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서울여행

구로공단을 기록하고 기념한 G밸리산업박물관 방문기

by 썬도그 2022. 2. 25.
반응형

구로공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뭘까요? 한국을 먹여 살리던 거대한 공단지역이고 제조 강국의 밑거름이 된 거대한 공단이지만 당시에는 공순이, 공돌이라는 폄하하는 단어로 많이 불렸습니다. 돌아보면 70년대 80년대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막말의 시대이자 폭력의 시대가 아녔을까 할 정도로 사회 전체가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 공장 노동자 덕분에 먹고 사는 걸 감사해하지 못할 망정 왜 폄하합니까? 군바리라는 단어도 그래요. 왜 고생하고 희생하는 분들에게 폄하를 해요. 지금 같으면 바로 욕먹죠. 그만큼 사회가 성숙해졌다고 느껴지지만 최근 남녀 젠더 갈등을 보면 혐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 느낌이 드네요. 공장 노동자들을 잘 압니다. 제가 사는 집의 셋방에 살던 누나들도 구로공단에서 근무하던 누나들이었어고 수년 전에 어머니와 연락이 닿아서 지금도 연락하고 지냅니다. 그 누나 좋은 가정 꾸리고 행복하고 부유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구로공단은 1단지, 2단지, 3단지가 있습니다. 제가 구로공단을 처음 경험한 것은 지금의 구로 디지털단지 속으로 들어갔다가 너무 고요해서 놀랬습니다. 알바 구하려고 갔는데 쥐새끼 한 마리 안 보이다가 12시가 땡 치자 갑자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 기이한 풍경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밸리로 변신해서 2,3단지만 해도 무려 16~18만 명의 직장인들이 출퇴근하는 동네로 변했습니다. 

이 구로공단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행위가 한국에 있을까요? 많지 않지만 최근 들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구로공단의 삶 그러니까 한국의 경제발전기인 70~80년대 삶을 제대로 보고 싶으시면 신경숙의 <외딴방>을 추천합니다. 이 소설은 신경숙 본인의 자전 소설로 구로공단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제대로 담은 소설이자 명작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신경숙 소설의 최고는 <엄마를 부탁해>가 아닌 <외딴방>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로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2015년 개봉작인 임흥순 감독의 다큐 영화 <위로공단>을 추천합니다. 또 하나의 영화는 이경영, 옥소리 주연의 <구로아리랑>도 추천합니다. 수시로 구로공단 지역인 현재의 G밸리 1,2,3단지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구로공단의 흔적을 보고 있습니다. 

방준혁 의장이 올린 구로 G밸리 랜드마크 건물 넷마블 신사옥

구로공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최소 40대입니다. 지금은 구로디지털밸리 또는 G밸리 또는 가산디지털밸리라고 합니다. 부르는 이름이 꽤 많죠. 좀 통일을 했으면 해요. 전 G밸리라고 하겠습니다. 이 G밸리는 1,2,3단지가 있는데 1단지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습니다. 이 1단지에서 가장 큰 건물은 넷마블 신사옥으로 제가 사는 독산동에서도 보일 정도로 엄청 큽니다. 

넷마블이 요즘 핫한 기업들이 몰려 있는 판교 밸리가 아닌 구로에 남은 이유는 넷마블의 창립자인 방준혁 의장의 의지가 컸습니다. 정수장인가 하는 공간을 사들이고 여기에 G타워를 올립니다. 방준혁 의장의 생고생담을 읽어보면 눈물겹습니다. 정말 가난하게 살다가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합니다. 중졸입니다. 70년 생으로 52세인 방준혁 의장 당시에는 중졸 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대부분이 고등학교는 나왔습니다. 사업을 해서 망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게임 포털인 넷마블을 설립하고 거대한 성공을 합니다. 방준혁 의장의 사촌이 작곡가인 방시혁이자 BTS를 품고 있는 빅히트엔터 수장입니다. 그래서 넷마블이 인수한 캐시카우인 코웨이 광고에 BTS가 나오는 이유죠. 이 방준혁 의장은 구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강합니다. 보통 이 정도 크면 게임 회사가 많이 있고 거대 IT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로 갔겠지만 중소기업이 가득한 구로 G밸리 1단지에 신사옥을 올립니다. 

