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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브로커는 삶을 부정당한 사람들을 안아주는 따뜻한 영화

by 썬도그 2023.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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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신(神)을 안 믿습니다. 그렇게 거룩하고 전지전능하신 분이 왜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세상을 보고 있으면 신이 없기에 설명이 가능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노력한 만큼 성공하고 공평하고 누구나 동일한 룰로 평가받아야 신이 정말 좋은 분이고 공명정대한 분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보세요. 세상이 공평하고 정정당당한 세상입니까? 오늘도 수많은 편법과 계급 사회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우리는 왜 공평하게 태어나지 않았냐는 겁니다. 

태어나보니 엄마 아빠가 금수저인 아이도 있고 태어나보니 흙수저인 아이도 있습니다.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부모님 선택을 할 수 없을까요? 이런 출발선이 다른 세상을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복지와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가 출발선은 달라도 모두 소중한 삶이라고 안아줍니다. 한국은 인권 국가라고 하기엔 많은 부분이 후진국 형 인권 문제가 많은 나라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입양 문제입니다. 제가 많은 소재에 대해서 무던해졌지만 이 입양 관련 소재 영화는 눈물 버튼입니다. <피부색깔 꿀색>, <이방인> 같은 해외 입양아 출신의 감독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한국은 왜 이리 많은 아이들이 물건처럼 수출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브로커를 통해 본 버려진 아이들의 삶

영화 브로커

소영(아이유 분)을 보면서 최근 뉴스에 오른 20대 초반의 엄마에 관한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최근 인천에서 한 20대 초반 엄마가 2살 아기를 두고 3일 정도 카센터에서 돈을 벌고 왔습니다. 새벽에 돌아온 엄마는 아기가 죽어 있자 119에 신고를 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20대 초반 엄마를 비난했습니다. 전 이 사건에서 아빠는 어디 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를 죽게 한 것은 그에 대한 벌을 충분히 받아야겠지만 저 엄마는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살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뉴스 댓글을 보니 살벌한 비난 댓글에 댓글 창을 닫았습니다. 소영이 그랬습니다. 영화 <브로커>의 소영은 10대 시절부터 몸을 팔면서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기를 키울 자신이 없자 소영은 베이비 박스를 찾습니다.  

소영의 아기는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까요? 그건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행복하게 자라기 쉽지 않은 환경일 겁니다. 다른 아이와 달리 양부모와 친부모 사이의 정체성의 혼란이 있을 수 있고 해외로 입양 되었다면 조국에 대한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소영의 어두운 삶을 아이까지 이어지는 경우에는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부모의 삶을 끊어내는 제도가 입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입양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영화 브로커 강동원

영화 <브로커>의 동수(강동원 분)가 그 예가 됩니다. 입양되지 않고 보육원에서 자라면 나이가 차면 수백 만원의 돈만 받고 쫓겨나듯 나가야 합니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 입양되어서 자라면서 친부모와 조국에 대한 혼란을 겪는 입양된 아이들. 그 2개의 삶 중 어떤 삶이 좋다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이 아이들은 삶을 1번 이상 부정당한 삶이라는 겁니다. 이는 엄청난 고통이자 시련입니다. 영화 <브로커>는 그 엄청난 고통을 담은 영화입니다. 

<어느 가족>의 입양 버전 같았던 영화 <브로커>

영화 브로커 송강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감독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무도 모른다>를 시작해서 <공기인형>,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환상의 빛>, <태풍이 지나가고>, <세 번째 살인>, <어느 가족> 까지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대부분을 봤네요. 

영화 <브로커>는 한국 스텝과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 한국 영화입니다. 감독이 일본인이지만 자본이 한국 자본으로 만들어져서 한국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한국 배우들과 한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소재까지 구체적으로 말했는데 그게 바로 관악구에 있던 '베이비 박스'입니다. 여러 이유로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넣으면 목사님이 키워주는 뉴스를 보고 이걸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드디어 그 영화가 2022년 <브로커>로 개봉했습니다. 

영화 <브로커>를 보면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과 참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영화 모두 범죄인 가족이 나오고 범죄지만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유사 가족을 이룬다는 점이 참으로 유사합니다. 같은 이야기도 1절만 해야지 반복하면 신선하지 않습니다. 이점이 이 영화의 아쉬운 점입니다. 다만 그 단점을 인정하고서라도 해야 할 이야기가 한국 내 입양 문제를 아주 잘 건드리고 있습니다. 

초반 설정은 좀 보기 좋지는 못합니다. 먼저 성현(송강호 분)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큰 도박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 돈을 갚기 위해서 베이비 박스에서 근무하고 있는 보육원 출신의 고아인 동수(강동원 분)과 함께 베이비 박스에 들어온 아기 중에 부모가 다시 찾아올 일이 없는 아기를 골라서 좋은 양부모에게 인도해 주고 돈을 받는 브로커일을 합니다. 물론 이 일은 불법이자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기를 돈 주고 사고팔면 안 됩니다. 여러 절차를 잘 거치고 검증을 받은 후에 정식 입양을 해야 합니다. 

수년 전에 입양아 학대 사건에 전 국민이 분노를 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에서 입양아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었는데 몰래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보자마자 돈을 받고 아기를 넘긴다고요? 더 황당한 건 이 아기 판매일에 자신의 아기인 우성이를 친부모 소영이 함께 합니다. 

