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한 때 참 좋아하고 사랑했습니다. 영화가 2분짜리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예술은 10초 만으로 날 사로잡는 매혹적인 세상이었죠. 그러나 점점 예술에 대한 회의감과 봐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네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 세상이 너무나도 복잡해졌다는 겁니다.
그 변화의 속도를 예술이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도 들고 세상은 이렇게 시끄러운데 세상 시끄러움을 담지 않고 모습에 예전만큼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네요. 그냥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지네요. 그럼에도 가끔 정말 가끔 세상을 잘 반영하고 투영하는 놀라운 작품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그게 참 공감이 안 가네요. 그래서 요즘 시각 예술 전시회를 잘 안 가게 되네요. 가봐야 뻔하겠지라는 생각만 먼저 듭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전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
서울시립미술관에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최근에 하는 전시회들이 특별히 눈낄을 끌지 못했는데 이번 전시회는 볼만할 것 같아서 찾아가 봤습니다.
전시명 :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
전시기간 : 2024년 8월 22일 ~ 2024년 11월 17일
입장료 : 없음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전시 장르 :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전으로 회화, 사진, 드로잉, 조각, 뉴미디어 등등
미술관은 미술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오히려 사들이는 곳입니다. 그렇게 시민 세금, 국민 세금으로 현재 가장 유의미한 작품을 돈 주고 삽니다. 그래서 그걸 수장고에 넣어놓았다가 가끔 이런 소장품 전시회를 통해서 꺼내서 보여줍니다. 작품은 봐야 의미가 있지 아무도 안 보고 혼자 본다면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수장고에 들어간 작품들은 오히려 봉인시켜 놓고 우리는 그걸 사진으로 보고 있을 때가 많죠. 그렇다고 수장고를 열어서 보여줄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이런 소장 작품 전시회를 수시로 합니다. 소장 작품 전시회는 다양한 소장품이 나오는데 아무것이나 꺼내지 않고 주제를 만들어 놓고 그에 맞는 작품을 꺼내 놓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라는 전시명을 보듯 다층적으로 변하고 복잡해지는 세상을 투영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입구에는 진실의 입을 오마쥬한 작품이 보이네요.
전시회는 8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꽤 길게 합니다.
작품들은 꽤 다양하고 흥미로운 작품도 있고 별로인 작품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대중들에게는 흔한 이미지를 사용하는 팝아트 적인 작품들이 좋죠.
서울시립미술관은 SeMA라고 합니다. 영문 약자인데 뉴욕 MoMA를 따라한 듯하네요. 그럼 소장품들을 보면 50년대까지는 65점이고 60~90년대는 2795점이고 2000년 이후 23년 지난 지금은 3204점으로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그만큼 작품의 양이 늘었고 예술가도 크게 늘었네요. 작가는 남성 작가가 66.6%로 여성 작가의 2배네요.
매체별로 보면 회화가 35.3%로 예상대로 가장 높네요. 지금도 다시 회화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회화는 시각 예술의 근본이죠. 사진이 2010년 대 전후로 카메라의 보급으로 국민 취미와 국민 미술이 되었다가 지금은 전성기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고 있네요. 요즘 사진전 거의 다 사라졌거든요.
전시는 1층과 2층 일부에서 전시를 하는데 실로 다양한 전시품이 가득했습니다.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 가상과 현실, AI와 신체 등 다양한 기술과 사회의 변화를 아우르는 전시회고 과거와 현재까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딱 봐도 인위적이죠. 전 이런 인위적인 작품들을 보면 일부러 인위성을 만드는 그 노골성이 좋더라고요. 람한 작가는 포토샵을 이용해서 디지털 페인팅을 하는 작가입니다. 인위적이라는 건 인간의 손길이 가득 들어갔고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소리이기도 하잖아요. 인간이 하는 일 중에 자연스러운 것이 몇 개나 있겠어요. 다 자연을 이기려고 하는 기술 종족인데요.
전기 공간은 거대하고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몇 개 보였습니다.
이 김을 작가는 OCI 미술관에서 봤던 작가인데 드로잉과 조각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입니다. 형식이 주는 메시지가 강렬합니다. 그림 같지만 가까이 가면 조각 같이 느껴집니다.
새알도 그림이 아닌 3D입니다.
한운성 작가는 1970년대 미국 팝아트와 포토 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팝아트의 강렬한 색상과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안 가는 강력한 세밀성으로 눈길을 확 끄네요. 잘 익은 사과 같은데 비싼 사과네요. 실제 사과도 비싼 한국이고요. 뭔 놈의 나라가 배추 1 포기에 1만 원이나 하는 나라가 되었네요.
아니 과거에는 폭염 폭우 없었나요? 그래도 채소 과일이 비싸다고 못 느꼈는데요.
한국화도 있었습니다. 한국화하면 수묵담채화만 떠올리는데 사찰의 탱화도 한국화죠. 강렬한 채색이 인상 깊네요. 이 작품은 1970년대 작품입니다. 한국의 전통 양식과 토속적이고 무속적인 소재를 많이 사용했네요.
