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영화창고

보는 것의 힘을 담은 소설가의 영화에 대한 내 해석

by 썬도그 2023. 2. 25.
반응형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영화는 영화를 보러 가는 길과 시간과 그 영화관과 같이 본 사람과의 추억까지 다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영화도 출퇴근하면서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보다 큰 스크린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예매하고 만나고 함께 보고 보고 난 후 가벼운 영화 감상을 나누고 기억하는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들이 더 오래 깊게 기억됩니다. 

소설가의 영화

2023년 2월 24일 금요일에 한국영상자료원 지하 시네마테크 1층에서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소설가의 영화>를 봤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그 영화 자체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한국국민들은 불륜 관계인 홍상수와 김민희 커플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보내고 있고 저 또한 지금도 불륜 커플이라는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시선을 감독인 홍상수도 모르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이 부담스러운 시선을 최근 영화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고 양질의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자주 찾았지만 코로나 기간에는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갔는데 관람석 40%를 채울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왔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혼자 보러 온 관객이 80%가 넘을 정도였고 커플 관객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여느 영화관과 다른 풍경이죠. 물론 저도 혼자 봤습니다. 영화 혼자 보면 좋은 점이 많죠. 옆에 사람 신경 안 써도 되고 오롯하게 볼 수 있습니다. 

유명 소설가가 단편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 <소설가의 영화>

소설가의 영화

영화는 흑백 영화입니다. 흑백 영화지만 흑백으로만 담지는 않고 그냥 흑백으로 처리한 영화로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후반에 잠깐 컬러가 나오거든요. 그게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주인공은 유명 소설가 준희(이혜영 분)입니다. 준희는 교외 지역의 한 작은 서점을 방문합니다. 

그러나 따가운 폭풍 잔소리를 넘어 분노에 찬 소리가 쩌렁쩌렁 들립니다. 책을 보던 준희는 잠시 서점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핍니다. 이때 서점에서 일하는 분노받이였던 현우(박미소 분)가 나와서 들어오라고 하죠. 그리고 서점 주인 세원(서영화 분)에게 알려줍니다. 그렇게 세원은 밖으로 나와서 준희를 마주합니다. 서점 주인 세원은 준희의 후배입니다. 세원은 준희를 많이 따르고 도와줬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겼고 소설을 최근에 쓰지 못했던 준희는 이 고마웠던 후배의 소식을 듣고 교외의 작은 서점에 들릅니다. 

그렇게 세원과 담소를 나누고 근처 하남시 유니온 타워에 오릅니다. 이 타워에서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려다 엎어져서 만들지 못한 죄책감을 살짝 가지고 있는디 영화감독 효진(권해효 분)를 만납니다. 효진은 아내와 함께 있었는데 그렇게 3명의 사람은 과거의 앙금을 커피로 마시면서 씻습니다. 

소설가의 영화

그러나 앞에서는 앙금이 없다고 말로 말하지만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데면데면하는 것이 다 가시지는 않은 듯합니다. 이게 영화의 핵심입니다. 보이는 것과 말 즉 말과 행동이 다른 점이 영화 내내 많이 보입니다. 

소설가의 영화

앙금이 없다고 말하던 준희는 감독 부부와 함께 타워 앞 한강변 산책길을 걷다가 유명 배우였지만 지금은 영화를 찍지 않고 있는 배우 길수(김민희 분)을 만납니다. 여기서 터집니다. 감독은 길수가 영화를 찍지 않고 있다고 하니  재능이 아깝다는 그냥 흔한 인삿말을 합니다만 이 재능이 아깝다는 말에 준희가 꽂혀서는 속에 있던 진짜 감정을 쏟아냅니다. 

돈이 되는 영화만 찍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감독이 제작자 때문에 준희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지 못했다는 말에 대한 분노를 게워내기 시작합니다. 결국 두 감독 부부는 불편해 하면서 자리를 뜹니다. 그렇데 길수와 준희는 우연히 만나서는 같이 산책을 합니다. 서로를 지면상으로만 만났지 처음 말을 섞은 사이지만 신기하게도 예술가들의 감각 때문인지 두 사람은 친구처럼 언니 동생처럼 같이 식사하고 술까지 마십니다. 

