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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발견한 것들

by 썬도그 202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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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은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입니다. 이 3 대장이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님들이죠. 그리고 사생활 때문에 높은 능력에도 폄하되고 있는 감독이 김기덕과 홍상수 감독입니다. 홍상수 감독은 지금도 김민희 배우와의 스캔들 때문에 한국에서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화적 재능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들의 특징과 공통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발견한 것들
생활의 발견 포스터

한국 영화 역사속에서 유의미한 기점을 만든 영화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로 별 사건 사고 없는 내용으로 두 남녀의 이야기만 담다가 끝납니다. 그냥 일상 기록물 같아서 이게 영화야 다큐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이 형식을 이어받은 감독이 홍상수 감독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매번 비슷비슷하죠. 식자층을 조롱하고 비웃고 우리 안의 이율배반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을 조롱하듯 그리고 담담학 담으면서 우리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논리적이지 못하고 자신의 내 뱉은 말과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죠. 다만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합니다. 이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은 조금씩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니까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비슷한 형식이 대부분이죠. 형식은 플래시백이 없이 수일에서 수주 간의 짧은 시간 동안 사건 사고 없는 일상을 기록한 듯한 영화를 만듭니다. 그리고 롱테이크가 엄청 많습니다. 여기에 같은 대사, 같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차이가 발생한 틈을 통해서 많은 의미를 담습니다. 그리고 욕망을 꺼내게 하는 마법의 병인 녹색 소주병이 많이 나부낍니다. 

또한 요즘 작품은 시나리오와 제목 없이 제작을 시작하고 아침에 홍상수 감독이 직접 그날 촬영 분량의 시나리오를 쓰고 그걸 영화로 만듭니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 연출을 하는 감독들이 꽤 있습니다. '기타노 다카시' 감독도 즉흥 시나리오로 영화로 만듭니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그날그날 쓰게 되면 즉흥에서 발생하는 우연성이 크게 가미됩니다. 이게 오히려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만듭니다. 

우리가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의 계획대로 움직이지만 계획 중 많은 계획이 내 바람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중간에 일이 터져서 일정이 연기되고 갑작스러운 만남과 연락으로 일상이 흔들거리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기쁨을 맞기도 합니다. 즉흥적으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던져주지만 영화 촬영하면서도 배우들의 즉흥 연기까지 그대로 담기에 홍상수 감독 영화들은 어렵게 보면 어렵게 볼 수 있지만 보는 데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보다가 피식피식 웃게 됩니다. 마치 내 모습을 내가 보는 느낌이 드니까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힘은 바로 이 즉흥을 기반으로 한 우연 기반 일상기록 영화가 주는 편안함 속에서 피어나는 날카로운 비판이 아닐까 합니다. 보면서 피식피식 웃다가 다 보고 나면 얼굴이 빨개지는 영화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 제목 <생활의 발견>은 홍상수 감독 영화를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해요.

두 여자를 통해 본 속물근성의 경수를 담은 <생활의 발견>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발견한 것들

연극계에서는 잘 나가던 경수(김상경 분)는 선배인 감독만 믿고 영화에 출연했다가 흥행에 실패합니다. 하지만 경수는 회사에 찾아가서 출연료를 받아갑니다. 선배는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집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수는 그 얼마 안 되는 돈을 들고 친구가 있는 글 쓰는 선배가 있는 춘천으로 갑니다. 

경수는 한량입니다. 그냥 바람 따라 흘러다니는 존재입니다. 춘천에서 경수 팬이라고 하는 명숙(예지원 분)을 만납니다. 명숙은 선배가 좋아하는 여자이지만 눈치 없는 경수는 명숙과 진한 하룻밤을 보냅니다. 지금은 영화관에서 정사 장면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2번의 격렬한 정사 장면이 있습니다. 설렁설렁 보다가 헙 소리가 날 정도로 강렬하네요.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경수에게 명숙은 추파를 계속 던지고 사랑을 말하지만 경수는 명숙이 그냥 원나잇 상대였을 뿐입니다. 그런 경수를 자극하기 위해서 선배와 잠자리 전에 전화를 걸어서 경수를 자극합니다. 이에 경수는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라고 받아칩니다. 

그렇게 경수는 춘천을 떠나서 경주로 향합니다. 경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선영(추상미 분)을 만납니다. 선영은 경수를 아는체 합니다. 연극을 봤다면서 응원까지 하죠. 경수는 선영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선영을 몰래 뒤따라서 집까지 알아냅니다. 여기서 놀라운 장면이 나오는데 선영의 집 앞에서 선영을 불러서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불러내죠. 

