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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우리집.어른이라는 집을 향한 아이들의 한숨소리

by 썬도그 2019.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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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본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영화 3편 중 하나였던 영화 <우리들>은 사춘기라는 거대한 강을 건너는 아이들의 고민과 고통을 통해서 우리들의 아이들과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무척 좋은 영화였습니다. 아이들의 사춘기를 이렇게 잘 담은 감독이 누구인가 찾아보니 윤가은 감독이었습니다. 

윤가은 감독은 아역 배우들의 연기를 잘 끌어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입니다. 이 윤가은 감독이 <우리들>에 이어서 <우리집>이라는 영화를 들고 올 여름 찾아왔습니다. 지난 주에 개봉을 했는데 개봉관이 많지 않아서 기회를 보고 있다가 '문화가 있는 날' 저녁에 봤습니다. 


<부자인데 매일 싸우는 우리집, 가난한데 화목한 우리집>

초등학교 5학년인 하나(김나연 분)은 학교에서 선행상을 받습니다. 선행상을 받은 하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행상을 받았다면서 엄마 아빠에게 부탁을 합니다. 가족 여행 한 번 가자고 부탁을 합니다. 하나의 소원은 가족 여행입니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 그리고 중학생 오빠와 함께 간 바닷가 여행을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매일 같이 엄마 아빠가 싸워서 여행이라는 단어를 꺼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매일 싸우는 엄마 아빠에 이골이 난 사춘기 중학생 오빠는 엄마 아빠를 말리기 보다는 빨리 이혼을 하라고 화를 냅니다. 어린 하나는 깨져가는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하나는 마트에서 유미(김시아 분)와 유미 동생 유진(주예림 분)을 봅니다. 자기보다 어린 저학년 초등학생인데 엄마 아빠도 없이 마트를 막 뛰어 다닙니다. 그러다 유진이 홀로 남겨진 것을 보고 집을 함께 찾으러 다니다가 유미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유미 자매와 하나는 친구 같은 언니 동생이 됩니다. 

하나는 요리를 잘 합니다. 아이 둘이서 지내는 유미네 집에서 음식을 하면서 유미네 가족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유미 엄마, 아빠는 도배일을 해서 수시로 지방 출장을 갑니다. 그렇게 둘만 남게 되면 삼촌이 와서 아이들을 봐줍니다. 방은 너무나 좁지만 유미네 부모님은 사이가 좋습니다. 

유미는 고민이 있습니다. 엄마 아빠의 직업 때문에 수시로 이사를 가는데 지금까지 총 6번이나 이사를 간 것이 불만입니다.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하면 이사를 가고 이사를 가서 친구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 유미에게 친구 같은 언니인 하나가 다가왔습니다. 유미는 하나 언니와 함께 지내면서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고 길고 지루한 방과 후 시간을 즐겁게 보냅니다. 

하나의 우리집은 돈 걱정, 이사 걱정은 없는 큰 집에서 살지만 부모님 사이가 좋지 못합니다. 
유미의 우리집은 부모님 사이는 좋지만 이사 걱정에 한 숨만 늘어갑니다. 

하나의 집은 House가 있지만 Home 없는 집이고 유미의 집은 House가 없고 Home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긴 한숨을 내뱉듯 유미가 말하는 "우리집은 진짜 왜 이러지?"라는 대사가 아이들의 슬픈 고민을 잘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끼리는 너무 즐겁고 세상은 맑고 밝아 보이는데 어른들이 만든 우리집은 어둡고 냉랭합니다. 여기서 우리집은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가 말하는 '우리 집은 왜 이 모양일까?'의 우리집은 물리적인 공간인 건물이 아닌 우리집을 이루는 가족을 말합니다. 

