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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소리도 없이. 악의 없는 범죄와 위장된 선을 섞어버린 놀라운 영화

by 썬도그 2021.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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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 시대에 개봉한 영화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개봉한 몇몇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소리도 없이>입니다. 유아인, 유재명이 나와서 대중 영화라고 생각하고 저도 아동 납치를 소재로 한 대중 영화인 줄 알고 보다가 뭔 영화가 이래?라는 생각에 설마 이 영화 아트하우스 영화인가?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유재명이 연기한 창복이 죽기 전까지는 간간히 웃기는 장면이 있어서 흔한 대중 영화인 줄 알았는데 창복이 죽은 후 말을 못하는 태인(유아인 분)과 납치를 당한 초등학생 초희(문승아 분)의 관계를 보면서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태인은 납치범에 시체 유기에 온갖 범죄를 다하는데 이 태인을 초희가 잘 따릅니다. 그러나 도망치기도 하고요. 반대로 태인은 납치범이지만 꽤 선한 청년으로 느껴지고요. 갈피를 못 잡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다 말다 보다 말다 했습니다. VOD로 한 5번을 끊고 겨우 다 봤네요. 

결말까지 다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내가 생각한 그런 흔한 대중영화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루해하고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라고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감독의 의도된 스토리이자 연출임을 알게 되자 모든 것이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흔한 납치를 소재로 한 범죄 영화 같았던 영화 소리도 없이 초반

아무런 정보 없이 티빙에 올라왔길래 봤습니다. 딱히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유아인과 유재명이 나와서 봤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말을 못하는 청년 태인(유아인 분)과 태인을 어려서부터 키운 창복(유재명 분)이 사람을 매달아 놓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폭 영화에서 많이 본 그 장면입니다. 

피가 튀지 않게 비닐옷을 입고 위생모를 쓰고 고무장갑을 끼고 작업을 합니다. 조폭들이 고문을 하고 죽이면 이 둘은 죽은 사람을 파묻습니다. 이들의 작업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 머리를 북쪽으로 향해야 한다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선의를 베풉니다. 

이 둘은 범죄를 행하는 악인들이지만 얼굴 빛은 선량하고 근면 성실함 그대로입니다. 다만, 범죄를 직접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범죄를 숨겨주는 범죄 하청 업체 직원입니다. 

태인은 길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는 할머니에게 계란을 주는 등 선량한 청년입니다. 비록 범죄를 돕지만 동시에 선한 모습도 있습니다. 태인은 집에 세상과 접촉을 안 하는 듯한 정말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나이 차이가 커서 진짜 동생인가 의심이 가긴 합니다만 진짜 동생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둘의 관계와 태인이 어떻게 혼자 살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날도 태인과 창복은 그날도 조폭들의 요청으로 한 사람을 잠시 맡게 되는 임무를 부여 받습니다. 그런데 그 잠시 맡기로 한 사람이 초등학생 소녀입니다. 토끼 가면을 쓰고 있는 초희는 이 둘이 모는 트럭을 타고 태인의 집에 잠시 기거합니다. 창복은 비록 시체 처리업을 하지만 유괴 사건을 맡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떠밀리듯 맡게 되고 초희는 잠시 태인의 집에 기거하기로 합니다. 

뭔 초등학생이 저리 영악하지? 점점 떨어지는 재미

보통 납치를 당하면 아이는 울고불고 까물어쳐야 합니다만 배초희는 좀 다릅니다. 
"아저씨 저 죽어요?"
트럭에 탄 초희는 두 아저씨에게 불쑥 이런 말을 합니다. 이에 창복은 아빠가 내일 올 거라고 달래줍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자신이 납치된 것을 알면서도 뭔가 숨기는 느낌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초희는 쓰레기 더미 같은 태인의 집에서 놀랍도록 잘 적응합니다. 물론, 중간에 만난 할머니에게 살려달라고 하지만 그게 먹혀들지 않자 바로 이 상황에 수긍합니다. 

더 놀라운건 태인의 여동생에게 친언니 이상으로 잘해주면서 태인의 마음을 삽니다. 태인은 그렇게 악한 청년은 아닙니다. 그냥 자라면서 창복 같은 악의 없지만 먹고살기 위해서인지 범죄 하청업을 하면서 죄의식이 없는 청년 같습니다. 그러나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자신이 행한 행동이 납치라는 것도 알고 경찰에 알려지면 안 된다는 것도 압니다. 

