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 꽤 커서 안 가 본 곳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날 좋은 날 걸어서 여러 동네를 돌아다녀보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중순에 남산 및 해방촌을 둘러보고 갈월동 지하차도를 넘었습니다.
친일파가 세운 고등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 효창공원에 참배하러 가다
효창공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제 고등학교 생각이 나네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친일파가 세운 고등학교입니다. 학교명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이 블로그에 두 설립자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적시했다고 해외에 있는 동문들까지 와서 협박과 비난을 엄청나게 하더라고요. 그런다고 친일을 한 것이 사라집니까? 과거가 바뀝니까? 친일을 했으니까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갔죠.
그런데 불경스럽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친일파입니까? 그 학교 나온 학생들이 친일파입니까? 그냥 친일파가 세운 학교라는 말 한마디에 엄청난 비난이 날아오더라고요. 어떤 분은 동문회 나오면 가만 안 두겠다고 하시던데 동문회 관심도 없고 나갈 생각도 없고 앞으로도 안 갑니다. 오히려 그런 동문들이 있다는 자체가 창피스럽네요.
전 친일파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일을 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있고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일이 어때서라고 떵떵거리면서 사는 사람도 있죠. 고등학교 설립자는 친일파는 맞습니다. 일본 장교 출신이니까요. 다만 그 이후의 행동이 다른 친일파와 다릅니다. 6.25 전쟁을 훌륭하게 잘 치르셨고 4.19 혁명 전에 3월 학생 시위를 주도하셨습니다.
또한 친일 행동을 부끄러워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행동 중 하나가 매년 봄에 학생들에게 효창공원에 가서 참배하는 것이었죠. 그런 분입니다. 친일을 했지만 부끄러워했고 독립운동가들을 참배하는 관습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친일파인 설립자에 대한 반감은 없습니다. 오히려 동문들에게 있을 뿐이죠. 한국 사회가 그렇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을 하고 반성을 하면 되는데 끝까지 변명을 합니다. "세상이 변할줄 몰랐으니까", "친일이 어때서" 식으로 말합니다.
뉴라이트 놈들 보세요. 아주 악질들입니다. 이런 인간들이 대한민국의 보훈과 역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효창공원 간 기억이 희미합니다. 간 것 같기도 하고 안 간 것 같기도 하고요. 비가와서 안 갔나 제가 나름 기억력이 좋은데 효창공원 간 기억이 없습니다. 다른 반 아이들은 간 걸 기억하는 걸 보면 그때 다른 곳으로 갔었던 것 같습니다. 효창공원과 남산 밑 안중근 박물관으로 찢어져서 갔는데 아마 전 안중근 박물관을 갔던 것 같네요.
칠궁 덕안궁에 모셔져 있는 엄귀비
용산에는 숙대가 있죠. 숙대도 가본 적이 없네요. 뭐 대학교가 다 거기서 거기같지만 그 학교 안에 대자보를 읽다 보면 학풍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뭐에 관심 있는지도 알 수 있고요. 그래서 가끔 대학교 앞을 지나가면 들어가 봅니다.
순헌황귀비길이라고 적혀 있네요.
이분 기억나요. 순헌황귀비라고 해서 누군가 했네요. 이분은 청와대 왼쪽에 있는 칠궁 중에 덕안궁에 위패가 모셔져 있는 분입니다. 조선 칠궁은 왕을 낳았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 7명의 신위가 모셔진 사당입니다. 7명 중에는 장희빈도 있습니다.
덕안궁은 고종의 후궁인 엄귀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분이 낳은 아들이 영친왕입니다. 엄귀비는 5살에 궁궐 나인이 되었다가 임오군란 당시 민비가 빤스런을 한 사이에 고종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핍니다. 이에 고종은 지밀상궁으로 격상시킵니다. 그렇게 나인이 엄상궁이 됩니다. 엄상궁은 사진으로도 남아 있는데 못생겼습니다. 그런데 민비가 이 엄상궁을 엄청나게 구박하고 질투했고 결국 궁에서 나가게 합니다.
