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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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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의 원형인 1967년작 안개는 숨겨진 명작영화

썬도그 2022. 6. 2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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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이번 주에 개봉합니다. 마침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인 문화가 있는 날이라서 오후 5~9시 사이에 관람하면 7천 원에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 <헤어질 결심>에는 정훈희의 60년대 노래 '안개'가 메인 음악으로 나온다고 하죠. 그리고 이 노래는 1967년 김수용 감독이 연출하고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안개>와 주제곡이자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본 분들이 영화 <안개>와 영화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소리가 있어서 냉큼 봤습니다. 영화 안개는 한국영상자료원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영화 안개'로 검색하면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상영시간은 1시간 20분으로 아주 짧습니다. 

김수용 감독의 대표작이자 무진기행의 김승옥이 시나리오를 맡은 영화 안개

1960년대는 문예영화들이 많이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김수용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1963년에 연출한 <굴비>가 해외영화제에 출품하려고 했는데 일본이나 프랑스 영화와 비슷하다는 소리에 출품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김수용 감독은 빈약한 시나리오와 함께 표절 시비를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당시에 나와 있던 소설을 영화로 만듭니다. 이게 바로 문학 작품을 영화로 만든 <문예영화>의 시작이었고 <문예영화> 잘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한 김수용 감독의 시작이었습니다.

영화 <안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소설과 영화에 영향을 준 '무진기행'이라는 단편을 쓴 김승옥이 영화 시나리오를 맡았습니다. 따라서 영화 <안개>는 '무진기행'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병역기피자였던 윤기준 출세 후 고향에 돌아오다

무진 출신인 윤기준(신성일 분)은 현재 운전기사가 딸린 제약회사 상무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로 때문인지 도시의 삶에 질려 버렸는지 점점 마음이 메말라 갑니다. 이를 알아챈 부인은 윤기준에게 어머니 산소라도 다녀오라고 휴가를 줍니다. 아내가 상전인 이유는 촌구석에 있던 윤기준을 서울로 끌어올린 것이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제약회사 사장 딸로 과부였습니다. 이런 과부가 윤기준을 서울 도련님으로 만들어 줍니다. 어떻게 보면 윤기준은 사랑해서 아내와 결혼했다기 보다는 무진의 안갯속 같은 보이지 않은 미래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돈 많은 마나님이라는 동아줄을 타고 무진을 탈출했습니다. 

무진은 병역기피자였습니다. 친구들이 전장터에서 죽었다는 전사 소식을 들었음에도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는 전형적인 소심을 넘어서 무능하고 자기 목숨만 생각하는 속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윤기준이 금의환향을 합니다. 

무진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학교 후배인 박군은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착 날 밤 중학교 동창인 조한수(이낙훈 분)를 오랜만에 만납니다. 조한수는 대학을 가보지 못했지만 고등고시를 패스해서 세무서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중학 동창 조한수 집에 갔더니 처음 보는 여자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하인숙(윤정희 분)이 남자들과 함께 술도 마시고 고스톱까지 칩니다. 보통 남자들 노는데 여자가 끼지 않는데 이런 술자리에 끼는 자체가 생경스럽습니다. 게다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분이 통속적인 가요를 부릅니다.

말끝마다 대학 출신임을 내세우지만 남자들이 노래를 요청하면 빼지 않고 부르는 모습! 딱 봐도 감이 오죠. 전형적인 속물입니다. 가슴에 거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드러내지 않는 모습은 마치 무진의 유일한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안개와 닮았습니다. 

인숙의 속물스러움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기준

하인숙은 속물입니다. 술자리가 있던 날 인숙은 안개가 가득한 밤길을 윤기준과 함께 걷습니다. 윤기준이 성악과 출신이 통속 가요를 부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자 인숙은 속마음을 내비칩니다. 자신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싫다면서 술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싸잡아서 욕합니다. 뒷담화 오지게 때립니다. 
이에 기준은 안 가면 되잖아요라고 뼈 때리는 말을 하니 인숙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심심해서요"

