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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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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서울여행

알고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덕수궁(경운궁)

썬도그 2020. 6. 2. 11:55

서울의 매력 중 하나는 도심 한가운데 자연과 옛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거대한 고궁이 무려 4개나 있습니다. 보통 5대 궁궐이라고 해서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경희궁을 말하지만 경희궁은 사람들이 거의 찾지도 않고 어디 있는지 아는 분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을 4대 고궁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비운의 역사가 많은 고궁이 덕수궁입니다. 덕수궁의 옛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경운궁이라는 단어를 아는 분이라면 고궁 마니아 또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입니다.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이 아니다?

경복궁의 정문은 광화문이고 창덕궁은 돈화문 창경궁은 홍화문으로 정문은 화(化)가 들어갑니다. 화(化)는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로 화가 들어갑니다. 그럼 덕수궁의 정문도 화(化)가 들어가야 하지만 화가 들어가지 않은 대한문입니다. 

덕수궁의 정문은 원래 인화문이었습니다. 보통 고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는 문을 정문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광화문도 돈화문도 남쪽 문입니다. 창경궁은 동쪽인 이유가 창경궁과 종묘 그리고 창덕궁이 붙어 있어서 남쪽으로 문을 내지 못해서 동쪽에 있습니다. 당연히 덕수궁의 정문인 인화문도 남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인화문이 사라졌습니다. 남쪽 문 앞에 민가도 많고 해서 동문인 대한문을 정문으로 바꿉니다. 

(1970년 덕수궁 대한문)

대한문도 현재의 위치에 있던 것도 아닙니다. 숭례문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세종대로 한 가운데 있어서 자동차 통행을 방해하고 있어서 1970년 12월 29일 22m 뒤로 이동을 해서 현재의 위치에 정착을 합니다. 

덕수궁의 작은 연못 경운지

대한문으로 입장한 후 바로 오른쪽으로 가면 작은 연못인 경운지가 있습니다. 경운지에서 경운은 경운궁에서 나온 듯합니다. 덕수궁의 옛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경운지는 4대 고궁 중에 가장 작은 연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둥근 호안을 가지고 있어서 작은 정원 느낌도 납니다. 

용의 입에서 물도 나와서 물멍 때리기도 좋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기가 있었던 함녕전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입니다. 그냥 평이한 모양이지만 끝에 

다른 전각과 이어지는 회랑이 있는 점이 독특합니다. 온돌방도 있었습니다. 고궁들이 나무로 된 목재 건물고 불이 나면 연결된 전각들로 인해 큰 화재로 번지기 쉬워서 화기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황제의 침소라서 온돌방이 있었네요. 

이 함녕전은 국내 최초의 전화기가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1882년 3월 청나라에서 전기 기술을 배운 청운이 L.M 에린손이 생산한 자석식 벽걸이 전화기인 덕률풍 2대를 가지고 옵니다. 덕률풍의 발음이 텔레폰과 비슷해서 차음으로 지은 이름 같네요. 이렇게 전화기의 효용을 알게 된 고종은 전국에 12대의 덕률풍을 설치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 일을 보고 받았습니다. 

제가 찾아간 날은 5월 마지막 주 수요일로 '문화가 있는 날'로 4대 고궁이 무료였습니다. 무료지만 코로나19로 관람객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이틀 후에 쿠팡 물류센터 확진자 증가로 6월 중순까지 4대 고궁도 운영을 중지했네요. 

고종과 순종이 커피를 마시던 정관헌

함녕전 뒤편에는 아주 특이하고 근사하고 아름다운 전각이 있습니다. 

바로 정관헌입니다. 정관헌은 덕수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곳으로 서양식 정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고요하게 내려다보는 집이라는 뜻의 정관헌은 서양식 정자지만 지붕은 팔작지붕이라서 동양식입니다. 그러나 기둥이나 외부 장식이나 내부는 서양식입니다. 이 정관헌을 만든 사람은 한국에 온 러시아인 중 가장 유명했던 건축가 '세레진 사바찐'이 설계했다는 소리가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건 아닙니다. 사바찐이 만든 서양식 건물이 참 많지만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사라졌네요.

기둥에는 각종 동물 문양과 조선왕조의 상징인 오얏꽃도 그려져 있습니다. 