드라마 명성왕후가 역사를 왜곡했지 민비 자체는 악녀에 가까운 여자입니다. 비록 일본 자객에 죽은 서사와 이미연이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대사 하나로 지금도 뮤지컬 '명성왕후'가 울려퍼지고 있죠. 나라 말아먹은 여자가 민비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지금도 비슷한 꼬라지네요. 그렇게 민비가 을미사변으로 죽자 고종은 아내가 죽은 지 5일 후에 엄상궁을 다시 옆에 둡니다.
엄상궁은 꽤 성품이 좋았는지 숙명여대를 만들기도 하고 아관파천을 주도하기도 합니다. 고종과 순종을 자신의 가마에 태워서 몰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킵니다. 이런 게 참 재미있어요. 제가 요즘 푹 빠진 분야는 역사입니다. 역사는 참 재미있어요. 그리고 그 역사에서 참 많이 배웁니다. 지금 한국 돌아가는 꼬라지가 딱 구한말 같네요. 뭐 항상 위기가 오면 구한말 같다고 하듯이요.
숙명여대를 지나서
효창공원에 도착했습니다.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만든 일제
효창공원은 효창원이었습니다. 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와 생모인 의빈 성씨가 사망한 후 그 묘소를 여기 효창원에 만듭니다. 비교적 고궁에서 가까운 곳이죠. 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소나무가 울창한 효창원에 아들과 아내를 묻습니다. 효성과 번성의 뜻을 가진 효창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나 청일전쟁 당시 인적 드문 여기에 일본군이 주둔합니다. 조선 왕실 묘역을 군이 주둔하는 자체가 무척 불경스럽죠. 그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자 매춘을 하는 유곽도 여기에 세웁니다. 이 용산이라는 동네는 몽골군, 왜군 그리고 현재는 미군 같은 군기지가 있었던 곳으로 용산이 군사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일부 미군 기지가 있죠. 용산은 지리적으로 4대 고궁 근처이고 평지가 많아서 군사 주둔지로 참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여기에 한강도 근처라서 큰 배가 들어올 수 있어서 역사적으로 군 주둔지가 많았습니다.
1924년 일제는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바꿉니다. 이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꾸듯이 바꿉니다. 그리고 효창공원은 독립투사와 임시정부 요인과 백범 김구의 묘가 있는 독립 역사를 기리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효창운동장이 있고 삼의자 모역, 백범 김구 묘역 등등 온통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나 근처 사는 주민들에게는 큰 근린공원으로 활용됩니다. 뭐 여기 백범 김구 묘를 보러 오거나 기념관을 들리기 위해서 오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다만 학생들이 단체로 방문하는 것이 대부분이겠죠.
원효대사상이 있네요. 남산밑에도 순국선열 동상이 참 많고 유관순 열사 동상도 거기에 있습니다. 삼일운동 기념탑도 거기에 있고요. 그리고 여기도 조금은 있네요.
수많은 순국선열의 동상은 1969년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지는데 박정희 정권이 만든 것은 아니고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라는 민간단체에서 만든 동상입니다. 당시 성금을 모아서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은 동산 및 숲이 있네요. 전형적인 근린공원인데 꽤 규모가 있어서 한바퀴 도는 산책로도 있습니다.
정조의 큰아들은 5살에 돌아가셨네요. 한창 귀여울 나이인데요. 문효세자의 무덤은 1944년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겨졌으며 이 문효세자 묘소 자리에 독립 선열인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삼의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공원은 아주 잘관리되어 있고 숲과 공원이 공존하는 느낌입니다. 여기가 숲이 있고 경치가 좋고 한강도 보여서 풍수지리로는 딱 좋은 위치이긴 하네요.
북한반공투사 위령탑도 있네요.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막혀 있더라고요.
이곳이 바로 백범 김구의 묘소입니다.
작은 정자 옆에는 책들이 놓여 있는데 활용도가 낮은데 저런 걸 많이 만들더라고요. 책도 다 오래된 책입니다. 이 책들이 도서관에서 폐기하려는 책을 여기에 놓는 것 같더라고요.
