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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2020년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 남매의 여름밤 가족을 넘어 식구까지 담다

by 썬도그 202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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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역시 좋은 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추천합니다. 윤단비 감독의 첫 장편 독립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제가 본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였습니다. 뭐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지 않아서 경쟁 영화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2019년 <벌새> 못지않은 아주 좋은 영화였습니다.

영화 <벌새>도 그렇고 <남매의 여름밤>도 그렇고 여성 감독들의 뛰어난 관찰력과 감수성이 이 영화를 수작으로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걸 여성이라고 국한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대체적으로 여성들이 감수성이 참 풍부하고 그 뛰어난 감수성을 바탕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과거라는 판타지를 아주 잘 재현했습니다. 

불완전하고 불온전한 다소 무책임한 아빠를 따라 나선 남매의 이야기

고등학생인 옥주(최정운 분)과 초등학생 까불이 남동생 동주(박승준 분)는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집을 떠나서 아빠가 모는 다마스 2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 같은 이사를 합니다. 이 남매가 도착한 곳은 할아버지가 사는 2층 양옥집입니다. 70년대 지어진 전형적인 양옥 건물로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많이 든 집입니다. 

할아버지 혼자 사는 이 큰 집은 마당도 있고 방도 참 많습니다. 아이들은 좁은 아파트에서 살다가 큰 집으로 이사와서 기분이 좋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할아버지 아들인 아빠가 할아버지에게 이러저러해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미리 언질도 하지 않고 그냥 쳐들어 왔다는 겁니다. 물론, 아빠의 아버지인 할아버지는 일언반구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병이 있으셔서 많은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무례하지만 피치 못할 동거 그러나 행복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아빠는 어린 옥주와 동주 남매에게 여름방학만 함께 지낸다고 말을 했지만 사정을 보니 여름방학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아빠는 다마스를 끌고 신발 장사를 하는데 벌이가 신통치 못한 지 문제집을 사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뭔 자격증을 따서 더 좋은 직업 또는 직장에 취직하려고 노력 중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낡은 양옥집에 고모까지 함께합니다. 옥주 고모는 옥주와 너무 친합니다. 둘은 엄마와 딸 또는 자매처럼 살갑게 지냅니다. 그렇게 아빠, 고모, 두 남매 그리고 할아버지의 다소 묘한 그러나 충분히 이해 가능하고 온기 넘치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온기가 느껴지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혼을 한 아빠가 갈 곳이 없어서 혼자 사는 아버지 집에 얹혀 사는 모습입니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죠. 여기에 옥주의 고모도 애는 없지만 이혼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옥주는 이 어른들의 세상을 타박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잘 모르니까요. 다만 관객 특히 아버지나 어머니 세대의 사람들에게 있어 아버지와 고모의 행동이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박을 하지만 동시에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그럴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아빠와 고모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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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아빠를 보고 완전해 지고 싶은 사춘기 옥주의 이야기 

우리는 완벽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게 실현되면 좋지만 대부분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꿈이 다 이루어지면 그곳이 천국이겠죠. 그러나 우리는 천국에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꿈이 실현되지 않고 평생 꿈을 꾸면서 살고 때로는 가끔 또는 추락하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게 그 실패도 어떤 관점에서 보면 실패지만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 있습니다. 

어린 옥주가 배운 세상은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세상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빠나 고모를 보면 완벽하지 않아 보입니다. 아빠는 이혼을 했고 고모도 이혼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혼 자체는 많이들 하기에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버린 듯한 엄마에 대한 원망이 깊습니다. 철없는 동생 동주가 이혼하고 따로 사는 엄마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자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동생이 엄마를 만나서 선물을 가지고 오자 화를 내면서도 둘이 싸웁니다. 

어린 옥주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함께 만나고 싶다는 욕망도 있습니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상황을 견디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아빠에게 서러움을 폭발합니다. 완벽할 것 같았던 아빠가 파는 신발이 진품인 줄 알았는데 아빠가 쌍꺼풀 수술비를 주지 않자 아빠가 파는 신발을 훔쳐서 직거래 판매를 하다가 짝퉁임을 알게 됩니다. 삶에도 짝퉁과 진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짝퉁의 세계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제야 옥주는 깨닫습니다. 세상이 진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렇다고 아빠를 원망할 수 없습니다. 아빠가 무능하지만 아빠는 옥주를 거두고 키우고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발이 짝퉁이라는 팩트는 옥주에게 세상에 대한 배움 또는 붕괴입니다. 완벽할 것 같은 세상이 결함 투성이이고 그 결함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옥주는 서서히 세상을 알아가면서 철이 들어갑니다. 

