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은 필연적으로 재건축, 재개발이 필요한 노후주택을 만듭니다. 기차가 지하로 다니면 참 좋겠지만 공사비 때문에 지상철 구간이나 KTX 같은 고속 열차가 지나는 기찻길은 여러 가지 문제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먼저 기찻길은 한 공간은 두동강 내놓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두동강 내는지는 서울 1호선 전철역 양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찻길 너머로 건너가려면 무려 1km 이상 둘러가야 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용산역이 그렇고 서울역이 그렇고 노량진역이 그렇고 대방역이 가산디지털단지역, 독산역, 금천구청역 등등 기찻길로 인해 양쪽 지역을 갈라치기에 지역 발전에 큰 방해가 됩니다.
그리고 기찻길 주변에는 노후 주택이 많죠. 왜냐하면 기차가 지날 때마다 진동과 소음이 장난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기찻길 옆에 잘 살려고 하지 않죠. 그럼에도 서울에 아파트 지을 땅이 없자 기찻길 옆에도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또한 방음 새시가 발달해서 소음 피해는 좀 줄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구로역이나 용산역 지나다 보면 재개발이 필요로 하는 노후 주택이 가득한 집들이 참 많습니다. 이 중에서 용산역 뒤쪽 동네는 땡땡거리로 유명합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을 했죠. 그 땡땡거리를 오랜만에 찾아가 봤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촬영장소였던 용산역 뒤 땡땡거리
많은 사람들이 인생드라마로 생각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세상의 온기라곤 느껴본 적이 없는 20대 여자와 그런 20대 여자를 측은하게 생각하고 어른의 역할을 해주는 40대 아저씨의 모습을 너무나도 감동스럽게 잘 그렸습니다.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이지안에게 박동훈 과장은 좋은 어른이었고 이 드라마를 본 후에 제 삶의 롤모델이 박동훈 과장이었습니다.
좋은 아이를 좋은 어른으로 만드는 데는 딱 한 사람의 어른만 있으면 됩니다. 그 어른다운 어른이 만나보지 못한 아이들은 불행의 길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드네요.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걸 바라기에는 너무 어렵게 되었네요. 딱 한 사람의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게 해줘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하네요.
이 <나의 아저씨>에서는 기찻길 건널목 장면이 꽤 많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땡땡거리구나 했네요. 서울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용산역 뒤 땡땡거리는 용산역에서 출발해서 이촌역으로 지나가는 경의중앙선 기찻길이 있습니다. 이곳을 오랜만에 찾아가 봤습니다.
제가 오랜만에라고 한 이유는 용산에 대한 추억이 참 많습니다. 제 직장이 있었던 곳이 용산역 인근이기도 했고 친구 직장도 땡땡거리 근처였습니다. 용산역도 참 많이 변했네요. 2000년대 초만 해도 시골 간이역 수준의 초라하고 누추한 역이었는데 민자역사로 대변신을 했네요.
변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드래건 힐이라는 스파 리조트는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다만 용산역 앞 용사의 집은 안 보이네요. 이 용산역 근처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분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서 그런지 노포들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도 좀 남아 있는데 개발로 인해 많이 사라졌더라고요.
더 크게 변한 곳은 용산역 앞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의 건물과 함께 엄청난 높이의 빌딩이 가득하네요. 오른쪽 코끼리빌딩이라고 하는 국제상사 빌딩만이 유일한 고층 빌딩이었던 것이 기억나는데 이제는 강남의 빌딩숲으로 변했네요. 그러나 특색이 없어져서 용산역에 갈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용산전자상가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고 pc부품 사러 다니던 시절도 다 끝났네요.
용산역 1번 출구로 나온 후에 오른쪽 드래곤 힐 건물 뒤쪽으로 가면 땡땡거리가 나옵니다.
용산역 주변은 개발한다 한다 한 게 한 20년이 넘은 듯하네요. 이 노른자 땅을 수많은 서울시장이 개발한다 어쩐다 하지만 아직도 나대지로 남아 있네요.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만든다고 하는데 만들어야 만드나 보지 하지 계획은 항상 무지갯빛이네요. 아시아 실리콘밸리로 만든다는 거창한 구호만 나부끼네요.
뿌리서점이라는 유명한 헌책방이 있는데 문이 닫혀 있네요. 영업을 안 하나 했는데 검색해 보니 제가 간 날만 닫혀 있나 봅니다. 아직도 영업하고 있습니다. 여기 80~90년대 책이 참 많아요. 책 구경하기 좋아요. 알라딘 중고서점은 최신서적 위주인데 여기는 정말 오래된 20~30년 이전의 책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주변이 대규모 개발을 앞두고 있을수록 주변 건물들은 개발을 하지 않습니다. 개발이 시작되면 같이 개발이 시작되겠죠. 이 땡땡거리 지역은 기차 지나가는 진동이나 소리가 안 들립니다. 기찻길이 꽤 멀리 있거든요. 그럼에도 여느 기찻길 옆 주변 동네 느낌이 많이 납니다.
