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아는 단풍 명소의 단점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구경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만의 단풍 명소들을 하나 만들면 좋죠. 그럼에도 SNS가 발달해서 요즘은 소문이 삽시간에 퍼집니다. 저의 나만의 단풍 명소는 서순라길입니다.
서순라길은 종묘를 정면으로 보고 왼쪽에 있는 길입니다. 조선시대 방범대원들이 순찰을 했다고 해서 서순라길로 불립니다. 이 길은 종묘 돌담 너머의 거대한 단풍나무와 서순라길에 심어진 큰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가을만 되면 단풍 하이파이브를 외칩니다. 최근에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예쁜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서서히 인기가 올라갔습니다.
작년만 해도 이런 노란 은행잎들이 햇빛을 머금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매년 10월 말 11월 초 단풍이 맑게 들면 많은 분들이 만추를 즐기기 위해서 이 서순라길을 찾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멋진 단풍길을 볼 수 없습니다. 어제 찾아간 서순라길을 황량함 그 자체였습니다. 예년 같으면 평일이건 주말이건 단풍길 보러 온 분들로 가득했고 사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차들이 빵빵 거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는 사람이 없습니다. 코로나 때문이냐고요? 그런 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이 사라졌습니다.
거대한 단풍나무가 사라졌습니다. 종로구가 큰 은행나무와 단풍 나무드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작은 가로수를 심었습니다. 이 마저도 몇몇 나무는 말라죽었네요.
이렇게 길이 확 바뀐 이유는 종로구와 도로 정비 사업을 한다면서 은행나무를 잘랐습니다. 이유는 지저분한 도로를 새롭게 가꾸기 위함이고 보행로를 보다 깔끔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네요. 특히 은행나무는 가을마다 은행을 떨궈서 민원이 많았다고 합니다. 종로구의 도로 정비 사업으로 단풍도 깔끔하게 사라지고 찾는 사람도 깔끔하게 사라졌습니다.
곳곳에 임대가 붙어 있네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겠지만 볼품없는 거리로 변한 것도 한몫했을 겁니다. 가장 사람이 많은 시기에 사람이 너무 없네요. 차들은 아주 신나게 달리네요.
좋은 단풍길 하나 사라지게 한 종로구. 뭐 느끼는 것이 없을까요? 예쁜 길 하나를 파괴했잖아요. 예쁜 플라워 카페 마당도 공사 중이더라고요.
지나갈 때 마다 감탄을 했던 서순라길. 이제는 을씨년스러운 거리로 변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이라면 실외 테이블이 꽉 차야 하는데 이마저도 비어있네요. 금천구의 벚꽃길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연달아 들어서면서 벚나무들을 다 전기톱으로 자른 후에 앙상한 작은 벚나무 심었는데 1년도 안 되어서 반 이상이 죽어서 벚꽃 십리길이 벚꽃 오리길로 변했습니다. 나무가 주는 기쁨이 참 많고 서울시가 나무 심기 운동을 하지만 정작 구청들의 행정을 보면 가로수를 너무 하대하고 막대하네요. 뭐 길은 깨끗해졌지만 앞으로 찾아올 일도 깨끗이 사라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