물론 구로의 등대, 구로의 오징어잡이배라는 악명도 있고 지금도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만 요즘은 40시간 근무제가 정착이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혹독한 근무 소식은 잘 안 들리네요. 넷마블은 게임 제작사이자 유통업체이지만 신기하게도 빅히트 엔터 주식으로 대박 나고 여러 주식으로 대박을 내서 투자 회사가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투자한 회사마다 초대박을 내고 있네요. 

넷마블 G타워 앞에는 이런 거대한 공연장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 직원들 휴게실이 아닌 주변 주민들이 쉬다 갈 수 있게 꾸몄더라고요.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공연장 같은 곳을 제대로 활용은 못하네요. 여름에 공연하면 딱 좋은데요. 

잠시 BTS가 이곳에서 공연하면 어떨까 상상을 해봤습니다. 스탠스 밑에는 코웨이 제품 체험공간과 갤러리가 있더라고요. 저도 코웨이 사용하는데 친숙한 코웨이입니다. 

여기 구로공단은 비행기 길이라서 수시로 국내선 여객기들이 지나다닙니다. 

구로공단의 일생을 담은 G밸리 산업박물관

공연장 같은 마당 공간을 지나서 건물로 들어서면 G밸리산업박물관이 있습니다. 여기는 건물 3층 높이로 정문을 바라보고는 오른쪽 샛길로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오면 됩니다. 

2021년 11월에 가오픈하고 지금도 임시 오픈이라고 하더라고요. 오픈 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18시까지 운영합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데 넷마블이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입장료는 없습니다. 

입구에는 캐릭터들이 있는데 이게 무슨 캐릭터인지 모르겠어요. 넷마블이 여러 게임을 유통하고 제작도 하지만 초대박을 낸 게임은 안 보여요. 그래도 제2의 나라나 마블 퓨처 레볼루션 등등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넷마블은 자체 IP가 약해요. 그래서 리니지 시리즈 중에서도 레볼루션 달린 것들은 넷마블이 NC소프트 IP 사서 만든 게임이에요. 

QR체크를 하고 입장을 했습니다. 입구에는 3면 디스플레이가 맞이하네요. 영상 내용은 별거 없고 제1회 무역박람회 내용 등이 보이네요. 한국은 천연자원이 많지 않지만 제조업 강국이 되어서 부유한 나라가 되었고 그 출발점이자 마중물이 된 곳이 구로공단입니다. 

전철역으로는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가리봉이라는 역은 옛 이름입니다. 정주 인구가 16만이 넘으면 전철역이 최소 3개 이상 되어야 하는데 꼴랑 2개입니다. 특히 가산 2,3단지 전철역은 딱 1개예요. 그래서 서울에서 출퇴근 시간에 가장 혼잡한 역이 가산디지털단지역이 되었습니다. 서울시가 여기에 대한 교통 대책도 없고요. 

그래서 경공업 단지에서 지신산업 단지로 이름만 바뀌었지 그 속에서 사는 노동자들의 삶의 풍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게 다 국가산업단지의 병폐 중 하나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니 사람이 일만 하고 살아요? 공원도 넣어주고 문화시설도 넣어주고 해야죠. 그런 인프라가 거의 없어요. 

공간 자체는 크지 않습니다. 크기는 작은데 알차게 채웠더라고요. 

참고로 G밸리라고 하는 곳은 위 지도에서 왼쪽부터 G밸리 3단지, 2단지, 1단지로 2,3단지는 금천구 가산동이고 1단지는 구로구에 있습니다. 핵심은 3단지로 여기는 가보면 빌딩 밸리라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높고 큰 건물이 가득합니다. G밸리지만 지도에서는 서울디지털산업 3단지로 표기하네요. 이렇게 통일성이 없습니다. 

단기 4293년 산업지도네요. 서기로 1960년에 만들어진 지도입니다. 서울은 경공업 위주의 구로공단이 만들어집니다. 구로구에 있던 논 밭을 싹 밀고 공단을 만드는데 문제는 제대로 보상을 안 해주고 만듭니다. 박정희 정권의 면모를 알 수 있는 행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후손들이 소송을 걸었고 법원이 손을 농민들의 손을 들어줍니다. 중공업은 울산, 포한 같은 경상도에 많이 짓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울산은 평균 연봉이 전국 3위가 됩니다. 