소설가 준희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합니다. 단편 영화인데 길수와 길수 남편을 섭외해서 촬영하고 싶다고 하죠. 이에 길수는 남편에게 물어보겠다고 하고 남편이 허락하면 길수의 조카가 촬영 편집을 한 영화가 1편 나올 듯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겁니다. 소설가가 영화를 찍고 그 영화를 보여주고 끝납니다. 별 내용이 없죠. 그런데 이 영화는 참 여러 가지로 해석할 여지가 많습니다. 

소주 대신 막걸리와 와인을 마시는 홍상수 영화의 변화에 재미가 뚝 떨어지다

소설가의 영화

먼저 말하자면 이 영화 재미는 없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변했습니다. 변해서 깜짝 놀랐는데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다 보니 재미가 확 떨어지더라고요. 이런 변화의 이유를 영화 속 소설가와 감독 입으로 직접 말합니다. 홍상수 감독은 여러 언론 앞에 노출되지 못하기에 자신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극중 인물의 대사로 말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보면서 얼마나 답답하면 영화 속 인물을 통해서 속내를 말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홍상수 감독이니까 저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말하지 거대 자본 영화라면 제작사로부터 대사를 난도질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요즘 홍상수 영화입니다. 불륜 사건 이후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보기 어렵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 프레임 밖에 있고 화면 밖에 있고 카메라 뒤에 있는 홍상수 감독을 떠올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좋다 나쁘다가 아닌 영화가 영화 프레임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현실과 접목해서 나아가는 독특한 형태의 영화가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의 근황을 보고 싶으면 매년 1편 이상 내놓는 홍상수 감독 영화를 보면 그 자체가 홍상수 감독 인터뷰같이 느껴집니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유니온 타워에서 감독은 삶의 태도를 바꾸니 영화가 바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변했습니다. 
먼저 마법의 녹색병인 소주가 안 나옵니다. 대신 도수가 좀 더 낮은 막걸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차이와 반복을 통해서 항상 위선적인 식자층을 비판하던 성욕 충만한 남자 주인공 대신 여자 주인공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말과 행동이 다른 점을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예전보다 유순해졌다고 할까요. 날이 바싹 선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만의 날 선 비판력이 사라지다 보니 좀 심심해졌습니다. 

여기에 여전히 줌인이 나오지만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컷의 길이가 엄청 길어졌습니다. 보다 보면 연극 무대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카메라를 세워 놓고 배우들이 엄청난 양의 대사를 주고 받습니다. 보면서 배우들이 어떻게 이 긴 대사를 다 외울까 할 정도로 배우들의 엄청난 대사 소화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길게 담다 보니 실제 같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듭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대화를 하다 보면 말이 겹치기도 하고 바로 바로 다음 이야기가 꺼내지지가 않습니다. 특히 깊은 관계가 아닌 관계, 인사만 하는 사이에서는 말이 중간중간 끊기게 되죠. 그런 것까지 영화는 담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지나가는 행인이 연출인지 촬영하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중간에 주변 소음이나 아이가 소리 지르는 소리도 들리는데 이게 의도한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뭐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삶처럼요. 물론 이게 제 과해석일 수 있지만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 감독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이 깊어서 알 수가 없습니다. 

<소설가의 영화>에 대한 내 해석

소설가의 영화

영화 다 보고 이해가 안 가면 해석을 찾죠. 해석은 정답도 1가지도 아닙니다. 따라서 제 해석이 정답이 아니고 공감을 못 받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적어보겠습니다. 

텍스트보다 시각의 힘이 더 크고 진실에 가깝다

주인공 준희는 소설가입니다. 세상을 텍스트로 담는 크리에이터입니다. 언어와 문자라는 것이 세상의 지식을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소설은 우리는 어떤 감정이나 사물이나 행동을 텍스트로 정의를 하고 이 정의에 스토리를 담아서 세상에 선보입니다. 텍스트를 읽으면 말이 되죠. 

