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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덜 보여주려다 안 보여줘서 아쉬웠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by 썬도그 2019.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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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 '유열의 음악앨범'이라고? 뭐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설마 가수 유열이 주인공? 다행스럽게도 유열이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를 안 본 단 하나의 단순무식한 이유는 영화 제목에 '유열'이 들어가서입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지만 전 '유열'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예인의 실명을 사용할 때는 그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에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합니다. 덕분에 전 이 영화를 걸렀습니다. 영화 평도 좋지 못해서 제 결정은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생각보다 그런대로 꽤 괜찮은 영화더군요. 

보고 있을 땐 좋았는데 분석하면 별로 인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유열의 음악앨범>은 참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 영화 볼 때는 흠뻑 빠져 들어서 봤지만 영화가 끝난 후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영화를 뜯어보고 재조립하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볼수록 빈틈이 참 많은 영화입니다.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 영화 볼 때는 무던하게 보고 가끔 그시절의 감정에 내 마음을 띄워서 함께 출렁이면서 보다가 영화가 끝난 후 깡깡 얼어버린 겨울 호수 위의 차가움을 느끼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영화를 볼 때는 영화의 배경이 된 1994년. 1997년. 2000년, 2005년을 세월이라는 따뜻한 바람이 돛을 밀어내는 돛담배에 몸을 실어서 봤다면 영화가 끝난 후에는 그 돛단배를 항구에 정박한 후에 세월이라는 바람이 사라지고 대사와 장면만을 다시 보니 참 구멍이 많고 아쉬움이 많은 영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개연성에 대한 구멍이 꽤 많은 영화입니다. 그 개연성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다 보여주지 않고 살짝만 담는 영화들이 있죠. 일본 멜로 영화들이 여백의 미를 이용한 부족하지만 충분하면서 잔잔한 멜로 영화를 참 잘 만듭니다. 이심전심이라고 하잖아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그 공감이라는 중력을 믿고 만드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유열의 음악앨범>은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아닌 안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 전반에 깔리는 중요한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 후반에 보여주거나 최소한 대충 어떤 종류의 아픔이라는 것을 알게 해줄줄 알았지만 놀랍게도 안 보여줍니다. 안 보여주는 것이 여백의 미를 담은 것이 아닙니다. 여백이 아닌 단절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시나리오가 좋으면서도 나쁩니다. 


영화 첨밀밀이 생각나게하는 <유열의 음악앨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의 스토리 구조는 영화 <첨밀밀>을 연상하게 합니다. 홍콩 영화 첨밀밀은 등려군의 노래를 매개체로 두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헤어짐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의 두 남녀 주인공의 매개체로 1994년 10월 1일 ~ 2007년까지 89.1 MHz에서 방송하는 KBS 쿨FM의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매개체로 삼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유열의 음악앨범'의 작가 출신이라고 하니 작가의 경험을 소재로 삼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두 남녀의 만나고 헤어짐을 통한 회환의 감정을 담기 좋습니다. 소설에서는 피천득의 <인연>이 있습니다. 이야기 구조는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식상할 수 있지만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다 비슷비슷하지만 달콤하게 느끼는 것은 그 사랑을 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항상 새롭고 달콤합니다. 


굴곡과 골목이 많았던 그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사랑 이야기

<유열의 음악앨범>의 두 주인공인 현우(정해인 분)과 미수(김고은 분)은 1975년 생으로 동갑입니다. 도너츠와 커피를 파는 빵 가게를 친언니는 아니지만 친언니 같은 은자(김국희 분) 언니와 함께 운영합니다. 이 빵 가게에 교복을 입은 현우가 불쑥 들어오더니 두부를 달라고 합니다. 없다고 하자 현우는 근처 슈퍼에서 두부를 사서 먹습니다. 미수와 은자는 감옥 갔다 왔나보다 수근 거립니다. 

다음날 현우는 미수가 운영하는 빵가게 알바를 하겠다고 합니다. 현우가 소년원에 갔다온 것을 알지만 은자는 현우를 믿는다면서 알바를 허락합니다. 잘생긴 현우는 여학생들의 인기를 받으면서 알바일에 정착을 합니다. 그렇게 미수와 현우는 동갑 친구처럼 지내다가 어느날 폭주족 같은 친구들이 현우를 찾아옵니다. 현우는 가불을 부탁하고 그 돈을 들고 친구들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사라집니다. 