다만, 직접 무자비한 폭력은 행하지 않습니다. 범죄 조력자라고 할까요? 행동 자체는 순박한 시골 청년입니다만 그의 행동과 마음과 달리 그가 하는 주된 직업이자 일은 범죄입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헛깔리기 시작합니다. 태인이 나쁜 놈인지, 환경 때문에 나쁜 짓을 하게 된 마음은 착한 놈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말이라도 하면 대사로 대충 느낄 수 있지만 말을 하지 않으니 그의 행동으로만 알아야 합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지루하기 시작합니다. 전형적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유괴 사건을 억지로 떠맡았는데 유괴를 한 조폭 행동대장이 죽습니다. 혹을 떠 안게된 두 사람은 초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고 하지만 모두 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조폭들은 직접 당신들이 초희 부모에게 돈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에 창복은 직접 유괴에 대한 대가인 돈가방을 받고 안절부절못합니다. 

범죄를 도왔지만 직접 전면에 나선 적이 없던 창복은 쿵쾅거리는 돈다발을 들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머리를 벽에 부딪혀 죽습니다. 순간 헉 소리가 나왔습니다. 죽는 과정이 너무 황당하기도 하지만 저질스러운 전개입니다. 여기서부터 영화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집니다. 그리고 후반은 이 영화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전 아무런 정보도 없이 봐서 그냥 흔한 납치 소재 대중 영화라고 봤는데 이 영화 그런 흔한 대중 영화가 아닌 아트하우스 즉 작가주의 예술 영화입니다. 미리 말하지만 이 영화 대중 영화 아니고 예술 영화이고 그걸 인지하고 봐야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됩니다. 저같이 대중 영화라고 끝까지 보면 다 보고 나서~~~ 아! 뭐 하자는 영화야라고 깊은 빡침이 나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흔한 영화가 아님을 알고 보면 그나마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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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없는 범죄와 착한 위장된 선에 대한 물음

영화 <소리도 없이>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유아인이 연기하는 태인과 초등학생 초희입니다. 유아인이 2020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는 모습에 뭐야 뜬금없게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면 유아인의 놀라운 연기가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더 높게 만듭니다. 여기에 아역배우 문승아도 못지 않게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먼저 태인이라는 인물이 독특합니다. 
대사가 없기에 그의 행동으로 태인의 마음을 유추해야 합니다. 제가 느낀 태인은 순박한 시골청년입니다. 다만 범죄를 돕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고 범죄가 나쁜 일인 것은 압니다만 그냥 범죄를 돕는 일을 그냥 일로만 생각합니다. 직접적인 범죄가 아니기에 죄의식이 약한 느낌도 들지만 확실히 자신이 범죄인인지 압니다. 

다만, 직접 폭력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초희를 인신매매범들에게 넘기고 죄책감을 가집니다. 평생 죄책감을 느껴보지 못하고 살았던 태인, 창복에게 범죄를 배우고 그냥 범죄 생태계에서 살았던 태인이 초희가 돼지우리 같은 집을 청소하고 죽은 사람의 입던 양복을 세탁해서 걸어 놓은 따뜻함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어려서부터 범죄를 보고 배우고 자란 태인이 죄책감을 느끼게 된 건 초희의 마음의 온기였습니다. 마치 영화 <피에타>에서 죄책감이 없던 주인공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게 하는 놀라운 복수처럼 태인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바꿔줄 수도 있는 초희에게 기댑니다. 어떻게 보면 초희는 이 감옥같은 삶을 열어주는 열쇠와 같은 인물로 느껴집니다. 

악의 없는 범죄인 태인. 이 태인을 보다 보면 태인이 하루빨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수하거나 최소한 초희는 풀어주길 바라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을 합니다. 

초희는 그냥 유괴 소재로 소비되는 인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태인과 함께 이 영화의 핵심 인물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왜 초희가 처음에 토끼 가면을 썼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초희는 영악스러운 초등학생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초희는 상황판단을 아주 잘하고 적응도 아주 잘합니다. 

순박한 청년인 동네 오빠 같은 태인이지만 결코 자신을 풀어주지도 않는 것을 잘 압니다. 이에 태인을 자극하지 않음을 넘어서 집안 청소까지 하면서 환심을 삽니다. 나중에는 초희 부모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을 때 너무 웃어서 창복이 너무 웃으면 안 된다고 타박할 정도입니다. 초희가 너무 웃다 보니 이전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얼마나 학대 받고 자랐으면 옆에서 사람이 맞아서 죽고 시체를 묻는 장소에서도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회성은 학대받고 폭력이 만연하고 썩어버린 영혼의 소유자 밖에 없습니다. 이 초희는 순진무구함과 거리가 멉니다. 가장 놀라웠던 건 태인이 경찰을 격투 끝에 본의 아니게 죽게 만들었는데도 옆에서 못 본 척합니다. 

