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너무 많은 콘텐츠가 있어서 한 입 먹고 내려놓은 영화와 드라마가 참 많습니다. 어제도 이리저리 볼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찔끔찔끔 보다가 한 영화에 멈췄습니다.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뭔 이런 제목이 다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내용이기에 이런 무성의한 제목이 있나 했네요.
회사를 그만둔 20대 여성이 알바를 시작하다
영화를 지속적으로 보게 하려면 뭔가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화관이라면 중간에 나가기 쉽지 않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는 좀 재미없으면 관람을 쉽게 중단할 수 있습니다. 한 20대 여자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커튼을 치다가 커튼 봉이 고장 납니다. 이에 누군가와 통화를 합니다. 집주인과 통화하는 것 같네요.
주인공 이이즈카를 연기하는 '카라타 에리카'에 반했습니다. 이런 일본 배우도 있었구나 할 정도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꽤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순박한 면도 있고 평범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청순합니다.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한국의 BH엔터테인먼트와 매니저 계약을 했네요. 그리고 배우 개인적인 사생활 이슈도 있네요.
이이즈카는 일어나서 편의점 알바를 갑니다. 일본은 현금 결제가 많아서 작은 편의점도 2인 1조로 근무하는 곳이 많더라고요. 편의점에는 총 4명 정도의 알바생이 근무하는데 이이즈카는 한 손님에게 혼이 납니다. 비흡연자이다 보니 담배 이름을 몰라서 쩔쩔맬 때 모리구치라는 자신보다 어린 남자 알바생이 골라줍니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성실근면합니다. 또 다른 알바생은 자신이 기특하다면서 자존감 높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이즈카는 소심하고 소극적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상처를 가진 알바생들의 숨 트이는 이야기
아이가 좋은 청년이 되고 좋은 청년이 좋은 어른이 되려면 좋은 어른 1명만 있으면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편의점 점주는 아주 착하고 바른 어른입니다. 가끔 이렇게 회식도 시켜주면서 알바생끼리 친목도 도모합니다. 그러나 이이즈카는 이런 술자리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는 잘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편의점에서도 목각인형처럼 무뚝뚝하게 지냅니다.
남자 알바생이 전에 회사 다녔다면서 왜 그만뒀냐고 물어보지만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자 알바생은 대충 눈치를 챕니다. 블랙기업. 한국말로 하면 악덕 기업입니다. 남자 알바생도 상처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형의 저지른 일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놀림을 받습니다. 사실 이 알바를 하는 모든 청년들은 집안이 넉넉하면 안 하겠죠. 해도 아버지 어머지 빽으로 고급스러운 회사의 인턴으로 일할 겁니다.
그래서 전 그걸 잘 알기에 알바생이 실수를 하면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를 배워가는 과정이니까요. 일본도 비슷할 겁니다. 한국과 일본은 부모팔자 반팔자잖아요. 그렇다고 그들을 측은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자립심이 강한 청년들로 우리 사회가 보호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사회성을 분실한 이이즈카가 중학교 동창을 만나다
이이즈카는 자신이 태어난 동네를 떠나서 취직을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고 알바를 한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집에는 말도 못 하죠. 웃음도 사회성도 잃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다 남자 알바생이 동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들고 있던 오뎅국물을 던지고 도망칩니다. 그때 처음 웃습니다.
사람은 서로의 약점이나 고통을 드러낼 때 좀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물론 악한 사람들은 그런 약점을 이용해서 이용하거나 괴롭힙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자신의 고통과 과거를 드러내면서 자신의 어깨를 내어줍니다.
이 낯선 동네에서 혼자 살면서 말도 거의 안 하고 사는 이이즈카 앞에 중학교 동창인 오오토모(이모우 하루카 분)가 말을 겁니다. 깜짝 놀란 이이즈카. 오오토모는 중학교 시절 갑자기 이사를 갑니다. 그때 이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낯선 동네에서 둘은 만납니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하죠. 부모가 이혼을 해서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요. 그리고 이이즈카의 삶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우리 주변의 흔한 이야기가 오히려 더 몰입이 되었던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넷플릭스 1위를 하고 있는 <화란>을 보다가 꺼버렸습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피 없이는 영화나 드라마 못 만드나요? 너무나도 자극적인 소재들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다보니 보고 있으면 기가 빨립니다. 가뜩이나 야생화 되어가는 듯한 한국 사회에 지쳤는데 그런 영화나 드라마 보면 더 끔찍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다 소금 간이 안 된 일본 영화들을 즐겨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입니다. 처음 보다가 재미없으면 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끌립니다. 영화 내용이 별거 없습니다. 악덕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삶이 초췌해진 20대 여성이 알바를 하다가 중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납니다. 그리고 그 동창과 친해지고 그 동창 집에서 하루 묵으면서 자신의 고통을 게워냅니다.
이는 동창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이혼한 후 이사를 가게 되었고 떠난 엄마 대신에 혼자 엄마 역할을 합니다. 이 자체가 쉬운 삶은 아니죠. 이게 답니다. 어떤 로맨스도 놀라운 사건도 인위적인 이벤트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우리 주변에 있는 이야기를 퍼 올려서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보면서 이런 이야기도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나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일본이 이런 영화 잘 만들거든요.
그런데 거울치료라고 나와 닮은 또는 내 주변의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도 누군가는 이 영화로 인해 큰 위로가 될 겁니다. 물론 저도 그 중 하나입니다. 20대 시절 막차를 타고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전철 안에서 잠을 잤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르네요. 사람이 매일 야근하면서 한 2년 넘게 사니 무척 피폐해집니다. 당시는 토요일도 근무하던 시절이었죠. 그럼 토요일 퇴근 후에 술 진탕 먹고 뻗으면 일요일까지 날립니다.
그럼 또 지겨운 월요일이 됩니다. 그렇게 몇 년 살면 사람을 안 만나게 됩니다. 그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요. 그렇게 몇 번 모임에 빠지면 나중에는 안 부릅니다. 그럼 점점 고립되어가죠. 그래서 그런지 이이즈카의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네요. 그럼 이 블랙기업이 한국에는 없을까요? 좋좋소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왜 청년들이 대기업만 가려고 하겠어요. 물론 대기업은 복지나 근로 환경은 좋지만 엄청나게 쫍니다. 실적 압박이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럼에도 중소기업 환경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가장 심한 고통이 초과근무이자 야근입니다. 야근 한다고 근로수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인해 사람을 파괴시킵니다. 이이즈카는 파괴되었습니다. 무쓸모한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도 같이 겪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어떻게 훈련병들이 견디는데요. 나만 고통받는 것이 아닌 같이 받으니까 견디는 것이죠.
물론 영화는 사회개혁이나 여러 문제를 직접적으로 담지는 않습니다. 다만 고통 받고 상처받았지만 그 상처를 공유하지 않고 혼자 앓고 사는 청년들을 위해서 너만 아픈 거 아니다! 다른 친구들도 비슷해. 그러니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상처를 보여주면 함께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세상을 견디는 굳은살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슴슴하고 담백하지만 그래서 좋았습니다. 구질구질하게 담지 않고 눈치챌 정도만 보여주는데 그게 공감대 형성력이 아주 좋네요.
별점 : ★ ★ ★
40자평 : 상처 입은 청춘에 대한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