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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나를 영화 마니아로 이끌어준 FM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by 썬도그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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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라는 블로그 명을 지니고 있지만 사진에 대한 애정은 예전만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좋아하는 건 잘하는 것과 달리 변덕이 심해서 길고 오래가져가지 못하네요. 그러나 이 취미는 아직도 그 애정이 식지 않네요. 아니 좀 식긴 했습니다. '문화가 있는 날'에는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꼭 1편 이상을 보곤 했는데 이번주는 정말 볼만한 영화가 하나도 없어서 안 봤습니다. 이런 날이 꽤 자주 일어나고 있네요.

 

이런 영화 궁핍기에는 흘러간 영화, 옛 영화들을 다시보곤 합니다. 우리가 최신에만 매몰되어서 그렇지 오래된 영화 중에 좋은 영화들도 참 많습니다.

나를 영화의 세계로 이끌었던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FM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

라디오가 좋은 점은 TV보다 친숙하다는 점과 다른 일을 하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운전을 하거나 길을 걸으면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죠. 그럼에도 좋아하는 DJ의 멘트가 나올 때는 집중해서 듣습니다. 지금도 매일 라디오를 끼고 사는 저에게 있어 라디오는 TV보다 유튜브보다 더 좋습니다. 

 

라디오를 켜 놓고 블로그 글을 쓰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네요. 
이 라디오의 매력을 저에게 알려준 DJ가 좀 있는데 이중 한 명이 정은임 아나운서였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아는 분이라면 최소 40대 이상일 겁니다. 한 번도 방송을 들어보지 않았던 분들도 이 이름을 기억하는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고 입에서 많이 회자되니까요. 

 

고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중간, 기말고사 끝나고 영화 보는 것이 낙이었던 시절부터 영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목마름을 채워주는 것은 영화 잡지 밖에 없었죠. 친구는 스크린을 사고 전 로드쇼를 사서 돌려보곤 했었습니다. 이런 영화에 대한 목마름을 적셔준 라디오가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입니다. 

 

'MBC의 FM 영화음악'은 역사가 꽤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잠시 잠깐 중단되었다가 지금도 김세윤 작가가 새벽 2시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들었을 때는 조일수 아나운서가 진행했었는데 그때 방송 거의 기억 안 납니다. 그러다 1992년 11월 2일 나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이웃집 누나 같은 정은임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조일수 아나운서는 50년대 생이라서 엄마 느낌이었다면 정은임 아나운서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MBC에 입사한 누나 같았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입사 후에  첫 라디오 진행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들었습니다. 매일 술에 쩔어 살던 대학 1학년 생이라서 매일 듣지는 못했지만 주말이나 특히 방학 때 집중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는 저를 사로잡은 마력의 라디오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은임 아나운서 목소리와 영화에 대한 깊은 지식입니다. 요즘도 SBS, CBS, MBC 등등 많은 라디오 채널에서 영화음악 방송을 틀고 있지만 DJ들의 지식수준이 너무 낮아서 좀 듣다 만 방송이 많습니다. MBC는 김세윤 작가라서 영화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아나운서와 배우들이 진행하는 영화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지식이 너무 낮거나 개봉영화 홍보 창구로 전락한 영화음악 라디오는 거의 듣지 않습니다. 

 

최광희 영화평론가가 매불쇼의 '시네마 지옥'에서 한 여배우 DJ는 질문하고 손톱 정리하고 있다고 비난을 한 것처럼 라디오를 길고 오래 청취하게 하려면 라디오 DJ의 자질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DJ가 라디오에 대한 애정이 없는데 청취자가 애정을 줄리가 없죠. 

 

정은임 아나운서는 달랐습니다. 한 유명 패널은 다른 라디오 DJ와 달리 질문을 하고 패널의 말을 경청하고 깊이 있는 되물음을 하던 그  진실된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하네요. 라디오 직접 들어보시면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정은임 아나운서가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했는지를요. 그리고 목소리가 매혹적이었습니다. 마치 공부 잘하는 이웃집 누나의 목소리라고 할까? 지적인 정은임 아나운서 목소리 매력은 녹이 슬지 않네요. 

