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이 꽤 있습니다. 상영관이 적어서 청소년 관람불가라서 못 본 영화들이 있죠. 이 영화는 제목은 엄청 유명합니다.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은 콘텐츠 제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제목의 영화를 안 봤을 겁니다. 저도 입에서만 맴돌던 영화를 최근 영상자료원이 4K로 복원한 후 유튜브 고전영화라는 채널에 공개했습니다.
1993년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1990년대 초는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전두환이라는 폭군의 시대를 지나서 물태우라고 하는 다소 느슨해진 사회분위기 속에서 사회 비판적인 영화들이 꽤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이 당시도 사전 검열의 시대라서 영화가 만들어져도 정부 당국의 가위질이 존재했습니다. 영화 사전검열이 언제 폐지되었는지 아세요? 놀랍게도 1996년입니다. 헌재가 잘 한 몇 개 안 되는 일중에 하나가 이 영화 사전검열 폐지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전검열 제도가 없던 시절에 나온 영화들이 더 사회비판적인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가위질을 당하기에 은유법으로 담은 영화들이 날카롭지 않고 묵직해서 지금도 사랑 받고 있습니다. 이 사회비판적인 영화를 잘 만든 감독이 박광수 감독입니다. 1988년 <칠수와 만수>라는 두 야외 간판 페인트공의 사회 비판 이야기로 입봉 해서 1990년 <그들도 우리처럼>이라는 운동권 영화를 지나서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까지 사회 비판 소재의 영화들을 잘 만들던 박광수 감독이 1993년 연출 개봉한 영화가 <그 섬에 가고 싶다>입니다.
이 영화를 왜 못 봤나 했는데 제가 군대에 갔던 시절에 개봉한 영화였네요. 이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당시 꽤 연기 잘하는 배우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화자인 김철에 안성기와 핵심 인물인 재구 역할의 문성근, 섬의 광녀 옥님이의 심혜진과 벌떡녀의 안소영, 이용이 등등 쟁쟁한 배우들이 가득 나옵니다. 여기에 스텝도 화려합니다. 유영길 촬영감독에 조감독이 이창동, 허진호 감독에 시나리오도 이창동 감독이 참여합니다. 임철우 소설가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문예영화입니다.
1950년 이념을 강요당했던 시절의 울분을 담은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시대 배경은 1980년대로 보입니다. 화자인 김철(안성기 분)은 어린시절 친구인 재구(문성근 분)와 함께 상여를 실은 배를 매달고 철과 재구의 고향 섬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섬사람들이 재구의 아버지인 덕배의 시신을 이 섬에 묻을 수 없다면서 결사반대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나옵니다. 영화는 1950년 6.25 동란이 일어난 시기로 넘어갑니다.
1950년 이 남해의 한 작은 섬에는 사람들이 오손도손 잘 살고 있었습니다. 법이 있지만 섬이라서 경찰과 군인이 없습니다. 따라서 법대로 하려면 육지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지주이자 마을의 중심이 되는 어르신이 모든 일을 관장합니다. 그렇다고 못된 지주나 그런 건 아닙니다. 마을 사람이 분노하게 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면 망석말이를 하는 정도죠.
이 섬에는 마을 아이들이 가난과 부자를 떠나서 함께 어울립니다. 그리고 왜 미쳤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순박한 동네 광녀 옥님이(심혜진 분)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제주도에서 시집왔다가 남편이 3년 전에 사고로 죽어서 혼자 남은 제주댁(안소영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벌떡녀라고 수근 거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순박한 건 아닙니다. 매일 남편이 때려서 미쳐버릴 듯한 삶을 살다가 무당이 된 업순네(이용이 분)도 있고 재구의 아버지인 덕배의 아내 넙도댁(최형인 분)은 피가 말라갑니다. 넙도댁은 아들 둘을 낳았지만 딸이 곱추라서 덕배에게 구박을 받고 삽니다. 이 마을의 유일한 빌런은 덕배입니다.