구로공단을 기록한 영상이나 사진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쉽네요. 영상은 있지만 누가 이런 곳을 기록하겠어요. 국가기록원이 보관한 대한뉴스 영상이 대부분이죠. 구로공단은 경공업 공단이라서 60년대에는 침대커버, 식탁보, 고무제품, 단추 등등 작은 크기의 제품을 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라디오 TV도 만들었습니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이었는데 나중에는 LG전자 등등이 들어옵니다. 

구로공단하면 여공이 떠오릅니다. 여공들은 나이들이 고등학생 나이도 있고 가끔 중학생 나이도 있었습니다. 그럼 이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이냐? 아닙니다.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어보면 지방 고등학교 앞에 버스 대절해 놓고 서울 공장에서 일할 학생들 태우고 그냥 올라갑니다. 그렇게 오빠, 동생 대학 등록금 벌러 올라온 여공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왜 공순이라고 놀려요.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장난감 자동차 보니까 옛 생각나네요. 구로공단에서 근무하던 분이 공장에서 만드는 무선 장난감 자동차 가져와서 선물로 줬어요. 그거 정말 신나게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다이소에서 파는 제품들이라고 할 정도로 생활용품 참 많이 만들었어요. 구로공단은 1960년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70~80년대는 현재 중국 제품처럼 저가 공산품을 한국이 납품했다고 할 정도로 미국 수출이 엄청났습니다. 

보다 넓은 공간에는 구로공단의 발전과 변화를 담고 있네요. 

다양한 그래프와 도식화된 자료가 구로공단을 이해하기 편하게 해주네요. 구로공단이 깃발을 올린 시기는 1965년 5월이었네요. 

1964년 1억 달러여서 세계 90위였던 수출이 1977년 되면 100억 달러를 돌파해서 세계 24위가 됩니다. 지금은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했어요. 

경제성장률 보세요. 1972년 11.6%, 1976년 12.3%. 1979년 12.8%으로 매년 10% 정도의 고도성장을 합니다. 지금의 중국보다 높았어요. 구로 2,3단지는 경부선 철로가 절단을 내놓았는데 이걸 넘기 위해서 만든 다리가 수출의 다리입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막히는 구간으로 악명이 높고 평일에도 넘는데 30분 이상, 출퇴근 시간에는 1시간 이상 걸리는 교통 지옥을 만들었어요. 

한국이 생산하는 공산품도 시대마다 변했는데 70년대는 현재 방글라데시나 인도네시아, 미얀마 같은 동남아시아에서 생산하는 섬유류를 주로 생산했습니다. 가발 10.8%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대부분 미국에 수출을 했어요. 전형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는데 80년대는 좀 변합니다. 섬유가 아닌 의류가 15.9%로 올라섭니다. 옷의 소재에서 옷을 직접 만드는데 지금도 세계물산이나 제일모직 공장 지역이 있었다가 모두 아파트형 공장 건설로 공장은 사라졌습니다. 

그럼 지금은 의류업체 없냐? 아니에요. 중소 의류업체들 G밸리에 엄청 많아요. 80년대는 전자부품, 전자제품 업체들이 늘어납니다. 선박도 늘어납니다. 저 섬유와 의류의 큰 부분이 구로공단에서 만든 옷과 옷감이 많았습니다.

미국에 수출하던 장난감들이네요. 

당시 사용했던 미싱들이네요. 

미싱은 일본말이지만 미싱이 적당한 어감입니다.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있었는데 5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발전을 시킵니다. 그 정책의 결과물이 구로공단입니다. 교포들이 많이 도와주었고 교포기업이 꽤 많았네요. 교포라고 하면 재미교포 생각하는데 한국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준 나라가 인정하기 싫겠지만 일본입니다. 일본 자본도 많이 들어왔고요. 재일교포들이 서울 근고에 경공업 지역 만들라고 건의했다고 하네요. 일본어에 능숙하고 일본 자본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조언을 듣고 구로공단을 만듭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제품은 대한광학의 카메라였습니다. 한국이 광학 산업 불모지 같고 실제로 광학 기술이 있지만 삼성전자가 카메라 사업 철수하고 나서 현재는 구미에 공장이 있는 삼양 렌즈 밖에 없습니다. 광학 기술은 국가 산업을 선도하는 선진국 기술인데 키우질 못하네요. 뭐 일본이 워낙 잘 만들어야죠. 

