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보신각 근처 관철동 상가지역은 젊음의 장소이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서울 중심에 있다 보니 서울 끝에 사는 친구들이 중간에 만나기 딱 좋은 위치였습니다. 서로 공평한 위치에 만나서 웃고 떠들고 술을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저에게 종로는 젊음의 거리이자 추억의 거리이자 활기찬 거리입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터기지 2~3년 전부터 종로 상권이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종각역 근처의 대로변은 항상 상점들이 북적였는데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상인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참혹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임대한다는 상가들이 가득합니다. 어제 나가보니 1달 전 보다 더 험악해졌네요.
지난 5월 종각역 뒤 관철동 상가지역에 중고서점이 새로 생겼습니다. 너무나도 뜬금 없어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며칠 지나고 들어가서 중고책 3권을 1만 원 주고 사 왔습니다. 1,2층 모두 다양한 중고책이 가득했습니다. 책들은 알라딘 중고서점보다는 청계천 근처 평화시장에 가득한 중고서점처럼 오래된 책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에는 중고서점으로 수익 내기 어려울 거 같은데 이 코시국에 용감하게 창업한 모습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이 우미관 건물 건물주가 운영하는 중고서점입니다. 이해가 가네요. 요즘 상가들 보면 최고의 경쟁력은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가게라고 하잖아요. 한국은 너무 임대료가 비싸요.
이러니 상점들이 텅텅비죠. 저 건물 1,2층도 탐앤탐스가 입 접했다가 떠났고 새로운 임차인 찾지 못하자 건물주가 직접 중고서점 운영하나 보네요. 그런데 이 '홍길동 중고서점'이 최근에 아주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5월에 '홍길동 중고서점'을 소개한 블로그 글은 네이버, 다음 검색 양쪽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 '홍길동 중고서점' 외벽에 쥴리의 남자라는 벽화가 그려집니다. 쥴리는 현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윤석열 후보의 아내인 김건희 씨가 과거에 쥴리라고 불리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더 자세한 한 내용은 정말 창피한 일이라서 거론은 안 하겠습니다.
이후 난리가 납니다. 쥴리의 남자라는 벽화에 보수 유튜버들과 윤석열 지지자들이 몰려와서 차로 막고 방송을 하는 등 온갖 가림막을 칩니다. 벽화 위에 낙서도 하고요. 뉴스까지 나올 정도로 아주 아주 큰 이슈가 됩니다. 이세 중고서점 사장님은 위 사진처럼 하얀색으로 벽화를 없애 버립니다. 그리고 이 하얀 벽화는 정치 게시판이 되어 버렸네요.
신기하게도 오른쪽은 진보 분들이 쓴 글들이 많이 보이네요.
아! 아예 낙서를 하라고 이렇게 매직을 가져다 놓았네요. 한국인들 낙서 참 좋아하죠. 요즘은 상식선이 높아져서 달라졌지만 해외여행 자유화 초기에 전 세계 유적지에 한글 낙서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라가 잘 살면 상식선도 같이 높아지네요. 옥외 지하철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 버스에서도 폈던 시절이 있었죠.
낙서판이자만 쥴리 벽화가 있던 곳이라서 그런지 정치글이 대부분입니다. 간간히 위트 있는 글이 보이지만 대부분은 혐오글도 보입니다.
왼쪽은 우익들의 게시판인가 보네요.
입술에 하얀 칠하고 작품명 : 좌파의 개거품이라고 적었네요. 한국인들은 정치 이야기 참 좋아하고 관심도 많죠. 그러나 날이 갈수록 중도층은 옅어지고 극단인 극우, 극좌만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극좌, 극우들이 너무 정치에 대한 막말을 하고 그 막말을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엄청나게 떠듭니다. 이러다 보니 정치 관련 글들은 대부분이 쓰레기이고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는 멀끔하네요.
이 남자는 누구일까요? 어준이라고 적혀 있네요. 김어준인가요?
정치게시판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무슨 대통령 병이 걸린 느낌입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해요. 조선의 왕과 다를 게 없죠.
물론 대통령이 한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기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정량화한다면 가장 많은 힘을 가진 사람인 건 맞죠.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대통령 탓을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통령은 임기 초기인 1~2년 정도는 칭송받다가 나머지 3년은 엄청난 비난을 받습니다. 이런 주기를 보면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3년제로 하고 최대 3번까지 하는 중임제로 하는 것이죠. 그럼 대통령 지지율 떨어지기 전에 다시 대선을 치루잖아요. 그러나 대통령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닌 듯 합니다. 최근 국방부의 군 비리와 성추행 사건 보세요. 대통령이 격노를 해도 늘공(늘 공무원) 같은 군인들은 안 변하잖아요. 대통령은 5년짜리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은 공무원과 군인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도 개헌을 해서 미국처럼 4년 중임제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네요. 다음 대선은 코로나와 함께 치루어질 듯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품격 있는 정치는 사라지고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한국 정치 같네요. 여전히 건설적인 이야기보다 루머나 단편적인 이미지가 큰 영향을 주는 느낌입니다. 저는 진보 성향이지만 현 정권에 큰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 보수를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보수들은 건강한 모습이 없습니다. 대안도 아니고요.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 무척 아쉽네요.
이 홍길동 중고서점 이슈고 그래요.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전국 방송에서 떠들 정도의 중요한 이슈인가요? 참 묘한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