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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오징어게임에 나온 건 달고나가 아닌 뽑기다. 둘의 차이점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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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에 나온 건 달고나가 아닌 뽑기다. 둘의 차이점은?

썬도그 2021. 10. 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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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리고 놀랍게도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가 진출한 83개국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철옹성 같은 인도에서도 1위를 차지해서 83개국 올킬을 일으켰습니다. 

동시간대 올킬도 가능했지만 터키나 덴마크에서 2위를 차지해서 83개국 동시 1위는 이루지 못했지만 넷플릭스가 진출한 모든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정도까지 인기 있을 줄 몰랐습니다. 한국에서도 호불호가 강해서 이게 먹힐까 했는데 제대로 먹혔네요. 이 오징어게임은 드라마에서 등장한 한국의 6~80년대 동네 어귀에서 하던 아이들이 놀이를 전 세계에 보급했습니다. 

한국의 유년 시절 놀이들의 특징은 룰이 초간단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게임에 대한 설명이 특별히 길지 않습니다. 다만 오징어게임만 초기에 설명했습니다. 

외국인들이나 저를 포함 많은 시청자들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게임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인기를 끈 것이 뽑기입니다. 드라마에서도 배우들의 인터뷰나 감독님도 분명히 뽑기라고 하고 있지만 많은 분들이 달고나라고 하고 있고 해외에서도 달고나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둘은 상당히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참고로 오징어게임에서는 도형을 따내기 편하라고 핀을 제공했는데 실제 뽑기는 어떠한 도구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손으로 잘 뜯어서 도형을 따내야 했습니다. (이건 지역마다 조금 다른가 봅니다. 어떤 지역은 줬다고 하네요). 이 뽑기가 어려웠던 것은 뽑기 아저씨가 저 도형을 아주 살짝 누르면 도형을 따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꾹 눌러주면 좋은데 아주 살짝 누르더라고요. 물론 뽑기 성공 확률이 낮으면 다른 뽑기 아저씨에게 가기에 적절히 확률을 조절해 줘야 합니다. 

달고나와 뽑기는 둘다 재료를 똑같다.

참 배고팠습니다. 지금은 줘도 안 먹고 먹는 거냐고 묻는 아카시아도 어린 시절 참 많이 따 먹었죠. 유난히도 먹을 것이 귀하고 없었던 60~80년대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군것질이 달고나였습니다.  

달고나는 구멍가게에서 파는 신뢰도가 떨어지는 식품들과 달리 불을 이용해야 해서 만화방과 같은 실내나 실외에서 판매했는데 제 기억으로는 주로 실내에서 많이 판매했습니다. 달고나의 제조 원리는 간단합니다. 

큰 국자 위에 각설탕 같은 것을 올린 후 연탄불에 가열하면 설탕이 녹아서 캐러멜 같은 색이 되면서 구수한 향을 냅니다. 이 녹고 태운 설탕 위에 베이킹 소다를 넣으면 설탕이 부풀어 오릅니다. 베이킹 소다는 식초와 섞으면 소독제로 활용되는 요물 같은 첨가제이자 살균제입니다. 빵을 부풀 게하는 팽창제로도 활용됩니다. 

그렇게 부풀어 오른 설탕 태운 찐득한 엿과 같은 것을 젓가락 같은 걸로 찍어서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달고나를 다 먹으면 국자는 세척을 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이게 달고나입니다.

뽑기는 뭐냐? 달고나와 동일한 재료로 만들고 제조 과정도 동일하지만 게임 요소가 추가되었습니다. 
위 사진 오른쪽 연탄불에 올려진 국자 3개 중 맨 오른쪽 국자가 달고나 국자이고 왼쪽 2개가 뽑기 국자입니다.  손잡이가 수평으로 되어 있죠. 저 위에 설탕을 붓고 가열을 합니다. 그럼 설탕이 녹고 카라멜처럼 색이 변할 때 베이킹 소다를 넣으면 부풀어 오릅니다. 이 부풀어 오른 녹은 엿과 같은 것을 넙적한 철판 위에 팍 하고 던지면 갈색 덩어리가 떨어집니다. 그 갈색 덩어리를 호떡 누르는 판 같은 걸로 눌러서 핍니다. 그리고 그 위에 별, 사람, 우산, 비행기, 삼각형 같은 것을 찍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2개가 있는 것도 있는데 제 기억으로는 2개가 찍은 것은 반은 짤라서 친구와 함께 뽑기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오징어게임에서처럼 도형대로 따내면 1번 더 먹을 기회를 주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전 뽑기 잘하지도 않았고 성공한 적이 없어서 1판 더 먹은 기억이 없네요. 똥 손이라서 나중에는 친구가 주면 뽑기 도전도 안 하고 그냥 아구작 아구작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후로 친구가 저 안 주더라고요. 

