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만 보고 볼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요즘 영화관람료가 넷플릭스 1달 요금과 동일해서 잘못 고르면 더 큰 후회를 하게 됩니다. 점점 영화관 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고 이러다 영화관들이 많이 문을 닫는 것은 아니지 하는 걱정도 듭니다. 세상은 코로나를 벗어나고 있지만 영화는 제작하는데 1년 가까이 걸리기에 영화관에 걸리는 영화들은 많지 않네요.
이번 주도 볼만한 영화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끄는 영화가 <올빼미>입니다. 그런데 예고편만 보고도 감이 안 안 오네요. 먼저 사극입니다. 사극도 잘 만들면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오지만 역사를 잘못 다루면 욕을 먹기 쉽습니다. 그런데 호평이 꽤 들려서 선택했고 실제로도 호평처럼 영화가 꽤 잘 만들어진 영화네요. 그리고 실제 역사와 가상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잘 봉합해서 이음새가 없이 매끄럽게 아주 잘 만든 영화 <올빼미>였습니다.
영화 <올빼미>를 보기 위한 기초 역사 지식
영화 <올빼미>는 인조와 소현세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조는 만주 지방에서 새롭게 뜬 청나라라는 오랑캐들이 쳐들어오자 남한산성으로 도망갔다가 삼전도에서 이마가 찢어지도록 머리를 조아렸던 왕입니다. 인조는 무너져가는 명나라가 형님 국가라고 생각했던 숭명배청의 정신으로 버티고 버텼지만 청나라의 잔혹한 살상과 위협에 항복을 합니다.
조선의 역사 중에 임진왜란과 함께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를 만든 왕이기도 했죠. 수많은 조선인들이 청나라의 당시 수도였던 선양에서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청나라는 인조의 항복을 받으면서 매년 공물을 받고 소현세자라는 장남과 소현세자의 동생 봉림대군을 청의 수도인 선양으로 데리고 갑니다.
청나라는 인조의 두 아들을 인실 삼아서 조선이 말을 안 들으면 협박을 하기 위해서 왕의 두 아들을 자신들의 수도에 머물게 합니다. 그렇게 8년 동안 청나에 머물던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천주교 선교사들의 뛰어난 서양 문물과 지식을 습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선에 소개해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수 많은 서양 기술과 문물을 가지고 8년 만에 조선으로 귀향합니다.
그러나 인조는 소현세자의 귀국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소현세자가 너무 청나라의 물이 들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인조는 청나라에 스파이를 보내서 소현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는데 소현세자가 청나라 고위층과 장수들과 친하게 지내고 청나라 문물을 배우는 모습에 크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비록 삼전도에서 이마에 피가 나면서 머리를 청나라에 조아렸지만 명나라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던 인조는 청나라 사람이 다 된 듯한 소현세자를 싫어했습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소현세자가 귀국하던 시기에는 명나라는 북경까지 뺏기면서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런 국제정세를 모르고 인조는 오로지 명나라만 외쳤죠.
그런데 소현세자가 귀국 2달 만에 학질로 사망합니다. 학질은 지금으로 따지면 말라리아입니다. 말라리아는 잘 치료만 하면 금방 낫는 병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은 쉽게 나을 수 있는 치명률이 낮은 병입니다. 게다가 조선 최고의 치료사들인 어의들이 있어서 학질로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적 사실로 아는 분들도 많겠지만 이 밑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영화 보는데 스포가 될 수 있어서 보실 분은 여기서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길 바랍니다.
그럼 읽으실 분들을 위해서 더 말해보겠습니다. 실제 사관에 보면 소현세자는 얼굴의 7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죽었고 피부가 보라색으로 변했습니다. 영락없는 독살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그것도 장남이 죽었는데 아버지 인조의 태도가 참 이상합니다.
먼저 왕족이 죽었음에도 사대부처럼 3일장을 치르게 하고 1년 내내 상복을 입어야 하는데 신하들에게 3개월만 입으라고 하고 본인은 상복을 무려 7일 만에 벗습니다. 또한 사인을 밝혀야 함에도 염습 과정을 종친 3명만 불러서 염을 하고 끝냅니다.
"의관은 신중하지 못한 점이 없으니 국문할 필요가 없다"
인조 23년 4월 27일
인조와 소현세자는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인조는 친명을 외치는데 소현세자는 청나라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죠.
그리고 청나라는 소현세자를 왕으로 추대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조와 아들 사이에 왕위 계승에 대한 갈등도 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소현세자는 귀국 2개월 만에 학질로 사망합니다. 이 사망에 많은 이야기들이 돌았습니다. 그 이야기 중 하나가 독살입니다. 실제로 많은 역사 연구자들이 아마도 독살로 죽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주맹증 주인공을 섞어서 조선 미스터리를 담은 영화 <올빼미>
조선 왕조의 미스터리 중 최고의 미스테리 중 하나가 소현세자의 죽음입니다. 누가 왜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에 대해서 지금도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심증상 많은 부분이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소현세자 죽음이라는 미스터리를 주맹증이 있는 침술사인 경수(류준열 분)라는 가상 인물을 넣어서 풀어낸 영화가 <올빼미>입니다.
