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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길냥이들을 지키는 동네히어로를 담은 다큐 고양이집사

by 썬도그 2021.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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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피사체에 대한 시선은 오롯하게 내 시선으로만 봐질까요? 아닙니다. 세상의 합의적인 상식의 시선으로 보게 됩니다. 이 상식이라는 것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크게 다릅니다. 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하던 시절에는 길고양이는 쫓아내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도둑고양이들이 말려 놓은 생선을 훔쳐가고 음식물을 몰래 먹는 등의 피해를 주기에 멀리 쫓아내야 했습니다. 물론 철없던 저도 그 행동에 동참했죠. 

그러나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행동 중 하나가 어린시절 길냥이들을 괴롭혔던 일입니다. 그렇다고 심하게 괴롭힌 건 아니고 멀리 내쫓길 잘했죠.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길냥이들만 보면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고양이를 키울 정도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고양이가 주는 매력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진을 좋아하다 보니 가장 매력적인 피사체 중 하나가 고양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를 오래 볼수록 요물이라는 말이 절러 떠오르네요. 정말 요물입니다. 사람을 혹하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려다가 넷플릭스를 뒤적거렸습니다. 예쁜 고양이가 떠 있길래 눌렀습니다. 그리고 좀 보다 자야겠다 했는데 다 봤습니다. 고양이 관련 다큐나 영화는 꽤 많지만 유튜브 고양이 채널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서 거의 다 안 봤습니다. 그런데 역시 고양이 다큐는 다릅니다. 유튜브 고양이 채널에 없는 스토리가 있으니까요. 

2020년 개봉한 <고양이 집사> 다큐를 다 볼 수 있었던 것은 초반에는 임수정 덕분입니다. 배우 임수정이 이 다큐의 내레이션을 했습니다. 임수정의 고운 목소리로 시작하는데 그냥 빨려드네요. 다큐 <고양이 집사>의 감독은 2005년 개봉한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촬영 감독이었던 이희섭 감독님입니다. 왜 그 영화 있잖아요. 그렇게 다 가져가서 속이 후련했냐고 하던 김래원 주연의 영화요. 

촬영 감독이었던 분이라서 스토리는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진솔함이 가득한 내용에 푹 빠지게 되네요. 
스토리 전달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이희섭 감독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은 레니입니다. 길냥이 출신으로 여러 집을 전전하다가 감독님과 함께 삽니다. 임수정은 이 레니의 시선으로 다큐를 진행합니다. 레니는 아빠가 춘천으로 간 이야기부터 합니다. 

전국의 길냥이를 지키는 동네히어로들을 담은 다큐 <고양이 집사>

춘천 효자동 사는 길냥이들을 지켜주는 동네 주민들을 차분한 어조로 담습니다. 길냥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배달해주는 중국집 사장님을 보면서 저렇게 고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존경심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실제로 중국집 사장님은 고충을 토로합니다. 고양이들에게 밥 챙겨주는 것이 돈도 많이 들어가지만 동네 주민들과 마찰도 심하다고요. 한 번은 고양이 밥을 챙겨줬는데 동네 주민이 버렸다는 말에 울분을 토합니다. 긴 한숨 속에도 다시 배달 오토바이에 고양이 밥을 싣고 동네 고양이들 밥을 챙겨주는 모습은 성인군자 같았습니다. 

말 못하는 미물이라고 학대하고 하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따뜻한 성품이 너무 감동스럽습니다. 

그리고 레드도 나옵니다. 레드는 원래 이름이 없었습니다. 레드 바이올린 공방 사장님이 밥을 챙겨주는 길냥이인데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아실 겁니다. 이름 지어주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죠. 그러나 감독은 레니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 다큐에서는 다양한 고양이들이 나옵니다만 레니가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암컷 고양이로 조폭이라는 남자 친구 사이에서 낳은 새끼 고양이가 모두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새끼 잃은 슬픔을 가져서인지 레니는 참 슬퍼 보입니다. 

감독님이 부르면 냉큼 달려오는 레니. 감독님은 레니를 데리고 올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만 레드바이올린 사장님을 따르고 조폭이라는 남자 친구도 있어서 춘천을 떠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흔한 고양이 다큐인가 했습니다. 왜 제목이 고양이 집사일까 했는데 중반에 그 이유를 제대로 보여주는 분을 소개합니다. 