백범 김구의 묘소 앞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문지기 역할을 하는 느낌입니다.
여기가 입구입니다.
단촐합니다. 꾸밈이 많지 않고요. 그래도 규모는 큽니다. 저 앞에 까지 갈 수 있습니다. 제단이 있습니다.
병풍 같은 소나무들이 가득하네요. 뒤늦게나마 여기를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효창공원이 왜 여기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게 다 이승만 대통령의 질투심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승만은 김구 선생님을 정적으로 여겼습니다. 아주 싫어했죠. 그래서 백범 김구 묘소 근처에 1956년 육군 공병대대를 불러서 효창운동장을 만듭니다. 친일파를 색출하는 반민특위를 박살 낸 것도 이승만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악질 대통령이 이승만으로 심지어 현 윤석열보다 악질입니다. 조선에 선조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있습니다.
한국 역사를 들여다 보고 공부하면 얼마나 무능하고 악질적인 행동을 많이 했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물론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였지만 문제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 행동들이 문제입니다. 효창운동장은 원래 종합운동장으로 지으려고 했지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반대를 해서 그나마 규모가 축소되어서 종합운동장은 되지 못합니다.
참 못난 대통령입니다.
효창공원 백범 묘지에 참배자들이 늘자 민심이 자꾸 현 대통령이 아닌 돌아가신 백범에게 쏠리자 효창운동장을 만들었다고 하죠.
그러나 역사는 백범에게 향했고 여기에 백범 기념관이 만들어집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은 꽤 웅장하고 규모가 큰 기념관입니다. 그런데 이 기념관 누가 어떤 대통령 때 만들었을까요? 바로 김대중 대통령시절 지어지기 시작해서 2002년 완공합니다. 올 연말까지 보수 공사를 한다고 하네요.
안에 들어갔다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진으로 담아왔는데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친일정권 2024년 윤석열 정부
많은 것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국가 전체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드는 생각은 다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IT 전시회에서 최신 첨단 기술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들어보고 물어보면 연구를 하는 중인데 연구비가 끊겨서 더 연구를 못하고 있다는 소리를 수시로 듣고 있습니다.
여기에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친일은 금기시된 단어였는데 2024년 윤석열 정권은 대놓고 친일을 하고 보훈부가 친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광복회장과 각을 세우고 있고 일본에 대한 비난을 하지도 못합니다.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 블로그에서 정치 이야기 끊은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해봐야 세상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악플이나 달리고 내 만족이라서 안 쓰고 앞으로도 안 쓸 생각이지만 이렇게 한 번은 쓰고 가야겠습니다. 내 평생 이런 무능한 정권은 처음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견뎠지만 이 무능하고 무식한 정권은 견딜수가 없네요. 마치 고종과 민비의 시대 갔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이승만 정권 같기도 합니다. 자신의 정적이고 대통령인 이승만 보다 죽은 백범 김구 묘소에 참배객이 많다면서 질투심에 효창운동장 만들어서 운동장 주변에서 노상방뇨하고 술 쳐 먹고 노는 꼬라지를 만든 이승만 정권까지 오버랩되네요.
뭐 지금은 동네 운동장으로 전락했고 이북5도 체육대회나 치르는 경기장이지만 참 불경스러운 운동장이 효창운동장이네요. 마치 일제가 창경궁에 동물 집어넣어서 창경원으로 만든 것을 벤치마킹한 이승만 같네요. 국부? 웃기는 소리죠. 대한민국을 제대로 한 번 말아 드신 이승만 정권이고 이제는 그 바통을 윤석열 정권이 받아서 달리고 있네요.
사람이 발전을 안 하니 역사도 발전을 안 하고 한국인들이 과연 발전하는 나라의 국민성을 가졌나 하는 의심이 드는 요즘입니다. 요즘 분위기가 오히려 90년대보다 못하다면 말 다했죠. 적어도 90년대는 염치라도 있었던 시대였는데요. 지금은 염치가 사라진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