한국을 대표하는 팝 아트 작가가 손동현입니다. 한국에 팝 아트가 유행하던 것이 2010년대 초중반이었고 이 흐름을 주도한 건 '낸시 랭'이었습니다. 미국에서 70년대 유행하던 팝아트를 30년이 지나서 유행했네요. 지금이냐 지구가 하나의 시간대로 흐르지만 과거에는 문화가 아주 느리게 흘렀습니다. 접촉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라고 할 정도로 해외와 접촉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팬데믹도 없고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에게까지 전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에 영향받고 공유하고 있네요. 마이클 잭슨을 조선의 초상화로 재현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신승백, 김용훈 작가의 넌페이셜 포트레이트 입니다. 시각 예술을 담당하는 신승백 작가와 컴퓨터 공학 분야를 전공한 김용훈으로 구성된 아티스트 그룹이 만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카메라 앱을 실행하면 얼굴을 자동으로 검출하죠. 이 얼굴 인식 검출 기술은 고도화되어서 이제는 오류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 얼굴인지 아닌지 대번에 판단합니다. 작가는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다 얼굴 검출 기능이 있는 카메라가 녹색 띠로 두르면 작가는 얼굴 인식을 못하게 흐릿하거나 변형을 시킵니다. 조금이라도 사람 얼굴이라고 인식하면 안 되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얼굴이지만 얼굴이 아닌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그 결과가 이겁니다. 사람 같지만 카메라 앱으로 촬영하면 얼굴로 인식 안 합니다. 지금 제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봤는데 안 됩니다. 흥미롭네요. 저게에 눈동자 2개만 찍어도 얼굴로 인식 할 겁니다.
이 작품을 오래 본 이유는 사람은 저걸 사람 얼굴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기계나 기술은 인식 못합니다.
이 간극이 생각보다 꽤 큽니다. AI 시대에 모든 것이 인간을 대체할 것 같지만 아직까지 인간의 추론 능력을 AI가 따라오지는 못합니다. 물론 언젠가는 뛰어남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홍영인 작가의 작품은 큰 그림 같지만 자수로 만든 작품이네요. 자수도 그림의 도구이기도 하죠. 저임금 노종자나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초상으로 담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 했는데 익명의 여성 노동자들이네요. 이렇게 담으니 무슨 여성 영웅들처럼 보입니다.
유명한 작가님이죠. 이불.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서 전위적인 작업을 많이 하던 분입니다. 에너지가 넘치고 강력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요즘 작가들은 이런 강력한 작품들이 안 보이고 블링블링한 것들이 많아요. 시대를 흔들고 비판하는 작품들이 점점 옅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를 안 보고 자기 안을 탐사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게 공감을 가지게 하면 좋은데 공감 못하면 그냥 당신 이야기로 끝나요.
여성의 몸에 천착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이순종 작가의 '내 나니 여자라'라는 작품입니다. 이게 뭔 소리인가 했는데 이 유엔안보리 같은 회의테이블에 여성이 없다는 걸 주목했습니다. 작가분이 세상의 여자가 반인데 저 중요한 테이블에 여자가 적다는 걸 지적하고 있네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여자도 좀 보입니다. 여성의 부재가 아닌 여성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은 걸 담은 듯합니다. 그리고 여성성인 포용을 침에 담았습니다. 침은 따끔하지만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천경우 작가의 라이트 그래피티 작품입니다.
빛이 나는 펜으로 허공에 글씨를 쓴 라이트 캘리그래피입니다. 그런데 저거 다시 재현도 못하고 무슨 글씨인지도 모르겠어요. 작가의 얼굴도 흐릿하네요. 작가 본인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외에도 70~80년대 개념 미술의 작품들도 좀 보이고
대형 미디어 작품도 있었습니다. 연습곡 공연의 준비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는데 악기 소리를 직접 입으로 재현합니다.
기초과학원과 함께한 프로그램도 있는데 전 이 도표가 눈길을 끄네요. 2004년 웹2.0 시대의 시작. 당시 웹2.0 노래가 많았죠. 그게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요. 2005년 유튜브 시작. 2007년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 시작 아이폰 2007년. 이러고 보니 2007년은 정말 큰 전환점이 된 해이긴 해요.
2010년에 인스타그램이 출시되고 2015년 오픈 AI가 설립되었군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작품도 있고
한지형 작가의 이 작품은 마치 SF 소설이나 영화나 게임 속 한 장면 같습니다. 마치 스타워즈의 한 장면 같기도 하네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 공간적 서사를 부여한 작품이라고 하네요.
전체적으로 볼만한 작품은 일부였지만 그럼에도 오랜만에 예술 나들이 하니 몇 몇 작품을 통해서 기분 전환이 되네요. 이 복잡한 세상 예술은 과연 그 복잡함을 한 장의 그림으로 잘 담을 수 있고 몇 분짜리 영상으로 잘 담고 있을까요? 예술가들에게 묻고 싶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