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사진을 그대로 촬영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우리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현대미술 시장에서는 이게 가능합니다.
남의 사진을 베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차용 미술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지만 현대미술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아티스트가 '리차드 프린스'입니다. 왼쪽 사진은 80년대 미국 잡지에 실린 말보로 광고입니다. 잡지 1면을 가득 채우는 말보로 광고로 한 카우보이가 말을 타고 달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양담배가 전면 허용되면서 한국에서도 말보로 피는 사람들 많았습니다. 말보로는 아주 강한 담배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터프한 카우보이 이미지를 넣었네요. 그런데 이 잡지 사진을 그대로 촬영한 후 확대 크롭한 사진이 '리차드 프린스'의 말보로 맨이라는 사진입니다. 남의 사진을 확대 크롭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이걸 자기 사진이라고 주장하면 문제가 발생하죠. 그러나 '리차드 프린스'는 자기 사진이라고 주장했고 심지어 판매를 했습니다.
물론 원저작권자인 광고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가 고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리차드 프린스'는 이런 식으로 계속 작업을 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 말보로 광고 사진을 확대 크롭 한 '리차드 프린스'의 사진은 사진 역사상 가장 비싼 사진 10위에 올랐습니다. 2014년에 판매했는데 한화 무려 49억 원에 판매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브룩실즈의 어린 시절 누드 사진을 그대로 복사 촬영한 'Spiritual America'는 2014년에 52억에 판매했습니다. 이해가 안 가죠. 그런데 '리차드 프린스' 사진이 현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과 맥락에 근거하면 비록 남의 사진을 베낀 사진이지만 '리차드 프린스'라는 작가가 꾸준히 베끼고 광고 사진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메시지를 캐냈다고 판단해서 저작권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걸 차용 미술이고 하나의 장르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무조건 차용 미술로 인정 받는 건 아니고 차용 미술의 공정 이용은 새로운 메시지를 넣어야 합니다.
말보로 광고 사진은 담배 팔기 위한 목적이지 그 안에 어떤 큰 맥락이 없습니다. 그러나 '리차드 프린스'는 냉전 시대에 필요한 히어로 이미지로서의 카우보이를 발견하고 이걸 이용합니다. 강한 미국인의 상징인 카우보이. 이 메시지가 먹혀서 저작권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현대 미술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셀 뒤샹의 샘'과 비슷합니다. 그냥 길거리에서 파는 소변기를 사서 전시공간에 뉘어 놓고 샘이라고 명명한 것과 비슷하죠. 여기서 변기가 주인공이 아닌 샘이라고 새롭게 해석한 뒤샹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남의 사진을 허락 없이 그냥 이용한 것과 그걸로 돈을 버는 것은 몰상식한 일로 보이긴 하고 지금도 저작권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인정 받는지 논란이 많습니다. 이 논란은 오히려 '리차드 프린스' 인기를 끌어올려서 그의 그대로 베낀 사진 작품들은 더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요?
그런데 최근에 비슷하지만 다른 사건이 터졌습니다.
사진작가의 사진을 그대로 베껴서 그린 그림으로 큰 상을 받은 화가
위 사진은 동일한 여자를 담은 사진 같습니다. 그러나 오른쪽 사진은 미국에서 활동중인 Jingna Zhang 사진작가가 2017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왼쪽은 사진이 아니고 2022년 룩셈부르크 정부가 주관하는 전람회에 출품한 룩셈부르크 출신의 미술학도인 '제프 디쉬부르크'가 그린 그림입니다.
누가 봐도 Jingna Zhang의 사진을 보고 그대로 그린 그림이죠. 비록 다른 방향을 보고 있지만 사진 편집 툴로 방향만 바꾸면 됩니다. 누가 봐도 사진을 보고 베낀 그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차용 미술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차드 프린스'는 비록 차용을 했지만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실제로 '리차드 프린스'는 꼴랑 사진 1장만 선보인 게 아닌 많은 사진전 또한 비슷한 카우보이 사진을 함께 전시하면서(그 사진들도 다 베낀 사진이지만) 맥락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단독 그림이고 맥락, 메시지 이런 것 없습니다. 그냥 베낀 것입니다. 이런 건 걸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룩셈부르그 정부가 주관하는 전람회 공모전에서는 이 그림을 선정해서 상금 1,500유로를 줬습니다. 한 205만 원 정도로 상금은 많지 않지만 수상을 했다는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네요.
이런 사실을 알게된 사진작가 Jingna Zhang은 룩셈부르크 법원에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를 합니다.
게다가 이 '제프 디쉬부르크'는 이전에도 다른 사람의 사진을 그대로 보고 그린 그림을 꾸준히 그리고 있습니다.
고소 결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룩셈부르크 법원은 Jingna Zhang의 사진의 포즈가 독창적이지 않다면서 Jingna Zhang의 사진은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립니다.
놀라운 판결이네요. 포즈야 비슷할 수 있습니다. 포즈가 독창적이기 쉽지 않죠. 중요한 건 저 모델이 된 여자분의 얼굴은 표절하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저 모델을 기용한 사람이 Jingna Zhang인데요. 또한 이 그림은 저 모델이 된 분에게 초상권이 있기에 자기 얼굴을 함부로 사용하면 초상권에도 걸립니다.
그런데 룩셈부르크 법원은 엉뚱한 해석을 내놓네요. 포즈가 독창적이지 않다? 아니 사진 저작권 판결하는데 무슨 포즈를 봅니까? 룩셈부르크 법원의 수준을 알 수 있는 판결이거나 판사가 저작권법을 잘 모르는 판사가 아닐까 합니다. 현재 이 '제프 디쉬부르크' 그림은 룩셈부르크에서 6천 유로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에 Jingna Zhang가 판매 중단 및 저작권 법 위반이라고 계속 호소를 하고 있지만 디슈부르크의 변호사는 이 작품은 Jingna Zhang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인정하면서 이건 일반적인 예술의 전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헛소리죠. '리차드 프린스'는 그나마 차용 미술의 핵심인 다른 메시지를 넣는 작업을 했지만 이 디슈부르크는 그마저도 안 했습니다. 또한 '리차드 프린스'는 모든 사람에게 작품을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비싸게 판매되는 것이야 1사람만 인정해주면 되기에 비싸게 판매될 수는 있어도 미술계 전체에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첨예한 대립이 일어나서 결론은 나지 않지만 서로 양보해서 차용 미술의 조건으로 다른 해석, 다른 메시지라는 개념이 달라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디슈부르크는 이것도 없습니다. 이 사건은 룩셈부르크 전체를 욕먹게 할 수 있기에 룩셈부르크 예술계에서 함께 항의해야 합니다. 그래야 룩셈부르크가 저작권법이 없는 해방구로 여겨지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