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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벌새.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다잡아준 좋은 어른의 이야기

by 썬도그 201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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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걸그룹 AOA의 멤버 찬미의 어머니가 지방에서 미장원을 하면서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쉼터 역할을 한다는 미담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찬미 어머니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찬미 어머니는 17살에 처음으로 미장원을 운영하는 사장님에게 머리 잘한다면서 손재주가 좋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한 어른의 칭찬이 지금의 천사 같은 찬미 어머니를 만들었습니다. 돌아보면 내 청소년 시절에 어른 같은 어른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선과 악과 좋고 나쁨이 혼재된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담은 영화 벌새

한국 영화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함인지 2019년 올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생충 못지 않게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영화가 김보라 감독의 <벌새>입니다. 벌새는 현재 30개 이상의 상을 수상하고 있고 앞으로도 상을 더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예산 영화계의 <기생충>이라고 하는 벌새는 무려 14만 명이라는 놀라운 관객 동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 <벌새>에 많은 박수를 보내고 있을까요? 그 박수갈채는 공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춘기라는 거대한 혼돈을 지나옵니다. 이 사춘기를 이렇게 잘 담은 영화가 있을까 할 정도로 영화 <벌새>는 마치 내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공감과 힘이 가득한 영화입니다. 

영화 <벌새>는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199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은희(박지후 분)은 중학교 강남의 한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여중생입니다. 위로는 언니와 오빠가 있습니다. 오빠는 명문대에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하고 있고 이 집안의 기둥입니다. 그래서 은희와 언니는 찬밥 신세입니다. 딱 90년대 가부장제가 보편적이었던 우리네 가족 풍경입니다. 

은희는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합니다. 남자 친구와 키스도 하고 담배도 피는 등 학교에서는 날라리로 낙인찍혔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공부라는 단 한 가지의 기준으로 학생들을 열등하고 우수하다고 나누는 비교육적인 행동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1994년은 한국 사회가 성숙하지 못한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2019년이 성숙한 사회냐? 아닙니다. 덜 야만스러워졌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죠. 

은희는 단짝 친구 지숙(박서윤 분)이 있습니다. 둘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서예 학원을 같이 다닙니다. 둘은 몰래 문방구에서 학용품을 훔치다 걸립니다. 지숙이 은희 아버지가 떡가게를 한다고 고자질을 합니다. 문방구 주인은 은희 아버지에게 딸이 도둑질을 했다면서 경찰서에 넘긴다고 하자 아버지는 넘기라고 합니다. 은희에게는 가족이 울타리가 아닌 남과 같은 존재입니다. 오빠는 자신을 구타하는 등 세상이 비빌 언덕이 없습니다. 이 사건으로 단짝 친구 지숙과도 멀어지게 됩니다. 

잔잔한 호수 같은 맑은 어른 영지 선생님을 만나다

한문 선생님인 영지 선생님(김새벽 분)은 칠판에 한문 문장을 씁니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이 영화 <벌새>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사춘기는 누구나 겪고 인간이라면 다 겪지만 그 혼돈의 시간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참 신기합니다. 왜 인간은 사춘기를 겪고 그 사춘기를 다 겪지만 또 그걸 잘 다독이고 넘겨주지 못합니다. 그냥 사춘기를 겪은 청소년이 알아서 스스로 넘겨야 합니다. 

영지 선생님은 친구 지숙과 있었던 일을 말하고 울고 있는 은희에게 맑은 차를 내주면서 다독여 줍니다. 영지 선생님은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흔하게 보는 착한 멘토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착한 멘토 캐릭터와 다릅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은희가 등하교 할 때 철거민들이 쓴 플랜카드를 보고 불쌍하다고 합니다. 이에 영지 선생님은 함부로 동정하지 마! 알 수 없잖아!라는 말을 합니다. 보통 약자 편을 드는 것이 착한 멘토의 모습인데 영지 선생님은 단호하게 동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에 좀 충격을 먹었습니다. 아니 뭔 선생님이 저래?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을 두고 영화를 다 보고 생각해 보니 이 말이 이해가 갔습니다. 

