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만화가의 만화를 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봤습니다. 이 작가의 코찔찔 시절에는 만화라기보다는 그냥 주변 에피소드를 만화로 담은 형식의 초기 웹툰 형식의 만화가 전부였습니다. 그냥 삽화가인가 했을 정도였죠. 그러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있는 웹툰을 보면서 오~~ 스토리 좋은데라고 감탄을 했습니다. 기대치가 낮아서 좋게 본 것도 있죠. 그러다 가장 인상 깊게 본 만화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이 웹툰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이 나오긴 했지만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소재로 한 초능력 웹툰 <타이밍>의 절묘한 스토리에 감탄을 했네요.
이후 <조명가게>도 꽤 재미있게 봤고요. <무빙>은 못 봤습니다. 초능력 소재라기에 <타이밍>의 후속작인가 했네요. 알아보니 <타이밍>과 여러 강풀의 초능력 소재 웹툰과 <무빙>이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네요. 강풀 유니버스네요.
연기에 놀라고 연출에 놀라고 CG 사용에 놀라다
8월 9일 첫 오픈을 한 후 2달이 다 된 지금 봤습니다. 입소문이 워낙 좋고 국내외에서 극찬을 하기에 소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넷플릭스를 보고 있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내놓는 드라마 영화 모두 재미가 없어서 해지했네요. 그리고 디즈니로 갈아탔습니다.
<무빙>을 딱 10분 보고 인정했습니다. 예사 연출이 아닙니다. 먼저 이 드라마 연출력이 개쩌네요. 달뜨지 않고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고 디테일이 엄청납니다. 먼저 미술팀이 열일했습니다. 영화관 영화와 달리 OTT는 수시로 멈추고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94년을 배경으로 하는 중반에는 제 기억 속의 94년과 너무 흡사하네요. 94년에 거리를 달리던 무쏘, 티코 등등 그 당시 자동차가 가득 주차된 모습에 놀랐습니다.
여기에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이 잔뜩 나오네요. 유일하게 제 눈에 걸렸던건 행망 PC입니다. 당시 사용하던 삼성 행망 PC를 처음 본 게 1997년인데 그때 그 행망PC를 어디서 구했는지 가져다 놓았네요. 대단들 합니다. 미술팀의 열일은 매끈한 화면 전환에 놀랐습니다. 드라마에서 주황색이 꽤 중요한 대사로 나오는데 형광펜의 주황색이 안전조끼의 주황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화면 전환의 맛을 아는 연출가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필요할 때 경이롭기까지 한 원 컨티니우스 컷으로 담는 모습에 어떻게 찍었을까 하네요. 드라마에서 류승범이 연기하는 킬러 플랭크가 택배 탑차를 몰고 골목을 질주하는 걸 차 안에서 담아서 보여주는데 미친 속도감이 제대로 느껴질 정도로 잘 담았네요. 가장 놀랐던 것은 봉석이가 처음 하늘을 나는 장면도 컷 분할하지 않고 드론을 이용해서 자유 유영하는 느낌이 나도록 연출했는데 이게 참 근사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네요.
이런 연출은 마블 유니버스에서도 보기 어려운 아주 뛰어나고 놀랍고 영리한 연출입니다. 그 봉석의 첫 비행 장면을 통해서 봉석이의 의지와 마음과 함께 나는 느낌이 나게 하네요.
제가 <무빙>을 10분만 보고 인정한 이유는 CG 때문입니다.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보다 보면 너무 과도한 CG 사용에 짜증이 납니다. 자기들 제작 촬영 편하자고 배경에 그린 스크린 설치하고 합성을 해서 촬영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고 <무빙>도 CG나 그린 스크린 이용한 촬영이 많겠지만 배우들의 초능력 장면을 CG가 아닌 와이어 액션을 활용한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와이어 액션이 구닥다리라고 할 수도 있고 너무 티가 나지만 그렇에도 배우가 직접 연기를 하기에 생동감이 더 좋습니다. <무빙>은 제작비 500억을 투입해서 그런지 많은 부분이 CG가 아닌 실제 액션이 많았고 이게 참 좋았습니다. 유일하게 CG 티가 너무 심했던 장면은 창문을 여니 남산 타워가 보이는 낮 장면인데 이게 실제인지 모르겠지만 좀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제가 이 장면을 기록한 이유는 이 장면 말고는 전체적으로 CG가 거슬리지도 액션이 어색하지도 않았습니다.
연출은 2명이 했는데 박인제 감독은 영화 <모비딕>을 연출했고 박윤서 감독은 조연출 출신이네요. 두 감독의 연출력이 오지게 좋네요. 연출의 맛을 잘 아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감독님들입니다. 앞으로 모셔질 듯합니다. 디테일이 명품을 만들고 디테일한 연출이 품격 높은 명품 드라마를 만듭니다.
모든 배우들이 연기가 좋고 유명 배우들이 쏟아져 내린다
<무빙>은 초반에 초능력를 가진 2세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정원고에 모인 초능력자들이 서로의 초능력을 숨기기에 초능력이 보이는 장면은 류승범이 은퇴한 한국 초능력자들을 제거하러 다니는 과정만 보입니다. 그러나 8할은 정원고의 김봉석과 장희수 이강훈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입니다. 이 3명의 능력자들의 이야기가 참 알콩달콩합니다.