온 가족이 놀러 간 바닷가 여행을 그리워할 정도로 오빠, 엄마, 아빠 모두 우리집을 지킬 생각이 없습니다. 하나는 술취한 아빠옆에 있던 전화기가 울려서 받았다가 아빠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는 건 큰 충격입니다. 그러나 우리네 어른들 아이들 생각은 안 하고 자신들의 욕망만 충족하는 버러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유미가 행복한 건 아닙니다. 유미는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지만 좁디 좁은 집에서 사는 것은 큰 내색을 하지 않지만 너무 잦은 이사에 큰 불만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유년 시절 기억은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만 만들 수 있는 동네 친구를 유미는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유미 부모가 좋은 부모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화목할 뿐 영화에서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다. 특히나 이사는 가족에게 특히 어린 유미에게는 큰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사를 앞두고도 아이들과 상의도 없고 얼굴을 내밀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일 때문이라고 하지만 저학년 초등학생인 유미와 유진 둘이 집에 있게 하는 것 자체가 아동 방임입니다. 

삼촌이 와서 봐준다고 하지만 이건 엄연한 아동학대입니다. 그럼에도 큰 소리로 비난하지 못하는 이유가 유미 같은 가정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에 국가가 맞벌이 부모 대신에 보살피는 복지가 작동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미흡한 게 현실입니다. 


여행을 통해서 굳어지는 아이들끼리 만든 또 하나의 우리집

아이들에게 있어 우리집은 세상 그 자체입니다. 우리집에서는 그 어떤 행동도 허용이 되고 편안합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편온함, 평안 그리고 온기는 우리집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이 온기를 안고 나갔다가 싸늘한 세상이라는 냉기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보다 우리집이 더 냉기가 가득하다면 세상 살 맛이 날까요? 그것도 독립도 할 수 없는 나이인 어린 아이라면 어떨까요?

하나는 유미 자매를 만나면 아이처럼 밝게 웃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우울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긴 한숨이 자주 나왔습니다. 못난 어른들이 만든 냉기가 가득한 집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3명의 아이들이 너무나도 안쓰러웠습니다. 영화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 없이 3명의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한숨이 자주 나왔습니다. 

"우리집은 진짜 왜 이러지?" 라는 유미의 말에 언니인 하나도 살면서 우리집도 마찬가지라면서 밝히기 힘든 가족 이야기를 툭하고 꺼냅니다. 유미와 유진은 상자 모으기를 좋아합니다. 종이 상자를 모으는 일에 하나도 동참합니다. 그렇게 종이 상자를 쌓아서 만든 하나, 유미, 유진의 종이 상자 집이 완성이 됩니다. 

이렇게 3명의 아이들은 우리집에 대한 불만이 쌓아가던 중 드디어 하나네 가족이 가족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가족여행 기간에 유미에 집이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 발생합니다. 유미는 하나 언니에게 주말에 같이 있어 달라고 말합니다. 아마 유미는 언니지만 어른 같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이웃인 하나 언니에게 손을 내밉니다. 

솔직히 영화 <우리집>의 중반은 좀 지루한 면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사건 사고가 크게 나오지 않다 보니 살짝 지루하게 느껴질 때 하나와 유미네집이 분리되는 선택이 놓이면서 영화가 크게 요동을 칩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고통받는 안쓰러운 어린 우리들을 담은 우리집

영화 <우리집>은 맑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간간히 웃깁니다.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모습만 봐도 행복감이 스크린에서 뚝뚝 떨어집니다. 아이들의 연기들은 연기라기 보다는 하나 언니와 유미 자매가 재미있게 노는 모습으로 그려질 정도로 빼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는 윤가은 감독의 뛰어난 연출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죠. 

국내에서 아역 배우들에 대한 인권이나 연기 환경, 영화 환경에 새로운 지평을 만들고 있는 윤가은 감독의 뛰어난 연출이었기에 3명의 아역 배우들의 맑고 청량한 느낌의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에너지가 가득 잘 담깁니다. 여기에 영화의 색감이 빛이 바랜 필름 톤으로 담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의 우리집을 떠올리게 됩니다. 