 

정은임 FM 영화음악 월드 

FM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

1992년 11월 시작해서 1995년 4월 1일까지 약 2년 반 정도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를 진행했습니다. 이 때 정말 좋은 패널들이 많이 참여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패널은 정성일 영화 평론가와 박찬욱 감독입니다. 정성일 영화 평론가 때문에 시네필이 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어찌나 영화를 맛깔스럽게 설명하는지 그 영화를 꼭 보고 싶게 만듭니다. 지금 들어보면 너무 교조적이라서 거북스러울 수 있지만 당시는 정성일 키즈가 참 많았습니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그 밑바탕이자 시작점은 90년대 중반부터 터져 나온 감독들 덕분입니다. 봉준호,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이창동 감독의 데뷔 시기가 다 비슷한 90년대 후반 또는 2000년대 초반입니다. 이 시기에 세계적인 한국 감독이 터져 나온 이유는 영화계의 세대교체가 시작되던 시기가 90년대 초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이 사라지고 김영삼 문민정부가 시작되자 수 많은 억압된 것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중 영화도 하나였습니다. 창작의 자유가 커지기 시작하고 한국에서 오렌지족이 생길 정도로 물질적 풍요가 높아지자 창작자들이 해외 문화를 쉽게 접하고 함께 모여서 토론하면서 영화계에 새로운 세대들이 탄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영화 세대들은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와 '씨네21', '키노' 등으로 영화 정보를 섭취하고 '으뜸과 버금', '영화마을' 같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흘러간 명작 영화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마치 영화의 뚝이 터진 것처럼 전 세계 명작 영화들을 집에서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이 90년대 초는 독특한 풍경도 꽤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예술 영화의 광풍이었습니다. 

FM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이 흥행 1위를 기록하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이 영화는 기존 흥행 영화와 궤가 다른 아트하우스 영화로 예술적인 가치가 높지 재미 자체는 높지 않았습니다만 이런 영화가 흥행 1위를 하고 러시아 영화 '노스탤지어', '희생'이 뒤늦게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하는 등 예술 영화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높고 많았습니다.

 

이 예술 영화 광풍에 한 역할을 한 라디오가 'FM 영화음악'이었습니다. 특히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 소개 코너는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여기에 박찬욱 감독이 영화 입봉작인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쫄딱 망했을 때 2주마다 한 번씩 박찬욱 감독이 직접 원고를 써서 진행하는 영화 코너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궁핍하던 시절 정은임 아나운서의 영화음악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20주기 기념에도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를 했고 그런 이유로 '이주연의 영화음악'에도 신작을 개봉하면 새벽 2시에 방송하는 라디오임에도 꼬박꼬박 출연을 했습니다. 

 

사회적 이슈에도 외면하지 않았죠. 70년대 초반 생들은 60년대 후반생들과 다른 점이 좀 있습니다. 69년생인 정은임 아나운서는 운동권 대학생의 느낌이 꽤 있었죠. 지금은 꼰대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80년대 후반 운동권 학생들을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그 선배들이 있었기에 전두환이 노태우가 항복을 해서 민주주의가 성립이 된 거지 저항 안 했어봐요. 그냥 전두환 같은 사람들에게 끌려 다녔을 겁니다. 

 

뭐 지금 대통령이나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그냥 뭐 수시로 독재를 그리워하는 국민이 많구나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함부로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못하는 것이 386 운동권입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그런 운동권 느낌이었습니다. 직접 시위를 했다는 건 아니고 불의에 항거하는 투사 같은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학 시위도 71,72년생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문민정부 들어서자 시위가 크게 줄었거든요. 

 

이런 투사의 느낌이 가득 담긴 방송이 정은임 2기인 전설이 된 2003년 10월 22일 방송에 담깁니다. 다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100일 동안 시위를 하다 세상을 떠난 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시사 라디오가 아닌 교양 라디오에서 시국 관련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터부시 되었는데 과감하게 했습니다. 돌아보면 2003년이 2024년보다 더 자유로운 시기였죠. 그럼에도 라디오 DJ 입에서 시위하다 떠난 분을 기억하는 내용은 역시! 정은임 아나운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깊이 있는 영화 지식과 패널에게 코너를 맡기고 딴 생각을 하는 DJ가 아닌 패널도 놀랄 정도로 깊이 있는 영화 지식에서 나오는 송곳과 같은 질문 속에서 패널들을 긴장하게 했습니다. 수많은 영화 음악 DJ를 만났지만 정은임 아나운서 같은 깊은 영화 지식을 갖춘 분도 못 봤고 배우려는 자세도 못 봤습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이주연 아나운서였습니다. 