삼성전자 이전에 대한광학이 있었고 이 대한광학은 놀랍게도 코비카라는 한국 필름 카메라를 만듭니다. 1대 회장이 전경련을 만든 이병철 전 삼성회장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인가요? 아들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와 삼성테크원을 통합하면서 카메라 시장 1위 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꽤 잘 만들었어요. 지금도 삼성 미러리스 화질은 좋은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 사업 자체가 돈벌이가 안 되어서 일찍 접었습니다. 

코비카 카메라 평도 좋았다고 하네요. 주요 부품인 셔터박스 등은 외국 부품이지만 나머지는 직접 한국에서 만들었습니다. 아쉽게도 80년대 중반 단종하고 회사도 사라집니다. 

제약 산업체도 많았네요. 지금은 코로나 진단키트 업체들이 좀 있습니다. 

한국이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산업이에요. 워낙 기술장벽이 높아야죠. 그래서 복제약 시장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약회사가 다른 곳에 공장을 이전했을거에요. 그래서 그랬는지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엔 중외제약 건물이 있었어요. 

반응형

60~70년대는 섬유, 의류 같은 봉제공장이 많았다면 80년대부터는 기술력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가전제품, 전자제품 공장이 생깁니다. 공통점은 경공업 제품들이라는 점이 같습니다. 

구로공단의 황금기가 시작됩니다. 1986년을 기준으로 3저 호황이 찾아오죠. 당시 기억나요. 돈이 넘쳐서 누구나 해피했던 시절. 돈을 정말 잘 벌던 시절이었어요. 여기서 3저란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현상을 말합니다. 수출기업들에게는 노났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산 3단지 공장들이 늘자 근로자가 넘치게 됩니다. 정부는 안양천 건너면 나오는 광명시에 주공아파트를 만들어서 무주택 근로자들에게 공급합니다. 그래서 현재도 가산 3단지는 금천구 땅이지만 광명시가 더 큰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근로자들이 광명시 주공아파트에 많이 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경숙 작가는 구로공단 중에서도 라디오인가 TV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고 소설에서 밝혔는데 80년대 들어서면서 대한전선, 대우전자. 금성사 등이 등장하면서 전자산업이 꽃피우게 됩니다. 이걸 트랜지스터의 신화라고 적었네요. 

20세기는 한 마디로 전자공학의 시대라고 하죠. 19세기는 전기의 시대였는데 그 전기를 이동하는 전자를 이용한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스위치 역할을 하는 인류에게 거대한 진보를 가져다 준 트랜지스터를 발명합니다. 이 트랜지스터를 작은 공간에 엄청 때려 넣은 것이 지금의 CPU, AP, SoC입니다. 논리 연산 반도체가 인류를 윤택하게 해주고 있죠. AI, 컴퓨터, 인터넷 이게 다 전자공학의 산물이잖아요. 

80년대 구로공단은 전자 기계 업체가 37%로 1위, 섬유봉제가 32.6%, 기타가 30.4%였습니다. 고용인원도 늘고 3단지는 기업체가 21개에서 무려 158개로 폭발적으로 늡니다. 

공장당 고용 노동자도 324.2명으로 엄청 늘어납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80년대 중후반에 한국 전자레인지가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차지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가전하면 일제인데 전자레인지는 1위했다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자레인지는 제조가 간단하고 가격도 저렴합니다. 일본이 잘 안 만들어서 1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어쨌거나 미국이나 유럽에 비싼 일제 가전제품 구매할 수 없는 분들이 저가 한국산 TV, 라디오 등을 많이 삽니다. 지금은 한국 가전회사인 삼성전자, LG전자가 쌍글이 어선이 되어서 TV 시장, 냉장고, 세탁기 등등 싹 쓸고 있죠. 

아! 추억의 다이얼 전화기 금성전자도 아닌 금성사입니다. 지금 LG전자의 전신이죠. 기술의 상징 금성! 순간의 선택이 10년이 뭐에요 20년 이상 좌우합니다. 작년에 1998년에 산 세탁기 교체했는데 너무 안 고장 나서 그냥 버렸습니다. 고장 나면 냅다 바꾸려고 기다렸는데 안 고장 납니다. 

