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전시회 리뷰

여의도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회 모래섬, 비행장, 빌딩숲 여의도

by 썬도그 2021. 10. 5.
반응형

우연히 들어가 봤습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어딜 쉽게 못 들어가고 들어갈 생각조차 못합니다. 경희궁을 둘러보고 난 후 바로 옆에 있던 그러나 100년 전에는 경희궁 땅이었던 곳에 지어진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섰습니다. 주저하고 있는데 직원이 나오더니 들어오라고 하네요. 예약을 안 했다고 하니 그냥 QR코드만 찍으면 된다고 하네요. 

서울에서 가장 재미있고 의미 있고 흥미로운 전시회를 가장 많이 하는 곳이 서울역사박물관입니다. 제가 역사 덕후라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모르는 근현대 과거를 들어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중요한 건 서울역사죠. 서울은 한양 시절까지 하면 역사가 깊지만 대한민국 수도가 된 후 서울로 지칭된 후의 역사는 100년도 안 됐습니다. 따라서 근현대 서울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특히 우리가 살았던 역사. 내가 살아보지 못했지만 부모님들의 어린 시절의 역사, 할아버지가 살았던 서울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모래섬, 비행장, 빌딩숲 여의도

이번 전시회는 여의도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회로 전시회명은 모래섬, 비행장, 빌딩숲 여의도입니다. 5월 21일부터 시작했는데 9월 말에 봤네요. 아쉽게도 10월 11일 이번 주까지만 전시를 합니다. 

여의도라는 공간은 저의 인생과 꽤 관계가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서울 관악구였습니다. 관악구였다가 국민학교 시절인가 갑자기 구가 크다면서 동작구로 분할됩니다.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여의도까지는 걸어서 약 2시간 걸립니다. 꽤 멀죠. 엄청 멉니다만 대방초등학교까지 걸어서 걸어 다녔습니다. 초등학생이 1시간 거리의 학교를 다니던 것이 80년대에는 다반사였습니다. 등하굣길이 지금 생각하면 어른도 다니기 어려운 긴 거리라서 어떻게 다녔나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1시간을 더 가야 여의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거리를 걸어갔습니다. 물론 버스가 있었지만 버스비 아끼려고 갔습니다. 시간은 남고 돈은 없던 80년대 흔한 초중딩들의 일상이었죠. 여의도에 왜 갔냐?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5.16 광장에서 자전거 타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자전거를 편하게 탈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은 여의도 광장이었습니다. 그만큼 여의도는 거대한 광장이 있던 곳이었죠. 지금은 서울에 광장이 없죠. 시청, 광화문 광장이요? 그게 광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습니다. 

이 여의도에 관한 역사라니 안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여의도는 섬이죠. 서울에 있는 섬. 지금은 금융의 핵심, 빌딩 숲의 상징이자 최근에는 더현대와 IFC 쇼핑몰이 생기면서 쇼핑의 성지가 되고 있네요. 지난 주말에 더현대 갔다가 너무 사람이 많아서 코로나 끝났구나 느꼈네요. 

전시공간은 꽤 잘해 놓았습니다. 여의도가 사실 큰 역사가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소 꼴 먹이던 모래섬이었고 활용도 안 했습니다. 

1861년 그려진 경조오부도 지도입니다. 한양 도성 서쪽 끝에 여의도가 보이네요. 서울 도심에서 흘러나오는 도심하천도 보입니다. 홍제천은 선명하게 보이는데 다른 지류천들은 복개가 되어서인지 거의 안 보입니다. 지천을 활용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제는 강수량 차이가 심해서 비올 때만 흐르는 건천이 문제죠. 

여의도에 대한 기록은 1421년 세종실록에 양, 돼지, 닭, 오리, 당기러기 등을 기르던 목축지로 활용했다고 나옵니다. 1876년 고종 13년에는 금위영이라는 군대가 군사 훈련을 했습니다. 

여의도는 섬이라서 들락거리기가 불편해서 활용도가 높지 않았으나 여의도가 이용가치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이 공군기지로 활용하면서 달라집니다. 

정확하게는 1945년 광복 이후 여의도 비행장이 생기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휘한 김구가 중국에서 수송기를 타고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합니다. 