지도를 보면 좁은 골목에 많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먼저 높은 건물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1층 건물들이고 그 흔한데 흔한 빌라도 없습니다. 1층 건물들은 상점들이 많네요.
10년 전만 해도 그냥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최근에 가보니 주택들을 개조한 음식점이 꽤 늘었네요.
심지어 팝업스토어까지 있네요. 이 땡땡거리가 최근 핫해지고 있나 봅니다.
작은 갤러리도 있습니다. 건물 지붕 기와를 보면 70~80년대 올려진 기와 같네요. 이런 곳에 갤러리라? 재미있네요.
카페도 참 많아졌네요. 순간 성수동인가 했네요. 허름한 지역일수록 임대료가 저렴하고 낮은 높이 건물이 많고 골목이 많을수록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 되더라고요. 왜냐하면 하늘이 많이 보이고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수많은 주상복합 건물이나 대형 쇼핑몰들이 최근 다 망해가는 이유가 매력도 없는데 임대료는 오지게 비싸고 천편일률적인 공간들의 연속이라서 잘 찾아가지 않게 됩니다. 다 건설사들이 상가 분양으로 수익을 내다보니 오히려 빈 상가가 대부분인 곳들이 많아지고 있네요.
상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1층짜리 주택가입니다. 골목에 다양한 화분이 눈길을 끄네요. 욕조를 화분으로 이용했네요.
이렇게 낮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중간중간 20,30대들이 좋아할 만한 갬성 카페들이 있네요. 보시면 다 기존 주택을 내부 인테리어만 바꿔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당도 있고 나무도 있고 그늘도 있고 아주 분위기 좋네요.
미미옥이라는 식당도 한옥 지붕에 통유리로 만들었는데 공간 자체가 독특하네요.
바로 옆에는 최신 고층 빌딩이 그 뒤에는 이렇게 허름한 건물들이 가득하네요.
이곳도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시작되면 전체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질 듯합니다.
통행량도 예전보다 많아진 느낌입니다. 차도 거의 안 다니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핫해지고 있네요.
주택가는 이렇게 두 사람만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입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땡땡거리의 핵심인 백빈 건널목입니다. 조선시대에 백씨 성을 가진 빈이 퇴궁 후에 여기서 살았다고 해서 백빈 건널목이 되었다고 해요.
지금도 열차가 수시로 지나다니고 건널목 안내원이 수시로 나와서 차량 및 행인 통제를 합니다.
굽은 기찻길이라서 코너 돌다가 사람이나 차량 발견하면 멈추지 못하고 충돌 사고 일어나겠네요.
반대쪽은 용산전자상가에 새로 올라간 '서울드래건시티' 건물이 보입니다. 저거 올라갈 때만 해도 용산이 본격 개발이 되겠구나 했는데 아직도 첫 삽도 못 뜨고 있네요.
백빈 건널목에 기차가 들어옵니다. 안내원 분이 나와서 차량과 행인 통제를 합니다.
이 경의중앙선은 춘천, 청량리, 옥수, 이촌역을 지나서 용산 찍고 디지털미디어시티 지나서 수색, 대곡, 백마, 일산, 파주, 문산지나 임진강까지 이어지는 상당히 긴 전철선입니다. 전철만 다니는 건 아니고 청춘 열차도 지나다니네요. 여기는 경의중앙선과 경춘선이 같이 사용하네요.
여기서 드라마 참 많이 찍었죠. 서울에 이런 곳이 많지 않거든요. 서울역 근처에 또 하나 있긴 하네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후계동 철도 건널목으로 나오죠.
땡땡거리라고 한 이유는 기차가 오면 땡땡 경고음이 계속 울립니다. 상당히 시끄러울 정도로 소리가 매우 큽니다.
백빈 건널목 뒤에는 또 하나의 건널목이 있는데 여기는 폐선인가 봅니다. 여기는 삼각백빈건널목으로 여기도 드라마에서 꽤 많이 나옵니다. 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기차가 안 다니는 폐철로네요.
관리가 안 되다 보니 이렇게 풀만 무성하네요.
근처에도 노후 주택가들이 보이네요. 여기도 용산역 주변 개발이 진행되면 덩달아서 재개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땡땡거리 근처에는 새남터 순교성지가 있습니다.
고종 시절 천주교 박해가 너무너무 심했죠. 김대건 신부 등의 11명이 천주교인들이 참수되었습니다. 땡땡거리에서 한 10분 거리이니 같이 들려보기 좋습니다. 건물 자체가 아주 아주 톡특한 건물로 한옥도 이런 한옥 건물은 처음 보네요. 이런 건축 양식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성당이라는 점이 더 놀랍죠. 아쉽게도 제가 갔을 때는 행사가 있어서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 말고 마포구 합정동에는 절두산 순교성지가 또 있습니다. 강력한 쇄국 정책의 희생이 되었던 천주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꽁꽁 틀어막으니 개혁의 시기를 놓치고 결국 일제에 먹히게 되었네요. 땡땡거리와 백빈건널목 그리고 새남터 순교성지까지 두루두루 돌아보고 한강변으로 나가는 것도 반나절 여행으로 좋을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