평창동 고급 주택가에서 사용하는 클래식 전화기도 있네요. 다이얼 전화기 사용하다가 버튼식 전화기 사용할 때의 기술의 진화에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얼마나 편하던지요. 더 다이얼 전화기는 손가락을 구멍에 넣고 시계방향으로 획 돌리면 촬촬촬하고 돌아옵니다. 그거 지켜보고 있으면 속 터집니다. 뭐 대안이 없었으니 당시는 그런가 보다 했겠네요. 

맥슨전자는 무전기 제조업체인데 무선 전화기 시대가 도래하자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인터폰 같은 화면이 있는 전화기네요. 동양정밀공업 다이얼 전화기네요. 1995년 LG전자에 합병이 되네요.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던 LG전자의 전화기 제조사업은 중국 스마트폰과 삼성전자 애플에 밀려서 사라지게됩니다. 

가산 3단지에 가보면 LG전자 건물 아직도 많습니다. 스마트폰 만들던 MC사업부 건물도 있고 LG디자인센터 건물도 있고 집 근처는 LG전자 직원용 빌라도 있을 정도로 가산2,3단지와 LG전자는 연관이 많습니다. 대신 공장은 구미에 많더라고요. 

80년대 구로공단 전자제품 월드네요. 

이걸 다 구로공단에서 만들었어요. 

박스까지 있네요. 제 첫 라디오는 외삼촌이 중동 건설 현장에서 사서 보내온 산요 라디오였어요. 그걸로 집에오자마자 프로야구 중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까만 라디오 기억아네요. 너무 투박한 디자인에 잊히지 않아요. 대한전선에서 만든 라디오네요. 전선 만드는 회사가 라디오도 만들고 TV도 만들었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기계가 전자부품을 박아 넣지만 80년대는 생산직 직원들이 부품을 하나씩 넣고 납땜까지 해야했어요. 그래서 섬유와 의류처럼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한국이 만든 TV들인데 미닫이 문이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TV가 있었죠. 열고 닫는 문이 있는 이유는 영화관이나 연극 공연장 느낌 나라고 달아 놓은 듯해요. 공연장 가면 커튼이 있잖아요. 브라운관 보호용이라고 하기엔 브라운관이 워낙 튼튼해야죠. 차라리 LCD TV 특히 OLED TV는 야구공이나 무거운 물건 맞으면 박살이 나는데 앞에 저런 커튼 달면 좋겠네요. 

세진컴퓨터 등의 공장도 구로공단에 있었습니다. 

의류 공장, 섬유 공장도 많았는데 소설 구로아리랑의 모티브가 된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납니다. 이때가 1985년 6월 24일 일어난 국내 최초의 동맹파업입니다. 가산 3단지에 있던 의류 공장들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근로환경을 참지 못하고 시위를 합니다. 당시 근무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냐면 고등학교 다닐 나이의 여공들이 하루에 14~16시간 일했어요. 

미친 노동시간이죠. 이건 뭐 아침부터 저녁 자기 전까지 작업을 했어요. 업체는 납기일 맞춰야 한다고 엄청난 강도의 노동을 요구했고요. 그래서 타이밍이라는 각성제 먹고 근무를 하기도 합니다. 그럼 월급이라도 많이 줘야죠. 박봉이었습니다. 이러니 결핵 환자가 늘기 시작하고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면서 전태일 열사 같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구로동맹파업은 국내 최초의 동맹파업으로 이 파업으로 근로환경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이 시작됩니다. 물론 당시 전두환 정권은 전경 투입해서 강제 무력 진압을 했습니다. 이 파업을 주도한 인물 중에는 대학생이었지만 신분을 속이고 위장취업을 한 노동운동가들도 많았고 이분들이 동맹파업을 이끌어냅니다. 그 분 중 한 분이 그 유명한 심상정 의원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파업을 이끈 사람 중 한명이 경기도지사까지 했던 김문수입니다. 세상 살다 보면 진보운동가, 노동운동가가 변절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문수입니다. 한두 명이 아니에요. 

문인에서는 대표적인 인물이 이문열입니다. 지금은 극우 문인으로 위치를 옮기고 인기도 사라졌지만 80년대는 이문열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사회 비판적인 소설을 많이 씁니다. 그중 하나가 '구로아리랑'입니다. 구로동맹파업을 소재로 한 노동 소설을 쓴 분이 지금은 극우가 되었어요.  