그런데 이 말이라는 것이 에너지가 덜 들어가다 보니 쉽게 거짓을 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말을 믿지 말고 행동을 믿으라고 합니다. 말은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담을 수 있습니다. 현재는 바로 증명되지만 과거나 미래를 담은 말은 거짓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듣는 사람이 그 말의 과거와 미래가 거짓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현재도 과거와 미래보다는 덜하지만 말로 글로 왜곡할 수 있습니다. 수 많은 가짜 뉴스들 보세요. 현재지만 현실을 얼마나 왜곡해서 담는데요. 

반면 행동은 바로 증명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술집에서 술 끊었다고 말하면서 술을 마신다면 우리는 어떤 걸 믿을까요? 당연히 말 보다는 행동을 믿고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행동은 그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딸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딸의 대학 등록금을 내주지 않은 아빠를 우리는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듯이 행동은 말보다 강력한 진실성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위인들의 말보다는 그가 한 행동에 더 큰 감명을 받기도 하죠. 
영화 <소설가의 영화> 속에서는 수 많은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말과 다른 행동을 보여주면서 말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훼손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소설가의 영화

예를 들어 주인공 준희가 감독 앞에서 앙금이 없다고 말했지만 배우 길수를 만난 자리에서 앙금이 폭발합니다. 방금 전까지 없다고 직접 말하면서 행동은 앙금을 찐하게 쏫아냅니다. 서점 직원도 그렇죠. 준희에게는 팬이라고 말했는데 술자리에서는 준희의 선배인 시인 민수에게 열렬한 팬이라고 말합니다. 말의 허망함이라고 할까요?

물론 이게 큰 문제라고 하긴 어렵지만 말이라는 것이 너무 쉽게 나오고 돈도 안 들고 에너지도 별로 들지 않다 보니 쉽게 본심을 담지 못하고 왜곡되고 거짓을 전달하는 도구가 됩니다. 반면 행동도 사기꾼들은 거짓의 행동으로 사람을 속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동이 좀 더 진실됩니다. 

소설가의 영화

소설은 속된말로 구라 이야기를 담은 형식입니다. 이 지어낸 이야기만 담던 소설가가 영화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영화도 구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죠. 실제 이야기를 담으면 그건 다큐이고요. 소설가 준희는 영화를 만들겠다면서 실제 같은 감정을 담겠다고 하자 길수의 남편 조카는 다큐냐고 묻죠. 그런데 준희는 다큐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그렇게 길수의 남편이 함께 등장하는 단편 영화를 만듭니다. 그 단편 영화에 뒤통수를 얻어맞았습니다. 
이 부분은 스포가 있기에 읽을 분들만 읽어주세요. 

 

 

여기서 부터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 보실 분은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세요. 

소설가의 영화

소설가 준희가 만든 단편 영화는 47분짜리입니다. 단편보다는 중편입니다. 그런데 이걸 몇 부문만 보여줍니다. 그런데 스토리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여주는 장면은 김민희가 꽃을 들고 나옵니다. 영화 속에서는 길수가 단독 시사회를 하는 모습으로 담기는데 중편 영화 속 길수는 길수라기 보다는 그냥 김민희로 느껴집니다. 

정체 모를 중년 여성이 함께 나오고 결혼식 축가를 부르면서 꽃을 들고 카메라 앞으로 다가옵니다. 
약간의 마법이 펼쳐집니다. 이게 영화인가? 실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년 여성은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 마법에 걸려서인지 배우 김민희의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민희가 꽃을 들고 다가오는 모습은 실제 같았습니다. 불륜이라는 주홍글씨를 단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 김민희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배우 김민희가 아닌 그냥 인간 김민희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평생 결혼식도 못하고 살 텐데라는 생각도 들고요. 분명 이 불륜 감독 커플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실존하고 있고 그 상처는 평생 잊히지 않겠지만 동시에 그냥 김민희도 고통스럽겠구나를 느끼게 되네요. 

