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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천문 : 하늘에 묻는다가 브로맨스를 담다 놓친 것들

by 썬도그 2019.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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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니 알쓸신잡에서 장영실과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설명했는데 이걸 영화로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장영실은 측우기, 혼천의, 자격루를 만든 조선의 에디슨입니다. 장영실은 관노 출신이지만 뛰어나고 명석한 머리로 정 5품 까지 오른 조선의 대표적인 신분 상승이라는 대업을 이룬 성공의 아이콘입니다. 그러나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는 장영실이 곤장 80대를 맞고 역사책에서 사라진 점을 주목합니다. 

세종의 총애를 받아서 관노비 출신인 장영실이 정5품까지 올랐는데 왜 곤장 80대를 맞고 사라졌는지 유시민 작가는 궁금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세종의 바퀴 달린 가마가 부서졌다는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로 역사책으로 사라졌다기에는 그보다 더 많은 사연이 있을 것으로 여깁니다. 총애받던 장영실이 왜  역사책에서 사라졌는지를 상상력으로 채운 영화가 <천문 : 하늘을 묻는다>입니다. 

한석규, 최민식이 다시 뭉쳤다!

<1994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MBC드라마 서울의 달>

군대가 가장 괴로운 건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다는 현실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사회에 두고 온 청년 군인들은 우울증이 기본 기분입니다. 이런 우울한 기분을 풀어주는 해방구 중 하나가 TV 드라마입니다. 주말에 재방송을 해주는 <서울의 달>은 청년 군인들을 달뜨게 했습니다. 

한석규, 최민식의 첫 만남이었던 1994년 MBC 인기 드라마 <서울의 달> 이후에 두 사람은 1997년 영화 <넘버 3>에서 한석규는 깡패로 최민식은 검사로 첫 만남을 합니다. 그리고 한국 영화사의 큰 획을 그은 강제규 감독의 1999년 빅 히트작 <쉬리>에서 남북한 요원으로 만납니다. 그리고 두 배우는 2019년 <천문>에서 세종대왕과 장영실로 20년 만에 다시 만납니다.

시간을 섞어서 맛을 낸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세종대왕은 왜 그렇게 곁에 두고 예뻐하던 장영실을 곤장 80대를 쳤을까요?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이 물음에 대해서 먼저 곤장을 친 결정적인 사건인 가마가 부셔지는 사건부터 보여줍니다. 세종은 바퀴가 달린 거대한 가마를 타고 행궁을 향하고 있는데 가마가 부서지면서 가마에서 튕겨 나옵니다. 분노한 세종. 영화는 이 사건에서 시간을 거꾸로 흘러갑니다. 시간은 2가지로 보여줍니다. 