뽑기는 다른 지방에서는 띠기라고도 했는데 달고나와 출발선은 같지만 게임 요소가 들어간 파생 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마트에 갔더니 '추억의 달고나 세트'가 나와 있네요. 제조도 쉽고 재료도 싸고 만드는 재미 먹는 재미까지 모두 흥미로운 군것질거리였습니다. 물론 설탕물이라서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는 않았지만 많이 먹으라고 도 쉽게 물려서 많이 먹지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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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모여서 함께 먹었던 도시락

오징어게임에는 도시락도 나옵니다. 요즘 같이 급식이 보편화된 학교와 직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도시락이죠. 
도시락은 정말 불편했습니다. 도시락 따로 반찬통 따로 싸주기도 했지만 도시락통 안에 반찬을 한꺼번에 넣기도 했죠. 
문제는 가방에서 도시락이 뒹굴면 난장판이 됩니다. 

반찬과 밥 일체형 도시락통은 밀봉이 안 되기에 국물 있는 반찬을 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김치는 정말 참 골치 아픈 반찬이었지만 안 쌀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란 이블과 분홍 소시지가 국민 반찬이 되기도 했죠. 그마저도 잘 사는 집이나 특별한 날이나 분홍 소시지에 계란옷 입힌 것을 먹었습니다 콩자반도 참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도시락 문화의 유일한 좋은 점은 다양한 반찬, 뚜껑을 까봐야 하는 아는 뽑기의 재미도 있고 어머니의 마음도 알 수 있었죠. 다양한 반찬이 담긴 도시락을 놓고 5명 이상이 모여서 밥을 먹는 풍경은 제가 학창 시절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오징어게임 못지않게 재미있었던 게임 다방구

드라마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오징어게임 못지않게 더 인기 많았던 것이 다방구였습니다. 오징어게임은 재미는 있지만 아동용 럭비가 아닐까 할 정도로 몸싸움이 아주 심했습니다. 이에 비해 재미도 있고 과격하지 않았던 게임이 다방구였습니다. 다방구는 인원 제한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대규모 인원이 참여할 수 있어서 동네 아이들 몽땅 모아서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동네 공터에서 정말 많은 아이들이 놀았어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체육시간에 하지 않으면 지금은 따라 할 수도 없는 풍경입니다. 

다방구는 수비와 공격으로 나눠서 진행합니다. 수비는 공격팀을 터치하면 아웃이 됩니다. 아웃이 된 공격팀은 지정된 전봇대 같은 곳에 이동합니다.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려면 다른 공격팀이 터치를 해서 살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걸 터치 못하게 수비팀이 막고 있죠. 그렇게 수비팀이 돌아다니면서 공격팀을 터치하면 죽은 공격팀원이 쌓이게 됩니다. 죽은 공격팀은 손에 손을 잡고 지네처럼 길게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긴 줄이 왔다 갔다 하면서 살려다라고 하면 남은 공격팀은 그 줄을 끊으면 공격팀은 다시 모두 자유의 몸이 됩니다. 수비팀은 이를 막아야 합니다. 

딱지놀이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딱지는 2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오징어게임에서 공유가 하던 건 네모란 딱지로 달력이나 책 표지나 각종 폐지를 접어서 만듭니다. 제작비는 0에 가깝죠. 모든 종이를 접어서 사용할 수 있지만 안 되는 종이, 반칙이라고 인정받는 종이가 신문지였습니다. 신문지 접어서 만들면 반칙입니다. 인기 많았던 건 과자박스, 초코파이 상자 박스 같은 두꺼운 상자 박스가 인기였습니다. 

네모란 딱지는 룰이 간단합니다. 쳐서 넘어가면 먹는 겁니다. 앞으로 있던 걸 쳐서 뒤집어지면 먹고 뒤집어져 있는 걸 앞으로 돌려 놓으면 먹습니다. 그냥 힘껏 내리치는 걸 배때기라고 하고 딱지 끝에 신발을 댄 후 땅과 딱지 사이의 틈으로 딱지를 힘차게 넣어서 딱지가 신발에 맞고 뒤집어지는 공격법도 있는데 제가 이걸 잘했습니다. 하루 종일 치다 보면 손목이 욱신 거리기도 했죠. 

