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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가 빛이 나려면 슈퍼히어로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빌런이 있어야 합니다. 마블코믹스의 대표 빌런은 누가 뭐래도 타노스입니다. 그럼 만드는 영화마다 망하는 일이 다반사인 DC코믹스는 누가 있을까요? 슈퍼맨의 '렉스 루터' 노노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이 빌런을 꼽을 껍니다. 

바로 '조커'

이 조커는 상당히 매력적인 빌런입니다. 여느 빌런이나 슈퍼히어로처럼 초능력이 없습니다. 초능력이 없지만 배트맨을 조롱하고 엿먹이고 많은 슈퍼히어로들을 골탕먹입니다. 조커는 초능력이 없지만 인간 종족 종특이라고 하는 사기를 잘 칩니다. 또한 심리술에 능해서 배트맨의 멘탈을 가볍게 붕괴시킵니다. 

사기술도 초능력이라면 조커의 초능력은 사기와 심리 조정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능력은 없지만 조커는 사악함이 타노스 이상입니다. 타노스는 비록 어벤져스와 다른 정의를 가져서 대립하지만 그 타노스의 정의 안에서는 어느 정도 신사적입니다. 그러나 조커는 그런거 없습니다. 같은 편도 배신하고 등때리고 도망가는 배신을 밥먹듯 합니다. 딱 악마 그 자체입니다. 

대중성은 떨어지지만 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담은 영화 <조커>

이런 매혹적인(?) 빌런 조커는 많은 명배우들이 연기를 했고 대부분이 조커 연기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89년에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의 조커를 연기한 '잭 니콜슨'과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조커를 연기한 지금은 고인이 된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는 영화을 품격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했습니다. 

이 조커는 누구나 연기를 하고 싶어하지만 조금만 미흡해도 '히스 레저'와 '잭 니콜슨'과 비교되기에 독이든 성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히 이 조커를 누가 또 도전할까 했는데 도전자가 나왔습니다. '호아킨 피닉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호아킨 피닉스'라면 가능하고도 남습니다. 이 배우는 연기의 신이라고 할 정도로 최근 연기가 물이 올랐습니다. 2000년에 개봉한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코모도스 역을 해서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호아킨 피닉스'는 2013년 작품인 <그녀>로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됩니다. 저도 이때 이 배우의 팬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영화에 나오면서 자신의 연기를 뽐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독이 든 성배를 마셨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아킨 피닉스'는 제 기대 이상의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조커라는 캐릭터 자체는 초능력이 없는 빌런이지만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라는 초능력으로 그 '조커'라는 캐릭터로 2시간을 꽉 채웠습니다. 마치 '호아킨 피닉스'의 1인극을 보다 나온 느낌입니다. 

이 영화 <조커>는 슈퍼히어로에서 나오는 빌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입니다. 보통 코믹북에서 나온 캐릭터들은 예술성을 강조하는 해외유명영화제에서 수상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사실 걱정은 되긴 했습니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면 대중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실제로 영화는 대중성은 높지 않습니다. 액션 장면이 약간 있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액션 장면이 적습니다. 또한 배트맨이라는 슈퍼히어로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영화 <조커>는 오로지 조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절대악인 조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조커>는 조커라는 악마가 처음부터 악마가 아닌 만들어진 악마임을 강조합니다. 사회와 세상 사람들과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무례함과 무책임함을 먹고 자라면서 점점 살인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낮고 우울한 첼로 소리를 배경으로 자박자박 담고 있습니다. 


웃는 얼굴 대신 웃음 틱으로 새로운 조커를 창조한 '호아킨 피닉스'

아서(호아킨 피닉스 분)은 코미디언이 꿈인 코미디언 지망생입니다.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서 클럽에서 거리에서 삐에로 분장을 하고 공연과 매장 홍보 도우미를 합니다. 그러나 고담시가 달리 고담시가 아닙니다. 선의보다는 악의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음반 가게 홍보를 하기 위해서 삐에로 복장을 하고 광고를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청년들이 광고판을 빼앗아 달아나고 쫓아간 아서에게 광고판으로 후려칩니다. 집단 구타를 당한 아서. 그런 아서에게 사장은 폭력배들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말에 콧방귀를 뀌고 광고판비를 월급에서 까겠다고 합니다. 

이런 아서에게 동료는 권총을 주면서 다음에 그런 일이 또 일어나면 총으로 쏘라고 합니다. 아서는 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서는 정신병이 있어서 약을 달고 삽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데 웃음이 나옵니다. 한번은 버스에서 혼자 웃다가 다른 승객이 불쾌해하자 자신은 병이 있다는 메모로 자신의 상태를 알립니다. 어떻게 보면 틱 장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 틱 장애를 겪고 있지만 살아가려면 사회 생활을 하려면 틱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리면 안 됩니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 앞에서 정신병이 없는 척 연기를 해야 합니다. 


