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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80년대에 주었던 삐라를 보고 북한은 60년대에 사는줄 알았다. 본문

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80년대에 주었던 삐라를 보고 북한은 60년대에 사는줄 알았다.

썬도그 2008. 6. 25. 13:30

혹시 삐라를 주서본적이 있나요?  지금의 30대 40대 분들도  도심에서만 살았으면 주서본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전 한 30장 정도 주서본적이 있었어요

어렸을때 그러니까 80년대 중반 학교에서는  삐라를 보여주면서 이런거 주서서 학교 가져오면 연필을 준다고 했었거든요.  제가 삐라를 만나게 된것은  동네 뒷산이었습니다.

해발 30미터도 안되는 뒷산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죠. 나무위에서도 놀고  가을엔 마른 풀을 뜯어다가
집도 만들기도 했구요.  그렇게  바람처럼 뒷산을 쏘다니다가 그날이 휴일이었던걸로 기억됩니다.
이상한 종이가 보이더군요. 읽어보니 북한이 어쩌고  김일성이 어쩌고 대번에  이건 삐라다라고 직감했죠

그리고 어른들에게 보여주니 삐라가 맞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또래 아이들을 모두 불러서 삐라 수색에
들어 갔습니다.  뒷산을 한 10명이 뒤지는데  여기저기서 보물을 발견하듯~~ 삐라다 외치는 소리에 경쟁이
붙었습니다. 많이 주슨 아이는 한 100장 저는 한 20장  그리고  나뭇가지에 걸린 이상한 풍선같은것이
보이더군요. 

어른들이 그러더군요. 이 근처에서  삐라를 싣고온 고무풍선이 뒷산에서  터진것 같다구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삐라는  원래 영어의 Bill에서 나온 말인데 일본으로 건너가면
영어발음이 엉망이 되죠  Bill에서 피라로 바뀐 말은
우리나라에 넘어오면서 삐라로 바뀝니다.

삐라는  여러 목적으로 쓰인 소 전단지인데요.
찌라시(?)의 작은 버젼입니다. 작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거나 주서서 주머니속에 쏙 들어가게
해야 하니까요.

2차대전때 한국전쟁때 고립된 적군들이나  적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귀순을 유도하는 용도로 많이 쓰였습니다.
한국전쟁때는 헬기나  수송기에서 마구 뿌려 되었는데요


실제로 그 삐라로 귀순한 군인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 삐라를 주서서 들고와야  귀순으로 인정하는 확인증
같은것이었다고 하네요


전쟁이 끝난후는  비행기로 뿌릴수 없기 때문에  큰 풍선에 싣고 남풍이 불떄 휴전선 근처에서 남으로 보냅니다.
정말 많이 보냈죠.  최근에는 민간단체에서  북으로 삐라를 보내기도 하더군요. 위의 사진은 기독탈북인연합회
가 휴전선 근처에서 북으로 삐라를 보내는 것인데요. 이것은 사실 불법적인 행동입니다.

2004년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삐라를 서로 보내지 말자고 약속을 했는데  남한 민간단체가 막무가내로
마구 보내네요. 16번이나 북한이 항의 했다고 하는데  기독교단체이다 보니  그 고집과 아집은 정부도
꺾을수 없나 봅니다.


뭐 하여튼 삐라를 들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보여주니 선생님이 놀라더군요.
그럴수 밖에요.  삐라를 보면 신고하라고 했지 20장을 가져온 저를 처음 봤겠지요.
또한 다른반에서도 웅성웅성소리가 들리더군요.  뭐 100장을 주운 친구녀석이 일을 저질렀죠.(?)
학교는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구 100장을 주어온 친구에게 연필 100자루를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따라 오라고 하더니 1층 계단및 창고문을 열더니 먼지가 가득 쌓인 연필을 꺼내더군요. 20개를 다 줄수는 없고  10개만 주더군요.
제가 기분이 상한 표정을 지었더니  그냥 무시하고 가시더군요.

100장을 주어온 친구는 연필 30개와 공책 10개만 주었더군요.

같이 삐라를 주섰던 친구들은 모여서 이건  약속위반이다라고 분개했었죠.
그 이후에  삐라는 많이 주섰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갖다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번보고 찢어
버리거나 예쁜삐라는 수집도 했구요.   그런데 삐라를 보면서 생각이 들었던것은  북한이 잘산다보다는
참 조악하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쇄술도 후질근 해보이고  색이 맞지 않은 인쇄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우린 80년대에 사는데 북한은 60년대에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린 내가 이런생각을 했을정도니  내가 투철한 반공교육을 받은것이거나  북한이 삐라로 남한민들을
포섭할수 있을거라는 판단착오 이 둘중이겠죠.


그때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삐라를 많이 주서온 나에게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라는 표정이요.  그러길래 왜 주서오라고 해놓고 갖다주니까 그런 표정을 짓는지 쩝


삐라 없는 세상  남북한이 더 가까워 진것일까요?
예전보단 많이 가까워졌는데  최근들어 다시 80년대의 남북한 모습을 보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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