정관헌은 고종의 개인 카페였습니다. 여기서 서양의 커피를 마시면서 덕수궁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고종은 커피 애호가였고 여기서 아들 순종과 함께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관파천으로 덕수궁 근처에 있던 러시아 공사관으로 1년간 피신했는데 이때 커피를 배웠다고 하는 소리도 있습니다만 정설은 아니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던 고종이 커피 맛을 보고 반한 것 같기도 하네요. 

고종과 순종이 바라봤을 풍경이네요. 

고종의 커피 사랑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도 있는데 1899년 김홍륙이 고종을 시해할 목적으로 커피에 독약을 넣었습니다. 고종은 커피 맛이 이상해서 바로 뱉어냈지만 순종은 한 모금을 마시고 정신 혼란을 겪습니다. 이 독약이 아편이라고 하더군요. 정관헌은 현재 개방이 되어서 안에 들어가서 테이블 위에 앉을 수 있지만 코로나19로 임시 폐쇄가 되어 있습니다. 

단청이 없는 2층 전각 석어당

정관헌 앞쪽에는 석어당이 있습니다. 석어당은 여러모로 독특한 건물입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한옥은 1층이지 2층 한옥은 없습니다. 2층으로 만들려면 만들 수 있지만 인구도 적고 땅도 넓은데 굳이 2층으로 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2층으로 지어진 건물이 석어당입니다. 

임금이 머물렀던 공간이라는 뜻의 석어당은 단청이 없습니다. 화려한 단청이 없는 전각들의 공통점은 사무 공간으로 화려한 단청을 칠하지 않습니다. 석어당은 가슴 아픈 일들이 함께한 공간입니다. 먼저 석어당은 임진왜란 당시 왜놈들이 아닌 조선의 백성들이 임금이 궁을 버리고 도망간 것에 화가 나서 경복궁을 불태워버리자 법궁인 경복궁을 버리고 덕수궁에서 삽니다. 선조가 주로 머물던 곳이 석어당이고 석어당에서 죽습니다. 

선조의 아들 광해군은 자신의 동생인 영창대군을 독약으로 죽게하고 영창대군의 친어머니이자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공간이 석어당이기도 합니다. 이런 광해군의 폭정은 인조반정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전 이 석어당이 덕수궁 많은 전각 중에 가장 흥미롭고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마음 아픈 역사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큰 나무가 있어서 계절의 변화를 바로 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덕수궁이 좋은 점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사진을 담을 수 있습니다. 주변에 큰 고층 빌딩과 한옥 전각을 함께 담을 수 있습니다. 

과거 현재 이야기를 하는 김에 더 하자면 덕수궁은 주변에 큰 고층 빌딩이 많은 곳입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창경궁 주변은 높은 빌딩이 없지만 덕수궁 주변은 많습니다. 이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듯한 덕수궁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3층의 정동 전망대입니다.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입구에서 전망대 간다고 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로 폐쇄되어 있네요. 

이 공간은 나무가 가득해서 더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원래 여기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었는데 광화문에 있어서 여기에 있더 동상은 사라졌습니다. 사실 고궁에 동상을 그것도 역사적 가치도 없는 걸 세우는 것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조선의 근대화를 꿈꾸었던 석조전

덕수궁 안에는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있습니다. 이 석조전은 상당히 이질적이죠. 한옥 전각 속에서 갑자기 서양식 건물? 일본인들이 지은 근대화 건물들과 함께 이 석조전도 일제가 지은 건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또한 일제의 상징 건물로 알고 있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석조전은 일제가 지은 건물이 아닌 대한제국의 고종이 지은 건물로 영국인 하딩의 설계로 1901년 착공해서 1919년 완공된 18세기 신고전주의 3층 석조 건물입니다. 

석조전 지붕 가운데에는 조선 왕조의 상징인 오얏꽃이 그려져 있습니다. 석조전은 연회장이도 하고 업무를 보기도 하고 전시 공간 등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제 기억에는 경복궁 고궁박물관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 석조전이 고궁박물관 역할을 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공간은 아주 크지 않았지만 다양한 전시품들을 보는 재미가 솔솔 했습니다. 오래된 건물을 보는 재미와 조선 왕실의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좋았습니다. 