제 유년 시절의 우리집도 화목하지 않았고 지금도 화목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중학교 때인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돈 문제로 대판 싸우다가 화가 난 아버지가 화분을 깨버렸습니다. 싸움을 말린 후에 깨진 화분을 치우는 모습을 본 어머니가 나중에 내가 참 착하다면서 다른 아줌마에 지난 밤에 싸운 이야기를 전화로 하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습니다.

참 철이 없는 어머니이고 지금도 참 철이 없으십니다. 보통 좋은 어른, 좋은 부모가 된다면 싸우더라도 아이들 앞에서 싸우면 안 됩니다. 그 자체가 폭력입니다. 가정 폭력이 회초리로 때리는 것만이 가정 폭력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생각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 행동 한마디, 특히 사려 깊지 않은 말과 행동 자체가 폭력입니다. 

영화 <우리집>은 남의 집인 하나네 집과 유미네 집을 통해서 우리집과 유년 시절의 우리집을 반추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한편으로는 약간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먼저 스토리가 가끔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있는 점과 함께 영화 속에서 좋은 어른이 1명도 안 나오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영화를 보면 하나가 어른이고 그 다음으로 성숙한 어른이 유미라고 생각할 정도로 하나의 부모는 물론 유미네 부모, 유미네 집의 집주인 등 몇 등장하지 않은 어른들이 하나보다 어른스럽지 못합니다. 반대로 하나가 너무 어른스럽게 행동을 해서 저게 자연스러운 어린아이의 모습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하나보다는 오히려 중학생이 하나 오빠가 가장 흔한 사춘기 청소년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럼에도 하나같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분명 있습니다.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하지만 어른은 나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책임감입니다. 하나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세대주가 아닌 세대원이지만 세대주인 부모보다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런 하나가 세대주와 같은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면서 책임에 대한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이 장면은 여 영화의 백미이자 아주 중요한 에피소드입니다. 잠시나마 어른의 위치에 서본 하나는 크게 성장을 합니다. 


"계속 우리 언니 해 줄꺼지?"

집으로 향해 가던 유미가 묻습니다. 

"계속 우리 언니 해 줄꺼지"

이 대사에서 울컥했습니다. 우리라는 단어는 참 포근한 단어입니다. 가족이 우리가 될 수 있고 친구가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달라도 성별이 달라도 정체성이 크게 달라도 우리라는 울타리를 서로 인정하면 너이지만 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냉골에서 견딜 수 있는 온기입니다. 

잦은 이사로 친구가 없던 유미는 또 떠날지 모릅니다. 그런 유미에게 우리 언니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이 장면은 하나에게 있어서 영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장면도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장면입니다. 


영화 <우리집>에는 반가운 손님들이 등장합니다. 하나와 유미가 사는 동네에는 영화 <우리들>의 두 주인공인 선(최수인 분), 지아(설혜인 분)이 나옵니다. 지아는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하나와 유미가 떡볶이를 먹던 떡볶이 가게에는 선이 있습니다. 

까메오 출연이지만 선과 지아가 자라는 동네에서 또 하나의 맑은 영혼인 하나와 유미가 자라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어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집을 파괴하는 권력을 가진 우리 어른들인 집을 파괴하는데 열심일까요? 지키는데 열심일까요? 

다시 말하지만 착한 어른이 1명이라도 나왔으면 마음이 덜 아팠을텐데 착한 어른이 1명도 안 보이는 점이 무척 마음을 무겁게 하네요. 그러나 하나가 착한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나마 마음에 얹혀 있던 무거운 감정의 체증이 좀 내려갑니다. 아니 이게 현실입니다. 평생 자라면서 주변에 좋은 어른 1명 만나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관계가 단절되어가는 것이 미덕인 현재는 더 그렇죠. 그러나 수컷만 남은 생물체가 스스로 암컷으로 변이를 하듯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아이가 어른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영화입니다. 맑고 밝은 영화입니다. 소재 자체는 어둡지만 영화 내내 3명의 아역 배우들의 맑고 밝은 웃음소리가 가득한 영화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별점 : ★★★★

40자 평 : 못난 어른들이 지은 집을 지키는 어리고 맑은 영혼을 가진 세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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