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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사진싸이트나 커뮤니티에 가면  가난한 사람, 노숙자들의 사진들이 올라옵니다.
맑은 눈망울에 꾀죄죄한 때국물이 흐르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은 측은지심을 느끼고  때로는  눈물을 흐릴게 됩니다.

가장 감상적인 사진중 하나는 상황을 대비시켜서  사진속 피사체는 자신의 현실을 모르고 해맑게 웃지만 그 사진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은  그런 무지한 피사체의 현실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곤 합니다.
그러나 노숙자나 가난한 사람들의 사진 한장 올려놓고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감상적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사진작가 루이스 하인은 1930년대 미국정부로 부터  의뢰를 받아서  미국 어린이 노동현장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게 됩니다.  그는 사진작가가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어린이들의 가혹할 만한 노동현장을  글로 적어서 보고하는것 보다는 사진으로 찍어서  담습니다.



하루종일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미국 어린이들의 현실을 본 미국정부와 국민들은 큰 충격을 먹게 되고
어린이 노동법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렇게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당위성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찍는모습은 괜찮습니다.
(초상권에 대한 문제는 물론 해결해야 하구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회적 변화와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동의하에 찍는것은 괜찮습니다.
한달 10만원으로 사는 어느 쪽방촌 할머니의  사진을 글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것은  사회적 환기의 목적으로 괜찮고 권장할만 하며 그게 바로 다큐입니다.  하지만 이런 당위성도 없으면서   그저 감상에 젖어서 서울역 앞에서 심한 냄새를 풍기면서  자고 있는 노숙자를 카메라로 담거나  가난한 동네에서 만난 아이를 허락도 없이 찍는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그 아이가 어른이었다면 찍지 못했을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사탕하나 물려주고 사진을 찍고서
감상에 젖는것은  이기적인 감상주의자입니다.   그런 사진을 사진커뮤니티에 올려놓고  사진 잘 찍었다느니  눈물이 난다느니 하는 댓글을 읽으면서  뿌듯해 하기도 하죠.

이런 모습은 가난을 파는 모럴 해저드의 모습으로 비추어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이 있습니다.
1930년대야  카메라가 귀했고  같은 미국이라도  어떻게 사람들이 사는지 잘 모를때  그 세상을 미국정부가 보게 하는 이유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누가 어떻게 사는지  대부분 잘 알고 있습니다.  노숙자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도 서울역이나 용산역등 큰 역에서  노숙자들이 자고 있는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환기도 못하면서 사진을 돌려보는것은 앞으로는 지양해야 할것 입니다.

만약에 그래도 사진을 찍고 싶다면  이렇게 얼굴을 가리면서도  그 삶을 여실하네 느낄수 있는 사진이 대안이 되겠죠
가난에 대한 접근은  항상 조심해야 할것입니다.  누누히 말하지만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에 들어가서 빈티지풍 마을이라는 철없는 소리는 없어졌으면 합니다. 거기가 무슨 테마파크입니까?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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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eoulrain.tistory.com BlogIcon aserai 2009.07.25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정심을 미끼로 삼아 사진찍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는 않지요. 가난에 대한 접근이 신중해야 한다는 말씀에도 정말 동의합니다.

    그러나 동정심을 미끼로 삼아 사진찍지 말자고, 사회적 환기가 더욱 중요할 것이라는 글
    위 아래로 달려있는 블로그 수익광고들도 조금 불편합니다..

    가난을 팔아 사진찍지 말라고 호통치는 것,
    가난을 거래하는 것이나, 가난을 거래하지 말자고 말하는 꽤 멋져보이는 주장이 거래되는 것이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활동가만이 쓰러져가는 마을을 찍을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