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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스페이스22의 구본창 사진전 은염 사진의 한계 너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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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22의 구본창 사진전 은염 사진의 한계 너머

썬도그 2019. 12. 15. 11:58

한국 사진계의 역사를 돌아보면 항상 거론되는 사진작가가 바로 '구본창'입니다. 귀공자 같은 외모와 말씀도 조용조용 말씀을 잘하셔서 인기가 높도 저도 좋아하는 사진작가님입니다. 이 '구본창' 사진작가님이 강남의 스페이스 22 갤러리에서 1달 동안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강남역 1번 출구 바로 앞 미진빌딩 22층에 있는 스페이스22를 잠시 들렸습니다. 

구본창 사진작가는 사진을 잘 모르는 분들도 꽤 알고 있을 정도로 인기 사진작가입니다. 구본창 사진작가가 우리에게 크게 각인된 것은 아니 한국 사진계가 큰 변혁을 가져온 것은 1988년 워커힐 미술관에서 열린 '사진, 새시좌전'입니다. 이 당시만 해도 사진은 예술로 취급받기보다는 뛰어난 재현성을 바탕으로 한 기록 매체로 인식했습니다. 그나마 몇몇 사진가들의 노력으로 스트레이트 사진(다큐 사진류)이 인기를 얻고 있었고 사진은 어떠한 연출도 가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광고 사진을 찍는 '김한용 사진가'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업 사진으로 분류했었고 예술 사진(이런 구분도 없었지만)은 다큐 사진, 보도 사진 같은 비 연출 사진만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해외 유학파인 '구본창' 사진작가가 연출 사진을 전시하면서 연출 사진도 예술 사진으로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이야 연출 사진, 다큐 사진 모두 미학적 가치가 있으면 예술 사진으로 분류합니다만 당시는 연출 사진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구본창 사진가는 형식주의 사진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Ashes 06, 1994>

전 새로운 작품 활동을 하시고 새로운 사진들을 전시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초기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네요. 전시회면을 돌아보니 <구본창 사진전  은염 사진의 한계 너머>네요. 은염은 필름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 필름 사진 시절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네요. 각각의 사진들은 구입 가능이 가능하고 몇몇 작품 옆에는 붉고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 있는데 아마도 팔렸다는 표시 같습니다. 미술관에서는 미술품을 구매할 수 없지만 이 '스페이스22' 갤러리는 작품을 전시하고 구입까지 가능합니다. 그게 갤러리와 미술관의 차이이기도 하죠. 

사진들은 주제보다 형식이 더 먼저 다가왔습니다. 시계를 촬영한 흑백 사진을 불태워서 액자에 넣었네요. 저 부스러기도 작품의 일부이기에 기존 사진과 달리 액자 갈이는 절대 못하겠네요. 

<Ashes 03, 1995>

이 Ashes 시리즈는 1990년대 초중반에 선보였던 시리즈네요. 바로 위 사진은 이게 사진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명확하게 따지면 사진은 아닙니다. 

 사진 인화지를 불태운 건지 종이를 불태운건지는 모르겠지만 종이를 끼워 놓고 토치로 그을렸네요. 

바로 앞 영상을 보니 토치로 사진을 태우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네요. 처음에는 화질이 너무 안 좋아서 일부러 SD 화질로 촬영했나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새로운 작품 전시회인 줄 알았는데 이 영상 보고 혹시 이 작품들 과거 시리즈인가 하고 다가가서 봤더니 1990년대 작품이더라고요. 그제야 기억이 났습니다. 저 그을린 시계 사진을 구본창 관련 서적에서 가끔 봤습니다. 그걸 실물로 보게 되었네요. 그나저나 사진은 복제의 예술인데 저 Ashes 시리즈는 복제가 안 되겠는데요.