원래 조커는 코믹북에서는 독성이 있는 화학물을 뒤집어 쓰고 웃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평생 웃는 얼굴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조커는 항상 웃는 얼굴인 삐에로 분장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 <조커>는 코믹북이 원작이 아닌 새롭게 창조한 이야기입니다. 원작에서는 '스마일 페이스'로 조커의 특징을 담았다면 영화 <조커>는 영리하게도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웃음 틱을 이용해서 조커가 항상 웃어서 오해를 받게 합니다. 

그날도 총을 가지고 아동 병동에서 삐에로 연기를 하다가 총을 바닥에 떨구는 바람에 바로 해고를 당합니다. 삐에로 복장을 하고 지하철을 탄 아서는 건너편에서 여성을 히롱하는 3명의 양복쟁이를 보고 웃었습니다. 웃음틱이 발동하자 아서는 메모를 꺼내서 자신에게 병이 있다고 보여주려고 했지만 3명의 양복쟁이는 인정사정하지 않고 패기 시작합니다. 이에 동료가 준 총으로 3명을 인정사정없이 쏴 죽입니다. 

아서는 효자입니다. 미혼모인 엄마랑 둘이서 삽니다. 엄마랑 뉴스를 보면서 지하철 살인 사건을 봅니다. 아서가 죽인 3명은 고담시의 금융 재벌인 '토마스 웨인'이 운영하는 금융회사 직원들이었습니다. 삐에로 복장을 한 사람이 이 3명을 죽었다는 목격담이 퍼지자 가난한 사람과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삐에로 가면을 쓰고 시위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마치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시위와 비슷합니다. 

고담시는 빈부격차가 심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복지 혜택도 점점 더 줄어듭니다. 정신병 치료약을 먹었던 아서는 고담시가 무료로 제공하던 정신상담과 치료약 제공이 끊기고 무례한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해지고 결정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던 토크쇼 스타가 자신을 조롱하고 주변 사람의 배신과 조롱에 서서히 무너져갑니다. 그렇게 아서는 사회 복지 제도의 미흡함과 주변 사람들의 배려 없고 무례함과 조롱을 정신약 대신 먹다가 괴물이 됩니다. 


사회와 주변 사람이 만든 괴물 조커

전국을 떠들석하게 한 살인마와 흉악범을 잡으면 보통 그 흉악범의 과거 이야기가 뉴스로 담겨서 나옵니다. 결과는 참혹하지만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흉악범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가끔 나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 괴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딱 1사람만이라도 깊고 길게 안아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이도 필요 없습니다. 딱 한 사람이면 됩니다. 

아서는 그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그 한 사람이었지만 엄마마저 떠나자 세상에 대한 복수를 감행합니다. 영화 <조커>를 보면서 아서가 한없이 안쓰러웠습니다. 엄마를 빼고 아니 엄마도 '니가 뭘 웃기냐고' 냉기어린 직언을 합니다. 동료도 자신이 존경하던 토크쇼 진행자도 자신을 조롱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웃음 틱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주먹부터 날아옵니다. 조커는 세상에 외칩니다. 단 한명이라도 날 존중해 달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단 한명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은 '토마스 웨인'은 가난한 사람들을 벌레보듯 하면서 돈의 신처럼 그들을 구원하겠다는 무례한 말을 합니다. 이런 무례함이 일상이고 기본 상식이 된 고담시에서 조커는 무례함을 먹고 서서히 괴물이 됩니다.

이 과정이 상당히 길어서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아킨 피닉스의 웃음도 울음도 아닌 기괴한 표정과 연기로 이 지루할 수 있는 과정에서 아서의 등을 토닥이다가 괴물이 된 후 아서에서 조커로 재탄생한 조커를 추앙하는 군중 속에서 박수치는 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조커를 지지한 이유!

"한국 부패 유형은 매우 흥미롭다. 엘리트 카르텔 유형이다. 많이 배운놈들이 조직적으로 뭉쳐, 국민을 드여 먹는다" -마이클 존스턴 교수-

영화 <조커>는 금융 재벌인 '토마스 웨인'과 인기 토크쇼 진행자라는 권력자가 나옵니다. 이 둘의 특징은 참으로 무례하다는 겁니다. 토마스 웨인을 찾아간 아서에게 주먹질을 하고 좋게 말할 수 있음에도 직설적으로 말하는 토마스 웨인, 자신이 웃음 틱이 있는데 자신의 첫 공연 영상을 자신의 허락도 안 받고 지상파 방송에서 방송해서 고담시 전체에 웃음거리로 만든 토크쇼 진행자도 참 무례합니다. 더 무례한 건 이 영상이 인기를 얻었다면서 토크쇼에 초대까지 합니다. 