최소 입틀막인데도 태인의 여동생이 못보게 할 정도로 영악합니다. 초희도 이 태인과 친오빠처럼 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태인이 자신을 인신매매범들에게 팔아넘기자 정신을 다시 차립니다. 그리고 다시 토끼 가면을 쓰고 활짝 활짝 웃습니다. 다 위장된 미소이자 선입니다. 살기 위한 억지웃음에 태인은 초희에게서 죄책감을 느끼고 이 더러운 삶을 종료하고 싶어 합니다. 

영화 <소리도 없이>는 악의 없는 범죄인과 위선적인 선을 대립시키면서 관객이 누구의 편을 들거냐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 이치라는 것이 100% 빌런도 없고 100% 히어로도 없다는 걸 강력하게 상기시켜줍니다. 이러다 보니 영화는 어떤 메시지도 없이 끝나는 느낌도 듭니다. 그럼에도 제가 끄집어낸 메시지이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마지막 장면에서 봤습니다. 

학습된 범죄인을 안내하는 온화한 사진

이 단락은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보실 분은 영화 다 보시고 읽으시거나 건너 뛰세요

창복은 초희의 부모에게 보내기 위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옵니다. 초희는 자신이 다룰 줄 안다면서 테스트로 창복, 태인, 태인 여동생을 찍어줍니다. 태인은 도망치면서 울먹이는 듯 숨 가빠합니다. 

태인이 떠올리는 기억은 이 사진입니다. 태인이 좋은 부모 아니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으면 평범한 농촌 청년으로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태인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으니까요. 또한, 범죄는 인지하지만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 온기가 문제입니다. 이 온기가 초희가 진짜 좋아서 한 온기가 아닙니다. 살려고, 이 유괴범에서 벗어나려고 억지웃음, 억지 미소, 위장한 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초희도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웃지 않고 달려가서 엄마에게 안기지도 않습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꾸벅 인사를 합니다. 학습된 행동이죠. 초희는 3대 독자 집안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부모는 철저히 아들만 좋아하지 딸인 초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러니 초희는 비록 유괴범에서 탈출했지만 돌아간 삶도 달갑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부모 앞에서 착한척하며 살겠죠. 초희는 또 다른 인질이 됩니다. 초희가 탈출하는 날은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2020년에 이 영화를 안 봤다는 것이 후회되는 영화 <소리도 없이>

이게 머선 일이고? 재미없는 대중 영화인 줄 알았는데 놀라운 아트하우스 영화이자 한국 영화의 미래에 등불을 하나 더 켠 영화라니. 다 보고 나서 다시 돌려 봤습니다. 그럼 저 어색한 창복의 죽음 장면도 다 의도한 것인가? 

투박한 장면조차도 창복의 삶을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유아인이 영화 고르는 선택력이 꽤 좋은데 영화 <살아있다>는 너무 허술한 스토리라서 의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게 연장되어서 <소리도 없이>도 그냥 흔한 대중영화라고 생각했네요. 

놀라운 영화입니다. 유괴를 소재로 한 흔한 범죄물로 포장한 우리 세상의 선과 악에 대한 이중 잣대를 조롱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것은 순박한데 순박하지 않은 듯한 알듯 모를듯한 태인 때문입니다. 
큰 돌이든 작은 돌이든 물에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범죄 행위를 멈추어야 하는데 계속 이어갑니다. 결국 초희로 인해 죄책감을 가지는데 그게 또 위장된 선이라니. 

소리도 없이.  소리가 없다는 건 자신을 변호할 말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로지 행동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결과만을 도출합니다. 동기나 과정이 아닌 계속 행동이 결과가 됩니다. 결과로 보여달라는 말이 있듯이 결과로 태인을 보다 보니 그 결과에 태인의 갈등까지 묻어나옵니다. 태인은 악이라는 버튼만 있던 세상에서 선과 악 2개의 버튼이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영화가 너무 잘 그려냅니다. 

여기에 쉐도우 스트라이커 같은 초희가 마지막에 중거리 강슛을 날리네요.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강력 추천하긴 어렵습니다. 분명 이 영화는 대중적인 요소는 많이 약하고 생각을 많이 요구하다 보니 모두가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트하우스 영화 좋아할 분들은 아주 좋아할 영화입니다. 홍의정 감독님 앞으로 주목하고 응원하겠습니다. 

별점 : ★
40자 평 : 대중적인 범죄 드라마로 위장한 작가주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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