세상은 마블 영화나 디즈니 영화처럼 선과 악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도 악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선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 것이 세상이고 나에게는 악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선한 사람으로 비추어질 수 있습니다. 철거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편적으로 약자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측은지심을 보이지만 보상금을 두둑하게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영지 선생님은 이 모든 세상의 이치를 한 마디로 말합니다. "알 수 없잖아"

영지 선생님은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은희의 마음을 다독이는 인물입니다. 여느 캐릭터처럼 은지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기보다는 그 슬픔을 분노를 감싸주는 힘이 강한 선생님입니다. 은희와 싸운 은희의 절친 지숙이 서예 학원에 돌아오자 영지 선생님은 갑자기 두 학생을 위해서 노래를 불러줍니다. 이런 선생님이 얼마나 될까요?

정말 어른 같은 어른이었습니다. 살면서 평생 어른 같은 어른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갖은 고통을 줍니다. 아이가 아이를 훈계하는 모습이죠. 그런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될까요? 어른은 나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태도로 구분이 됩니다. 내 잘못을 남에게 떠 넘기면 아이이고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은희는 지숙에서 어른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지숙은 거부했고 어른인 영지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지숙은 은희에서 문방구 일을 사과합니다. 

영화 시작 장면에서 902호 벨을 누르고 문을 열어 달라고 했던 은희는 사춘기를 겪는 우리 모두의 마음입니다. 몸을 녹일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닫혀 있는 문 앞에서 좌절하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그 열리지 않는 문앞에 은희가 서 있습니다. 902호의 문을 열어준 사람은 바로 영지 선생님입니다.

가족이라는 굴레와 억압과 포근함을 모두 담다

은희는 가족이 너무 싫습니다. 오빠는 맨날 때리고 아빠는 오빠만 보입니다. 엄마 아빠는 자주 싸움을 합니다. 엄마 아빠는 오빠만 보이고 두 딸인 언니와 자신은 존재 하지 않는 존재로 취급합니다. 스탠드를 던지면서 싸우다가 아빠가 팔뚝을 베었는데 그 다음날 부모님이 아무 일이 없었는 듯 TV를 보는 모습이 은희에게는 생경스러웠습니다. 

가족이 은희를 옥죄입니다. 가족이 악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희를 보면서 제 사춘기도 돌아봤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부모님은 자주 싸웁니다. 그런데 또 금방 친하게 지내십니다. 아직도 이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싸우고 아무 일 없는 듯 지내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은희를 미워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은희가 모를 뿐이죠. 귀 밑에 혹이 난 은희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오던 아빠는 은희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영화에서 아빠와 오빠만 눈물을 흘리는데 이는 가장의 무게를 두 사람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앞에서는 쌍소리를 하고 막말을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들키지 않고 가족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눈물로 담습니다. 은희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멍하게 하늘을 보고 훌쩍 여행을 가고 싶은데 가족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아야 합니다.

콩가루 집안이라고 자조하던 은희. 그러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가족은 다시 화목하지 않지만 좀 더 성숙한 관계가 됩니다. 

왜 1994년 이었을까?

영화 <벌새>는 1994년 서울 강남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냥 레트로풍 영화라서 1994년을 배경으로 했을 수 있지만 이 영화는 1994년을 허투루 사용한 영화가 아닙니다.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1994년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보입니다. 

1. 김보라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다

먼저 김보라 감독의 전작이자 단편 영화인 2011년 작품인 <리코더 시험>의 배경이 1988년 초등학교입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1994년은 그 아이가 자라서 중학교 2학년이 된 시간이죠. 즉 감독 김보라의 자전적인 요소가 꽤 많이 들어간 영화입니다. 창작 스토리는 개연성을 잘 맞춰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한 이야기는 개연성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내 이야기를 담으면 되니까요. 자전적인 이야기는 공감대 조율만 잘하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 <벌새> 자체는 자극적인 이야기나 특이하거나 특출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지나온 그 시절 사춘기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그대로 담았는데 너무 잘 담아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김보라 감독 본인은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고 저도 자전적 이야기라기보다는 그 시절에 보고 듣은 이야기를 잘 각색해서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2. 성수대교 붕괴

아직도 기억납니다. 무척 흐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에서 자려고 준비하는데 병사들이 성수대교 무너졌다고 복도를 뛰어다녔습니다. 성수대교 붕괴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외신은 한국이 고도성장기에 앞만 보고 달리다가 안전을 소홀히 한 사건으로 보도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년 10%라는 고도성장을 하던 80년대를 지나서 서서히 경제 성장 속도가 더디어지고 있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자고 외치고 있었죠. 