하나는 장영실을 처음 만났던 20년 전과 이 가마 사건이 일어나기 4일 전 2개의 축으로 흘러갑니다. 장영실과 처음 만나던 20년 전의 모습은 설탕처럼 달콤하고 우유처럼 부드럽습니다. 세종대왕은 낮에는 해시계로 시간을 알 수 있지만 흐리거나 밤에는 시간을 알 수 없는 점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이에 물시계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는데 관고 출신 장영실이 물시계의 원리를 설명하고 간단하게 물시계를 만드는 모습에 탐복해서 제대로 만들어 보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렇게 장영실은 밤에도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는 자격루를 만들어서 세종대왕의 신임을 두텁게 얻습니다. 혼천의까지 만들어서 세종은 장영실을 친구처럼 생각합니다. 이 달달한 20년과 함께 가마 사고가 나기 4일 전에 명나라 사신이 황제만이 하늘을 관측하고 명나라가 세상의 중심이라면서 조선이 직접 하늘을 관측하지 말고 자기들이 보내준 하늘 관측도를 따르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관측 장비들을 다 불태우라고 지시합니다. 세종대왕은 화가 났지만 조선이 섬기는 나라인 명나라 황제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20년 사이의 시간이 동시에 달리면서 단짠단짝을 제공합니다. 문제는 이 영화 <천문>은 맛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천문은 왜 발명품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을까?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지금 봐도 놀라운 발명품입니다. 덕수궁에 있는 건 물시계 자격루의 일부만 전시되어 있습니다. 나머지는 나무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사라졌습니다. 덕수궁의 자격루를 보고 별 거 아니구나 했는데 경복궁 고궁박물관 지하에 복원해 놓은 자격루를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이게 자격루입니다. 큰 물 항아리에서 물이 졸졸졸 내려가면 물의 부력에 의해서 나무 수저가 떠오르고 이게 구슬을 굴려서 시간을 알려줍니다. 시간에 맞춰서 동물 모양이 나오며 작은 인형들이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립니다. 놀라운 기계입니다. 이런 비슷한 기계가 프라하 천문 시계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자격루를 경복궁에 복원해서 시간마다 북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관광객들이 프라하 천문시계처럼 매 시 정각이 되면 이걸 보려고 올 겁니다. 한국에 이런 놀라운 기계(?)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영화 <천문>은 이 과정을 대충 그립니다. 여기서 재미를 많이 뽑아 낼 수 있음에도 대충 스케치만 하고 넘어갑니다. 제작 과정이나 작동 과정을 그렇다고 치고 자격루를 발명해서 백성들이 얼마나 살기 편해졌는지와 혼천의를 통해서 한국과 맞지 않는 24절기를 한국에 맞게 고쳐서 백성들이 벼농사를 좀 더 쉽게 했다거나 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혼천의 제조 과정도 그렇습니다. 측우기는 잠시 거론되는 수준인데 그게 썩 좋게 보이는 건 아닙니다. 영화 <천문>은 발명가 장영실에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천문>이 담고자 하는 건 2가지인데 하나는 세종의 애민정신과 또 하나는 장영실과 세종의 우정입니다.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브로맨스 영화 <천문>

영화 <천문 : 하늘에 묻는다>는 브로맨스 영화입니다. 장영실과 그를 친구로 여기는 세종대왕 사이의 우정보다 깊은 우정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친했던 두 사람이 20년 후에 왜 갈라서게 되는지에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오로지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깊은 우정을 담고 있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너무 깊게 묘사하고 비중을 과할 정도로 담아서 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두 사람은 신분 차이가 큽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은 같다거나 공통점인 아픔이나 세상을 보는 시선이 같다거나 여러가지로 함께 친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많이 소개되어야 하는데 그게 거의 안 보입니다. 그냥 세종이 머리 좋은 장영실을 무척 좋아한다는 설정입니다. 유일하게 설득이 되는 이유는 세종대왕이 대단히 머리가 좋은 학자라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두 사람의 브로맨스를 담다가 많은 것을 놓칩니다. 

주변 인물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영화 <천문>에는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김원해, 임원희, 오광록, 전여빈까지 다른 영화에서는 조연으로 출연할 정도로 꽤 비중있는 배우들이 크게 담기지 않습니다. 특히 전여빈 같은 경우 촉망받은 여배우로 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단역으로 나옵니다. 이런 대우를 받을 배우가 아닌데 너무 짧게 나와서 아쉬웠습니다. 

대신 신구, 허준호, 김홍파의 연기나 역할은 꽤 도드라졌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워낙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우정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하는 시간도 짧고 깊이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주변 인물들이 너무 기능적으로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김태우가 연기하는 정남손입니다. 

사대주의자인 정남손은 장영실이 혼천의를 만들자 명나라가 이 사실을 알면 대노할 것이라면서 우리가 먼저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나라 사신과 찰떡같이 붙어서 기생하는 사대주의자로 나오는데 이 인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세종을 반대하는 기능만 작동합니다. 이런 캐릭터들이 꽤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영화 <천문>은 입체적이고 풍부한 캐릭터들이 뿜어내는 다채로운 시선과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오로지 세종대왕과 장영실만 담깁니다. 영화 후반엔 2인 연극이 아닐까 할 정도로 이야기의 층이 너무 얇습니다. 

