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고 천박하죠? 그러나 애플TV+의 파친코 7화까지 보고 난 후에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준 애플에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보답으로 애플 아이폰을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IT기기 리뷰를 많이 하고 좋아하지만 애플 아이폰을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보고 구매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전에도 카메라가 너무 좋아서 살 생각이 좀 있었지만 드라마 파친코를 보고 확신이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애플!
세상 모든 이방인들을 위한 진혼곡 같은 드라마 파친코
드라마 파친코의 인기는 제가 설명 안 해도 많은 언론사와 유튜브가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미 해외언론에서는 호평 일색입니다. 콧대 높은 프랑스 언론들도 칭찬하는 이유는 직접 보시면 압니다. 각자 평가와 시선은 다를 겁니다만 전 이 파친코가 선자와 한수를 통해서 본 이방인들을 향한 진혼곡 같았습니다.
일본 제국의 악랄함을 담은 드라마로 볼 수도 있고 통쾌해하지만 그걸 걷어내고 보면 왜 이 드라마가 전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과 눈물샘을 자극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들은 이방인들의 후손입니다. 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도 이방인이지만 시골에 살다가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도 이방인이죠. 저도 이방인의 자식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시골에 살다가 젊은 시절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서울 살이의 서러움을 가끔 말씀하셨지만 서울에서 태어난 저는 그걸 잘 몰랐습니다. 다만 시골에서 전학을 온 친구들을 통해서 이방인에 대한 스스로의 결계를 잠시 느낄 뿐이었죠. 반대로 제가 지방으로 이사를 간다면 텃새를 느끼면서 이방인의 서러움 또는 거리감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드라마 파친코는 장애인과 결혼을 한 선자 어머니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선자(윤여정 분)와 선자 아들, 선자 손주 솔로몬의 이야기를 통해서 굴곡이 심한 이방인들의 정착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방인들의 정착과정에서의 울분과 서러움은 이방인이 아닌 사람도 이방인인 사람도 큰 공감과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네요.
아래 글들은 본의 아니게 스포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다 알고 봐도 좋은 드라마지만 혹시나 파친코를 볼 예정인 분들은 스포성 정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볼까 말까 하는 분들은 알고 봐도 좋습니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선자
우리는 이방인하면 어떻게 대할까요? 낯선 곳에 와서 떨리는 몸을 보듬어 줄까요? 아닐 겁니다. 대부분은 텃새라고 하는 배척으로 시작하죠. 그러다 서서히 주고받고 하면서 정이 들고 텃새를 내려놓고 우리가 됩니다. 전형적인 관계 맺기 과정입니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동화처럼 끝나는 건 아닙니다.
한국에 사는 이방인들을 우리는 편견어린 시선으로 무조건 배척하는 태도들도 참 많고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내 준거집단이 아니면 다 나쁜 놈들이라는 시선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선자는 부산 영도에서 하숙을 치는 집안 딸로 태어납니다. 하숙집을 운영하니 이방인들이 자주 들락거립니다. 선자는 하숙하는 아저씨의 생선값을 제대로 주지 않는 텃새쟁이에게 똑 부러지는 말로 제 값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나라 잃은 서글픔을 술자리에서 말했다가 일본 순사에게 고자질을 한 걸 알게 되자 떠나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죠. 어떻게 보면 모질어 보일지 몰라도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이별이었으니까요.
힘 있는 이방인 한수
드라마 파친코는 선자를 축으로 돌아갑니다. 선자에게 미국물, 일본물 먹은 힘 있는 생선 거래상인 한수가 다가옵니다. 한수는 일본에서 살다온 자이니치로 셈이 빠른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계산해서 자신에게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 판단하는 판단력이 좋습니다.
이 한수가 선자를 지켜보다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면서 더 큰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선자는 그렇게 한수의 아이를 임신합니다. 그러나 한수는 본처가 있습니다. 한수는 선자를 내치지는 않았지만 선자는 스스로 첩의 삶을 거부합니다.
