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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순박하고 순진하고 순수했던 80년대 감성을 담은 영화 기쁜 우리 젊은날 본문

세상 모든 리뷰/옛날 영화를 보다

순박하고 순진하고 순수했던 80년대 감성을 담은 영화 기쁜 우리 젊은날

썬도그 2020. 9. 16. 10:32

세상은 매일 앞으로 전진하고 변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 아니 느리게 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 인간은 진화를 하지만 그 진화 속도가 기술 발전 속도보다 느려서 기술이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에 맞춰야 합니다. 인간 풍습과 문화와 사고방식은 계속 변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인 감정과 행동 양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죠. 

제목이 너무 좋은 영화 1987년 개봉작 <기쁜 우리 젊은 날>

80년대 한국영화는 믿거였습니다. 믿고 거르는 영화들이 한국 영화였고 인기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가겠지만 한국 영화는 외국 영화보다 조금 더 쌌습니다. 그 이유는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 시절 문화 탄압과 3S 정책으로 한국 영화는 온통 에로영화 투성이였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길거리에 길거리 게시판이 막 생겼는데 그 게시판에 여자 배우들이 헐벗고 있고 에로틱한 포즈의 성인 영화 포스터가 가득했습니다. 초중고 학생들은 음화 같은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성을 배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노래는 온통 사랑 타령입니다. 노래 가사의 90% 이상이 사랑 노래였습니다. 따라 부르긴 했지만 가끔 뭔 노래들이 죄다 가사가 사랑 그것도 이성간의 사랑과 이별만 노래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달랐습니다. 많은 영화 제목들이 있지만 이 영화만큼 아름다운 영화 제목도 흔치 않습니다. 기쁜 우리 젊은 날? 젊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죠. 다만 젊음이 현재인 사람들은 그게 기쁨인지 모릅니다. 영화 제목이 너무 좋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요즘 개봉하는 영화도 시원찮아서 한국 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에 갔더니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네요. 

순박한 청년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담은 <기쁜 우리 젊은 날>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인 영민(안성기 분)은 이화여대생이자 연극배우인 혜린(황신혜 분)을 짝사랑합니다. 연극 공연장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영민은 수시로 혜린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등 애정 공세를 펼칩니다. 그러나 쑥맥인 영민은 선뜻 혜린 앞에 나서지 못합니다. 

그렇게 항상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사랑 쫄보 영민은 초등학교만 나온 아버지가 대학을 졸업한 돌아가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용기라는 아버지 친구들의 말에 드디어 용기를 내서 혜린에게 시간 좀 내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앙칼지게 거절하던 혜린은 영민이 매일 덕수궁에서 같은 시간에 기다린다는 말에 호텔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혜린은 영민을 잘 압니다. 연극을 보러 오고 수시로 꽃다발 선물을 주는 열혈 관객인 것을 잘 압니다. 영민은 첫 만남에서 다짜고짜 행복하게 해 드리겠다면서 결혼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혜린은 미국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하는 재미교포와 결혼을 합니다. 

그렇데 3년이 지나 영민은 대기업 종합상사에 입사하게 되고 지하철에서 우연히 혜린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날부터 영민은 혜린을 졸졸 따라 다닙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혜린이 혼자 사는 걸 알게 됩니다. 이런 혜린에게 다시 용기를 내서 다가가지만 이혼을 한 혜린은 다시는 상처 받기 싫다면서 다가오는 영민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지고지순한 영민의 끝을 모르는 혜린에 대한 사랑으로 혜린은 영민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결혼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영민 같은 캐릭터는 현시대에는 어울리지 않고 멸종한 사람으로 느껴집니다만 시대가 변해도 내성적인 사람은 줄지 않듯이 너무 답답하고 굼떠 보이지만 영민과 같은 사람은 지금도 많습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 바라보면 영민이 스토커 같다는 느낌도 들긴 하지만 워낙 혜린을 사랑하다 보니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비를 맞으면서 혜린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들은 지금을 봐도 이 사람이 혜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이혼을 한 여자를 좋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권위적이고 유교가 꽉 잡고 있던 80년대의 체통 시대에는 더더욱 쉽지 않죠. 그럼에도 영민은 일편단심 혜린만 바라봅니다. 영민은 그렇다고 치고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는 영민의 아버지입니다. 아내를 일찍 여의고 혼자 아들을 키운 영민의 아버지(최불암 분)는 아들이 여자에게 상처를 받고 그 여자를 잊지 못해서 이혼한 여자와 결혼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특히 아파트 놀이터에서 부자간의 대화 장면은 아버지의 아픈 마음이 자연스럽게 스며 나옵니다. 체통이고 뭐고 아들이 행복해 한다면 거부하지 않은 영민의 아버지가 있었기 영민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기쁜 우리 젊은날> 투박하지만 열정 넘치는 연출이 담기다

1980년대는 배창호 감독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인기 감독이자 만드는 영화들이 대박이 터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를 한 배창호 감독은 1984년 <고래사냥>으로 대박을 칩니다. 1985년에 개봉한 <고래사냥 2>도 대박이 났죠. 믿고 보는 감독인 배창호 감독은 <기쁜 우리 젊은 날>과 <개그맨> 이후에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합니다. 2004년 <길>을 마지막으로 극영화 연출은 안 하고 있습니다.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맞겠죠. 