가족과 식구의 선택을 강요 받은 옥주!

<남매의 여름밤>은 가족드라마입니다. 흔한 가족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일상적입니다. 보통 가족드라마라고 하면 가족에서 대박사건이라는 엄청난 사건 사고가 연달아 터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 그런 건 없습니다. 드라마틱한 드라마가 있지 않아서 오히려 더 드라마틱합니다. 이게 이 영화의 미덕이자 매력이자 제가 올해의 한국 영화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우직하고 묵직하게 담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보고 있으면 다들 그럴 겁니다. 
"이건 내 이야기야" 우리는 어떤 영화를 볼 때 눈물을 흘리고 웃음 이유를 찾아보면 그 상황에 대한 내 경험과 추억이 동기화되기 때문이죠. 내 추억과 영화가 공명 현상을 일으키면 영화가 나고 내가 영화인 경험과 영화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서 함께 움직이게 됩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이런 뛰어난 공감이 가득한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혼란스러움이 기본인 사춘기 옥주는 엄마를 뺀 아빠와 남동생과 함께 할아버지 댁에 잠시 머물면서 식구를 만납니다. 친척이라고 하지만 할아버지와 고모는 가족이라기보다는 식구에 가깝습니다.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로 가족과 달리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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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고모가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낼까? 하는 질문을 옥주에게 할 때 옥주는 당황해 합니다. "왜 그걸 나에게 물어봐?" 이 대사는 가족과 식구를 구분하라고 강요하는 어른들의 질문입니다. 옥주에게 있어 할아버지는 당연히 가족입니다. 그러나 아빠와 고모는 현실적인 이유로 식구임을 인지하고 네가 요양원으로 보내는 데 힘을 보태라는 암묵적 동의를 요구합니다. 이 모습에 옥주가 폭발합니다. 

옥주는 아빠가 참 매정합니다. 몰래 할아버지 집에 말도 없이 얹혀 삶을 넘어서 할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빠가 파는 신발이 정품인 줄 알았는데 짝퉁이라는 사실에 분노하게 됩니다. 자신이 알고 믿고 따르던 세상이 거짓말이었다면 얼마나 화가 날까요?

네 압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고 그 아버지의 허울이 내 옷과 내 가방과 내가 먹는 밥을 이룬다는 것을요. 그러나 그건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때 깨닫게 되지. 옥주는 그런 세상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세상을 모르는 초딩 동주와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아빠 사이에 놓인 옥주라는 사춘기

돌아보면 세상을 모르던 초딩시절이나 어느 정도 경험과 지식이 축척되어서 개똥철학이라고 생긴 30대 이후의 삶은 불완전하더라도 불안감은 적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굵어지는 자존심이 자라는 사춘기 시절부터 취직하기 전까지의 20대의 삶은 불안의 연속입니다. 

초딩 동생인 동주가 개다리 춤을 추고 살갑고 까불거리고 눈치 없는 모습을 보면서 옥주는 한마디 합니다. 
"넌 자존심도 없냐". 전 이 대사가 너무나 사무칩니다. 자존심이 생기면서 고민도 생기고 그 고민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꼰대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중노년이 되면 자존심 대신 자만심이 마음속에 꽈리를 틀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가르치려고 합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한 계절을 바탕으로 하지만 초딩이라는 철없던 시절과 아빠라는 자만심과 염치없는 계절 사이에 놓인 사춘기를 올곧게 담고 있습니다. 보고 있으면 옥주를 한번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그 옥주는 내 사춘기 시절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옥주는 완전해지고 싶지만 불완전한 아빠를 원망하다가 불완전한 것이 세상의 기본임을 알게되면서 마음의 불안이 잦아듭니다. 

함께 수박을 먹던 여름날의 평상 같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

감독인 윤단비는 이 영화를 청소년들이 보면 좋은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들 보다 여름 방학의 추억이 있는 20대부터 중노년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추억을 일깨워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별 대사가 없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는 중노년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점입니다. 저도 이 영화에서 출연 분량도 적고 대사도 거의 없는 할아버지(김상동 분)을 보면서 저를 포함 많은 중노년 분들이 눈시울을 적셨을 겁니다. 딱 내 아버지입니다. 별말씀 없으시지만 아들과 딸이 손주가 싸우면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올라와서 손주들의 싸움을 말립니다. 

