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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신의 존재에 대한 진중한 물음 영화 십계-어느 운명에 관한 이야기

by 썬도그 2009.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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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영화 콘텍트를 친구네 집에서 비디오로 보고  친구가 괜찮은 영화라고 말하기에 그냥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습니다.  평소에 그 친구가 영화에 대해서 잘 얘기 하지 않고 영화광도 아니여서  그 말을 좀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우연히 빌려본 콘텐트는  그 어떤영화보다 재미있고 흥미롭게 봤습니다.
영화 콘텐트는 여느 허리우드 영화와 다르게 진중한 질문을 하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신은 있는가? 종교는 무엇인가?  과학은 무엇인가?
에 대한 거대한 물음이었죠.   과학자인 조디 포스터는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모두 과학으로 설명될것 같았는데  과학으로 설명못하는 신기함 체험을 하고  과학이 채우지 못하는 그 세상과의 간극을 종교로 채웁니다.

이런 말이 있더군요.  과학보다 더 큰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것이 종교이고  종교가 설명하지 못하는 세상은 철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구요.
어떤것이 더 세상을 잘 설명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서로를 인정하면  불협화음없이  공생할수 있을 것 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중에 한명은  크쥐스토프 키엘로브스키입니다.
우리에게 프랑스 삼색기의 블루 화이트 레드를  영화화해서 프랑스 감독들에게 자극제가 되었던  동유럽출신의 감독이며 수많은  감독들의 멘토이기도 했던  동유럽의 영상시인입니다. 

이 크쥐스토프 키엘로브스키 감독은 장편영화를 만들기 전에 폴란드 국영TV용 영화인 십계씨리즈를 만들었습니다.
명작이라는 소문은 수십년전부터 듣고 있었는데 볼 기회가 있어야죠.  그런데  하나포스닷컴에서 무료로 VOD서비스를 해주기에 우연히 봤습니다. 그리고 명작의 진중한 질문에 대한 울림으로 지금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이 50분짜리 TV영화  십계 - 어느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 콘텐트와 비슷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신이란 존재하는가?  과학이 세상을 대신하고 모든것을 설명해줄수 있을까? 에 대한 진중한 질문이죠

영화가 시작되면  한겨울 고요한 늑대울음소리 같은  적막감속에  슬픔을 한줄기 머금은  바람같은  관악기의 배경음이 깔리면서 시작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대학교수이자  과학신봉자인 아버지와  그의 아들 파벨이 함께 삽니다.

아버지는 모든것을 계산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의 신봉자입니다. 심지어 감정까지도 계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죠.
그러나 파벨의 고모이지 아버지의 누나는  전통적인 폴란드 가정의 사람처럼 카톨릭을 믿는 분이죠.

파벨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과학과 컴퓨터를 가지고 놉니다.  그리고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아버지와 왜 고모는 왜 이리 다를까?
정말 천진난만하게 아버지와 둘이 살던 파벨은  어느날  죽음을 목격합니다. 


아빠!  죽음이 뭐예요.
아버지는  과학신봉자답게 죽음의 현상을 설명해줍니다. 피가 돌지 않아서  죽게되는 과정이라고 말하죠.
파벨은 집압의 떠돌이개가 죽은 모습을 봤다면서  죽음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아빠! 죽으면 남는게 뭐예요?
뭐 기억같은것만 남겠지. 그사람의 미소와 얼굴 그리고 그에 대한 기억등이 남겠지.

파벨은 영혼의 안식을 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영혼을 말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는 말하죠. 영혼은 없어!  영혼은 그냥 인삿말 같은거야
고모는 영혼이 있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살기가 훨씬 쉬어지지




아버지의 설명에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파벨  아버지와 컴퓨터로 속도계산하고 그런것들이 죽으면 뭔 소용이 있냐면서 조용한 저항을 하죠.  그리고 고모를 찾아가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고모는 신은 있고 믿음만 있다면 느낄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랑이 측정할수도 계산할수도 없듯이  신의 존재는 계산되어지고 측정되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죠

아버지와 파벨은 스케이트를 신고 호수에 가서 놀 계획을 가집니다.
아버지는  호수의 얼음두께를  컴퓨터로 계산합니다. 3일동안의 기온을 기상청에 물어서 알아넨  파벨과 아버지는 프로그램된  계산식에  3일동안의 온도를 입력하자 얼음두께와 최대하중이 계산되어 나옵니다.  파벨 몸무게 3배까지도 너끈하게 버티겠는걸

다음날  파벨은  그 호수에서 얼음이 깨져서 빠져 죽습니다.
아버지는  공사중인  성당에서 제단을 무너뜨리면서 괴로워 합니다.  성모마리아 그림위로 빗줄기가 떨어지고 그 빗줄기는 눈물처럼 보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이지만  간단하고 명료하게 그려낸 명감독의  연출력과 스토리텔링이 탐복스럽기만 하네요. 거기에 50분짜리에 이런 물음을 잘 녹여내다니  세월이 흘려도 그 명성은 녹슬지 않았네요.

저도 과학신봉자입니다.  광신도적인 종교인들의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지  더더욱 종교에 대한 심한 회의감을 가집니다.
그러나 종교는 믿지 않지만 신의 존재를 믿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잃고  성모마리아가 있는 성당으로 달려갔던 이유가 뭘까요?
과학으로 설명되어지지 않는 계산되어지지 않는 운명과 신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요?

신은 하나의 보험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믿는다고  손해볼것 없는 것이죠. 

과학자들이 미시적 거시적 세계를 더 많이 발견할수록 종교에 더 심취한다고 하죠.
여기가 끝이겠구나 하면서  미시적 세계를 들여다 보면 거기엔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  과학과 종교는  언제나 공존해야 할것 입니다. 그러나  비과학적이게도  우리들 세상에서  종교과 과학은 항상 으르렁 거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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