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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대한 단소리

자영업자들은 망해도 교회는 망하지 않는구나.

by 썬도그 2008.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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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아닙니다. 종교를 믿고 다녔던것은  중학교때까지인데  기독교가 전부였습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성경책을 읽고 밑줄을 치지만 그게 믿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구 그냥 학교다니듯이 의무적으로 갔던것 같습니다.  교회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죠. 

그러다 한주 빠지고  두주 빠지고 거의 한달만에 찾아간 교회지만 다음부터는 꼭 나오라는 말뿐 이렇다할 얘기가 없더군요. 내 존재감이 없구나 생각도 들고  내가 없어도 교회는 잘돌아가고 내가 다녔던 유일한 이유인 교회 선생님이
제가 생각했던것 보다 큰 반응이 없어서  그 다음부터는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 교회를 안다니구  거의 20년 만에  그 교회에 찾아갔습니다.  제가 어렸을때 살던곳을 자전거를 타고 갔습니다. 요즘 자전거에 미쳐서 정말 미친듯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어렸을적 동네는 이미 아파트가 들어서서 추억
의 장소는 없었습니다.  산 중턱을 깍아서 세운  교회를 보고서 어린시절 추억이 생각나더군요.

고딕양식의 빨간벽돌로  제 어렸을당시에도  엄청난 규모와 크기와 놀랐던 교회입니다. 공터도 있어서 교회 끝나고는 짬뽕(테니스 손야구)도 했었습니다.  추억에 젖어서 이리저리 자전거를 끌고 다니고 있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동네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추억의 가게들은 다 사라지고  하물며 학교앞에 문방구도 예전에 있던 문방구는
하나도 없고 모든게 변했는데  교회는 변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요.

교회는 종교시설입니다.  하지만 교회도 돈이 있어야 운영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헌금이 절대적입니다.
십일조라는 것은 월급의 10분의 1을 내는데  10분의 1은 엄청난 액수입니다. 그런 십일조를 내니 교회들이
운영이 가능한듯 합니다. 모은 헌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자원봉사를 하는 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지역의 교회는 곶간과도 같아서  분배의 즐거움을 주는곳이었습니다.  돈 많이 버는 교인이 낸돈으로 주변의
어려운 사람  도움이 필요로 하는 분들을 돕습니다. 이게 불교가 하지 못하는 교회의 사회친화적이고  실천주의자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게 교인들이 일반인들보다  우러러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악한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교인들이 낸 헌금으로  주변사람들을 돕는게 아닌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는데 씁니다.  일부 악독한 이런 교회들이  세력을 더 키우기 시작했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하듯이
그런 거대한 성전을 가진 교회들이  기독교의 대변인인양 합니다.

지금 길거리에 나가서 교회믿으십시요라고 하면 싸다구 안맞으면 다행일정도로 민심은 반기독교정서가
팽배합니다.


몇일전 헬스로그 운영자이신 양깡님이 주신  천국의 하모니카란  책을 요즘 읽고 있는데  이런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소록도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한센병과 합병증으로  수술을해야 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하지만 수술을 하고 싶어도 극히 드물게 한센병 양성판정환자인 할아버지였죠.  그래서 가족들을 불러서
수술을 해도 괜찮은지 가족동의를 구합니다 그때 너무나 선하게 생긴 아드님이 지극정성으로 그 할아버지를
극진하게 보살폈다고 합니다. 대부분 가족들이 신경도 안쓰는게 한센병환자들인데 그 아드님은 너무나 지극정성
으로 보살펴서  이 젊은 의사분이 감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족동의를  구할려고 집에 전화를 해보니
이 아드님이 안받고 딸이 받더라는겁니다. 따님왈~~  자기 아버지이구 우리집에는 아들이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황당했죠.  그럼 내가 본 아드님은 누군가? 

사실을 알아봤더니 그 아들이라는 사람은 교회의 목사라고 하더군요. 몇달전에 소록도에 와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친절하게 해주고 아무말없이 굳은일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따님이 말하길
그 아들이라고 하는 사람이 할아버지에게 접근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짖게  1천만원만 헌금하라고 그렇게
붙어다니면서 말을 헀다는군요.   젊은 의사는 알아봤더니   일제시대때 우리나라 소록도와 대만의 섬 하나에
한센병환자를 집어넣고 갖은 고초를 격게한 일제의 만행을 일본이 인정하고 보상비를 주었다고 합니다.

한사람당 거의 5천만원에 가까운 돈을 지급했다고 하네요. (일본이 인도주의차원에서 준것은 아니고 재판에서 져서 준것이라고 하네요) 의사는 화가나기도 하고 울분도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기독교를 잘 알지도 못하며서
함부로 뭐라고 못하겠다고 글을 맺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이 정도 까지 파렴치한것이 기독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라는 사람이
일제시대때 고통의 댓가로 받은 보상금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자체가 사기꾼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불교계분들이 시청앞에서 모입니다.  불교를 화나게 만드는 나라가 되어버렸네요.

20년전 추억의 교회의 벤치에서 높은 교회의 첨탑을 올려다 보면서 이런 말을 혼자 했습니다.
세상이 다 변하고 망해도 너 만큼은  변하지 않는구나.  추억의 거리들이 다 갈려저서  깨진 사기조각처럼 흩어져있지만  교회 너 만큼은 깨지지 않고 오롯하게 서있구나.     너를 지탱하는게  다 헌금이겠지.
그 헌금 너 지탱하는데 쓰고 남으면 남들에게도 나눠주라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제가 다녔던 그 교회는 대형교회와는 다르게 덕망이 좋은 교회였습니다. 지금은 또 어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 좋은 추억거리 남을 돕는것이 왜 즐거운지 알게해준 교회에서 자전거 페달에 발을 올리고 힘차게 빠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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