상대방 입장이 되면 절대로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놈들은 지들끼리 카르텔이 있는지 권력자들의 상식은 일반 대중의 상식과 다릅니다. 

'토마스 웨인'과 토크쇼 진행자를 보고 있자니 고담시를 넘어서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고농도 마약을 밀반입하고도 투약까지 했는데도 구속 영장이 기각되고 음주운전을 하고 운전자 바꿔치기를 하고 핸드폰을 부셔도 구속하지 않는 재벌과 정치인 2세를 돌봐주는 경찰과 법원 판사와 표창장은 위조 하면 안 된다면서 11시간이나 압수 수색을 하는 한국 사회를 보고 있자니 울분이 터집니다. 

차라리 조커가 되자!  차라리 조커가 되어서 가진 놈들이 만든 카르텔의 결계를 깨부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커가 자동차 보넷 위에 올라섰을 때 저도 삐에로 마스크를 쓰고 조커를 지지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조커 자체는 흉악범입니다. 그러나 조커만이 가진 놈들이 자기 유리하게 만든 세상의 룰을 깨부술 수 있는 사람이 조커 밖에 없어 보여서 지지하고 싶었습니다.


세상 자체가 그리고 내 삶이 코미디야!

 남을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언 지망생은 자신을 조커라고 소개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조커가 된 아서는 세상 자체가 코미디이고 내 삶 자체가 코미디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사람들은 웃지 못합니다. 이 비애를 감히 누가 연기하고 담을 수 있을까요? '호아킨 피닉스'만이 담을 수 있습니다. 

사회 지도층과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공산주의로 몰린 '찰리 채플린' 영화 <모던타임즈>를 보는 장면 자체가 코미디입니다. 반성 없는 자본가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한 영화에서도 웃음 짓고 행복합니다. 반면 아서는 태어나서 단 1분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면서 웃음 틱 속에서 괴로워합니다. 


히스 레저와 비교할 수 없는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만랩 연기

예상보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더 좋았습니다. 등 근육으로 연기하는 배우를 넘어서 웃음과 슬픔을 한 얼굴로 모두 표현하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영화배우였지만 요절한 형 '리버 피닉스'를 하늘로 떠나 보낸 동생이라서 그런지 세상 모든 슬픔을 다 끌어모아서 연기를 합니다. 

영화 <조커>는 '호아킨 피닉스'의 1인극이라고 할 정도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화 자체는 액션도 엄청난 스토리의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상당히 지루할 수 있지만 '호아킨 피닉스'가 이 지루함을 날리는 엄청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혹자는 '히스 레저'의 연기를 뛰어 넘었다고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히스 레저'는 배트맨이라는 슈퍼히어로와의 대결에서 나오는 리액션 연기가 대단했습니다. '히스 레저'의 연기는 여러 명의 배우가 나오는 연극에서의 뛰어난 연기였다면 '호아킨 피닉스'는 1인극의 연기를 보는 듯합니다. 따라서 두 배우 모두 훌륭한 연기를 했고 누굴 뛰어 넘고 넘지 못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만약 영화 <조커>에 배트맨이 등장했다면 비교가 가능하겠지만 배트맨이 없기에 비교할 수 없고 두 배우 모두 뛰어난 연기를 펼쳤습니다. 조커는 초능력이 없지만 '호아킨 피닉스'는 연기라는 초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악한 조커는 우리 사회 안에서 잉태가 됩니다. 

영화 <조커>는 대중적인 재미가 높은 영화는 아닙니다. 악당을 주인공으로 하기에 보고나면 통쾌함이 아닌 우울감이 밀려 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울분이 없고 항상 해피한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저 같이 울분도 많고 불만도 많고 살짝 우울끼가 있는 분들이 보면 가장 좋습니다. 블링블링한 영화가 아닌 어른맛 영화라서 더 좋았습니다. 

조커가 말했듯이 코미디도 주관적이고 세상 정의도 주관적입니다. 제 주관으로 이 영화 <조커>는 명작 반열에 오를 영화입니다. 그러나 대중성은 높지 않으니 우울한 영화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에 불만이 있는 분들은 이 영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조장하는 영화도 아닙니다. 다만 악마가 탄생하는 데 우리 사회가 우리가 도움을(?)을 준 공동정범이라는 뼈 때리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별점 : ★★★★

40자 평 : 세상 자체가 그리고 삶 자체가 코미디라고 말하는 아서의 슬픈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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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마일 2019.10.02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성스런 후기네요 깊이 공감합니다 ^^

  2.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9.10.04 14: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에 대한 평이 괜찮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