어떻게 보면 청춘 로맨스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자체로도 엄청나게 재미있습니다. 이정하, 고윤정, 김도훈의 연기가 너무 좋네요. 중반으로 접어들면 유명 배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류승룡, 한효주, 차태현은 초반부터 나왔지만 중반에는 조인성, 박희순, 양동근, 조복래 등등 다른 영화의 주연이나 조연급 배우들이 쏟아져 나오네요. 배우들 보는 재미가 엄청 좋네요.
초반이 2세들의 청춘 로맨스라면 중반은 부모님들의 로맨스가 나오네요. 이 드라마 <무빙>은 초능력 드라마라기 보다는 초능력 빙자 로맨스 드라마라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그만큼 달달하고 그 달달함을 배우들의 연기가 더 달콤하게 합니다. 구설수가 많은 배우이자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한효주의 연기는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질 좋은 연기를 보여주네요.
초능력은 거들 뿐 무빙은 부모들의 내리 사랑비가 가득한 서사 맛집
요즘 마블 영화들이 인기가 떨어진 이유는 디즈니 플러스의 마블 드라마 시리즈 난립으로 인한 낮은 CG 완성도도 있지만 너무나도 복잡한 서사에 있습니다.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를 보고 봐야 하는 경우가 늘다 보니 점점 흥미가 떨어집니다. 게다가 캐릭터를 구축하는 서사가 유치해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모든 영화의 기초는 스토리입니다. 탄탄한 스토리 위에 CG 소스를 뿌려야 맛이 나지 원재료가 맛이 없으면 CG를 들어부어도 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능력을 소재로 한 영화 중 좋은 영화는 서사가 탄탄합니다. 마블의 초기 작품들과 엔드게임 전까지는 참 좋았는데 그 이후는 이야기가 너무 엉키고 설키고 파편화되어서 재미가 뚝 떨어지네요.
<무빙>은 원작 작가인 강풀의 뛰어난 스토리텔링이 강점입니다. 이야기를 2세들부터 시작해서 과거로 돌아갑니다. 만약 부모세대부터 나오고 현재로 진행했다면 초반의 달콤한 청춘로맨스는 빛이 발했을 껍니다. 착하디 착한 봉석이 화를 내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폭발하면서 나오는 1994년 그 뜨거웠던 여름 이야기(실제로 1994년은 역대급 폭염으로 잘 기억해요)를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 <무빙>을 10화까지 봤고 나머지는 아껴보려 합니다. 따라서 후반 이야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10화까지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부모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모들 이야기는 더 재미있네요. 초능력을 소개하는 과정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난 무슨 능력이 있어!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닌 초능력이 있지만 그 초능력으로 차별받고 박해받을 것을 알기에 철저히 숨기면서 사는 것과 서로의 초능력을 공유해서 비밀을 지키는 모습 그런 걸 지켜보는 반장의 모습까지 모두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초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닌 숨기려고 하는 모습은 X맨 시리즈의 뮤턴트 같기도 합니다.
초능력이 축복이 아닌 재앙인 이 아이들의 활약이 기대되네요. <무빙>은 후반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왜 초능력자가 생겼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각국의 국정원 같은 첩보 기관은 이 초능력자들을 키워서 국가 안보에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서 1994년 김일성 사망이라는 실제 역사와 하늘을 나는 초능력자의 가상의 이야기를 잘 이어 붙였네요.
기본적인 스토리의 뼈대는 내리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초능력이 저주였던 부모 세대들의 아픔을 아이들이 이어받지 않게 하려는 모습은 인류 보편적인 모습이죠. 이 강한 감정을 드라마 <무빙>은 잘 녹여냈습니다. 이 강력한 힘이 이 드라마의 핵심 감정 기제가 아닐까 하네요. 여기에 초능력이 자식들에게 전해진다는 설정은 신선하네요. 아버지, 어머니 초능력을 둘 다 내려받는 모습은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설정입니다. 초능력 빙자 서사 맛집이 <무빙>입니다.
디즈니플러스가 이런 드라마 분기별로 내놓으면 갈아탄다
디즈니플러스를 안 보는 이유는 볼게 없습니다. 스타워즈, 마블, 디즈니와 심슨 가족 말고 볼 게 없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 돈을 투자해서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죠. 다양성과 오리지널 콘텐츠가 넘칩니다. 다만 다 수준들이 고만고만하죠. 그래서 수시로 초대박 드라마를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영 재미가 없네요. 2022년 같은 2023년이 아니네요. 그래서 해지했습니다. 반면 디즈니플러스는 차무식이 나오는 <카지노>를 선보였지만 전 재미없게 봤습니다. 그냥 별로더라고요. 그러나 <무빙>은 다릅니다. <무빙>은 2023년 올해 본 최고의 드라마였습니다. 이런 드라마만 만들면 매달 끊어서 보겠습니다. 가뜩이나 볼만한 영화가 멸종하고 있는 영화관 안 가고 그 돈으로 1달 내내 디즈니플러스 보겠어요. 다만 디즈니플러스는 <무빙> 말고 볼만한 게 없습니다. 그러나 디즈니플러스가 최근 <한강>이나 여러 한국 드라마 콘텐츠를 내놓고 있기에 좀 더 오래 머물러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아니면 넷플릭스와 같이 구독할 수도 있고요. 대신 영화관 덜 가면 되니까요.
올 추석에 영화관 대신 디즈니플러스 아이디 동생네 가족과 다 공유해야겠어요 가격이 11월부터 14,000원으로 오른다고 하지만 10월까지는 9,900원에 무려 4대가 동시 접속해도 가능하네요. 엄청 저렴하죠. 추석은 디즈니플러스와 보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