요즘은 감독의 시대가 아닌 제작자의 시대입니다. 롯데시네마, CGVN과 같은 대형 영화 제작 유통사가 자신들이 기획한 영화를 잘 만들어줄 감독을 섭외합니다. 따라서 개성 없는 영화, 비슷비슷하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한 프랜차이즈 음식 같은 영화들이 나옵니다. 반면 80, 90년대까지는 제작사가 감독에게 지금 보다는 많은 권력을 허용했습니다. 어쩌면 이 80년대와 함께 배창호 감독의 시대도 저물었다고 봐야겠네요. 

제가 이 말을 왜 하냐면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보면 지금보면 다소 유치하지만 당시 한국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촬영법을 시도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민이 혜린과 첫 데이트를 하던 호텔 식당에서 안경 너머로 혜린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롱테이크 기법과 수시로 감독의 입김이 들어간 다소 평범하지 않는 앵글과 촬영 기법이 들어갑니다. 

몇몇 장면은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명장면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두 사람이 결혼한 후 서울의 한 호텔 방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은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모습이 그 자체로 그림 같다고 할까요? 아름다운 장면들이 꽤 있네요. 

배창호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 같았던 <기쁜 우리 젊은 날>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잘 묘사하고 열정을 가지고 뛰어난 디테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배창호 감독의 제자인 이명세 감독과 함께 각본을 쓴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배창호 감독 자신의 자서적 영화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먼저 영민 자체가 배창호 감독의 성격과 닮았습니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에 대기업 종합상사에 취직했다가 뛰쳐나와서 영화감독이 된 배창호 감독은 배우 장미희를 짝사랑했습니다. <깊고 푸른 밤>을 함께 찍고 오랜 시간 배창호 감독의 뮤즈였던 장미희 배우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새로운 뮤즈가 된 배우가 황신혜입니다. 이후 몇 편을 더 배창호 감독과 황신혜, 안성기 배우가 함께 영화를 찍었습니다. 영민은 유학을 갔다 온 혜린을 기다렸고 둘은 결혼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민에 대한 묘사력이 아주 뛰어나네요.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황신혜 배우의 데뷰작인 영화지만 영화 속에서 연기를 못한다거나 튄다거나 하지 않고 그런대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명세 조감독이 배우들의 표정 연기를 일일이 코치했다고 하는데 그 힘이 컸나 봅니다. 

흥미로운 점은 조감독인 이명세 감독은 영화속 영민이 쓴 시나리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는 제목의 영화로 데뷔를 합니다. 영화 속에서 영민이 대충 시나리오를 예기해 주는데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제목만 같고 내용은 전혀 다르네요. 

영화 후반은 너무 상투적인 모습이 보여서 좀 아쉬웠던 영화 (스포 있어요) 

영화 스포가 있으니 스포를 피할 분들은 이 단락은 건너 뛰어 주세요. 
영화의 톤이 <8월의 크리스마스>와 닮으면서도 좀 더 순박합니다. 그러나 영화 후반은 너무나 자극적이네요. 혜린과 영민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삽니다.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많이 담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느닷없이 불행이 다가옵니다. 여기서부터 영화가 너무 불편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80,90년대 영화나 소설 중에 주인공이 병에 걸려서 죽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보건 의료가 나쁜 시절도 아녔는데도 왜 이리 주인공을 쉽게 죽이는지요. 혜린은 임신 중독증에 걸립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영민은 출산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자식보다는 아내를 선택할 남자들이 많겠지만 이 80년대는 영민처럼 위험을 무릅쓰고도 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갑작스러운 비극으로의 전환에 눈살이 지푸려지더군요. 하지만 당시 이 영화 후반의 비극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고보면 양귀자의 90년대 초 베스트셀러였던 <천년의 사랑>에서도 마지막 장면이 참 비슷하네요. 이 영화에 영향을 받았을까요?

첫사랑의 순박함이 가득한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

영민은 순수한 사랑의 화신입니다. 이런 청년이 지금도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나 순박한 모습을 보면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열정적인 사랑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네요. 황신혜는 빛이 날정도로 아름다운 배우라서 더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안성기 나이가 이 영화 촬영 당시에 30대 중반이라서 대학생을 연기하는 것이 썩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황신혜가 이 당시 25살이니 10살 차이가 매끄럽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안성기만이 이런 순박한 청년을 연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영화 중간에 예식장에서 졸고 있는 배창호, 이명세 감독의 모습도 살짝 볼 수 있습니다. 

별점 : ★

40자 평 : 순수했기에 열정적이었던 20대의 사랑을 향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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