둥그런 딱지도 있었습니다. 둥그런 딱지는 문방구에서 돈을 내고 사야 했습니다. 새딱지를 사야 둥그런 딱지 게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둥그런 딱지 게임은 정말 다양했습니다. 둥그런 딱지를 날려서 가장 멀리 날아간 사람이 다 먹는 게임도 있었고 카드식으로 한 장씩 주고 둥그런 딱지에 있는 그림이나 글씨, 별, 숫자 중 하나를 선택해서 별 높, 별 낮이라고 외치면 배팅을 합니다. 포커랑 비슷한데 그보다 더 단순합니다. 

전쟁 높, 전쟁 낮도 있는데 전쟁 높은 딱지 속 그림에 그려진 것의 전투나 싸움 능력으로 순위를 매겼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과 탱크가 있으면 당연히 탱크가 이기죠. 이런 식으로 전투 서열이 있는데 이 서열이 애매할 때도 있었죠. 그래서 별이나 숫자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데 둥그런 딱지를 다 잃고 나면 우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런 아이들에게 개평을 챙겨줬습니다. 딱지를 다 잃으면 깐보에게 가서 딱지를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깐보는 모든 게임에서 사용하는 건 아니고 구슬이나 딱지 같이 재화형 게임 도구를 서로 공유하는 경제 협력체이자 경제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깐보는 친구보다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구슬치기도 참 게임 종류가 많았죠. 봄,여름,가을,겨울, 깔빼기, 이름도 다 까먹은 놀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왕따 문화가 없었던 그 시절의 깍두기 문화

오징어게임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단어가 깍두기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지나가는 말로 나오고 마는데 깍두기 문화가 60~80년대 동네 어귀에서 놀던 아이들이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게임 문화였습니다. 편을 갈라서 하는 게임이 많았는데 인원이 딱 반으로 갈라지면 좋은데 1명이 남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그 1명을 게임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아닌 쫄리는 팀에 꽂아 넣어줍니다. 이는 상대편도 인정을 해줘야 하는데 아이들이 매일 얼굴을 맞대고 놀다 보니 피지컬 능력이나 두뇌 회전력 등을 다 간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깍두기가 들어가야 하는 팀을 서로 잘 압니다. 

깍두기는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또한 모든 친구들이 한 명의 낙오자도 배척도 없이 함께 놀 수 있게 하는 놀이 문화였습니다. 깍두기 문화가 있던 시절에는 왕따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반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소심한 친구들도 그 시절에도 있었죠. 그러나 다른 친구들이 그런 친구를 괴롭히거나 이상하게 여기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모두 친하게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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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메가 한국에 소개된 후 일본은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집단 따돌림을 할까? 이해가 안 갔는데 5년도 안 지나서 한국에서 이지메가 상륙하더니 왕따 문화가 생겼습니다. 이게 90년대 중후반으로 기억됩니다. 지금은 왕따를 모르는 사람이 없죠. 제 생각이지만 이 동네 공터에서 놀던 놀이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가정용 게임기 보급이 진행되고 아이들 놀이 문화의 기본 조건인 흙바닥이 점점 사라집니다. 오징어게임(오징어 가이상)이나 구슬치기, 땅따먹기 등등은 흙바닥에서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스팔트가 깔리기 시작하면서 놀이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학원 가야 하는 아이들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4교시만 하고 하교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요즘 돌봄 교실이 많죠. 80년대 그 당시는 집에 부모님이 없던 아이들은 가방을 집에 던져 놓고 달려 나와서 형, 누나, 언니들하고 놀았습니다. 초등학생 고학년생들이 저학년생들을 게임을 하면서 돌보는 역할도 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그런 개념 없이 그냥 신나게 놀았지만 부모님이 퇴근하고 오기 전까지 남는 시간을 아이들의 놀이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숙제도 엄청 많아서 그렇게 신나게 놀고 오후 늦게 까지 숙제를 했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선행학습에 보습학원까지 다녀야 하니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깝네요. 

사교육이 없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요. 중국이 한국을 벤치마킹 많이 하는데 아이를 안 낳는 이유가 높은 부동산과 사교육이라고 결론을 내리자마자 시진핑이 사교육 전면 금지를 시키고 헝다 그룹 파산을 일부러 방치해서 부동산 거품을 꺼지게 하려는 모습도 보이게 하네요. 

동네 어귀에서 뛰어 놀던 유년 시절의 놀이들이 주는 효용은 참 많고 깊었습니다. 아이들과의 친목 도모는 물론 그 놀이들을 통해서 협동심과 약자에 대한 배려 등등 참 여러 면으로 즐겁고 유익했던 놀이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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