예상 가능한 이야기들의 연속

걱정했던 것은 이야기가 부실하지 않을까였습니다. 사실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드려면 많은 부분 각색을 하거나 창작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화 <천문>은 사실을 바탕으로 가마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창작합니다. 이 사건을 상상력으로 잘 채워야 했는데 아쉽게도 제가 예측한 그대로 이어집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분들은 대충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어떤 숨김이 있는지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 예측이 계속 맞을 때마다 영화의 재미는 계속 떨어지더군요. 결국 영화 후반에 시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이건 제가 영화나 드라마의 숨김을 많이 봐서 예측 가능했던 것이지 영화 자주 많이 안 보는 분들은 이 이야기가 저보다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한석규의 연기에 또 다시 반하다 

 한석규가 세종대왕을 연기하는 건 처음이 아닙니다. SBS의 <뿌리 깊은 나무>에서 찰진 욕을 잘하는 세종대왕으로 우리에게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이 이미지의 연속입니다. 이 자체가 기시감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 홍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영화적 재미로는 마이너스 요소입니다. 그럼에도 한석규의 대갈일성에 깜짝 놀랐습니다. 영화가 너무 조용하고 지루해서 졸음이 살짝 오는데 대갈일성 하는 장면에서 잠이 달아났습니다. 

연기하나는 한석규입니다. 특히 핏발이 선 눈을 계속 보여주는데 분장이겠지만 세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아주 잘 연기를 합니다. 최민식과 한석규 연기를 좋습니다. 다만 그 연기가 영화 전체를 지탱하기에는 많은 부분이 부족합니다.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

<8월의 크리스마스>는 제 인생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만들어준 허진호 감독을 너무 좋아합니다.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유행어를 만든 영화 <봄날은 간다>도 명작이죠. 2009년 <호우시절>도 꽤 좋은 영화였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멜로 영화 장인입니다. 한국의 '이와이 슌지'라고 할 정도로 감수성 풍부한 모습을 잘 담습니다. 그러나 2016년 <덕혜옹주>라는 역사 드라마를 연출한다는 소식에 놀랬습니다. 영화는 안타깝게도 역사 왜곡이 꽤 심했습니다. 그럼에도 액션도 많고 이야기 구성력도 그런대로 좋고 오글거림이 있지만 나름 잘 연출을 했습니다. 그러나 멜로 장인이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꽤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편 영화 <두개의 빛 : 릴루미노>는 다시 허진호 감독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천문>에서 무너지네요. 영화가 긴장감도 없고 이야기는 예측 가능하고 후반엔 좀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결과를 보여주고 플래시백으로 이야기의 맛을 내려고 노력하지만 맛이 없습니다. 

칼 소리 한 번 나지 않고 규모 감도 없고 이야기의 세심함도 없습니다. 백성을 이롭게 한 성군의 이미지도 크게 담지 못합니다. 오로지 두 배우의 역할만 보여줍니다. 연출도 좋지 않아서 영화가 전체적으로 지루합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감상이고 주변 관객들을 보니 영화 후반의 장면에서 몇몇 분들은 우시더군요. 따라서 제 느낌이 정답도 아니고 객관도 아닙니다. 그걸 감안해도 추천해주기는 어려운 영화가 <천문>입니다.

제가 영화가 마음에 안 들면 나 같았으면 저 장면에서 이랬을 것이다 저랬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 생각이 20번 이상 한 것으로 보아 결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던 영화 <천문>입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간간히 생각보다 많이 웃기는 구간이 있습니다. 웃음이 잔잔바리로 꽤 깔려서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는 좋습니다. 

별점 : ★★☆

40자 평 :  하늘에 묻다가 관객의 물음을 불러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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