전국의 고양이 집사들의 헌신을 담은 다큐 <고양이 집사>

요즘 많은 분들이 길냥이들을 보살핍니다. 이중에서 재개발이 일어나는 지역에서 사는 길냥이들을 보호하고 이주를 돕는 분들도 많죠. 이분들은 엄청난 희생정신이 없으면 감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떠나면서 버리고 간 고양이가 길냥이가 되고 원래 살던 길냥이들이 점점 사라지는 집들을 피해서 빈집에서 거주합니다. 아니 거주하도록 길냥이 집사님들이 돕습니다.  한 고양이 얼굴이 뭉개졌는데 개의치 않고 돌보는 모습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남들은 싫다고 학대하는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있다면 그 말 못 하는 길냥이들을 치료하는 천사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길냥이를 싫어하는 그 자체를 비판하는 건 아닙니다.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학대하는 것이 문제죠. 고양이들이 피해를 안 준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게 심한 피해를 주나요? 

성남 재개발 지역에서 길냥이들의 이주를 돕는 거룩한 손길을 뒤로하고 감독님은 노량진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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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길냥이들과 공존하는 시장 상인들이 마치 길냥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최근까지 큰 분쟁이 있었습니다. 구 시장과 신 시장 사이의 이주 문제로 분쟁이 있었고 용역들이 수시로 집기를 부숴버리는 모습을 묵묵히 담습니다. 그렇다고 용역 분들을 악인으로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길냥이들이 용역 분들이 집기를 부스는 소리에 도망가는 모습이 안쓰럽고 애처롭네요. 

감독님은 부산으로 갑니다. 부산 한 마을에서 고양이과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동네 음식점과 마을 분들이 고양이를 서로 챙겨주는 뭉클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길냥이들과의 공존을 꿈꾸는 전국 고양이 집사님들

많이 변하긴 했죠. 도둑고양이에서 길냥이로 부르는 호칭을 변경한 게 15년 정도 되었습니다. 이 작은 변화가 전국 길냥이들에게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캣맘, 캣대디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말 못 하는 짐승들인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에게 물과 먹이를 주고 있습니다. 

제가 찍은 길냥이들입니다. 촬영 나갔다가 우연히 담은 사진들이고 지금 이 고양이들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서 볼 수 있어서 좋네요. 사진 찍다가 좋아진 길냥이들. 요즘은 길냥이들 보면 눈인사나 손인사를 해줄 정도로 길냥이들이 좋습니다. 

다큐 <고양이 집사>는 전국 길냥이 지키미들이자 동네 히어로들의 모습을 자박자박 잘 담습니다. 그리고 감독님은 레드를 잊지 못하고 춘천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춘천에서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다들 그럴 거예요 잠시 만난 존재들이지만 제가 길냥이 사진을 가끔 꺼내보듯이 잠시 만난 인연이지만 잊지 못하는 인연들이죠. 감독님은 레드가 그랬고 다시 찾은 춘천에서 레드를 다시 만납니다. 레드의 안위를 걱정해서 찾아간 곳에서 가슴 뭉클한 한 장면이 펼쳐지네요. 

고양이와 공존하는 삶을 사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요즘은 지자체도 공존하자고 외치는 곳이 늘어서 그나마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사는 길냥이들은 오늘도 고달픈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전국의 캣맘, 캣대디들이 있어서 그들은 잠시나마 지구에서 살아서 행복하다고 느낄 겁니다. 가르랑 거리는 골골송을 부르는 레니는 아빠의 온기를 느끼면서 다큐는 끝납니다. 

별 느낌 없고 무색무취한 다큐인줄 알았고 실제로 어떤 꾸밈이나 화려함이나 각성제 같은 대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큐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희섭 감독님이 담아준 전국 고양이 집사님들을 보는 그 자체가 감동이네요. 정말 오랜만에 좋은 다큐를 봤네요. 특히 임수정 배우의 내레이션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추천하는 다큐 <고양이 집사>입니다. 넷플릭스에 있으니 챙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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