동네는 철거 위기에 놓이고 미수는 운영하던 빵 가게 문을 닫습니다. 미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운영하던 빵 가게를 들여다 보다가 우연히 현우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3년 만에 우연히 재회를 합니다.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던 사이이고 내일 군대 간다는 말에 미수는 자신이 혼자 사는 집으로 현우를 초대합니다. 

현우와 지수는 정말 손만 잡고 잡니다. 미수는 먼저 일어나서 현우에게 천리안 이메일을 만들어주고 메일 주소를 알려줍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메일 비밀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미수의 대학교 학번이지만 현우는 알지 못합니다. 그 사이에 미수는 옥탑방에서 이사를 갑니다. 현우는 전역 후에 미수가 사는 옥탑방을 찾아왔지만 다른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진 듯 헤어지지 않은 듯 지내다 현우가 자신의 천리안 이메일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미수에게 연락을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연락이 닿고 저녁에 만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현우가 일이 생겨서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또 다시 만남을 뒤로 미뤄야했습니다. 미수는 말합니다. "내가 후지면 세상도 다 후져 보여. 좋을 때 다시 만나자"


그렇게 미수와 현우는 만날 듯 만날 듯하다가 만나지 못합니다. 이런 애잔함은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의 최대 강점입니다. 또한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분위기를 아주 잘 묘사합니다.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연락처를 알 수 없어서 그냥 마음에 묻고 지낸 옛 사랑들이 자연스럽게 같이 피어납니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75년에 태어나서 90년대 학번을 지닌 현재의 40대들의 옛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주인공 나이대와 비슷합니다. <건축학개론>의 승민과 서연과 동시대에 살았던 덜 화려했던 청춘들의 이야기입니다. 미로와 같던 골목이 많았던 그 시절 청춘이라는 불안감 속에서 피워가던 미수와 현우의 사랑 이야기를 보다 보면 그 시절 불안감에 더 가열찼던 우리들이 사랑했던 어린 시절의 나와 사랑했던 사람이 많이 생각나게 합니다. 

추억의 불쏘시개 역할을 아주 잘하는 영화입니다. 이 불쏘시개에 화력을 더한 것이 음악입니다. 


노래 가사에 스토리를 입힌 듯한 <유열의 음악앨범>

이 영화의 약점이자 강점은 영화에 사용하는 음악입니다. 먼저 영화가 라디오 작가 출신이 시나리오를 써서 그런지 시나리오가 아주 촘촘하고 세련된 느낌은 없습니다. 다만 그 시절의 그 분위기와 느낌을 아주 잘 담았습니다. 특히 음악 선곡은 아주 좋네요. 전 영화를 보면서 이 시나리오 작가가 노래 가사에서 이야기를 추출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노래들의 가사와 미수와 현우의 사랑 이야기가 너무 잘 맞아 떨어지더군요.

자유시대의 모자이크와 오늘 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를 지나서 Fix You까지 노래 가사만 봐도 이 영화의 느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의적절하고 적재적소의 노래가 흐릅니다. 배경 음악이 미수와 현우의 사랑을 감싸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노래가 큰 역할을 하고 노래들도 다 좋습니다. 


덜 보여주기가 아닌 안 보여줘서 속 터지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일본 멜로 영화들이 좋은 것은 구차하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또한 뻔하고 눈물 콧물 일부러 짜내는 즙같은 멜로물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한국 멜로는 과장되고 오버스럽고 감정의 과잉으로 진득거리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아예 청춘 멜로물도 거의 안 보이더군요. 그런점에서 진득거리지 않고 신파가 없고 억지 눈물즙을 짜내는 면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너무나 불친절합니다. 보통 어떤 이야기를 다 보여주지 않고 암시하는 것으로 넘어가면서 두 청춘 남녀의 애잔함을 담을 수 있습니다. 좋은 영화들은 뭐든 직접적으로 보여주거나 대사로 묻지 않고 넘어가게 하죠. <유열의 음악앨범>은 그런 부류의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현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 때문에 소년원에 갔고 그 사건 때문에 친구들이 모두 불량스럽게 사는지도 참 궁금하게 만듭니다. 범생이 같이 생겨서 친한 친구의 죽음에 모두 죄책감을 가진 무리가 되어서 세상을 배회합니다. 