여의도에 한국공군부대 전투기도 있는 등, 한국군 비행장으로도 활용했습니다. 

지금도 미군과 한국군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군사 비행장들 많습니다. 어차피 한 몸 같은 한미 연합군이죠. 

우둥불은 이범석 장군의 자서전인데 1945년 8월 18일 여의도 비행장으로 귀국하려던 계획이 좌절됩니다. 독립군을 이끌던 분들을 미국이 인정해주고 대우해주면 얼마나 좋아요. 미국은 한국 역사를 잘 몰랐습니다. 당장 치안 문제가 걱정이 되어서 그래도 일본제국 밑에서 근무했던 군인, 경찰을 그대로 채용합니다. 여기서부터 한국 역사가 개차반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친일파들이 득시글하고 세력 과시를 하고 있고 반면 독립군 집안은 3대가 망해 버립니다. 그나마 현정권이 많이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죠. 오히려 현 정부는 이걸 잘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보수 정권들이 얼마나 친일적이고 독립군 홀대가 심했는지 알 수 있죠. 

이분들이 이분들이 대한민국 지도층이 되어서 정권을 잡았으면 크게 달라졌을 겁니다. 

1950년 당시의 전투기들이네요.  한국 공군은 미군이 무상 제공한 무스탕 프로펠러기를 몰았고 미군은 F86 세이버로 공중권을 장악합니다. 초기에는 북한 공군이 수원 비행장을 폭격하는 등 초반에는 북한이 앞서다가 일본에서 발진한 미공군이 앞도적인 숫자와 제트기로 북한 공군을 괴멸하고 한국 전쟁 끝날 때까지 북한 전역을 폭격합니다. 보통 폭격기가 뜨면 전투기가 호위하는데 북한 공군이 괴멸해서 그냥 폭격기만 떠서 폭격을 했다고 해요. 

반응형

공군기지로 활용하던 여의도 비행장은 민간기도 내리고 올랐습니다. 서울에 있는 비행장이 거기뿐이었어요. 돌아보면 서울 한가운데 큰 섬에 비행장이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합니다만 워낙 소음이 커야죠. 이후 여의도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입니다. 기존 공군 기지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민간 공항은 김포에 만듭니다. 

여의도는 섬이라서 한강이 범람하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이에 섬 전체 해안가를 시멘트로 두르는 호안 작업을 하면서 본격적인 여의도 개발을 합니다. 

여의도 서쪽은 국회를 만들 공간으로 지금도 있죠. 요즘 국회를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죠. 그리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자고요. 그럼 부동산 가격 폭등할 겁니다. 미워도 여기 그냥 있는 게 낫습니다. 지도에 보면 시청도 있습니다. 아마도 서울시청 자리인 듯한데 서울시청은 이전을 안 했습니다. 덕수궁 옆에 그대로 있습니다. 이 자리에는 현재 산업은행 건물이 있습니다. 상징적이죠. 여의도를 금융 허브로 키우려는 목적은 이 당시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KTX 거래소가 있는 등 주식거래소가 있고 주변에 대형 증권 및 투자사들의 건물들이 가득합니다. 

오른쪽은 시범 아파트 학교가 보입니다. 63빌딩 자리에는 종합병원을 지으려고 했네요. 실제로 여의도 성모병원을 지었습니다. 이걸 보면 여의도 엄청 넓어요. 게다가 보기 드문 평지잖아요. 서울에 평지가 거의 없는데 여의도는 평지예요. 80년대 당시 여의도에 없는 것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연탄가게, 또 하나는 기억이 안 나네요. 연탄가게 없는 동네. 한국의 맨해튼이라고 하던 여의도의 개발이 60년대부터 시작됩니다. 

그렇다고 바로 엄청난 개발이 일어난 것은 아니고 보시면 꽤 긴 시간 동안 개발을 해요. 70년대에 겨우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보이고요. 그 앞에 KBS 본관 건물이 보입니다. 본격적인 빌딩 숲은 80년대로 영화 <도시로 간 처녀>에서 유지인이 데이트를 하던 곳이 여의도입니다. 영화 배경을 보면 뒤로 막 빌딩들이 올라가는 여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여의도 LG 쌍둥이 빌딩도 80년대 지어집니다. 