경수는 심장병이 있는 어린 동생이 있는 주맹증 침술사입니다. 청력이 무척 뛰어난 경수는 빛이 있으면 앞이 보이지 않지만 빛이 사라진 어두운 곳에서는 어렴풋이 앞을 볼 수 있습니다. 상당히 독특한 설정이죠. 영화는 이 독특한 설정을 아주 명민하게 잘 이용합니다.
영화 <올빼미>의 줄거리는 경수로부터 시작됩니다. 경수는 아픈 동생을 위해서 궁궐에서 나온 어의 앞에서 뛰어난 침술 실력을 보여주고 어의가 됩니다. 의관의 대빵인 이형익(최무성 분)의 손을 잡고 궁궐의 아픈 사람들을 뛰어난 침술로 병을 호전하고 낫게 합니다. 경수는 맹인으로 궁에 들어왔지만 불이 꺼지는 밤이 되면 시력을 회복해서 다양한 정보를 얻고 동생에게 보낼 편지까지 씁니다.
이런 사실을 소현세자가 알아챕니다. 불이 꺼진 상태에서 옆에 있던 침을 자연스럽게 드는 경수를 보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합니다. 이에 경수는 자신의 주맹증을 고백합니다. 소현세자는 이런 경수에게 화를 내지 않고 동생에게 쓴 편지를 제대로 쓰라면서 청나라에서 가져온 확대경을 선물로 줍니다.
소현세자는 인조(유해진 분)와 갈등을 일으킵니다. 세자가 8년 만에 청나라에서 귀국을 했으면 아버지가 나와봐야 하는데 나오지도 않습니다. 외척 세력 품에 놀아나고 있는 인조. 이런 인조를 영의정(조성하 분)이 반대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이 영의정은 실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조반정을 일으켜서 인조를 왕으로 세운 세력으로 등장하는데 당시 영의정 김자점과 김류를 섞어 놓은 캐릭터입니다.
점점 이상해지는 인조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이 영의정입니다. 이런 복잡 미묘한 공기 속에서 소현세자가 사망합니다. 그 사망의 현장을 경수가 봅니다. 그날도 이형익 어의를 따라서 소현세자 병을 치료하러 갔다가 잠시 촛불이 꺼진 사이에 눈앞에 믿기지 않은 광경을 봅니다. 소현세자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딱 봐도 독살입니다. 그리고 그 독살을 이형익이 침 끝에 독극물을 묻혀서 죽이고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러나 본 걸 봤다고 말하면 죽을 수 있기에 경수는 침묵합니다. 다만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던 소현세자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불이 꺼진 침전에 들어갔다가 죽은 소현세자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형익이 흘리고 간 침을 들고 도망치다가 다리에 상처를 입습니다.
궁궐은 발칵 뒤집혔고 피를 흘리는 사람을 색출하라는 어명이 떨어집니다. 경수는 이 사실을 소현세자의 아내 강빈(조윤서 분)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독살을 지시한 사람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혼돈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조선 왕실의 비극을 뛰어난 스토리로 재조명한 영화 <올빼미>
큰 기대를 안 하고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고 봐서 그런지 영화가 꽤 재미있습니다. 뭐 역사적 사실을 몰라도 중간되면 누가 범인인지 눈치를 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조선 왕실의 비극을 올빼미 같은 주맹증 걸린 경수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관객은 경수의 눈을 통해서 조선 왕실의 비극을 목도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의 맥락을 댕강 잘라서 일부문만 보여주기에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전체 기록을 넓게 보면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만 영화는 그런 이유를 자세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갈등을 너무 짧고 간결하게 보여줍니다. 이점은 아쉽습니다.
그러나 주맹증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서 스릴러로 담은 형식미가 좋습니다. 특히 어린 왕세손을 둘러업고 어두운 밤을 달려서 문을 열고 나가니 햇빛이 뜹니다. 보통 주인공이 해방되고 사건이 해결되면 나오는 장면인데 영화에서는 이걸 반대로 사용합니다. 햇빛이 뜨자 주맹증인 경수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에 궁궐 내 암투와 권력의 추악함이 영화 보는 내내 흥미를 끌어올립니다.
또한 도망치는 경수가 걸릴 듯 말 듯한 스릴도 아주 좋습니다. 여기에 주연인 류준열의 뛰어난 연기가 영화의 재미를 더 확실하게 해 줍니다. 류준열이 연기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 빛이 더 강해 지네요. 류준열은 정말 대체 불가 배우가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영화 마무리 장면은 통쾌하긴 한데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서 상상 속 장면처럼 이질감이 드네요. 그럼에도 그 장면 없었으면 상쾌함은 없었을 겁니다.
안태진 감독의 입봉작인데 꽤 영화를 잘 만드네요. 아! 빼먹을 뻔했는데 영화 <올빼미>는 사운드가 무척 중요합니다. 맹인이라는 설정으로 청각에 의존하는 일이 많긴 합니다만 이걸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영화가 사운드가 날이 팽팽한 활시위처럼 긴장감을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여기에 음악도 묵직한 타악기 소리가 사람 마음을 쫄깃하게 하네요. 사운드가 좋은 영화관에서 보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꽤 볼만한 가족 영화입니다. 오랜만에 돈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드는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보기 좋습니다.
별점 : ★★★☆
40자 평 : 역사적 사실과 가상을 잘 섞은 뛰어난 조선 미스터리 팩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