이방인을 품은 선자와 선자 어머니
선자와 선자 어머니는 위험한 걸 알면서도 이방인들을 내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일본 순사에 고자질을 했지만 일제 비판을 술김에 토로한 사람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하숙집은 이방인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라서 그런지 뛰어난 포용력을 지녔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키워내는 거대한 어머니 같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선자 어머니의 그 넒은 품을 선자도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 수업을 하는 전도사를 극진히 대접합니다.
미혼모 선자를 품은 이방인 이삭
격동의 시대는 사람들은 전쟁, 가뭄, 기아, 종교 탄압 등의 수많은 이유로 이민을 갑니다. 이민자들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이방인 취급을 받습니다. 미혼모가 된 선자는 어머니랑 함께 웁니다. 선자는 혼자 키워갈 생각이지만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선자 가족의 보답 때문인지 종교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삭(노상현 분)은 미혼모 선자와 결혼을 합니다. 이런 이삭의 행동을 당연히 친형이 좋아하지 않죠. 그러나 친형의 아내인 형님이 이방인인 선자를 보듬습니다.
재일동포 3세 솔로몬을 통해본 이방인들의 삶
드라마 파친코는 친할머니 선자와 손주 솔로몬의 아야기를 교차편집해서 보여주면서 세대가 달라도 이방인들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일제 강점기 이민을 가거나 강제 노동으로 일본에 머물게 된 재일동포(자이니치)들은 일본에서 괄시받고 한국에서도 크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재일동포들은 한국전쟁 이후에 분단된 조국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기도 했죠. 모든 사람들이 다 사연이 있다고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정말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냈고 지금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영화 <박치기1,2>편이 잘 담고 있습니다.
손주 솔로몬은 자이니치라는 핸디캡을 벗어나기 위해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미국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 시선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동양인이라는 시선, 일본에서는 자이니치라는 시선이 있죠.
파친코라는 드라마는 어떻게 보면 80년대 빅히트를 친 <여명의 눈동자> 같은 그 시절 굴곡 많은 시련의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그 자체도 대단한 일이죠. 요즘 누가 이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서 한국전쟁 이후까지 담는 대하드라마나 영화가 거의 없습니다. 있다면 <국제시장>이 있죠. 그런데 파친코 4화에서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시선이 결코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7화에서 한수 아버지가 한수에게 하는 말로 대신하자면
"저기 보이는 두 별이 가까이 붙어 있는 것 같지?"
"그런데 우리 눈에는 가깝게 붙어 보일 뿐이지 실제로는 엄청난 거리로 떨어져 있어"
자이니치 삶들이 그렇습니다. 일본인인줄 알고 살고 일본어도 유창하지만 결정적인 일을 할 때 중요한 순간에는 자이니치라는 장벽에 막혀 버립니다. 선자와 솔로몬이라는 두 세대를 지나도 변하지 않는 세상을 정면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7화에서는 한수 아버지까지 등장하면서 이게 3세대를 넘어서 4세대 동안 일어난 일이고 5세대가 되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왜 자이니치들이 일본에서 돼지를 키우고 파친코를 해야 하는지도 세련되게 잘 보여줍니다.
이방인들의 서러움의 결계를 깨는 포용
일제를 고발했다느니 일본의 이중적인 태도를 고발했다는 소리가 많습니다. 맞는 말이죠. 7화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글로만 배웠던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사건을 눈으로 목격하니 그 울분과 서러움이 왈칵 몰려왔습니다. 죽기 전에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전 세계인들이 보는 플랫폼으로 담다니. 놀랍고 고맙기까지 합니다.
이를 통해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가 알게 된 것은 아주 큰 행운입니다. 현재 일본은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라고 더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죠.
다만 이 파친코라는 드라마가 비단 자이니치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으로 뉴욕으로 이민을 한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나 시리아 내전을 피해서 이주하는 시리아 난민, 우크라이나 난민 등 전 세계의 난민 또는 이방인들에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이런 이방인들의 서러움과 울분을 달래주는 건 뭘까요?
