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어떤 딱딱한 정보도 이야기에 넣어서 전달하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예를 들어서 미분 적분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미분과 적분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 충분하고 자세하게 다루고난 후 배웠다면 미적분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최근 유튜브에서 미적분 이야기를 듣고서 미적분에 대한 흥미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는 어떤 정보를 전달받을 때 좋은 이야기에 실어서 전달하면 좀 더 오랫동안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인간을 즐겁게 하죠. 우리가 듣는 노래, 영화, 웹툰, 애니, 소설 등등 대부분의 콘텐츠는 서사라는 뼈대 위에 살을 붙이는 결과물입니다. 그 서사를 영상으로 구현하면 영화이고 그림으로 재현하면 그림이나 웹툰이 되고 글로 재현하면 소설이 됩니다.
천일야화의 훌륭한 변주곡 같은 영화 <3000년의 기다림>
'틸다 스윈튼'이 출영했기에 봤습니다. 틸다는 나이 들수록 영국 귀족처럼 늙어가네요. 배우 자체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갈수록 더 진해집니다. 또한 틸다가 출연한 영화들의 선택력도 좋은 편이고요. 서사학자인 '알리테아(틸다 스윈튼)'은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한 후 혼자 살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강연을 하다가 강연장 1열에 있는 정령을 보고 기절을 합니다.
서서학자이다 보니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외계인, 정령, 마법사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헛것이 보입니다. 알리테아는 이스탄불 골동품 가게에서 예쁜 유리병 하나를 구매합니다. 감정을 의뢰했는데 아마도 가짜 일 것이라고 말하기에 안 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병을 삽니다. 호텔로 돌아온 후에 칫솔로 더러워진 병을 닦다가 병뚜껑이 열렸고 그 안에서 지니가 나옵니다.
지니?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봤습니다. 지니라면 알라딘인데 알라딘의 이야기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고 좀 더 큰 천일야화 이야기를 변주한 영화네요. 알라딘 이야기는 이야기꾼이 천일 동안 들려준 이야기 중 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하게는 천일야화를 그린 것이 아닌 천일야화를 하는 이야기를 포함한 좀 더 거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도 천일야화를 따르는 것이 아닌 천일야화를 포함해서 소원을 비는 이야기의 뻔한 비극적 결말을 비튼 영화입니다. 따라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이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의 재미입니다.
지니는 이드리스 엘바가 연기를 합니다. 이드리스 엘반의 선한 눈만 봐도 이 지니가 빌런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주연배우의 캐미도 연기도 무척 좋습니다.
알리테아가 꺼내준 지니는 다짜고짜 3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이에 알리테아는 자신은 갈망(Longing)하는 게 없다는 듯 뚱하게 보죠. 무려 3천년을 병 속에서 살았던 지니. 3가지 소원을 다 들어주면 정령들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어떻게든 이 알리테아가 3가지 소원을 말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지니는 서사학자인 알리테아를 위해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자신은 시바 여왕과 함께 살았는데 솔로몬 왕이라는 마법사가 자신을 병 속에 가두었다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천일야화의 아랍의 왕 이야기를 지나서 늙은 남편에게 시집을 온 누구보다 영리하고 현명한 여자의 손에 넘어갑니다. 여자는 지니를 통해서 더 많은 지식을 얻었고 그런 그녀를 지니는 사랑 합니다. 자유라는 갈망까지 잊을 정도로요. 그리고 알리테아는 드디어 첫 소원을 지니에게 말합니다.
뛰어난 CG와 이야기로 몰입감이 좋은 영화 <3000년의 기다림>
액션은 거의 없습니다. 액션이 나올만한 이야기도 아니고요. 그러나 비주얼은 엄청납니다. CG 퀄리티가 무척 뛰어나고 시각적 쇼크도 몇 번 있습니다. 다 보고 나서 누가 이런 뛰어난 비주얼을 만드나 했는데 '조지 밀러' 감독이네요. 호주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매드맥스> 시리즈로 비주얼리스트라고 할 정도로 비주얼과 사운드가 아주 좋은 영화를 잘 만듭니다.
직접 시나리오도 쓰는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데 이 <3000년의 기다림>도 직접 썼네요.
염문 제목은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입니다. 여기서 Longing은 그리움 또는 갈망을 뜻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다림으로 적었네요. 기다림 보다는 갈망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영화에서 지니는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고 소원이 되는 것은 아니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갈망을 소원으로 말해야 들어줍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는 3천 년을 거스르는 인간 세상을 경험한 지니가 마지막 탐험 세상인 사랑을 탐험하고 습득합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지니의 현자스러운 행동에 열정적인 사랑꾼이 되는 모습을 통해서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주 아주 잘 보여줍니다. 두 배우의 연기도 무척 좋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주고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아닌 그냥 지니 그 자체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은 떠나도 이야기는 남는다
<3000년의 기다림>은 이야기가 소재인 영화입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람은 떠나도 이야기가 남는다는 것도 잘 보여줍니다. 3000년의 기다림은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기록한 책이기도 하죠.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나 아버지 무릎에 누워서 들었던 도깨비 이야기, 귀신 이야기를 듣던 내 모습도 살짝 보이네요. 서사학자의 소원을 통해서 우리가 갈망하는 것과 사랑의 의미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좋은 영화이고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지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옛적 이야기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