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삐라를 주서본적이 있나요? 지금의 30대 40대 분들도 도심에서만 살았으면 주서본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전 한 30장 정도 주서본적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 그러니까 80년대 중반 학교에서는 삐라를 보여주면서 이런 거 주서서 학교 가져오면 연필을 준다고 했었거든요. 제가 삐라를 만나게 된 것은 동네 뒷산이었습니다.
해발 30미터도 안되는 뒷산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죠. 나무 위에서도 놀고 가을엔 마른풀을 뜯어다가 집도 만들기도 했구요. 그렇게 바람처럼 뒷산을 쏘다니다가 그날이 휴일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이상한 종이가 보이더군요. 읽어보니 북한이 어쩌고 김일성이 어쩌고 대번에 이건 전단이다라고 직감했죠
기독탈북인연합회
가 휴전선 근처에서 북으로 삐라를 보내는 것인데요. 이것은 사실 불법적인 행동입니다.
2004년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삐라를 서로 보내지 말자고 약속을 했는데 남한 민간단체가 막무가내로 마구 보내네요. 16번이나 북한이 항의 했다고 하는데 기독교단체이다 보니 그 고집과 아집은 정부도 꺾을 수 없나 봅니다.
뭐 하여튼 삐라를 들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보여주니 선생님이 놀라더군요.
그럴 수밖에요. 삐라를 보면 신고하라고 했지 20장을 가져온 저를 처음 봤겠지요.
또한 다른반에서도 웅성웅성소리가 들리더군요. 뭐 100장을 주운 친구 녀석이 일을 저질렀죠.(?)
학교는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구 100장을 주어온 친구에게 연필 100자루를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따라오라고 하더니 1층 계단 및 창고문을 열더니 먼지가 가득 쌓인 연필을 꺼내더군요. 20개를 다 줄 수는 없고 10개만 주더군요.제가 기분이 상한 표정을 지었더니 그냥 무시하고 가시더군요.
100장을 주어온 친구는 연필 30개와 공책 10개만 주었더군요.
같이 삐라를 주웠던 친구들은 모여서 이건 약속위반이다라고 분개했었죠.
그 이후에 삐라는 많이 주웠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갖다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번 보고 찢어 버리거나 예쁜삐라는 수집도 했고요. 그런데 삐라를 보면서 생각이 들었던 것은 북한이 잘산다보다는 참 조악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쇄술도 후줄근해 보이고 색이 맞지 않은 인쇄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우린 80년대에 사는데 북한은 60년대에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린 내가 이런 생각을 했을 정도니 내가 투철한 반공교육을 받은 것이거나 북한이 삐라로 남한민들을 포섭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착오 이 둘 중이겠죠.
그때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삐라를 많이 주서온 나에게 뭐 이런 놈이 다 있어~~~라는 표정이요. 그러길래 왜 주서오라고 해놓고 갖다 주니까 그런 표정을 짓는지 쩝
삐라 없는 세상 남북한이 더 가까워진 것일까요? 예전보단 많이 가까워졌는데 최근 들어 다시 80년대의 남북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보여주니 삐라가 맞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또래 아이들을 모두 불러서 삐라 수색에 들어갔습니다. 뒷산을 한 10명이 뒤지는데 여기저기서 보물을 발견하듯~~ 삐라다 외치는 소리에 경쟁이 붙었습니다. 많이 주슨 아이는 한 100장 저는 한 20장 그리고 나뭇가지에 걸린 이상한 풍선 같은 것이 보이더군요. 어른들이 그러더군요. 이 근처에서 삐라를 싣고 온 고무풍선이 뒷산에서 터진 것 같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