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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국내사진작가

한국 리얼리티 사진의 대부 정범태

by 썬도그 2008.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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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 서울 경기고등군법재판소, 1961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피는 물보다 진하고   법보다 엄마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사진은 5.16군사 쿠테타후  잡혀온 범죄자들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죄수의 동생이 데리고온
죄수의 아이가 갑자기 엄마를 보고 달려가  고개를 떨구고 있는  엄마를 알아보고 손을 잡는다

이 장면은 본 판사는 그 엄마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무죄였던 사람을 끌고 온것인지 아니면  아이떄문에 무죄를 선고한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그 판사에게 어떠한 영향을 준것을 분명한듯하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기자 정범태이다.
이 사진은
1960 년 ‘아사히신문’ 국제살롱에서 10걸상을 수상한고 세계 사진연감에 수록된다.
최근에서 세계에서 가장 잘찍은 사진 36장에  이 사진이 포함되게 된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이기도 한  이 한장의 사진
그러니 이 사진의 아쉬움은 사진이 아닌  사진 제목에 있다.  60년대에 한국 사진계는
리얼리티 사진만이 있었구 그 리얼리티라는 계보도 급조되고 허섭한것이었다.  서양처럼 쳬게화되지
않고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이 외국서적에 의존해서 자기들만의  리얼리티를 꾸려가던 시절
그래서 이 사진의 제목은 촌스럽게  앙리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인 결정적순간을 그대로 차용해 버린다.

정범태씨가 사진작가가 아닌 사진기자였으니 그나마 그 지적에 자유로울수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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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사진기자는 1960년 1월 26일의 서울역 귀성객 압사사고 ,1960년 4월18일 천일백화점 앞 정치깡패들의 대학생 습격사건 특종, 5,16 쿠테타로 전국에 계엄이 발령되었을떄  강화도 전등사에서  군인들이 놀러온
행춘객들에게 폭력을 썼던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신문에 내보냈다가  징역을 살기도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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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마부’, 서울 중구 만리동,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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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장수, 서울 남대문시장,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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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소년’, 마포구 신수동, 1957


리얼리티가 생명인 보도사진, 예전에 활동한 사진기자들의 사진들 떄문에 우린 서울의 지난 그러나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서울과 한국의 모습을 사진에서나마 볼수 있다.

불과 30년이 지났지만 서울은  6,70년대의 모습과 지금은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다
마치 다른도시에 불시착한 느낌마져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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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배급, 서울 중구 만리동

바로 이 모습이 우리 어머니들 혹은 우리 삼촌, 이모들의 모습이었다면 이해가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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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서울 동대문운동장

남의 나라에 자유수호라는 사탕발림의 정부의 말을 믿고 정작 달러를 벌러가는 군인,
그리고 그 군인을 부모로 둔 어머니,  어머니의 눈빛에서 자식에 대한 사랑이 묻어 나오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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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범태사진기자는  조선일보에 입사해서 96년에 세계일보에서 은퇴를 한다.
지금의 조선일보와 예전의 조선일보는 많이 다른듯하다.  박정희정부를 정조준한 사진도 1면에 올렸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정범태사진기자같은  사진기자가 현직에 있을까?


요즘 신문이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사진을 유심히 보지만  확 끄는 사진기자가 없다. 그냥 맹숭맹숭
비슷비슷한 사진들 그렇다고  독자를 사로잡는  폭풍과도 같은 리얼리티 사진도 만나기 힘들고

내가 못찾는것도 있을것이다.  앞으로 더 더욱 노력해서 제2의 정범태사진기자를 찾는 여정을 해봐야겠다.  좋은 사진기자를 찾아서 알리는것도 중요한 일이므로   하지만 옥을 가리기엔  잡티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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