이 사건이 뭔지 참 궁금했습니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것을 알고 싶지 않아도 최소한 설득을 해줄 주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 그 친구의 죽음에 관해서 테두리만 보여주다가 끝납니다. 황당합니다. 최소한 주인공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려면 어떤 사건이 있었고 어떤 오해가 있었고 그 고통을 미수와 함께 견뎌가거나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습니다. 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안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게다가 이야기가 너무 끊깁니다. 현우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철저하게 숨기는 이유도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두 남녀가 만나고 떠나는 이유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특히 영화 초중반까지 잘 이어가던 애절한 두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 후반 현우가 소년원에 갔다 오게 한 사건이 갑자기 너무 불거지면서 영화는 멜로가 아닌 추리물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그런 톤 전환도 문제지만 구체적인 내용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건 시나리오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감독의 연출력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구멍이 너무도 많습니다. 치열하지 못합니다. 작위적인 스토리도 좀 보입니다.

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지는 알겠습니다. "내가 후지면 세상이 다 후져 보여"라는 미수의 말처럼 현우의 과거를 치료하지 못하면 함께 하게 힘든 남녀 사이를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미수의 방식대로 하는 것이 과연 현우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포기 아닐까요. 그래서 영화 마지막 장면은 좀 뚱하게 보게 되네요. 

라디오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두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고 연결 다리 역할을 하는 건 좋은데 영화 후반 이야기가 허물어지니 그 자체도 작위적으로 느껴지네요. 시나리오를 좀 더 세밀하게 다듬었어야 합니다. 만약 영화 상영 시간 때문에 편집에서 드러낸 부분이 많다면 그 부분을 넣은 감독판이 나왔으면 합니다. 

그럼에도 나에겐 좋았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저보다 한 두 살 어린 나이의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에 푹 빠진 이유는 같은 연배들의 추억을 돋게 하는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먼저 미수가 운영하던 빵 가게 전화번호가 신림동이나 독산동 이쪽 국번이네요. 지금도 골목이 많은 동네인데 집 근처 그리고 내 추억이 깃든 동네라서 반가웠습니다. 물론 촬영은 자세히 보니 창신동과 이화벽화마을 인근에서 주로 촬영했더군요. 거기가 더 90년대 초 분위기가 더 나죠. 

그리고 미수와 현우처럼 군대 때문에 헤어지고 만나고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난 인연도 생각나네요. pc통신, 새벽의 키스, 어스름한 골목길, 닿을 듯 닿지 못하는 인연, 90년대의 부족하지만 알찼던 사랑 느낌 등등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그 시절 그 분위기를 잘 담고 있습니다. 다만 뼈대인 스토리가 뒤에서 무너지는 것이 아쉽네요. 

나이들어서 돌아보면 그 시절의 망설이고 서성이고 맴도는 사랑의 발자국이 참 답답스럽게 보이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똑같은 행동을 하는 나를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당시에는 미래도 사랑도 사람도 관계도 세상도 모든 것이 불안했습니다. 20대 초의 그 불안감과 부모님이 없다는 결핍에서 미수와 현우의 사랑은 혜성처럼 다가왔다 멀어지는 과정을 거칩니다. 아쉬움도 많지만 저는 그 시절의 기억을 봉인 해제 시켜준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좋았던 영화입니다. 다만 제 주관과 달리 영화는 구멍이 꽤 보이네요. 

좀 더 다듬고 좀 더 메웠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드네요. 김고은과 정해인의 캐미는 꽤 좋네요. 두 배우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또 봤으면 해요. 

별점 : ★★★

40자 평 : 골목과 굴곡이 많았던 20대. 불안이 기본 태도여서 더 간절했던 그 사랑들이 떠오르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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