학교에 난로가 없고 가스스토브가 있다고 하네요
세상 참 좋아졌어요. 예전엔 난로를 가운데에 놓고 수업을 했는데 한 교실에서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너무 가까우면 아예 몸이 녹고  구석에 앉으면 연신 호호 손을 불어야 했던 모습



이 아이들이 크면  지금 2010년의 거리풍경이 박제되어  저곳에 위치하겠죠. 현시대를 박제한다면 어떤것들이 들어갈까요?
핸드폰, 스마트폰, 자동차, PC방, 노래방, 스타벅스, 미용실, 롯데리아 같은곳들이 들어가지 않을까요?







민속 박물관 옆에서 상설전시를 하니 아무때나  찾아가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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