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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내 인생 최고의 한국 애니 2002년 작 마리이야기

by 썬도그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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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많은 분야에서 일본을 뛰어넘고 있지만 아직도 뛰어넘지 못하고 영원히 뛰어넘지 못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럼에도 잠시동안 한국 애니도 일본 못지않은 좋은 애니를 만들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 준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2000년대 초 초 중반입니다. 특히 이 애니는 내 인생 최고의 한국 애니로 지금도 노래만 들어도 아련해지고 아득해집니다. 그 애니는 바로 <마리이야기>입니다. 

안시 페스티벌 장편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한국 애니 <마리이야기>

넷플릭스가 2023년 1월 초에 내 최애 한국 애니메이션인 <마리이야기>를 업로드했습니다. 디지털 시대라서 쉽게 많은 영화들을 대여받고 다운로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꽤 많은 영화들이 다운로드 서비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요즘은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가 제공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들도 많습니다. 특히 20년 넘은 오래된 영화일수록 더 다운로드해서 볼 수 없는 확률이 높습니다. 그 마저도 저작권자가 있는 영화들은 싸든 비싸든 돈을 내고 볼 수 있지만 영화사가 제작사가 사라져서 저작권 관리자가 없는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더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다행히도 <마리이야기>는 단품으로든 OTT 서비스로든 볼 수 있는 영화네요.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한 5번 이상은 본 것 같네요. 최근에는 보지 못했는데 넷플릭스에 올라온 김에 오랜만에 다시 봤습니다. 

먼저 이 애니가 가지는 위치부터 소개해야겠네요. 한국은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로봇태권 V도 각종 로봇 만화들은 일본 로봇 만화의 아류작이거나 베낀 애니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애니들이 대체적으로 투박했습니다. 일본 애니 하청국가여서 작화는 그런대로 잘 그렸지만 문제는 스토리들이 조악한 만화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한국 애니의 고질병입니다. 아무래도 일본처럼 애니메이션 영화가 아바타 2를 제치고 1위를 하고 흥행 1위 애니들이 많이 나오는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손익분기점 넘긴 애니가 <마당을 나온 암탉> 정도만 있고 대부분은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제작비 30억, 마케팅비 포함 50억이 들어서 손익 분기점이 150만인데 흥행에 성공해서 220만이 들었던 애니입니다. 그러나 이 <마리이야기>는 무려 제작기간 3년에 똑같이 제작비가 30억이나 들어간 꽤 많은 돈이 들어간 애니지만 전국 관객 54,404명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결과죠.

그러나 이 <마리이야기>는 애니메이터면 꼭 받고 싶은 프랑스 안시 국제 페스티벌에서 장평부문 그랑프리를 받아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전무후무할 겁니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안시 국제 페스티벌에서 한국 애니가 그랑프리를 차지하다뇨. 이 기록은 안타깝게도 앞으로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는 거의 나오지 않고 나와도 흥행과 거리가 멉니다. 만든다고 해도 유아용, 어린이용 애니이지 어른들을 꼬이는 애니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마리는 한 마디도 안 하는 심심한 이야기라는 지적을 많이 받은 <마리이야기>

마리이야기가 시작되면 한 마리의 갈매기가 눈 오는 서울 상공을 날아다닙니다. 그 배경 위로 유희열이 부는 노래 '우리가 사는 곳'이 흐릅니다. 저도 모르게 "넌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오늘을 시작하는지" 를 따라 부르고 있네요. 첫 장면이 꽤 아름답습니다. 하늘에 비행선이 떠 있는데 지금은 없지만 90년대 초에서 중반까지 삼성에서 띄운 비행선이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광고판이었고 이게 꽤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무인기 날아다니는 시대라서 하늘에 뭐 떠 있으면 다 쏴서 맞춰야 하는 시대가 되었네요. 

