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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자화상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화가가 반 고흐입니다.  고흐의 그림을 2007년 서울 전시회에서 봤는데
이후 돈 내고 본 어떤 그림들 보다 이 고흐의 아이리스 그림이 잊혀지지 않네요. 특유의 점묘화법 같으면서도 멀리서 보면 황홀한
전원 풍경과 거리풍경을 담았던 고흐. 더 놀라운것은 이런 그림을 하루에 1작품 이상씩 만들어 냈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고흐를 더 사랑하는 이유는 다른 화가들 보다 더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바로 고독, 가난, 자살과 라이벌입니다.
고흐가 자살하지 않고 고갱과 같은 라이벌이 없고 가난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이 추종하는 모습에 거품이 좀 많이 빠졌겠죠
그렇다고 고흐의 그림이 과대평가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이고 그림체가 제가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화가 누굴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1순위는 고흐라고 말할 것 입니다


고갱의 자화상
이름만 비슷할 뿐 모든것이 달랐던 고흐와 고갱

고흐는 가난했지만 열정이 가득한 화가였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평생 가난과 외로움에서 지냈던 고흐,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딱 한사람 동생 테오밖에 없었습니다.
신학자가 되기 위해서 탄광에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고 스승도 없이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습니다



남부 플로방스 아를에 정착한  고흐는 자연을 화폭에 담는 바르비종파의 화가들을 흠모합니다. 위 그림은 밀레의 그림을 그대로 모사하죠. 하지만 고흐 특유의 이글거리는 그림체가  다른 그림으로 보이게 합니다


고흐는 열정이 가득한 화가였습니다. 하루에 한두점씩 그려되는 미친 그림 속도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열정의 화가인 고흐는 해바라기를 참 많이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림중개상을 하는 동생 테오를 통해서도 그의 그림을 한 작품도
팔리지 않고 점점 생활고를 겪게 됩니다.   동생 테오가 보내오는 돈으로 근근히 연명하던 고흐,
공장형 화가가 아닐까 할 정도로  왕성한 생산력 거기에  고흐 특유의 물감을 칠한게 하닌 그림위에 짜낸듯한 그림으로 인해 물감을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결국은  밥을 굶어가면서 까지 그림에 열중하던 고흐는  자신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랑하는 동생 테오를 보게 됩니다.

 테오는 결혼을 했고  테오 와이프로 부터의 약간의 불평어린 글을 일게 되어 괴로워 합니다.
자신이 동생에게 짐이 된다고 느낀  고흐는 자신의 방에서 심장에 권총을 겨누고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도 긴 고통속에서  서서히 죽었습니다. 고흐는 즉사하지 않고 그 시간동안 고통속에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작품들은 테오 가족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인정을 받게 됩니다.

반면 고갱은 고흐와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고흐는 목사의 아들로 고행을 한 삶이었다면 고갱은  회사원의 삶을 살고 있다가  화가가 된 케이스죠.  맺고 끊는게 확실한 성격의 소유자 고갱은 그림에도  어정쩡한것을 싫어해서 강렬한 색을 자주 사용합니다. 또한 고흐와 다르게 고갱은  후에 팬클럽이 생길정도로
인기가 많은 화가였고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죠

고흐는 바르비종파 화가들 처럼 공동체를 만들어서 자연을 벗삼아서 그림을 그리는 그림친구를 원했습니다. 테오의 소개로 만나게 된 둘은
많은 면이 달랐죠.  고흐는 자신의 노랑집에서  고갱과  화가 집단체를 꿈꾸었지만 고갱은 잠시 머물 생각밖에 없었죠

고흐와 고갱이 함께한 시간은 단 9주입니다. 9주라면 별로 긴 시간이 아니죠.
하지만 둘은 많은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고흐는 고갱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질투를 하게 됩니다.  자신과 너무 다른 모습의 고갱
어떻게 보면  이솝우화의 서울쥐 시골쥐 같은 모습이죠. 서울 샌님같은 고갱과  촌놈 고흐,  둘은 사사건건 다투게 됩니다.
특히 고갱은 고흐의 노란색을 경멸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흐와 고갱은 싸우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그러다 고흐가 폭발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 납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릴려면 해바라기를 봐야 하며  기차를 그릴려면 기차를 보고 그려야 한다고 자신의 그림에 대한 생각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고갱은 작가의 상상을 어느정도 넣어도 된다고 생각했죠.

이런 이견은 고갱이 그린 고흐그림에 고흐가 꼭지가 돌아버리게 됩니다.
자신을 미치광이로 묘사했다고 화가난 고흐,   고갱의 작가적 해석을 불허했던 고흐에게는 고갱의 그림은 맘에 들지 않았고 큰 다툼을 합니다.

독한 술인 압상트를 시켜놓고 둘은 화해를 시도하지만 고흐가 술잔을 던지면서 틀어지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고 그걸 자신과 안면이 있었던 여자에게 줍니다. 이후 고갱은 고흐를 떠나게 됩니다.

고흐와 고갱의 공통점은 열정의 화가였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이상향을 찾을려고 했던 화가였습니다
고흐는 평생을 고독과 싸우면서 살았으며 고갱은  사회와 도시를 떠나서  타히티에서 걸작들을 그리게 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


고갱은 아를에서의 9주를 지나고 그의 그림에서 고흐의 노란빛이 들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 다툼을 하면서도 영향을 받던 사이였죠.  고갱은 고흐의 자살소식을 듣고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예술가" 였고, "그의 그림 속에서 그의 눈과 마음을 볼것" 이라고 써서 보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공간에서 잠시 함꼐 있었지만 그림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화풍도 살아온 과정도 달랐던 두 천재화가. 

가장 치열한 9주였고  가장 치열한 라이벌 관계가 아니였을까요?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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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o 2011.05.12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갱과 고흐가 어떤 관계였는지 찾아보고 있었는데~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2. lws1905 2011.05.12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참 잘읽고 갑니다. 이름이 비슷해서 항상 헷갈렸는데.
    달고 6펜스를 읽었어도 헷갈렸었는데요 ㅎ

    정리 참 고맙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