영화 브로커 거래장면

 초반 첫아기 거래 장면은 3명의 주인공 뒤통수를 다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3명 모두에게 정이 안 갔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성현, 동수, 소영 모두에게 서사가 투입됩니다. 성현은 이혼한 유부남으로 아이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게 됩니다. 동수는 보육원에서 자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란 청년입니다. 소영은 거리에서 몸을 팔다가 살인까지 한 미혼모입니다. 

이 중에서 왜 소영에게 살인자라는 딱지까지 붙였는지 좀 이해가 안 갑니다. 또한 이게 영화 흐름에 방해가 될 정도로 과한 설정으로 느껴집니다. 뭐 후반의 서사를 푸는 과정에서 유사 가족애를 이끄는 장치인 건 알겠지만 살인은 쉽게 용납받기 쉽지 않습니다. 그게 죽어 마땅한 인물이라고 해도요. 

영화 브로커 해진

그럼에도 끝까지 웃음을 주고 아픔을 주는 인물은 보육원에서 몰래 승합차에 탄 해진입니다. 해진이 투입되면서 영화의 결이나 이해도가 확 달라집니다. 범죄자 3인방이 갑자기 유사 가족 형태로 변합니다. 그리고 이 유사 가족들의 과거 이야기가 슬며시 나옵니다. 

부정당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위로를 전하다

영화 브로커 소공동지하상가

처음에는 <어느 가족>의 아류작 느낌이자 자기 복제물 같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입양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런 시선은 옅어집니다. 비록 불법이지만 소영과 소영의 아들 우성을 위해서 자기 아이도 아닌데 희생을 하려는 행동들이 참 가슴 아프고 뭉클합니다. 그러나 전작들과 달리 시나리오가 꽤 덜컹거리는 게 많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 영화들이 좋은 점은 우리의 일상을 뜯어서 옮긴 듯한 매끈함이 매력이었는데 좀 작위적인 스토리 진행이 꽤 보입니다. 

영화 브로커 형사

여기에 가장 밉상 캐릭터인 형사 수진(배두나 분)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결말은 산통을 다 깨는 느낌도 듭니다. 그래서 칸에서 <브로커>의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고 하는데 저는 불호입니다. 형사 수진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함정 수사까지 하는 자기도 불법을 저지르면서 범죄인을 잡으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살짝 자기반성을 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수진은 어떻게 보면 자기 실적만 올린 악독한 형사로 느껴집니다. 참 밉게 보이다 보니 채증용 카메라까지 믿게 보이네요. 

멀리서 아기 매매를 하는 불법 장면을 카메라로 담으려면 최소 200mm 이상 고배율 줌이 되는 카메라로 촬영해야죠. 그런데 딱 봐도 캐논 크롭 미러스인 캐논 EOS M50에 광학 줌 번들렌즈 끼고 촬영하고 있네요. 이런 하나하나가 영화의 몰입도를 형성하는데 몰입도를 깨는 설정들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이걸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나요? 형사들이 채증용 카메라로 뭘 쓰는지 잘 알 텐데요. 유명 배우가 카메오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 배우들이 툭툭 튀어나옵니다만 정작 이런 디테일은 놓쳤네요.

이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장면을 공감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수진이라는 형사가 좀 더 깊게 생각했으면 함정수사를 접고 서로에게 최선으로 피해를 줄이고 우성을 위해서 노력하는 결과로 도출할 수 있었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살인자 소영을 이용하네요. 구멍이 꽤 많은 영화입니다만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추천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영화 브로커 대관람차

소영과 동수가 대관람차를 타고 속내를 드러내는 장면은 눈시울을 붉게 만듭니다. 소영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동수의 말. 동수에게 있어 소영은 자신의 엄마입니다. 소영의 마음을 통해서 엄마도 비슷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자체가 위로가 됩니다. 

또 한 장면은 모텔에서 서로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 이 8 글자가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모든 삶은 태워나서 고마워야 합니다. 그건 권리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권리를  싸워서 얻으라고 합니다. 그냥 결과만 보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영화를 보면서 인천의 그 20대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지만 그 엄마의 삶을 우리 사회가 다독이고 다시 보듬어줬으면 하네요.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이유 중에는 이런 입양아와 미혼모와 비혼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에 대한 날 선 시선들이 한몫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우리는 울타리 안의 삶만 정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고 소영과 동수처럼 울타리 밖에 있는 삶은 틀린 삶, 옳지 않은 삶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비록 이 3명의 주인공이 범죄자이지만 평생 범죄자로 살지 않게 할 방법을 마련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방법을 구축하는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걸 보면 이 영화 <브로커>는 비록 시나리오의 아쉬움이나 결말의 불호가 있지만 추천할 수밖에 없네요. 솔직히 이런 유명 감독이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문제점을 다룬 점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저력은 자기비판적인 이 소재를 과감하게 거액의 돈을 들여서 만들 수 있는 자기 비판력이 있는 나라라서 희망이 있다고 느껴지네요. 

너무 늦게 봤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영화 <브로커>였습니다. 

별점 : ★★★☆
40자 평 : 태어나줘서 고마워, 이런 영화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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