전 포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자 가족이 이방인들을 포용하는 모습, 선자가 아들이 바람 펴서 나은 딸을 포용하는 모습이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선자를 포용한 형님 경희, 미혼모인 선자를 품은 이삭의 그 넓은 포용심이 선자를 통해서 이어집니다. 같은 자이니치끼리도 데면데면 하지만 선자의 출산을 돕는 동포 아주머니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원작 소설을 쓴 이민진 작가가 일본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 크게 들려옵니다. 이민진인 한 강의 후 질문을 대답하면서 포용의 발아점인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여자들이 공감 능력이 아주 뛰어나죠. 그래서 자신의 고통을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말고 일단 공감부터 해주길 바랍니다. 이 뛰어난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포용을 합니다.
이 포용을 더 넓게 오래하려면 과거에 대한 반성과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 여전히 반성하고 있지도 인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또한,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당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향하는 것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을 칭송하는 드라마 파친코
선자의 이야기에 눈물 흘리다가 어머니에게 처녀 시절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선자가 세상에 1명이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선자들이 참 많습니다. 페미니즘이 마치 욕설처럼 사용되는 요즘이지만 이 드라마는 선자라는 아내이자 엄마이자 여자를 통해서 굴곡의 삶을 살아낸 이야기를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이해가 안 가지만 그 당시는 다들 그렇게 살았던 모습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원작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는 해외 자본으로 나왔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행 이후까지 한국 사회를 너무나도 차분하고 단호하고 진실된 시선으로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선자는 한수의 첩의 삶을 사는 걸 알게 되자 무너져 내리죠. 한수는 여러모로 참 못된 인간입니다. 뭐 8화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유부남임을 왜 숨깁니까? 그런 미혼모의 삶을 산 선자는 아들이 바람을 핀 것인지 아니면 명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홍등가 여자 사이에서 낳은 딸 하나를 알게 되죠.
첫 남자가 호색가인데 아들 모자수가 바람을 피네요. 속이 뭉개지죠. 그러나 아들이라서 큰 소리도 안 냈나 봅니다. 그렇다고 모자수가 이 모녀와 연을 끊은 것도 아닙니다. 아들이 잘못이라면 잘못을 다 보듬습니다. 자식 버리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조선, 대한민국인들의 아들 사랑은 아주 심했습니다.
선자나 경희나 선자 어머니나 이방인들을 품고 보듬고 포용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키워낸다는 어머니의 푸근함을 이 드라마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물론 이 시절 우리네 아버지들의 고통과 서러움도 대단했죠. 다만 주인공이 여성이기에 전체적으로 여성의 포용심을 잘 그리고 있네요.
이런 이유 때문인지 7화에서는 원작 소설에 없는 한수와 한수 아버지를 통한 부성애와 일본 속에서 사는 이방인들의 삶을 더 극화해서 담고 있네요.
어설프고 영혼없는 위로가 없어서 좋았던 <파친코>
"괜찮아지지 않아 "
"그래도 참는 법을 배울 거야"
많은 드라마들이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권선징악이라는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보세요. 도덕 교과서와 달리 악인이 더 쉽게 성공하는 세상입니다. 오늘도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 대학교 교수들이 자식들을 위해서 동료 교수의 논문 공저자에 자식을 넣었다고 하죠. 가진 것들이 배운 것들이 더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그렇게 악독하게 살았으니 성공했지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세상은 착하게 산다고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드라마 <파친코>는 그걸 보여줍니다. 곧 좋아질 거야라는 영혼 없는 뻔한 말로 저렴한 위로를 하지 않습니다. 괜찮아지지 않는다고 말하죠. 다만 자신의 경험을 녹여서 참는 법을 배우면 덜 아플 거라는 말을 합니다. 드라마 파친코는 착하게 사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지만 세상은 결과가 아닌 지난한 과정이라면서 착하게 사는 삶을 사는 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성공만을 추구하던 손주 솔로몬이 할머니 선자를 통해서 뭘 깨닫게 될까요? 그 이야기가 8화에 나올지 아니면 시즌2에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존의 이야기 문법과 다른 점이 꽤 많아서 신선하고 놀라웠습니다. 연출, 연기, CG와 표현력 모든 것이 놀라운 드라마 파친코입니다. 8화가 시즌 1의 마지막 회인데 무척 기다려지네요.
단언컨대 올해 본 최고의 드라마이고 이걸 넘어서는 드라마는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마저 드네요.
다시 처음부터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블로그에 다른 시선으로 담아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