초반 장면부터 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 애니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다운 장면과 움직임과 구도가 마치 꿈속을 날아다니는 풍경 같습니다. 눈 오는 서울 실제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첫 장면입니다. 노래도 엄청 좋고요. 작화 이야기는 밑에서 길게 하고 스토리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20대 청년이 된 남우(이병헌 목소리)는 전화 한통을 받습니다. 어린 시절 단짝 친구였던 준호(공형진 목소리)가 멀리 떠난다면서 잠시 보자고 합니다. 둘은 단짝 친구였지만 서로 연락은 자주 하지 못했나 봅니다. 연락 한 번 안 한다고 준호가 핀잔을 줍니다. 남우는 영혼이 휑하니 뚫린 듯 살고 있습니다. 준호는 멀리 떠나기 전 집 청소를 하다가 발견했다면서 남우에게 뭔가를 건네줍니다. 영화 초반에는 이게 뭔지 나오지 않습니다만 구슬이나 연애편지 같기도 하지만 그게 무엇이듯 추억이 묻어 있는 물건 같습니다. 그걸 받아 든 남우는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영화 마지막 시퀀스에 추억의 물건이 담깁니다)

주인공은 12살 남우입니다. 바닷가 마을에서 사는 남우는 어린 시절 사고로 아버지를 떠나보냅니다.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남우에게 친구는 요라는 길냥이와 준호밖에 없습니다. 경민이라는 아저씨가 집안 일을 도와주고 엄마를 좋아하는 눈치입니다. 엄마도 싫은 내색은 안 하고요. 하지만 어린 준호에게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공포와 슬픔이 다 가시지 않았습니다. 

남우의 유일한 낙은 준호와 함께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는 것이 낙입니다. 엄마는 경민 아저씨를 좋아하는 듯하고 학교에서도 멍하니 있을 때가 많은 걸 봐서는 현실에 적응을 잘 못하는 듯합니다. 그런 남우에게 환상이 찾아옵니다. 

문방구에서 먼가 반짝이는 구슬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구슬 속에는 마리라는 예쁜 소녀가 살고 있습니다. 고장난 등대 안에서 구슬을 꺼내자 마리가 사는 세상이 열립니다. 

마리이야기의 핵심 공간인 이 환상의 공간은 무슨 공간인지 설명은 없습니다.  마리라는 소녀가 사는 세상인데 마리가 한 마디도 안 합니다. 거대한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다니고 구름과 꽃과 덩굴이 넘치는 환상의 공간입니다. 마치 지브리 애니를 보는 느낌입니다만 설명이 없습니다. 

이런 환상의 공간을 남우 혼자만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죽음을 떠올릴때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등대에 갔는데 등대에 갈 때마다 마리가 있는 환상의 세계와 조우합니다. 그리고 친구인 준호와도 함께 경험하게 되죠. 

이런 환상과의 조우를 <마리이야기>는 설명하려들지 않습니다. 그냥 다 묵음처리합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환상의 장면에서 마리와 대화도 없고 사건 사고도 없는 모습에 심심하다는 평가를 합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마리가 천사의 날개를 펼치고 남우에게 엄마나 누나나 친구의 손길을 내밀고 "소년이여 걱정하지 마! 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다" 식으로 계몽적이고 지시적인 말을 했어야 좀 이해하기 쉬울지 모르겠지만 마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안시에서는 이 수채화 같은 무자극적인 표현이 오히려 유년 시절의 환상, 우리가 잊고 떠나보낸 그 유년의 시절이라면서 <마리이야기>에 그랑프리를 선사합니다. 제가 제 인생의 한국 애니라고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유년 시절의 온기를 시각화 한 애니 <마리이야기>

아버지를 떠나 보낸 남우에게 있어 준호는 친구 이상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준호도 서울로 떠난다고 합니다. 아버지와의 이별도 버거운데 친구의 이별까지 떠안게 되자 남우는 더욱더 외로워집니다. 태풍이 오던 날 준호 아버지와 엄마를 짝사랑하는 듯한 경민 아저씨가 탄 배가 좌초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남우와 준호는 등대에 가서 마리의 기적을 빌어봅니다. 그러던 중 마리의 기적일지 모르겠지만 태풍이 잠잠해지고 준호 아버지와 경민 아저씨는 무사히 귀환합니다. 이야기만 보면 별 내용이 없습니다. 이 <마리이야기>는 남우가 겪은 사춘기를 담았은 성장드라마입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겪는 사춘기를 파스텔톤 영상에 아름다운 노래 위에 올려놓은 잔잔한 성장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아동용 애니도 아니고 성인이 보기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이나 감동하지 대부분은 심심한 애니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애니 톤이 슴슴한 일본 드라마나 영화 톤이고 <8월의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톤입니다. 한국 관객은 까고 부스고 피 나오고 욕 찰지게 하는 단짠 영화를 좋아하고 이 당시에 나온 한국 영화들이 대부분 조폭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흥행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흥행 성적은 너무나도 아쉽고 아쉽습니다. 

