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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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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원인 제공자 비판 보다는 애먼 곳에 현미경 비판하는 세상

썬도그 2020. 9. 3. 15:37

어떤 영화나 어떤 사진을 보고 우리는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람 이름이 다 다르고 살아온 경험과 배경이 각자 다 다른데 어떻게 같은 해석을 할 수 있겠습니까?

1954년 4월 2일 미국 LA 타임스의 사진기자 존 곤트(John Gaunt)는 집 앞에 있는 허모사 해변가 촬영한 이 사진은 54년 퓰리처 상을 받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 속 두 사람은 부부로 어린 아들이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자 아버지가 바다로 뛰어 드려는 것을 아내가 막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비극을 담은 사진으로 많은 분들이 슬프다는 같은 감정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 사진을 보고 판단하고 비판하는 방향은 다릅니다. 이 사진을 블로그에 소개했더니 다양한 댓글들이 달렸는데 크게 3 부류였습니다. 하나는 엄마가 왜 말리냐는 겁니다. 엄마가 너무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는 겁니다.  뭐 반대로 아빠가 말렸어도 아빠 너무 냉정하다고 했겠죠. 

또 하나의 시선은 사진기자는 뭐하고 남의 불행이나 담고 있었냐는 지적입니다. 이런 지적은 이 사진을 촬영한 '존 곤트'도 잘 알고 있고 실제로 이런 비판이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파도에 휩쓸려간 아이가 보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미 사건이 일어난 후라서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연출 느낌이라는 지적입니다. 두 사람이 허리까지 파도가 찬 곳에서 실강이를 하면 이해를 하겠는데 발에 바닷물 하나 안 적시고 있는 게 쇼라는 느낌이라는 것이죠. 하나의 사진을 가지고도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을 하고 곡해를 합니다. 

어디 이 사진 뿐이겠습니까? 요즘은 어떤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비판하지 않고 그 원인이 만든 결과물인 사건만 보고 판단하고 결과 중 일부의 다른 지점을 집중포화로 때리는 현미경 비판이 너무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photohistory.tistory.com/9818

 

햄버거 살돈이 없어서 반장선거 포기한 초등학생

어제 즐겨듣던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를 이동하면서 들었습니다 밥 같이 담백한 맛이 좋은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에 이런 사연이 나왔습니다 부산의 한 청취자가 보낸 사연입니다. 초등학교

photohistory.tistory.com

2011년 3월 초에 쓴 제 글입니다. 9년 전에 쓴 글인데 이글이 요즘 화제입니다. 티스토리 유입경로를 보다가 이 글의 링크를 따라가 보니 대형 온라인 카페와 커뮤니티에서 제 글을 캡처해서 소개하더군요. 글 전체가 아닌 라디오 방송 사연만 캡처해서 올렸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초등학생이 반장선거를 포기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반장선거 나가고 싶은데 반장선거에 나가서 반장이 되면 반장턱이라고 해서 햄버거를 반 전체에 돌리는 문화가 있나 봅니다. 요즘 초등학교 한 반이라고 해도 20~30명 정도밖에 안 되고 더 적은 학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20~30명도 햄버거 다 돌리려면 큰 돈이 들어갑니다. 

음료수까지 사야하니 1명당 1만 원으로 치면 20~30만 원이 나갑니다. 돈이 넉넉한 집은 가문의 영광이라서 20~30만원이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은 이 20~30만 원도 큰돈입니다. 저는 이 라디오 사연을 듣고 아직도 초등학교에 금권 선거가 있냐고 호된 비판을 했습니다. 

돈으로 표를 사는 정치인들의 행위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데 21세기 초등학교에서 20세기 한국 정치를 재현하고 있네요. 물론 햄버거로 선거의 표를 구하는 것이 아닌 당선사례로 돌리는 것이라서 금권 선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에 당선되건 안 되건 왜 햄버거를 돌려야 합니까? 저 어린 초등학생이 반장선거를 포기한 이유는 햄버거 턱이라는 나쁜 초등학교 선거 문화 때문입니다. 

원인은 학교에 있고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이게 학교 관습이라면 학교장이 못하게 막고 담임 교사가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걸 방치하네요. 아주 못된 교육자들입니다. 지금도 이런 햄버거 턱 내는 문화가 있는 학교 선생님들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 햄버거 살 돈이 없어서 반장선거를 기피하는 모습에 마음 아파해야 합니다. 

이렇게 적으면 꼭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요즘 반장이라고 안 해요. 회장이라고 해요!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반장이건 회장이건 돈 때문에 선거에 출마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죠. 전형적으로 큰 비판은 안 하고 작은 용어 비판이나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연도 달리 보는 시선이 있네요. 이 사연을 한 대형 여초카페에서 소개했습니다. 

블로그 유입경로를 따라가 보니 여러 댓글들이 있네요. 댓글들을 보다가 좀 놀랬습니다. 금권 선거 또는 잘못된 초등학고 선거 문화보다는 얘 앞에서 돈 없다는 타령 하지 말라는 소리가 더 많네요. 전혀 생각도 못한 비판입니다. 저 초등학생이 반장선거를 포기한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선거 문화인데 그런 비판은 없고 얘 앞에서 돈 없다고 한 엄마를 비판하네요. 

자신도 엄마가 돈 없다고 해서 눈치 보면서 컸다는 말이네요. 이해는 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저도 어렸을 때는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100원짜리 디즈니라는 아이스크림 대신 깐돌이라는 50원짜리 팥 아이스크림을 먹었으니까요. 달동네에 사는 자체가 주눅 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우리 집이 그렇게 가난한 집이 아녔습니다. 내가 갖고 싶은 것 사주고도 남을 돈이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부모님이 가난하게 사셔서 그런지 알뜰하게 사셨고 그 모습에 뭐 사달라고 말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네요. 

나중에 들어보니 아버지는 내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답니다. 돈 욕심이 없긴요. 가난한 줄 알고 돈을 안 쓴거죠. 이런 이야기는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갑니다. 그러나 이 금권 선거 풍토에 대한 비판이 우선이고 주요 원인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달을 가리켰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톱의 때를 지적합니다. 

물론, 판단이나 비판의 자유는 각자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의 방향이 잘못되면 저런 원인을 제공한 학교장, 학교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반성을 안 합니다. 애먼 엄마가 꺼낸 돈 없다는 타령이 문제라고 인식하죠. 여초 카페에는 이런 댓글이 30개도 넘었습니다. 

물론 저와 같은 비판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분도 애 앞에서 돈 없다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돈이 없어서 없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일까요? 돈 아껴 쓰라고 돈 없다고 한 것이 잘못일까요? 애들 기죽인다고 함부로 돈 없다는 말 하지 말라는 비판의 목소리에 세상은 정말 다양한 시선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이러니 초등학교 햄버거 선거는 없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도 초중고등학교에서 선거 당선자가 햄버거 쏘는 햄버거 턱이 있나요? 있다면 당장 고쳤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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