온 식구가 나와서 누구냐고 무슨 관계냐고 묻지만 잠시 이야기를 할 게 있다고만 하고 불러냅니다. 그리고 또 소주를 마십니다. 그리고 둘은 잠자리를 합니다. 선영은 유부녀입니다. 그걸 알지만 경수는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을 춘천에서 오리배 타다가 우연히 봤는데 외도를 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생활의 발견

선영은 중학교 때 불량배들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경수 이야기를 합니다. 중학교 시절의 인연을 꺼내가 경수가 살짝 당혹해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경수는 다짜고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유부녀인 선영과 야반도주라고 꿈을 꾸는 것일까요? 두 사람은 미래를 점쳐보기 위해서 점집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선영이 오길 기다리는데 큰 비가 내립니다. 

생활의 발견에서 발견한 것들 

1. 우리 안의 속물 근성

생활의 발견

어떻게 해보려고~~~ 라는 말이 있듯이 경수는 여자 꼬시기가 취미인듯한 인물입니다. 명숙과 선영과 잠자리를 자는 과정이 우리들의 속물근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바람둥이냐는 선배의 말에 그런 적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는 행동은 바람둥이입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팬이라는 명숙과 유부녀임을 알고도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은 바람둥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죠. 가장 웃겼던 장면은 경주에서 혼자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다가 옆 테이블에 있는 남녀 커플을 지켜보다가 여자의 다리를 몰래 훔쳐보다가 남자에게 걸립니다. 

이때의 경수의 비굴한 모습 보면서 살며시 웃게 됩니다. 남자들의 변명이지만 남자는 시각적인 동물이라서 몰래 훔쳐보다가 걸리자 어색하게 미안하다가 싸움 직전까지 갈 뻔합니다. 이후에도 경주에서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선영의 남편을 선영의 집 앞에서 보자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라는 외국인 행세를 합니다. 보다가 빵 터져네요. 이 지질한 경수는 남편에게 복수하려는지 식당에서 종이와 매직팬을 빌려서 글을 써서 선영의 집 앞에 놓습니다. 

당신의 위선과 기만과 비겁을 심심하게 고발한다. 
당신의 이름과 직업과 겉모습이 당신이 아님을 눈치챈 당신의 처가 당신 아닌
다른 남자에게 쓴 편지를 부칩니다

그리고 이 글 밑에 선영이 경수에게 호텔 방에 남겨둔 메모를 붙여 놓습니다. 
이 글은 춘천에서 오리배를 타다 라이터를 빌리던 남편을 기억하는 경수가 남편의 외도를 비난하는 대자보이죠. 
그런데 이 글은 경수 본인에 대입해도 딱 들어맞습니다. 이런 걸 우리는 사자성어로 내로남불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내로남불이 참 많죠. 경중의 차이일 뿐 우리 안의 속물근성 때문에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참 많이 합니다. 이외에도 자본주의에 염증을 느껴서 100살까지 살다가 굶어 죽은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선영에게 전해주려고 선영을 만나러 왔다고 둘러댑니다. 경수는 결코 스콧 니어링의 삶과 닮지 않았고 그냥 자신을 치장하려고 사용합니다. 

위선적인 경수를 보는 재미가 솔솔 합니다. 그리고 그 위선 속에서 나와 우리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속물은 경수만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남자인 경수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명숙이나 유부녀인 선영이 경수와 잠자리를 하는 것도 속물의 한 단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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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복 속에서 발견하는 차이

생활의 발견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반복되는 대사와 장면과 상황이 많습니다. 그 반복이 똑같은 것은 아니고 살짝 차이를 둡니다. 그 차이는 인물의 차이, 상황의 차이 그리고 장소의 차이에서 나오는 차이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북촌방향>의 술자리 장면이 그렇습니다. 

영화가 실패하자 제작사가 어려운 걸 알면서도 출연료를 받아가는 경수에게 선배는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경수는 이 말을 경수를 자극하려고 전화를 한 명숙에게 똑같이 돌려줍니다.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 이런 행동은 또 있습니다. 술 취하면 건들건들 몸을 움직이는 선배의 행동을 선영과의 술자리에서 하는 모습.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게 악인이건 선인이건 상관없이 내가 경험하고 목격한 것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게 되죠. 그리고 그걸 따라 합니다. 

