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이 지명이면 왠지 모르게 꽤 강렬하죠. 흥미롭게도 지명이 들어간 영화 중에 잘 된 영화가 거의 없습니다. 영화 서울이나 영화 부산 같은 영화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잘 만든 인상 깊고 잘 만든 영화가 <경주>, <군산> 같은 장률 감독이 만든 지명 시리즈 영화들은 꽤 좋습니다. 물론 대중적인 인기가 높지는 않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율 감독이 만든 영화가 아니면 지명이 들어간 영화들 대부분이 재미가 없습니다. 2021년 개봉한 영화 <강릉>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가 뭐라고 할까.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의리의 조폭들의 세상도 세상이 변해서 배신이 기본인 세상으로 변했다는 걸 말하려는 것 같은데 그게 재미있을까요?
우리가 조폭영화나 갱스터 영화를 보는 이유는 그들이 벌이는 범죄를 손뼉 치면서 보는 게 아닙니다. 비록 암흑의 세계에 살지만 자신만의 정의감이 있고 목숨까지 내놓고 지키는 소중한 가치, 예를 들어 의리나 사랑을 바라보기 위해서 봅니다.
따라서 비록 주인공이 총이나 칼을 쥐고 사람을 죽여도 그 칼 뒤에 있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는 행동을 보려고 돈을 냅니다. 물론 <친구>같이 냉혹한 어둠의 세계를 통해서 비애를 담고 있는 영화들도 많긴 합니다만 중요한 건 주인공이 선하건 악하건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나름 꽤 볼만했던 영화 전반의 <강릉>
2021년에 조폭 영화요? 요즘 조폭 영화 나오지 않습니다. 한 때 너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조폭 소재의 영화들이 싹 사라지고 다양한 소재의 한국 영화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폭 영화는 저렴한 제작비에 액션 씬이 많아서 관객이 많이 들 수 있는 소재라서 마구잡이로 남발했지만 2021년에는 거의 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조폭 소재의 영화를 과감하게 들고 나왔네요. 그럼 어떤 내용일까요? 시대 배경은 평창 올림픽이 6개월 앞둔 시점입니다. 아 그전에 공해상에 어선이 하나 떠 있었는데 그 어선에 죽은 시체를 먹고 있는 이민석(장혁 분)이 잠시 나왔다가 강릉으로 영화는 이동합니다.
장혁 아니 이민석이라는 괴물을 바로 각인 시키기 위해서 식인의 모습을 보여준 듯한데 누가 식인종을 좋아하겠어요. 무리한 콘셉트 잡기입니다. 차라리 이민석이 왜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었는지 냉혈한이 되었는지 좀 더 자세히 담았으면 했는데 영화 내내 이민석은 항상 사람 죽이는 걸 즐깁니다.
일단 강릉에 대한 브릿지 영상이나 강릉의 뜻을 소개하는 등등 강릉에 대한 소개를 잠시 하는 건 좋네요. 다만 좀 더 길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없네요. 강릉만의 특징 있잖아요. 지역색이 묻어났으면 하는데 해변가에서 소주 먹고 부둣가에서 술 먹는 장면 말고는 이게 강릉인지 지방 어딘지 구분도 안 갑니다. 강릉의 유명 명소가 좀 나오긴 하지만 길게 깊게 나오지 않네요.
영화의 주인공은 김길석(유오선 분)으로 과거에 주먹 깨나 썼던 건달입니다. 지금은 오 회장(김세준 분) 밑에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청춘스케치>의 보물섬인 김세준 배우가 나와서 너무 반가웠네요. 요즘 왜 연기 활동 안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반갑더라고요.
오 회장 밑에 김길석과 이충섭 등등이 있는데 오 회장이 김길석에게 리조트 1대 주주 자리를 내줍니다. 이에 동생인 이충섭은 섭섭해하죠. 그러나 잘 정리되는 듯했는데 이민석(장혁 분)이 등장합니다. 이민석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귀로 마음에 안 들면 다 죽입니다. 이민석은 살인을 하고 돈을 주고 사람을 구해서 대신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하는 방식으로 살인을 마음대로 하고 다닙니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모시던 남 회장을 죽인 후 리조트의 2대 주주가 됩니다. 아주 악랄한 캐릭터가 이민석이고 최근 몇 년 안에 본 최악의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몇 주 전에 장혁 주연의 <더 킬러 : 죽어도 되는 아이>를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연기를 너무 못해서 깜짝 놀랐는데 이 영화는 장혁이 자연스럽게 하네요. 장혁 보면 깜짝 깜짝 놀라는 요즘이네요. 장혁 연기 못하는 배우가 아닌데 '더 킬러'는 목소리를 너무 깔아서 입만 열면 현타가 옵니다.
영화 초반은 그런대로 볼만합니다. 대형 리조트 1대 주주인 김길석과 남 회장을 죽이고 2대 주주가 된 이민석 그리고 김길석과 형동생하는 사이인 이충섭과 최무상 등등 강릉 토박이 조폭들 사이의 알력 싸움이 흥미롭게 보입니다. 강릉 토박이 조폭과 서울에서 온 살인귀 이민석 파와의 힘겨루기 구도는 볼만하네요. 특히 각 조폭들의 2인자들인 김형근과 강정모 사이의 대결은 전반과 후반 꽤 잘 담깁니다. 여기에 조폭들이 경찰을 따돌리는 장면도 좋고요.