FM 영화음악을 파괴했던 MBC

FM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

좀 괘씸하긴 합니다. 정은임 아나운서의 FM 영화음악의 명맥을 깨 부슨 것이 MBC였으니까요. 
CBS 라디오가 청취율 1위를 하는 이유는 연륜이 묻어나오는 뛰어난 라디오 DJ들이 1년이 아닌 10년 이상씩 꾸준히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라디오 진행자 자체의 뛰어난 매력이 있고 그 매력에 빠지는 사람들이 꾸준히 들으니 청취율 1위를 꾸준히 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할 겁니다. 

 

반면 MBC 라디오는 망했습니다. 오래된 장수 라디오 DJ는 죄다 삭제하고 프로그램 자체를 날렸습니다. FM 영화음악은 80년대부터 2018년까지 전통적으로 아나운서들이 진행했습니다. 조일수, 정은임, 최윤영 그리고 이주연 아나운서까지 무려 30년 넘게 아나운서들이 진행하던 걸 여자 배우가 진행하면서 망가졌습니다. 배우들이 진행하면 안 되는 것이 배우들은 영화 촬영을 수시로 하잖아요. 그런데 라디오같이 매일 방송하는 걸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밀어붙이더니 지금은 새벽 2시 한직 같은 시간으로 날려 버립니다. 

 

이 괘씸한 MBC의 태도 때문에 MBC 라디오를 지금도 잘 듣지 않고 그나마 듣는 것이 퇴근길의 연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입니다. 같이 늙어간다는 것, 바른 어른이 있다는 걸 배철수 DJ로부터 많이 배우고 느낍니다. 

 

그럼에도 정은임 20주기를 챙긴 김세윤 작가와 MBC

FM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

정은임 아나운서는 2004년 8월 4일 사망합니다. 아직도 이 뉴스 기억납니다. 정은임 아나운서의 라디오를 모두 들은 건 아닙니다. 군대 입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듣지 못하게 되었고 다시 라디오로 돌아왔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다 라디오 진행하러 가다가 사고가 났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네요.

 

노량진역 9호선 지하철 공사를 하면서 임시로 만든 철판 도로 위를 달리다가 차가 전복이 되었고 운이 없게도 반대 차선으로 넘어간 차량을 스타렉스가 시속 80km로 충돌합니다. 그렇게 몇 개월 사경을 헤매다가 사망합니다. 크게 다쳤다는 소리에 잘 이겨낼 줄 알았는데 허망하게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습니다. 
올초에 얼핏 들었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20주기 행사를 할 예정이라고요. 김세윤 작가가 20주기인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던졌고 그 생각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으며 여러 감독님들이 선뜻 나서서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변영주 감독, 김태용 감독 그리고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로 유명한 김초희 감독까지 행사에 참여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7월 7일 부천에서 진행한 행사를 담은 라디오 방송이 총 3부작으로 진행됩니다.
MBC FM은 2024년 8월 2일 오후 6~8시까지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간에 정은임 아나운서와 함께한 방송인들의 당시 방송 증언이 담기고 2부는 AI 음성 기술로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재현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밤 11시에는 7월 7일 행사를 소개합니다. 

 

영화계가 점점 활력을 잃고 좋은 영화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 더 그리운 이름이 정은임 아나운서네요. 

 

정은임의 FM영화음악 팟캐스트

https://www.podbbang.com/channels/1813

 

정은임의 FM영화음악 팟캐스트

[정은임의 FM영화음악 팟캐스트]는 정은임 추모사업회(http://www.worldost.com)에 게재된 mp3를 다운받아 만들었습니다. 그 mp3들은 정은임 아나운서의 아버님께서 추모사업회에 전달한 카세트테이프를

www.podbbang.com

다행스럽게도 정은임 아나운서의 방송은 누군가가 꾸준히 녹음을 했고 그 녹음본이 팟빵에 올라와 있습니다. 들어보시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리고 기억하는지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추가 : 여름날의 재회 특집 방송을 보니 그 누군가는 정은임 아나운서의 아버지였고 이걸 열혈 팬이 MP3 파일로 변환해서 지금 우리가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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