아버지의 거짓말과 엄마의 배신 속에서 스트레스가 폭발하던 옥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할아버지 모습에 얼어 붙은 마음이 풀립니다. 초딩 동생과 싸우던 옥주가 할아버지가 말리는 모습에 원망 반,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 반으로 바라봅니다. 이 장면에서 옥주를 연기한 최정운 배우의 연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쩜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나요? 초딩 동생을 연기한 박승준과 함께 우리의 추억을 일깨워 주는데 두 배우의 힘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티격태격하는 가족이지만 함께 식사를 할 때만은 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식구는 가족보다 위대하고 우리는 모른는 사람을 무장해제하기 위해서 '밥 한 끼 먹자'라고 말합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에서는 가족만을 생각하던 옥주가 함께 밥을 먹는 식구를 꿈꿉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식사 장면에서 웃음이 많이 피어납니다. 

할아버지 생신날 가족을 넘어 식구가 된 고모와 할아버지가 초딩 동생의 개다리춤 같은 초딩 율동에 온 가족이 함께 웃습니다. 이 장면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장해서 식구까지 가족으로 느끼면 우리는 보다 행복하고 사람 사이의 온기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여름날 평상에 모깃향을 피우고 함께 수박을 먹던 70,80년대 풍경을 잠시 느끼게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견디기 어려워도 우리는 가족이나 식구라는 울타리가 있기에 견딜 수 있습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가족과 가족의 확장 형태인 식구의 힘과 온기를 잘 담고 있습니다. 이 가족과 식구의 온기에 마음이 녹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로 선택하는데 큰 주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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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남매, 청소년 남매, 중년 남매를 담은 남매 이야기

형제와 자매말고 남매가 있는 집안은 이 영화를 보면서 진짜 현실 남매다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키는 더 크지만 깡다구는 약한 누나와 키와 덩치가 작지만 남자다움이라는 압력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남동생. 이런 남매 집안은 힘과 권력의 알력 다툼이 심합니다. 그러다 누나가 잘 다독여주죠. 이 모습을 저도 경험했고 지금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서 현실 캐미에 살살 녹아듭니다. 이 영화에는 남매가 1쌍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청소년 남매인 옥주와 동주 말고 옥주의 아빠와 고모라는 중년 남매도 나옵니다. 중년 남매는 티격태격을 아이들 앞에서는 안 하지만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대립이 있습니다. 

오빠가 아빠의 집을 혼자 먹으려고 하자 동생이자 옥주의 고모는 오빠는 장남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많이 누리지 않았냐면서 넌지시 말합니다. 이 장면에서 저도 뜨끔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 이어서요. 그렇다고 이런 재산 싸움에 끄덩이 잡고 싸우는 집안은 극히 일부입니다. 알맞게 잘 해결하죠. 물론, 저도 부모님 재산을 공평하게 나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 사생활까지 넌지시 말했네요. 그만큼 이 영화는 우리의 일상을 기름종이에 놓고 베낀 듯한 삶에 대한 묘사력이 엄청나게 뛰어납니다. 보면서 옥주와 동주가 나이들면 아빠와 고모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공감의 힘을 제대로 담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

영화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세상을 경험케 하는 도구입니다. 마치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타는 재미를 주죠. 동시에 우리의 삶을 투영하고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거울 같은 영화입니다. 우리를 보게 하고 추억의 앨범을 꺼내보게 하는 우리의 현재와 과거를 기록한 기록 사진 같은 영화입니다. 이 뛰어난 공감력이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 올해의 한국 영화로 만들어줍니다.

말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눈시울을 적시는 중노년의 관객들과 함께 모든 것이 마음 같지 않아서 짜증스럽지만 그래도 나를 챙겨주고 온기 있는 손을 내밀던 사춘기 시절의 내 가족 또는 식구의 온기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70년대 지어진 2층 양옥집에서 함께 수박을 먹는 그 시절의 온기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 한국 영화의 미래는 참으로 맑고 밝습니다. 

별점 : ★
40자 평 : 그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가족 그리고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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