영화 촬영 앵글이나 이런 것도 괜찮습니다. 감독이 누군가 봤던 윤영빈 감독이시네요. 이력이 독특합니다.. 촬영, 조명, 편집 등등 영화 현장에서 다양한 작업을 하셨네요. 그러나 장편 영화 연출은 처음이시네요. 여기에 각본도 직접 썼고요.
그런데 조폭 영화는 액션 영화인데 액션 장면이 많지 않습니다. 전반은 빌드업을 하기 위해서인가 했는데 후반에도 엄청난 액션이 일어나지는 않고 있는 액션 장면도 그냥 개싸움 정도입니다. 또한 액션이 잔혹하기만 할 뿐 특이하거나 기억에 남지도 않습니다. 대신 유오성, 오대환 등등의 배우들의 연기들이 좋네요. 한선화도 조연으로 잠시 나옵니다.
의리로 뭉치던 낭만의 시대를 그리워하다
영화 <강릉>의 메시지는 희미합니다. 수시로 예전이 좋아지라고 하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낭만의 시대을 추억 삼아서 술 한잔 하는 김길석. 김길석은 강릉 경찰과 연줄이 있어서 폭력을 행사하지도 할 수도 없습니다. 조폭이 지역 유지가 되어서 경찰과 함께 이민석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에 이게 강릉의 특색인가? 늙은 조폭이 합법적인 일을 하면서 경찰을 돕는 사람이 되었나 할 정도로 경찰과 김길석의 연합은 좀 당혹스럽기도 하고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강릉의 강력한 경찰과 과거 조폭이었던 김길석 사이의 결계를 깨트리는 신흥 조폭인 이민석이 등장합니다. 이민석은 낭만 따위 없습니다. 그냥 수 틀리면 마음에 안들면 다 죽입니다. 보면서 영화 <더 킬러>에서 장혁이 협상이나 고민 없이 그냥 다 죽이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더 킬러>의 칼 든 버전인가 할 정도입니다. 실제로 두 캐릭터가 비슷하고 흥미롭게도 이채영이 장혁과 부부 또는 연인으로 나오네요.
참 더러운 캐릭터 이민석. 이민석이 영화를 망치다
이민석이라는 캐릭터는 악마라고 하기엔 정체성이 너무 없습니다. 식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생각이라곤 오로지 살인 밖에 없을 정도로 살인귀입니다. 살인을 해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개념이 잡힌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냥 잔혹함만 보여주는 캐릭터이고 이 이민석이 잔혹해질수록 김길석이 더 착해 보이게 됩니다.
그렇다고 김길석이 매력적인 캐릭터냐 그것도 아닙니다. 경찰과 손을 잡고 지역의 악을 처단하는 모습이지만 이게 합당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경찰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부실하게 수사를 하는지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위증을 하고 가짜 살인자를 감옥에 보낼뿐 실제로 죽인 사람이 이민석인 걸 알면서도 잡아넣지를 못합니다. 물론 증거가 없어서겠지만 그럼에도 무능해 보이네요.
그럼에도 이민석보다는 못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왜? 그냥 가면 되는데 왜?라고 할 정도로 이민석은 무슨 이유인지 김길석과의 대결을 합니다. 보통 이렇게 2명의 캐릭터가 마지막에 붙어야 제맛이고 실제로 붙습니다. 문제는 이게 내가 예상하는 공평정대, 정정당당도 아닙니다.
흠.. 보면서 참 못났다 이민석, 정말 못났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멍청한 행동을 합니다. 그 행동 하나가 영화 전체에 대한 질을 크게 떨구네요. 이민석이라는 캐릭터는 잔혹하기만 할 뿐 매력이 전혀 없습니다. 경찰도 참 못났고요.
영화 <강릉>은 1시간 30분짜리 영화입니다. 보통 2시간 내외로 촬영하고 갈수록 상영시간이 길어지는 추세인데 1시간 30분으로 아주 짧게 만들었네요. 하지만 이는 이 영화의 단점입니다. 30분 늘려서 이민석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서사를 넣고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설명이 너무 없고 캐릭터에 대한 매력이 없다 보니 장혁만 나오면 무서운 게 아니라 짜증만 납니다. 악역이라고 해도 당위가 있어야지 이건 그냥 나몰라 살인귀네요.
좀 더 다듬고 쳐내고 집어 넣고 했으면 나름 볼만했겠지만 영화가 낭만의 시대는 갔다면서 이상한 캐릭터가 등장하더니 칼부림만 가득 나오네요. 액션 장면도 칼을 찌르는 장면 묘사만 리얼하지 흥미로운 액션도 없습니다. 따라서 추천하기 어려운 영화네요. 전반에 빌드업 엄청나게 하기에 후반에 엄청난 대결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운 대결이 나오는 영화 <강릉>입니다.
별점 : ★★
40자평 : 강릉에 침입한 무논리 조폭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