이게 여의도 복도식 아파트인 시범 아파트 속 풍경입니다. 지금도 이런 형태겠죠. 여의도 아파트들 낡을대로 낡았습니다. 7~80년대 지어졌으니 재건축을 해야 합니다. 한국 아파트들은 싼 값에 만들어서인지 어떻게 아파트 수명이 50년도 안 돼요. 정말 대충 지었습니다. 그래서 재건축이 필요한데 재건축을 하면 아파트 가격 오르기에 재건축 허가를 보류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라는 말도 최근의 말이지 이 70년대는 맨숀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철저히 일본의 영향입니다. 일본은 아파트라고 안 하고 우리의 아파트 같은 건물을 맨숀이라고 합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물도 말이 많았죠. 처음에는 돔이 없었는데 미국이나 유럽의 국회의사당을 보면 우렁찬 돔이 있습니다. 이에 국회의원들이 돔을 만들라는 무언의 압박을 했고 결국 이상한 모습의 돔 건물이 됩니다. 돔 없는 게 더 나은데요. 하여튼 양복 입고 갓을 쓴 이상한 건물, 못생긴 건물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국회의원들의 무능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은유적으로 보면 좋은 건물이긴 하네요. 

증권거래소가 명동에서 여의도로 오면서 여의도는 본격적으로 금융의 섬이 됩니다. 초기 증권거래소는 가락농수산물 시장처럼 주식을 경매했고 경매가 끝나면 그걸 사다리 타고 돌라가서 걸어 놓았다고 하죠. 지금은 초단위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의도 정말 넓네요. 평지가 거의 없는 서울에 평지를 활용해서 놀이동산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에버랜드가고 조막만 한 롯데월드에서 놀아야 해요. 2천만이 사는 서울과 경기도에 이렇다 할 놀이동산이 없다는 게 한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 몰고 그렇게 해변가로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반응형

여의도는 직장인들의 섬입니다. 서울의 3대 직장터가 있는데 하나는 종로구, 또 하나는 강남 그리고 여의도입니다. 여의도에 직장을 둔 사람들이 많다보니 여의도 접근성이 무척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신안산선이 여의도까지 연결되는데 앞으로는 서울 서남부와 경기도 시흥, 안산까지 연결되니 외곽에서도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는 사람 늘듯 하네요. 

여의도 개발의 상징은 63빌딩입니다. 지금은 한화생명 빌딩으로 바뀌었습니다. 63 빌딩 비화도 참 많죠. 지금 봐도 참 멋진 빌딩으로 롯데월드타워가 더 높지만 제 마음속 최고층 빌딩은 63 빌딩입니다. 해가 질 때는 금빛 유리창이 더 반짝이기도 했어요. 63 빌딩은 85년 완공되는데  당시 일본 최고층 빌딩인 60층 선샤인 빌딩보다 3층 더 높게 하기 위해서 지하층까지 층수에 넣는 꼼수를 부립니다. 그렇데 동양 최고 높이 빌딩이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인들 세계 최고, 동양 최고 이런 거 엄청 좋아하잖아요. 

그러나 1987년 싱가폴 OUB 빌딩이 동양 최고층 자리를 내주고 맙니다. 그러나 18년 동안 한국 최고 높이 빌딩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다 목동 하이페리온이 높이 타이틀을 가져갔다가 지금은 롯데월드타워가 다시 가져갑니다. 마천루의 저주인지 롯데그룹은 롯데월드타워를 짓자마자 이미지가 붕괴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모든 사업에서 후퇴 중입니다. 

여의도는 제 기억속에는 5.16 광장 밖에 없습니다. 63 빌딩도 딱 1번 가봤고 앞으로 가볼 생각도 안 듭니다. 5.16 광장은 대형 행사를 자주 했던 곳으로 80년대에는 대선 후보들이 자신의 지지세력을 눈으로 확인해주던 곳이었습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의 여의도 연설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보시면 허허벌판입니다. 그것도 아스팔트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유사시에는 비행장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평시에는 그냥 자전거 대여점과 롤러스케이트 대여점이 있어서 많은 10대들이 자전거와 롤러 타러 갔습니다. 