이런 고도성장기에는 안전보다는 전진이었습니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 돈 안 되는 안전을 뒤로하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러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나서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잘못 살고 있구나!라는 후회 속에서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 고도성장기의 폐해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이어집니다. 

성수대교 붕괴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피해자도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대한민국이 태어난 후 처음으로 뒤를 돌아본 사건이 됩니다. 국가를 개인으로 표현한다면 한국의 사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벌새>는 성수대교 붕괴라는 거시적인 사건을  은희 가족의 개인적인 사건으로 투영해서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은희와 언니가 새벽에 붕괴된 성수대교를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믿기지 않은 일을 목격한 은희. 은희는 고인의 명복을 드리는 기도를 하면서 그 자리에서 아이에서 어른이 됩니다. 자기만 알고 살던 은희가 외삼촌이 죽어도 별 느낌이 없었던 은희가 처음으로 남의 명복을 빕니다.

3. 귄위주의 사회의 붕괴

마광수 교수가 1991년 발표한 '즐거운 사라'로 구속된 것도,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라고 노래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것도 바로 1992년의 일이었다. 1991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1992년부터 모두 성기의 언어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중에서 일부 발췌>

1992년은 서태지가 한국 음반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권위주의가 붕괴하던 시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정점이 1994년 전후였습니다. 

이 90년대 초의 자유분방함은 2019년의 자유분방함 이상이었습니다. 당시는 탱크탑을 입고 다니는 분들도 꽤 많았을 정도로 노출도 심하고 개성도 강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 개성 말살의 검은 롱 패딩을 입고 김밥이 되고 싶은 욕망만 보입니다.  성수대교 붕괴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시선의 변화가 90년대 중반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90년대에 20대를 지나온 현재의 40대, 30대 후반분들이 꽤 진보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다만 이 시선은 영화 <벌새>에 거의 담기지는 않습니다. 

은희로 살았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큰 위로 같은 영화 <벌새>

은희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또는 알 것 같은 영지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이에 영지 선생님을 대답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보통 다 안 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 때는 말이야'라는 자신의 경험이 세상 진리이고 이치인 양 말합니다. 그러나 영지 선생님은 자신의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잘 모른다는 것을 잘 안다고 은희에게 전합니다. 이건 옳고 저건 나쁘다가 아닌 옳고 그름은 확실하지 않은 것이 세상인 것 같다고 전합니다. 

거대한 세상이라는 혼란 속에서 흔들리던 은희에게 세상은 원래 그렇게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고 말해줍니다. 이런 어른을 평생 몇이나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청소년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건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이 맞는데 혼란스럽지 않고 이게 정답이고 이 길로 가야 해! 그래야 성공한다고 윽박지르는 것이 더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그려 놓은 룰에서 벗어나면 루저라고 낙인을 찍고 성공을 위해서 빨리 줄을 서라고 다그치고 있은 것은 아닐까요?

트램펄린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못한 재미를 주는 세상에서 고통받는 은희들에게 이 영화는 너 자체가 하나의 빛이야! 열패감 느끼지 말고 죄책감 느끼지 말고 트램펄린에서 뛰어 놓라고 말해줍니다.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그냥 사춘기 시절을 거름종이로 베껴내서 심심할 수 있지만 고통스럽게 사춘기를 지나온 분들이나 지나는 청소년들에게 치료제 같은 영화가 <벌새>입니다. 왜 영화 제목이 벌새냐고요? 벌새는 희망, 사랑,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1초에 80번의 날개짓을 하듯 모든 것을 흡수하고 사춘기라는 민감함의 날개짓을 하는 은희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40자 평  : 혼란스러운 사춘기들에게 혼란스러운 것이 옳다면서 차 한잔 내려주는 위안 같은 영화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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