가장 흥미로운 반복은 쪽지입니다. 
경수를 좋아하는 명숙이 자신의 사진을 주면서 뒤에 메모를 남깁니다. 
"내 안의 당신. 당신 안의 나"

그리고 경수가 쫓아다니는 선영도 호텔방에 메모를 남깁니다
"당신 속의 나. 내 속의 당신"

두 여자를 통해서 경수의 태도와 두 여자의 동일성 등등 상당히 생각할 것을 많이 제공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Arvo Pärt의 Spiegel Im Spiegel(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곡 제목이 그냥 골라진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서 나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점을 직시하는데 반해 경수 같은 한량은 잘생겼네라고 할 뿐입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두 여자에게 비슷한 메모를 봤으면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지만 그냥 흘려버립니다. 오히려 경수는 명숙에게 받은 사진은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줍니다. 명숙에 대한 경수의 마음을 담은 장면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메모의 선영의 메모를 고이 간직했냐? 아니죠. 선영의 남편과 선영을 욕보이려는 용도로 활용합니다. 

보다 보면 상당히 찌질하고 못난 경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목적 지향의 경수에게 있어 여자는 목적지이지만 동시에 경유지 일 뿐입니다. 이런 경수의 사랑한다는 말을 믿기 쉽지 않습니다.  

생활의 발견

이런 경수를 벌하는 건 비입니다. 비 따귀를 맞는 느낌의 마지막 장면은 속이 다 후련하네요. 우리 주변에 경수 같은 친구들 꼭 1명씩 있지 않을까 하네요. 물론 내가 경수일 수도 있고요. 

3. 춘천과 경주와 꽤 질 좋은 표현력

이 영화 <생활의 발견>은 시네마서비스에서 배급한 영화로 당시만 해도 제작비가 꽤 들였는지 영화 표현력이 무척 좋습니다. 홍상수 영화들의 특징은 제작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투박합니다. 만듦새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딱 봐도 저예산 느낌이 강합니다. 

영화 <생활의 발견>은 전반 춘천, 후반 경주라는 2개의 공간, 2명의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적 배경인 춘천과 경주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경주는 한 5년 전에 가봤는데 능을 잘 관리하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능 위에서 스노보드 타면 전국구 스타가 될 정도로 시민 빌런 취급을 받습니다만 영화에서 경수나 아이들은 거대한 고분 위에 올라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잘 관리가 되지 않는 경주의 능을 보면서 2000년대 초 한국 풍경도 살짝 담기네요. 

춘천은 아는 사람이 있는 도시입니다. 글 쓰는 선배가 사는 곳으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망나니 짓을 하면 선배 얼굴에 먹칠을 하죠. 반면 훌쩍 떠난 경주는 경수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된 도시이죠. 망나니 짓을 해도 그 피해가 주변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감한 행동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영의 집까지 찾아간 것이 아닐까 해요. 만약 경수가 유부녀 집 앞에서 추태를 부렸다고 동네에 알려지면 큰일이지만 경주는 경수를 모릅니다. 

그런 익명성의 도시에서 역공이 들어옵니다. 그냥 얼굴이 예뻐서 좋아한 선영이 오히려 경수를 중학교 때 봤다고 합니다. 
이에 경수는 당혹해하죠. 

청평사로 가는 배에서 선배는 경수에게 당 태종 이야기를 합니다. 
당 태종에게는 평양공주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이 평양공주를 한 총각이 너무 좋아해서 상사병이 걸리자 당 태종이 죽여 버립니다. 총각은 뱀으로 환생해서 평양공주를 칭칭 감아 버립니다. 이 뱀을 풀려면 청평사에 가야 한다고 합니다. 

경수는 자신을 감는 뱀 같은 명숙을 피해서 경주로 갔다가 뱀이 되어서 선영을 감습니다. 그리고 점쟁이의 혼지검을 받습니다. 영화 <생활의 발견>은 우리들의 일상 같은 남녀 사이의 생활을 통해서 우리 안의 속물근성을 잘 투영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홍상수 영화답게 누군가에게는 뭔 소리야? 재미없다고 느껴지지만 홍상수 감독 영화의 맛을 잘 아는 분들에게는 꽤 재미있는 초기 작품입니다. 전 그럼 다음 작품인 극장전을 보러 가야겠네요.

지금 넷플릭스에 홍상수 감독 영화들이 많이 공개되어 있으니 천천히 펼쳐보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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