<In the Beginnig 13. 1995>

구본창 사진작가의 대표적인 사진 시리즈인 In the Beginnig입니다. 이 사진은 작은 인화지 위에 사진을 인화한 뒤에 각 인화지를 바느질로 이어 붙였습니다. 제작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인화기 밑에 사진을 조각조각 올려 놓고 노광을 한 후 인화액, 정지액, 정착액에 넣고 다시 사진을 모으면 저런 사진이 나옵니다. 저도 대학교 동아리 시절 이런 방식을 따라 했는데 전 바느질 대신 풀칠을 했어요. 

<데이비드 호크니 포토 콜라주 시리즈 1985년 제작>

그렇다고 제가 구본창 사진작가의 방식을 따라한 건 아니고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명한 바바라 런던의 '사진학강의' 책에 보면 이 사진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독특한 작품이죠.

보면서 구본창 사진작가는 대단한 형식주의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In the Beginnig 시리즈나 Ashes시리즈 모두 작가가 담은 피사체나 그 피사체가 표현하고 있는 주제는 뒤로 물러나고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지, 이게 사진이야?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러고 보면 1980년대 당시 사진은 이래야 한다!는 정언명령을 누가 만들어주지도 않았는데 사진작가들 사이에 사진은 프레이밍 해서는 안되고 왜곡해서도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가 많았는데 구본창 사진작가는 되고, 되고, 이것도 사진으로 되고를 만들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네요. 

이 사진은 나비를 직물 위에 프린트 해서 이어 붙인 듯하네요. 이런 사진들은 사진이라기보다는 미술품이 아닐까 합니다. 사진이 저렴한 이유가 무한 복제가 가능해서인데 이런 사진들은 복제가 안 되기에 유일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입구에 사진을 촘촘히 붙인 것도 흥미롭네요. 

메인 공간입니다. 초기와 달리 창밖을 자꾸 내다 봐서 그런지 거긴 최근에 막아 놓았더라고요. 그나마 그 창문 때문에 개방감이 좋았는데 창문 막고 지하 갤러리 느낌으로 변했어요.

스페이스 22는 이런 응접실 같은 공간이 있어서 좋아요. 잠시 쉬면서 강남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진들도 구본창 작가의 초기 사진인데 여러모로 과감한 형식이 확 다가오네요. 각종 암실 작업들이 많이 보이네요. 

<무제, 1995년>

무제라는 작품도 형식주의 작품인데 다른 작품들보다 의미가 크게 다가오네요. 시계라는 시간을 상징하는 피사체를 페인트가 칠해진 액자 위에 프린팅 한 후에 시간이 자연스럽게 벗겨 내었습니다. 세월의 더깨가 확 느껴지네요. 대단한 기법입니다. 마법 같아요. 하기야 형식이 깊어지만 사진이 마법처럼 느껴지죠. 영화가 대표적인 매체고요. 

구본창 사진작가는 다양한 물질 위에 사진을 인화했습니다. 이게 구본창 작가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구본창 사진작가가 꼭 이런 사진들만 담은 것은 아니고 비 연출 사진도 꽤 찍습니다. 다만 대표작 중에는 형식주의 사진들이 많습니다. 

형식주의의 정점은 이 사진입니다. 사진이라고 하기엔 하나의 미술품 같네요. 벽에 시계 다이얼 모양으로 사진을 붙여 놓았는데 사진을 가까이서 보니 시계가 보입니다. 그것도 불로 그을렸네요. 사진이라는 형식을 파괴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구본창 사진작가. 최근에 사진을 조각으로 만드는 작가도 나오고 사진을 부조 형태로 만드는 사진작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형식주의 사진들은 사람들을 쉽게 사진에 빠지고 호기심을 가지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도를 1990년대에 했던 분이 구본창입니다. 뭐든 먼저 하면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죠. 이 사진들은 비록 20년이 지난 작품들이지만 지금 봐도 놀라운 형식미입니다. 

'구본창 사진전  은염 사진의 한계 너머' 전시회는 12월 26일까지 스페이스22에서 전시를 합니다. 지나가다 한 번 들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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