어린 딸이 앓다고 죽어도 한 번 찾아오지 않았던 인물이고 배를 타고 나가서 바람을 피울 정도로 아주 악질 중의 악질입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덕배의 상여를 반대한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닙니다. 이 마을에 몰아친 이념 전쟁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멍석말이를 당한 덕배가 마을에서 쫓겨나면서 덕배가 마을 사람들에게 행한 행동 때문입니다. 스포라서 말하지 않겠지만 보면서 또 흔한 뻔한 이념 전쟁 이야기인가 했네요. 지금은 더 먹히지 않겠지만 1993년 당시만 해도 6.25 전쟁이 먼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련 선생님이 6.25 참전 용사셨고 여러 집안에서 6.25 전쟁 피해를 그대로 간직한 채 사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때는 전쟁 위험이 크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는 어쩌고 저쩌고 해도 뒤로는 남북이 화해하고 손을 잡는 화해무드가 꽤 활발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핵전쟁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 죽기 전에 남북통일이 되겠지 했는데 아닙니다. 이제는 남북한은 평생 영원히 통일이 될 수 없는 확고한 생각이 들 정도로 갈라졌습니다. 불가역적인 상태가 되었죠. 이런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50년대 인민재판과 양민학살은 북한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남한도 아주 열심히 했죠.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후반에 인민 재판 장면은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상과 다른 진행에 아~~~ 장탄식이 나옵니다. 1993년 영화를 2025년 1월에 보면서 현재를 돌아보게 되네요. 여전히 닥치고 빨갱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참 많은 나라입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영상미가 참 좋은 그 섬에 가고 싶다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 안 할 수 없습니다. 어린 딸이 죽자 초가 지붕에 올라서 소리를 지르던 최형인 배우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기이하면서도 아름답고 또는 서글픈 모습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네요. 평생 병으로 고생한 딸이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길 기원하는 모습 뒤로 붉고 아름다운 노을이 흐르는 장면은 아름답고 서러웠습니다.
역시 유영길 촬영감독입니다. 왜 유영길 촬영감독이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 감독인지 알게 하는 장면은 꽤 많습니다. 영화 초반 상여를 실은 배가 구슬픈 비를 맞으면서 마을 해안가 입구에 있는 장면은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배는 출렁거리지 카메라는 좀 큽니까. 당시는 필름 카메라였잖아요. 그래서 여러 번 촬영했어야 했고 보통 마을 해안가와 장면과 배를 따로 촬영하기도 하죠. 그런데 하늘의 싱크가 꽤 잘 맞습니다.
이외에도 벌떡녀와 땜쟁이가 그네를 타는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같이 그네를 타면서 촬영을 합니다. 이런 것이 영화적인 마술이죠. 이건 어떻게 촬영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장면도 많고 무엇보다 영화 촬영지인 보길도, 자개도, 완도라는 아름다운 섬의 풍경이 아주 아름답게 담깁니다.
그리고 다시 배우들을 칭송하자면 문성근 배우와 안성기 배우야 당대도 연기 잘하는 가장 인기 있는 배우였지만 안성기 배우는 정말 다양한 역할을 참 잘하는 배우라고 느껴질 정도였네요. 그리고 칭찬해야 할 배우가 심혜진입니다. 1992년 한국 최초의 기획 영화인 <결혼 이야기>로 청춘스타가 되었는데도 이런 출연하기 껄끄러운 배역을 아주 잘 소화합니다.
심혜진 배우는 가장 먼저 섬에 녹아들기 위해서 옥님이가 입고 다니는 한복을 입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고 하죠. 이런 기본이 된 배우이니 이후에 잘 안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안소영 배우도 애마부인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인데 이런 문예 영화에 출연한 것도 흥미롭고 연기 엄청 잘합니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참 대단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자극적인 장면이 많지 않고 오래된 이야기를 또 꺼내냐면서 지루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20,30대 들에게는 추천하지 않고 나이와 경험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돌아보면 20대 때 본 <박하사탕>은 볼 때는 별 느낌 없이 봤다가 30대 후반이 되어서 봤을 때 엄청난 충격에 휩싸여서 봤거든요. 역사적 배경과 나이 들면서 몸에 쌓인 경험의 나이테가 영화를 발화하고 발아하게 합니다.
그래서 영화보기 딱 좋은 나이가 40,50대가 아닐까 합니다. 요즘 솔직히 볼만한 영화가 없고 개봉작도 거의 없습니다. 오늘도 개봉작들이 가득해야 할 1월 초인데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안 볼 생각입니다. 이럴 때 추천하는 것이 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영화 채널 '고전 영화'입니다. 고전영화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명작 한국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1주일 전에 오픈했는데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4K로 복원했는데 영화 중간에 오디오가 좀 끊기는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도 어딘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왜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제목이냐면 그 섬은 우리가 닿지 못하는 이념의 반목이 없는 6.25 전쟁 이전의 섬을 말합니다. 이제는 과거의 섬이 되어 버렸네요.
한민족이 모두 멸망하지 않는 한 평생 빨갱이 외치면서 살 나라가 되었네요. 이런 건 안 지긋지긋하나 봅니다. 나이 든 분들이 돌아가시면 사라진다고요? 요즘 20,30대 보세요. 빨갱이 뜻도 모르면서 말끝마다 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걸 보면 그냥 이념전쟁이 나라의 기조가 된 나라가 되었네요.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빛이 나네요. 옥림이 말처럼 이념 없는 하늘나라에서 별이 되어서 어깨춤을 함께 출 겁니다.
별점 : ★ ★ ★☆
40자 평 : 이제는 절대 갈 수 없는 이념 전쟁이 없던 그시절 순박하던 우리들의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