고종은 석조전을 통해서 조선의 근대화를 꿈꾸었지만 그 꿈은 일제에 의해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고종이 훌륭한 왕이냐? 민비 외척 세력에 휘둘리는 것도 그렇고 일제와 함께 동학 농민들을 기관총으로 죽이는 등 무능함도 참 많았습니다. 드라마나 영화가 너무 고종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죠. 뭐든 마지막이면 아련하기 마련이잖아요. 

저 2층 난간을 올라가 보고 싶은데 아예 개방을 안 하네요. 안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전각이라는 것도 운영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면 공개 공간으로 개방했으면 합니다. 집도 사람이 살아야 먼지가 없고 늙지 않지 그냥 보석처럼 숨기면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개방을 안 하고 있고 2014년부터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운영중입니다. 

석조전 앞에는 물개 조각상이 있습니다. 좀 어울리지 않죠. 물개라뇨! 물개는 동물원에나 어울립니다. 원래는 물개가 아닌 거북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석조전 서관인 이왕가 미술관을 지으면서 거북 대신 물개를 배치합니다. 이는 일제가 조선 고궁을 동물원이나 전람회관으로 이용하면서 민족 정기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러니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서 창경원으로 만들었죠. 덕수궁도 놀이 공간 휴식 공간으로 바뀌기 위한 일제의 계략이 아니였을까 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석조전 옆에은 석조전 서관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일제가 지은 건물이 맞습니다. 1936년 8월 기공해서 38년 6월 준공했습니다. 당시는 이왕가 미술관이었지만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운영중에 있습니다. 여기는 아주 흥미로운 미술전을 참 많이 합니다. 현대 미술 보다는 근대 미술이나 다양한 다른 나라 미술품을 전시하는 역사가 있는 전시들을 많이 합니다. 

잠시 해시계를 봤는데 오후 2시인데 1시에 바늘이 있어서 시간이 틀리네 했는데 자세히 보니 1부터 6까지만 있네요. 그럼 1칸이 2시간을 표시하나? 그런데 해시계는 해진 후에는 시간을 알릴 수가 없는데  뭔지 모르겠네요. 옆에 안내문구를 보니 이 태양 빛 그림자로 보는 해시계는 진태양시로 시차보정표로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네요. 5월 27일이니 20~25분을 더하면 되는데 그래도 2시가 아니라서 좀 갸우뚱 했네요. 

불타서 1층으로 중건된 중화전

중화전의 정문인 중화문을 지나면 

중화전이 나옵니다. 이 중화전 앞 공간에서는 각종 행사를 하는 거대한 공간입니다. 여기서 행사도 하고 공연도 하고 다양한 국가 행사를 치룹니다. 

고궁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전각을 정전이라고 합니다. 다른 고궁의 정전은 보통 2층 전각입니다. 창경궁의 인정전이나 경복궁의 근정전도 모두 2층 전각이고 가장 큰 전각입니다. 저 안에서 고관대신들과 함께 국정을 논의하던 국회의사당 같은 공간이기도 하죠. 

그런데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은 1층입니다. 1902년 2층 정전인 중화전을 지었으나 1904년 대화재로 전소되고 1층 전각으로 만듭니다.

중화전 옆에는 광명문이 있네요. 이 광명문은 원래는 중화문 왼쪽에 자격루 일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궁을 복원하면서 원래 위치로 옮겨 왔습니다. 

덕수궁 돌담길 완전 개방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변한 서울가정법원이 덕수궁 돌담길가에 있었습니다. 호사가가 만든 터무니 없는 소리죠. 그러나 우리는 그냥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재미라면서 계속 말합니다. 지금은 꼰대감별 문장으로 덕수궁 돌담길이 사용되고 있네요. 

이 덕수궁 돌담길은 한바뀌를 다 돌 수 없었습니다. 끝에는 영국대사관저가 있는 부분이 막혀 있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끊임없이 설득해서 영국대사관저 앞을 개방하는 데 성공하고 덕수궁 돌담길을 빙 둘러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대사관저를 지나서 덕수궁 돌담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영국대사관저 앞에서 덕수궁 안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영국 버킹검 궁 근위대 복장을 한 분들이 순찰을 했습니다만 지금은 조용한 골목길이 되었습니다. 걷은 것 좋아하는 분들은 덕수궁 돌담길 1바퀴 돌아보세요. 운치 있는 길입니다. 

덕수궁 알고 보면 아주 느끼고 돌아볼 곳이 많은 작은 고궁입니다. 

youtu.be/FUeg1aF7h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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