생각해 보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기 애니 분위기가 많이 나네요. 
마지막 준호와 헤어지고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손으로 담으면서 하는 독백은 <마리이야기>의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바빠서 자주 떠올리지 못하는 유년 시절의 온기를 남우는 떠올립니다. 생각보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나머지 삶을 사는데 큰 영향을 주고 힘을 주고 지탱하게 합니다. 그 유년 시절의 소중함을 너무나도 예쁘게 잘 담은 애니가 <마리이야기>입니다. 

마리이야기의 작화가 뛰어난 이유는 로토스코핑와 3D를 적극 활용했기 때문

2002년 당시는 몰랐는데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마리이야기>가 뛰어나고 몽환적인 작화를 담을 수 있었던 건 당시로는 혁신적인 애니기법을 많이 사용했네요. 먼저 인물들은 플래시 애니메이션 같은데 움직임이 꽤 자연스럽습니다. 그 이유를 영화 다 보고 스크롤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로토스코핑(Rotoscoping)은 실사 영상을 촬영한 후 실사 영상을 애니랜더링으로 변환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남우 목소리를 류덕환 배우가 했는데 목소리가 좀 아쉬웠습니다. 전문 성우가 아닌 배우가 더빙을 해서 그런지 좀 들떠보이는 점이 아쉬웠는데 당시 어린 류덕환 배우가 로토스코핑으로 연기까지 했네요. 성인 배우들은 연극배우들이 연기를 한 영상에 애니 스킨을 입혔네요. 

배나 자동차나 건물은 3D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걸  3D로 한 건  아니고 2D와  3D를 섞고 인물들은 로토스코핑으로 담았습니다. 파스텔톤이 나게 수 없는 후보정을 했다고 하는데 제작비가 30억이 든 이유를 이제야 알았네요. 이런 노력이 있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이 나올 수 있었죠. 

배경이 되는 마을은 실사 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항구와 바닷가는 경주 감포 해변 마을 풍경은 백련사 근처 마을을 촬영한 후 담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3D 장면들이 꽤 매끈합니다. 여기에 눈송이나 빗줄기 등등은 엄청난 퀄리티의 작화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상상의 공간인 마리가 사는 공간은 또 얼마나 뽀송뽀송한지. 

몇몇 장면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음악 감독 이병우의 아름다운 선율은 세월을 먹고 더 빛을 내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음악 감독 중 하나가 이병우입니다.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들에 엮여서 실망을 많이 줬고 영화음악은 더 이상 안 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기타 선율이나 클래식 음악은 이병우 감독이 참 잘 만듭니다. 이병우 감독의 노래와 음악이 <마리이야기>의 아름다움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네요. 세월이 지나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같은 엄청난 작화의 애니가 나오고 그 애니와 비교하면 마리이야기는 당시는 엄청난 작화였지만 지금 보면 투박한 모습도 꽤 보입니다. 그러나 노래는 오히려 더 빛이 나네요. 

초반 도입부와 엔딩 장면에서 유희열과 성시경의 노래가 나오지만 환상 구간에서 울리는 꿈결같은 음악이 <마리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해 줍니다. 

<마리이야기>는 도시의 먼지와 떼를 가득 이고 사는 도시인이 된 우리들 속에 살아 숨 쉬는 유년 시절의 나를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술에 취해서 유년 시절의 동네를 찾아간 경험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는 애니 <마리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봤지만 여전히 좋네요. 넷플릭스에 찌들어서인지 좀 심심하게 느껴지는 면은 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장면과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은 여전히 좋네요. 

별점 : ★★★★
40자 평 : 유리구슬 굴리던 그 시절 나를 만나게 하는 마법 같은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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