저도 딱 1번 타본 기억이 나네요. 5.16 광장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5.16 쿠테타 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이름이기도 하죠. 여기서 국군의 날 행사를 매년 했습니다. 

보세요. 이런 공간이 서울 넘어 전국 어디에도 없고 이 자체로 두었다면 지금도 많은 행사를 치루고도 남았을 겁니다. 광장의 가치를 너무 무시했어요. 조순 서울시장이 당선된 후에 이 여의도 광장을 개발해서 현재의 여의도 공원이 됩니다. 여의도 공원은 그냥 흔하고 볼품없는 근린공원으로 여의도에 여의도공원 보러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의도 광장에서 국풍81 축제가 기억나네요. 이 국풍 81은 관제 행사로 80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라는 피의 역사를 지우기 위해서 전두환 정권이 만든 기획행사입니다. 그 행사를 국영 방송사 같은 관영 방송사인 KBS가 중계를 했습니다. KBS는 예나 지금이나 정권에 참 잘 휘둘리는 못난 방송사예요. BBC의 품격을 기대하기 어려운 방송사죠. 

이 공간은 83년 이산가족방송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학교 갔다 오면 만화영화 봐야 하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하루 종일 이산가족방송을 봐서 무척 화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누굴 찾는다는데 그 이유도 잘 몰랐어요. 삼촌이 그 이유를 말해줘서 알았죠. 1950년에 한국에서 전쟁이 크게 났고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다가 가족이 강제 분리되기도 했다고요. 지금처럼 핵가족(?)이라면 한 번에 도피를 하지만 당시는 대가족이다 보니 그룹별로 피난을 하다가 각자 남한의 여기저기에 정착한 후 서로 연락을 할 수 없었어요. 

연락할 방법도 어디서 뭘하고 사는지 알 수 없었죠. 이에 KBS가 한 방송에서 이산가족 방송을 단발성으로 합니다. 그런데 대박이 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도 찾아 달라고 찾아왔고 KBS는 세계 최장 시간 생방송을 진행합니다. 녹화 방송할 수 없어요. 소개할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 생방송 시간이 무려 453 시간입니다. 83년 그해 내내 했던 것 같네요. 철이 들어서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깨닫게 되었네요. 

이 이산가족찾기를 할 때 KBS  건물에는 이산가족 찾기 문구가 적혀 있는 소자보들이 가득했습니다. 가슴 아픈 역사죠. 
영화 <길소뜸>과 몇 년 전에 개봉한 <국제시장>에서 그 당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남한에 사는 이산가족은 찾을 수 있고 지금은 DNA 대조로 금방 찾지만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은 여전히 못 만나고 있습니다. 수시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했던 것도 남북한 관계가 들쑥날쑥해서 했다 안 했다 하고요. 

민간인 피해도 엄청났던 전쟁이 6.25전쟁입니다. 군인의 민간인 학살뿐 아니라 민간인들끼리 학살도 많이 했어요. 특히 우익 청년들이 무자비한 좌익 색출 작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골로 간다는 말 있잖아요. 이거 무서운 말입니다. 사람 죽이기 위해서 밧줄로 묶어서 골로 데리고 가서 총을 쏴서 죽였습니다. 골에서 총소리가 나면 또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유일한 분단국가 한국. 언제 우리는 통일이 될까요? 제가 살아 생전엔 어려울 듯합니다. 이제는 서로 통일을 원하지도 않고요. 다만 긴장 국면을 내리고 서로 협력단계로 가면서 서서히 교류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러나 미중 갈등은 보면 여전히 냉전의 유령이 어슬렁 거리고 있습니다. 

좋은 전시회입니다. 여의도는 역사라는 것이 길지 않습니다만 한국 성장의 랜드마크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여의도 풍경입니다. 보세요. 예쁜 고층 빌딩이 참 많아졌습니다. IFC 건물은 오징어게임에도 나오기도 했고요. 그 옆에 붉은 줄이 간 더 현대 백화점 건물도 보입니다. 여의도가 여의도백화점 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2개의 대형 쇼핑몰 건물이 들어서면서 쇼핑하기 좋은 동네가 되었네요. 

모래섬, 비행장, 빌딩숲 여의도 전시회는 10월 11일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A에서 열립니다. 무료입니다. 예약 안 해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