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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6월 10일 6,10민주항쟁 20주년이군요.
내일 서울도심에서 행사도 한다고 하는데 참석해 볼까합니다
.
저는 6월10 항쟁때 중3이었습니다.  학교가 서울 대방동에 있어서 근처에 대학교가 없고
도심도 아니여서 특별히 최루탄 냄새 맡는 경험은 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중학생이 시위에 참석하는것도 상상 못하구요.  그때 세상을 배우는 중학생이라서
뭐가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연일 시국에 대한 걱정섞인 발표를
하고 경찰청장이 나라가 위기라느니 하여튼 나라 망하겠구나 생각도 들더군요

데모좀 고만좀 하지 왜 맨날 하는지 가뜩이나 북한 쳐들어올까봐 걱정인데 말이죠.
그러다 친구에게 여러얘기를 들었습니다. 자기 누나가 대학생인데  지금 왜 데모를 하는지
에 대해서 한마디로  대통령이 선거를 자기맘대로 해먹을라고  전국민의 참여하는
투표가 아닌 몇몇 사람들만 체육관에 모여서 하는 간선제를 한다는 것이였죠.

그거 바꿀려고 데모하는것이다라고요.  그렇게 듣지 않았다면 전 대학생들이 다 나쁜사람들
인줄 알고 그 시절을 지냈을것 입니다.

어느 선생님 하나 그 때의 사태를 자세히 바르게 전해주지 않았고 자기 안위만 지키는
시절이었으니까요. 뭐 세상에 참여할 나이가 아닌것도 있었을것입니다.

그 시절 TV에서는 하얗게 피어 오르는 최루탄 연기를 보면서 멋있다라는 느낌도 들었던것 같아요
그거 뻥뻥 터지면 사람들 다 도망가고 ~~~ 와 멋지네 저거 냄새 지독한가보다하고 생각했죠.
오히려 화면은 화염병에 의해 다리에 불이 붙은 전경들의 화면만 많이 잡아주어서
불쌍한 전경들 웬 고생인가~~~ 그런 느낌만 들었죠


그런데 어느날 날씨가 꾸물꾸물하고 비가 내릴것 같은 오후에 온 교실이 콜록거리고 눈이 따갑고 맵고  도저히 수업이 안될정도로 되더군요. 결국 하루종일 콜록거리다 집에갔는데
그게 첫 경험(?)이었죠.   근처에 데모도 하지 않았는데 하도 데모를 여기저기서 많이 하니까 그게 바람에 타고 날아온것이었습니다. 아마 영등포쪽에서 했나봅니다. 바람타고 날아온 최루탄이
그정도인데 시위현장사람들에게는 죽음의 공포까지  느꼈을것입니다.

그 80년대 중반부터 90년도 초반까지 최루탄은 대한민국의 하나의 키워드였고
88년 소득세 신고 1위가 최루탄제조업체 여사장이 였다는 사실은  참암울한 시대를 지냈다는
증거겠죠.  그때 여러나라에 한국산 최루탄이 좋다고 수출을 할려다가 그걸 맡아본
남미국가및 여러국가들이

도데체 니네 나란 이런 걸  국민들에게 쓸수 있냐며~~ 그 독성에 놀랐다고 하네요

그런 독한 최루탄 속에서 그 열사들은 항쟁을 했습니다.
딱정벌레 같이 생긴 페포푸카가  최루탄 연발을 쏘면서  진격하면  시위대들은 사방으로
도망가고  백골단이라는 머리에 헬벳쓰고 청자켓과 청바지를 입은 사람들은 콜록거리는
 시위대의 머리채를 잡고 무참히 패더군요.  여자건 남자건 가리지 않는 남녀평등을 실현하시는
분들이었죠.  