이런 생각이 들다보니 그냥 다 놓아버렸습니다. 저도 늙었나 봅니다. 상처를 줬던 받았던 다 필요 없고 그냥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남은 생도 얼마 안 남은 사람들인데 그냥 덜 상처받고 상처 주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전 소설가가 만든 영화가 홍상수 감독이 김민희에게 준 선물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통해서 프러포즈이든 감사의 선물이든 뭔가를 준 느낌이네요. 소설가가 또 거짓말을 했습니다. 반대로 영상은 진심이 가득 보였습니다. 

컬러로 담으면 안 되냐는 김민희의 단편 영화 속 말에 홍상수 감독의 목소리로 유추되는 사람이 그러지 뭐라며 컬러로 바꿉니다. 행동입니다. 행동.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세치 혀의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 순간 동공이 흔들리더라고요. 영화 내내 지루하고 졸렸는데 이 장면 하나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검증되지 않는 말을 퍼트리는 사람들에 지친 홍상수 감독

소설가의 영화

우리는 남의 말을 참 잘 듣습니다. 누가 ~~ 라고 했데, 식으로 직접 목격한 사건보다는 간접적으로 듣죠. 이런 말들의 대부분은 전해지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고 애초부터 가짜 뉴스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검증을 해야 합니다. 영상은 그나마 검증하기 아쉬 쉽습니다. 왜냐하면 행동을 시각, 청각, 텍스트로 모두 담으니까요. 

그래서 CCTV 영상만 보고 우리는 진실을 쉽게 판단하죠. 말은 입장의 왜곡이 심합니다. 그래서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고 하지만 CCTV 같은 객관적 기록 매체는 검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이는 그대로니까요. 사진도 한 때는 검증 도구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요즘은 포토샵 한 사진도 많아서 점점 사진의 증명성이 훼손되고 있네요. 

그렇다고 영상물이 팩트 체크에 좋다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유튜브를 보면 온갖 가짜 뉴스가 유튜브에서 시작됩니다. 영상의 문제점은 편집입니다. 자기 유리한 부분만 잘라내서 세상에 공개하면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말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풀영상이 필요합니다. 영화라는 매체도 그렇죠. 편집을 통해서 진실을 전하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하고요.

그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 그냥 세상이 왜곡과 진실의 혼재된 세상으로 보면 될 듯합니다. 다만 담는 그릇이 중요합니다. CCTV 영상, 기록 사진은 기록 매체이기에 단 하나의 편집도 왜곡도 해서는 안 됩니다. 반면 영화나 소설이나 시는 현실에서 발췌해서 가짜 이야기를 만드는 매체입니다. 사진으로 말하면 기록 사진과 연출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법에 따라서 구분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문제는 다큐인지 영화인지 구분없이 영상물이 쏟아지다 보니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최근에 한 유명 사진갤러리 사진전을 보면서 한국 사진 역사를 소개하면서 기록주의 사진과 연출주의 사진과 대결을 담았는데 어느 시대에는 기록사진이 정답이었고 어떤 시대는 연출사진(살롱사진 등등)이 정답이었다는 소리에 실소가 나왔습니다. 이게 무슨 패권 전쟁도 아니고요. 

영화는 기본적으로 구라입니다. 가짜입니다만 신기하게도 가짜인데 진짜가 보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진짜 마음을 본 느낌입니다. 얼마나 세상의 말에 지쳤는지 자신의 무기인 영상 카메라로 자신의 마음을 구라 매체인 영화라는 그릇에 올려놓았네요. <소설가의 영화>는 지루하고 재미없습니다.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도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생각의 깊이는 아주 긴 영화입니다. 다 보고 하루 지났지만 영화의 여운이 엄청 길게 갈 듯합니다. 

홍상수와 김민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소설 쓰지 말고 우리를 제대로 보아 달라고 외치는 영화 같이 느껴집니다. 

별점 : ★★★★
40자 평 : 소설가를 통해서 사랑 고백을 한 영화 감독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