이 G밸리 산업박물관에서 마음에 안 들었던 게 하나 있는데 왜 구로공단의 삶을 제대로 담은 신경숙의 외딴방은 없고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 소설은 그냥 가리봉만 담은 거지 공단의 삶을 담은 건 아니거든요. 이상해요. 정말 이상해요. 

또 아쉬웠던 점은 구로공단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과 영향을 줬지만 놀랍게도 관련 사진, 동영상은 거의 없고 문학 작품도 거의 없다는 겁니다. 극우 인사가 된 이문열 소설이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할 정도로 없어요. 물론, 공지영 소설가가 관련 소설이 있긴 하지만 제대로 담은 소설은 없어요. 

20만 노동자! 지금 G밸리 노동자가 대략 18만 명 정도라고 하니 인원도 비슷하네요. 

80년대 전성기를 지나 90년대 쇠퇴하는 구로공단

구로공단은 80년대 3저 호황의 전성기를 지나서 90년대 들어서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 때문입니다. 중공이라고 하던 중국이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면서 정치는 공산주의를 지키면서 경제를 개방해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로 만든 중국 공산품들이 90년대 후반부터 밀고 들어옵니다. 이 영향으로 미국에 저가 공산품을 제공하던 한국의 경공업은 박살이 났다고 할 정도로 중국의 공산품에 밀려서 구로공단은 많은 기업들이 망하거나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합니다. 

이에 90년대 후반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정권은 빌 게이츠와 손정의 의견을 듣고 IT산업을 키웁니다. 그리고 구로공단을 서서히 지식산업센터를 세우면서 IT관련업체들을 키우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로공단에서 G밸리로

G밸리는 현재 서울에서 3번째로 큰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1위는 강남, 2위는 종로구 중구, 3위가 G밸리입니다. 60%의 기업이 10인 이하 중소기업입니다. 국가산업단지라서 세금 혜택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서 많은 기업들이 입주하고 있습니다. 

강남이 집값이 높은 이유중 하나가 거기에 기업들 특히 유명 기업 본사가 많아요. 그래서 테헤란밸리라고 하잖아요. G밸리도 25만 명의 근로자가 있는데 이는 2,3단지의 18만 명과 1단지의 7만 명을 합친 결과 같네요. 하지만 중소기업이 많아서 평균 연봉은 높지 못해요. 

지금 G밸리는 구로단지 첨단화 계획으로 노동집약적 산업 대신에 벤처, 패션디자인, 지식산업을 키우고 있어요. 벤처기업, IT기업, 패션업체, 애니메이션 업체 등등이 꽤 많습니다. 지금도 가보면 3단지는 대략 5개 이상 새로운 지식산업센터가 공사 중에 있어요. 엄청나게 지어 올리고 있더라고요.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알차게 잘 꾸며 놓았습니다. 영상 재생하는 곳도 2곳이나 있고요. 중학교 이상 고학년 학생들이 견학하기 좋은 공간이기도 합니다. 

가산 3단지 산책겸 자주 지나다니는데 매번 올라가는 건물들 보면 강남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고질적인 교통 체증 문제가 크지만 건물 1채 올리기도 어려운 곳도 많은데 엄청난 크기의 대형 지식산업센터가 올라가고 있어요. 

가리봉5거리 삽화네요. 가리봉 5 거리는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주말에 먹고 마시고 쉬는 공간으로 5개의 길이 합쳐지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리봉 5 거리는 혼잡하지만 예전만큼의 번잡함은 사라졌습니다. 

G밸리 산업박물관은 아이들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 

작은 전시공간도 있습니다. 저는 역사를 좋아해서 꼼꼼하게 보다 보니 1시간 이상 들여다 보고 왔네요. 좋은 전시 공간이네요. 넷마블이 아니었다면 구로공단을 기념하는 기록하는 공간도 없었을 거예요. 

출구에는 팬시용품을 팔고 있습니다. 넷마블 관련 팬시들이네요. 지금 넷마블이 게임박물관 만든다고 직원들에게 유물 기증 모집하더라고요. 게임 회사이고 공간이 좀 있다면 게임 박물관도 좋고 게임 관련 전시 공간도 만들었으면 해요. 게임 개발자가 꿈인 초중고등학생들이 어떤 걸 공부하고 노력해야 게임 개발자가 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많으면 어떨까 합니다. 아무튼 좋은 공간 마련해줘서 감사한 넷마블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