이해가 안 갈 듯 하지만 이해가 갑니다. 지금도 지방 사는 사람들은 밤 8시만 되면 상가 문을 닫고 잠자리에 들거나 개인 활동을 합니다. 수년 전에 지방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서울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오후 9시에 술을 사러 나갔다가 상점들이 다 불이 꺼져 있어서 놀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방에서 살 궁리를 하고 있는데 서울과 달리 이동도 불편하고 생활 편의시설이나 불편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전 그런 것이 오히려 좋고 조용해서 미칠 지경인 상태가 좋습니다만 그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죠.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있는데 이는 일자리 때문이 크지만 생활 편의 때문도 클 겁니다. 다른 점은 서울에 올라가서 정착하는 자체가 성공한 삶이라는 6~80년대 시선과 달리 요즘은 서울 산다고 누구 하나 우러러 보지 않습니다. 인숙은 서울에 살고 싶습니다. 안개만 가득하고 볼 것도 살 것도 막막한 해변가 도시인 무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바닷가 마을이지만 어촌이 아닌 볼품 없는 고향 무진

무진기행의 무진은 가상의 공간입니다. 지도에 무진이라는 곳은 없습니다. 다만 영화나 소설에서 그리는 무진은 순천 근처의 어느 작은 갯마을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순천을 무진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영화를 보다 보면 무진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진에 대한 원망과 혐오가 가득합니다. 무조건 무진을 떠나야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시선을 보이죠. 이 모습은 신기하게도 두 주인공에게서 동일하게 보입니다.

20대 윤기준은 병역기피자라는 범법자이지만 그걸 안개만 가득한 무진 탓을 합니다. 좀 못난 인간이죠. 그래서 제약회사 딸인 과부랑 결혼했겠죠. 속물 그 자체죠. 그러면서 고향으로 내려와서는 서울에서 성공해서 돌아온 모습을 하죠. 이 모습에 또 하나의 속물인 하인숙이 달라붙습니다. 

서울로 데려다 달라는 하인숙에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는 윤기준

하인숙은 왜 무진을 떠나고 싶어하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만 이 당시 서울은 서울에 올라가서 정착하는 자체가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서울 냄새나는 유부남 윤기준 옆을 맴돕니다. 이에 기준도 인숙을 서울에 정착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갈 곳 없고 볼 것 없고 미래도 없어 보이는 무진을 탈출하려는 인숙은 갑자기 서울에 가지 않겠다면서 노래 안개를 부릅니다. 왜 갑자기 인숙은 서울에 가지 않겠다고 했을까요? 그러나 기준은 인숙이 그런 말을 해도 귓등으로 듣고 자기가 가게 해주겠다는 서울이라는 권력에 취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깨닫게 되죠. 인숙이 과거의 자신이라는 것을요. 

자신도 속물 근성 덕분에 부잣집 과부를 잡았고 지금 인숙이 자신을 잡으려고 합니다. 이런 자기혐오와 속물근성이 순천만을 휩싸는 안갯속에 펼쳐집니다. 

드러내는 모습 속에 감쳐준 추악한 욕망을 안개 속으로 잘 담은 영화 <안개>

인숙이 왜 갑자기 서울에 가지 않겠다고 했는지와 지금으로 치면 너무 문어체적인 내레이션의 남발 등은 영화 <안개>의 아쉬움이지만 시종일관 흐르는 노래 안개라는 테마곡과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는 우리 마음속 속물근성과 욕망과 자기혐오를 아주 잘 담았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해요. 앞으로는 웃지만 바로 뒤돌아서 험담을 하는 가면 쓴 삶을 사는 곳이요. 

실제 그렇죠. 숨길 건 숨기고 보여줄 건 보여주면서 거짓이 일상이 된 삶을 살아야 하는 도시인들의 삶. 반면 영화 속에서도 보이지만 촌로들과 농촌 아이들의 거짓 없는 표정과 말들이 인상 깊습니다. 특히 무진 세무서장인 동창 조한수의 직설적인 말은 윤기준과 달리 자신을 위장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비록 두 사람 모두 속물일지라도요. 

농촌의 비루함 속에서 도시인의 비열함을 잘 담은 영화 <안개>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농촌의 비루함 속에서 도시인의 비열함을 잘 담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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