결국 전두환정권은 이한열씨가 연대정문앞에서  최루탄에 맞고 돌아가시는 바람에 시민들의
들불같은 참여에 두손을 들고 항복을 하며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돌아섰습니다

원래 총같이 생긴 최루탄을 앞에 달고 쏘는 그 최루탄총은 일정각도이하로 내려가면
발사가 되지 않습니다. 곡사화기에요. 왜냐면 그거 직선 그냥 일반총처럼 직선으로 쏠수 있고
사람이 맞으면 죽을수도 있어서 안정장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중으로 쏴야 하는 장비인데
그때 전경들 그거 다 개조해서 직선으로 쏘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한열씨가 머리에 맞고 돌아가신거죠.
그렇다고 전경분들 욕하고 싶지 않아요. 그분들도 피해자인데요.
정말 아이러니한건  한달전엔 데모하던 학생이 입대해서 이젠 시위대를 막는 전경이 되어
배치되는경우도 많았죠. 일부러 그때 전경이나 전방으로 보냈다고 하네요.
나라가 남북으로 갈리고  청년들은 한쪽은 데모하고 한쪽은 그걸 막고 참 나라꼴 우수었던
시절입니다. 광주항쟁과 6,10항쟁을 통해 나라가 민주화되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던거죠

최류탄의 종류보기



최루탄은 노태우정권떄도 이어졌고 김영삼때도 있었어요.  최루탄이 거리에 터지면 약대 한의대 의대생들이 괴로워하는 시위학생들에게 코밑에 치약을 발라주고 가곤 했습니다.
그게 효과가 어느정도 있었어요. 눈물,콧물 침 다 나옵니다.  그나마 치약이나 마스크를 쓰면 덜하긴
하지만요. 

오늘 기사 하나가 떴네요

"우리가 만든 최루탄, 이제는 수출만 합니다."




몇일전 기사를 보니 지금 대학생의 대부분이 6.10항쟁을 모른다고 하네요.
뭐 관심있겠어요. 자기들 공부하기 바쁜 세대들인데.
지금 다시 전두환이 다음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지금 대학생들 자기 공부만 할것
같아 보이네요.  

그 시절 고생하셨던 모든 대학생및 시민들에게 감사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분들의 노력이 있기에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으니까요.
썬도그
하단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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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www.opencommz.com BlogIcon 오픈컴즈 2007.06.09 2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시절..고삐리(?)에 불과했지만..학교가 명지대 뒤이다 보니..^^ 최루탄 속을 헤매던게 일상생활이었죠...나름 전교조 출범시 직접 시위도 주도하고...ㅋ..이젠 추억이네요...90년,91년 교투,가투에 참여하고...91년 고 김귀정 선배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밤새우고 각목을 들고 지키던...그런 일들이 모여 정말 어렵게 민주화 이루고 지금의 우리나라가 이루어 졌는데...지금 돌아가는 꼴 보면...ㅡ.ㅡ 안습이죠...휴
    애들은 입시에 찌들어 기본 인격은 다 팽겨치고...기성세대는 서로 험담하기 바쁘고...타임머신타고 돌아가보고 싶은..그런 시간이네요 ^^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07.06.09 2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감합니다. 적어도 그때 우린 공부보다 중요한것을
      꺠닫게 되었어요. 세상이 공부가 다가 아니고 전부가 아니라는것을 내가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요즘 학생들은 뭐 다는 아니겠지만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4학년생들 같아요.

  2. 요즘애들 2007.06.10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시절 한 몸 바쳐가며 자유를 이루어낸 모든 분들에겐 존경을 표하지만, 요즘애들을 그렇게 만든건 현재의 기성세대분들 아니던가요?
    어렸을 때부터 영어배우라 해서 영어를 한국말과 같이 배우더니,
    이제는 부모님 성함도 한자로 못쓴다고 비판하더군요.
    월드컵세대도 한민족이었다는 자부심이 없었다면 그렇게 크게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한민족의 자부심이 있지만, 현재 사회는 그것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더 가치있게 판단하는게 현실이니까요.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07.06.10 0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때도 개인의 능력을 가치있게 판단하던 시대였습니다.
      지금과 크게 다른건 없었어요. 그것보단
      현재의 학생들이 사회와 호흡하는 부분이 부족한것 같아보입니다. 뭐 싸잡아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겉으로 보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